2010년 시월의 마지막 토요일인 10월 30일 아홉시쯤에 구미를 출발하여
소백산 죽령 들머리에서 제1연화봉까지 갔다가 희방폭포로 하산을 할려고 했었는데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한 잔 걸치는 바람에 늦잠을 잤다
내가 좋아하는 우럭회가 있어 소맥으로 간을 맞쳐서 세 잔 정도만 마실려던 술이
그만 취하도록 마시게 되었따 에고 "한 잔이 한 잔이 열 잔이 되고
열 잔이 열 잔이 조금이 되니 눈알이 빙글빙글 다리가 휘청"... 되어뿌렀따
우짜당간 도시락을 준비하여 집을 나서니 열시가 넘었따
"시간이 늦어서 그런데 어데로 갈까..?"
"에그 이 구신아 산에가자 캐노코 그키 처마시고 오마 우짜노..??
운전대 잡은 니맘대로 하세요..."
"그냥 가까븐데 가야산 해인사쪽으로 가까..?"
"아저씨 거시기 꼴리는대로 하이소.."
몇해전 구미에서 전날 술 많이 마시고 산행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 분이
있었더래서 늘상 강조를 하곤 했는데 그넘의 술이 내맘대로 안되는 걸 우짜노...
에혀... 술이 웬쑤인지 내 머리통이 웬쑤인지 모리긋따...
북삼을 지나 김천쪽으로 향하다가 중부내륙고속국도 남김천톨게이트를 통과하여
성주에서 내려서 대가를 거쳐 수륜에서 백운동쪽으로 올라갔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그런지 갈증이 많이 나서 물 두통을 다 마셨다 그래서
예전에 백운동 가기전에 지하수 받는데가 있었는게 생각나서 물을 쫌 받아가려했는데
수질검사 결과 음용수에 부적합하니 마시는데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따
산길을 굽이 돌아 가다보니 백운동쪽 들머리에는 길가까지 차량들이 즐비하다
토요일인데도 마치 일요일인듯하다 이젠 토요일에도 쉬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그런데 사실 내 마음속으로는 오늘 가야산 정상까지는 안가고 해인사 근처에서
얼쩡거리다가 조금 더 올라가서 점심이나 먹고 내려올라꼬 마음 먹었었따
그리하야 가야산 옆구리를 끼고 구비구비 돌아서 해인사 입구로 들어섰다
주차비가 사천냥에 일인당 관람료가 이천냥씩 합이 팔천냥을 주고 들어서려니
속이 쓰리다 구미는 금오산 주차장에 하루죙일 세워 놓아도 일천냥인데...
그라고 전에는 관람료는 절에 가는 사람만 받았었는데 이제는 이것도 바뀌었나보다
무언가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든다 땡초들이 이키 마이 벌어가 무얼할랑공...?
개울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수많은 고목들이 버티고 서 있는데 벌써 피톤치드가
내 가슴속에 들어오는지 머리속이 시원해 진다
해인사에 올라오면 가장 좋은게 쭉쭉뻗은 오래된 소나무 사이로 걷는거다
내 생각에는 해인사쪽 보다는 야영장이 있는 곳이 더욱 좋은 것 같다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법손인 순응(順應)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화상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802년)에 지금의 대적광전 자리에 창건하였는데
한국불교의 삼보사찰인 불보, 법보, 승보사찰중 하나인 법보(法寶)사찰이며
또한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입추의 여지가 엄따 가는 날이 장날이라꼬 해인사에서
어제부터 오늘까지 일박이일의 일정으로 "비로자나불 무생계" 수계의식을 한단다
무생계(無生戒)는 원래 스님들이 받는 계였으나 몇년전부터 해인사에서
일년에 한번씩 일반신도들에게 보살계(菩薩戒: 재가 신도들이 받는 계)와 비슷하게
조계종 종정이신 법전스님으로 부터 무생계를 수계하게 하는 모양이다
무생계의 취지는 "선행도 하지 말고 악행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계를 받을 때 자신에 대해서 애착하거나 그렇다고 하여 자신을 버리거나 또는
유심(有心) 무심(無心)으로써 받아도 안 된다고 하였다
예전 성철스님이 말씀하셨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씀과
일맥상통을 하는 건지는 모리지만 내같은 범부가 어떻게 알리오만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 보다 한 술 더 떠서
오른손이 한 일을 오른손 자신도 모르게끔 바로 잊어버리라는 말이다 좋은 일은
한 것으로만 끝내고 자신이 좋은 일 했구나 하는 마음조차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 마음을 가지는 자체가 남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것이니 자랑을 한다면
그건 이미 좋은 일이 아니고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을 욕보이는 행동이라는 거다...
해인사에 와 본지도 이십여년이 되었나 보다 아들내미 초등학생일때 왔었으니까
예전하고 조금 달라진 모습이 쪼매 낯설다 그런데 기분 나쁜건 매한가지다
큰 사찰을 다니다 보면 어느곳이든 느끼는 건데 언넘은 차를 타고 다니고
어느분들은 걸어 다닌다는 것이 마음에 안든다
고즈넉한 오솔길을 걸어가다 보면 저절로 마음수양이 되는 듯 한데 오지랄넘들이
차를 타고 올라가민서 먼지를 풀풀 날리면 수양이 되어가든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에이 지꺼머신발끈 하는 욕지거리가 나온다 이기 절에서 힘없는 일반 신도들을
일부러 수양 시킬라고 카는지 우짠지는 모리지만 이건 아니라고 본다
화물이나 환자를 수송하는등 필수적인 사연이 없다면 차랑을 통제시키는기 맞다
시부랑탕을 주저리며 올라가는데 엄청나게 크게 조성한 부도들이 보인다
"부도(浮屠)"는 돌아가신 선승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안장한 탑을 말하는데
통상적으로 사찰의 입구에 세워놓는데 이건 규모가 너무 크다 이걸 보자마자
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말은 "이기 무신 짓거리여..!!!" 하는 말이다
똥통에 처박을 짓거리를 하는 것은 세속만이 아니고 이곳에서도 만연을 하는구나
이곳에서도 남들한테 잘 보이고 내 어깨 넓다꼬 자랑할려는 심보가 있구나
우리나라 삼대사찰 중에 법보사찰인 이 해인사에서
그리고 조계종 종정께서 주석하시는 이 해인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열반하신 선승들께서도 이런 걸 원하시지는 않았으리라...
평생 한두 벌 먹물옷으로 군데군데 누더기처럼 기워 입으시며 마음을 닦던 분들이
이렇게 큰 집을 원하시지는 결코 않으셨을껀데 도대체 어떤 마구니가 들어서
이런 작태를 벌려 놓았을꼬...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참회진언라도 세번 되뇌어야겠다
그라고 아무리 스승이지만 오늘은 스님들께 인사를 안하기로 마음 먹었다
왜.. 내 마음이니까...!! 그라고 나는 다니는 절도 엄꼬, 법회도 참석하지 않는
땡초신자니까 내가 내키는대로 욕을 하든 선을 구하든 내맘대로여..!!
내가 지금 불교적인 면이 쪼매라도 있다는 것은 도로에서 차에 치인 고양이나
짐승들이 죽어있는 것을 보든지 가끔 길에서 영구차와 마주치게 되면
광명진언을 읊어서 좋은 곳에 가라고 기도 해주는 정도가 전부다
그라고 산에 갈 때 절이 있으면 들러서 인사치례하는 정도다
일주문을 들어서는데 많은 장식물들이 눈에 띈다 물론 일년에 한 번 하는
행사이니 이해는 간다마는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대적광전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생계를 받느라 버글버글하다
당간에 걸린 탱화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수계행사를 잠깐 구경하다가
내려오면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하고서 용탑선원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상까지 4Km라는 표지가 보인다 개울을 따라서 올라가다가 점심이나 먹을려는
요량으로 가다보니 서서이 곱게 물들인 단풍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가에는 밤나무와 잣나무가 즐비한데 내가 먹을만한 건 안보이는 것 같다
국립공원에서 이런거 줏으마 벌금때린다고 얼마전에 뉴스에 나오든데...
삼십여분 올라가다가 개울가에 앉아서 사과를 한 개 깎아 먹으며 쉬다가 보니
한 시가 다 되었다 배 고프다며 밥을 먹자하니 정상에 가서 먹잔다
엥..!!! 머시기...!! 어쩔시구리...!! 함 해보자는 겨..??
그려 알았다하며 고구마와 초코과자 한 개씩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는
정상을 향하여 올라간다 정상에서 1Km 정도 아래까지의 길은 많이 가파르지 않아
거의 동네 주변에 있는 동산 수준이니까 별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는 코스이니
살방살방 올라간다 그런데 때이른 서리가 내려서 그런지 올라갈수록 단풍잎이
조막손처럼 움쿠려져서 볼품이 없다 그라고 땟갈도 영 아이다
산에 다니다 보면 계절에 알맞은 옷을 걸친 식물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경우가
참으로 힘들다는 걸 느낀다 우째우째 운이 좋으면 일년에 한 번 정도는 제대로 된
경치를 보여준다 우리네 삶이 이럴 것이다 일 년을 살다보면 정말 좋은 시절은
한 달 남짓 할거다 그리고 한 달 정도는 좋지 않고 나머지 열 달은 그저 그렇다
때로는 열 달이 좋을 수도, 열 달이 안좋을 수도 있겠지만...
산죽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진 길을 걷노라니 선인의 경지에 들어선 듯 하다
꼴에 동산스님께서 범어사 대숲을 걸으시다가 견성을 하셨다는 걸 들은게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아님 그냥 호젓하게 가는게 좋아서 그런지는 모리지만...
두시가 지나니 서서이 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사람은 몇걸음 가다 조금쉬고 하니 나의 리듬이 깨지는 것 같다
쉴려면 사오분을 쉬든지 하지 십미터 정도 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잠깐 숨만
고르고는 몇걸음 가고 하는 걸 반복하다 보니 내 호흡과 발이 안맞아떨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돌산이 나오고 가파른 경사의 계단이 나오는데 조금씩 쉬다
가다를 반복하며 올라가는데 정상을 사백미터쯤 남겨 놓았을 때
갑자기 숨이 가쁘고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아 한쪽 옆에 앉아서 쉬다보니
이사람은 정상이 다 와가니까 힘이 나는지 지혼자 올라간다
에고 여태껏 지 데리고 올라온다꼬 내 리듬이 깨져서 힘들다고 하면
쪼매 기다렸다가 같이 올라가야지 지혼자 휑하니 올라가는기 얄밉기만하다
길가에 얼음이 군데군데 얼어있어 조금 깨어서 입에 무니 정신이 확 든다
하늘에는 새가 두 마리 선회 비행을 하길래 매인가 했더니 울음소리가 까마귀다
팔십년대 중반에 까마귀가 정력에 좋다고 하여 까마귀 씨가 말려질뻔했었따
까마귀 네마리가 정상주변을 선회하는 걸 보니 얘네들이 이근처 사는가 보다
그런데 까마귀치고는 상당히 크다 독수리 만한 것 같다 우리나라와 쪽바리나라는
길조와 흉조가 서로 바뀌어져있다 우리나라는 까치가 길조이고 쪽바리나라는
까마귀를 길조로 여긴다 왜그런지는 모린다 까마귀들이 노니는 걸 잠시 보다가
쉬엄쉬엄 올라가다 보니 정상 바로밑이다 잠깐 앉아있으니 욕지기가 올라온다
에고 그넘의 술이 나를 쥑이네...
"아이고 술을 그키 처마시더이 얼굴이 할갛네 오바이트 할꺼긋나..??
등때기 뚜들기주까..??"
"나는 니 데리고 오느라 리듬이 깨져서 더 힘들었는데 니는 내 놔뚜고
휑하니 도망가냐 의리도 엄시... 내가 아프마 니 도망 갈끼제...??"
"힘들어 보이는 거 같아서 해병중사 박중사 내한테 약한모습 보이지 말라꼬
체면 채리준다꼬 그랬는데 머라카노 이 화상이...!!!"
"아고 됐다마 쪼매 앉았다가 올라가자 깐나야..!!
그라고 인자 니가 배낭쫌 메고가라...!! (에혀 쪽팔려) "
바위에 걸터 앉아 쪼매 쉬다보니 속이 가라앉는다
백운동쪽에서 올라오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올라가고 나서 우리도 정상으로 올랐다
세 시가 조금 넘었다 1,430m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박고는 주위를 둘러보니
시계가 좋지않아 지리산, 황악산, 민주지산, 덕유산 아무데도 잘 보이지 않는다
잠시 머물다가 하산길로 접어드니 다리가 쪼매 땡겨서 천천히 내려가다보니
밥을 먹고 내려가자고 한다 다리 아프다는 내색은 몬하고 여기는 바람이 강하니
쪼매 더 내려가서 먹자고 하고선 계속 내려왔다 내 경험에 의하면 산에 올라가다
지친 다리는 계속 걸어주어야 풀리는 것 같아서 그랬다 안그러면 삼십분이상 쉬든지...
이십여분을 내려오니 괜찮은 것 같아서 길가 낙엽위에 신문지를 깔고서 밥을 먹었다
밥과 무생채 시래기나물 그리고 산동초 새순을 비벼서 먹으니 늦어서 배가 많이
고프기도 했지만 꿀맛이 따로 엄따 산에서 먹는 밥은 늘 맛이 좋다
밥을 먹다보니 반주가 한 잔 그립다 불과 몇십분전에 어제 마신 술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해 놓고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난 술로 인하여
제명대로 몬살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게 나의 타고난 명줄일 것이다
천상병님의 "귀천"이 문득 생각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이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는 날까지 손가락질 받는 행동은 안해야겠다
고교시절 동화사에서 그당시 종정이신 경산스님께 수계를 득한후 다섯가지 계율
(不殺生, 不偸盜, 不邪淫, 不妄語, 不飮酒)을 지키지 몬할 것 같아 불교를 떠났었다
잘못을 저지르고 참회를 하며 사는 것도 좋겠지만 그럴 것 같으면 내가 몸담은
종교를 욕먹이는 행위가 될까봐 아예 종교랑 담을 쌓고 지낼려고 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관은 기독교, 마호메트교, 불교든 종교를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정직하고, 내 주장만 내세우기보다 나보다 먼저
남을 배려하고, 절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거다
그런데 주위에 둘러보면 더 배타적이고 더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은게 현실이다
그러니 종교가 없다면 이세상에 전쟁도 없을 것이라는 말이 있는가 보다
그래도 나 자신만이라도 좀 더 다른사람들을 위하고 좀 더 정직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더라도 나를 회상하며 좋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바리지도 않거니와 다만 욕을 하는 사람은 없으면 좋겠다...
산을 오를 때의 경치와 내려올 때의 경치랑은 다르게 느껴진다
올라갈때는 앞만보고 부지런히 가니까 주위의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기때문이다
내 삶이 비록 앞만보고 부지런히 걸어가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며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이 넓어져서
조금의 서운함에서 삐치거나 화를 내는 좁쌀영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산을 오르고 또 내리면서 자연에 동화되어 나를 잊을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오래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내 아들, 딸이 늘상 남에게 베풀고 사는 사람이 되고
사람들에게 칭찬은 고사하고 손가락질을 받지않는 평범한 삶을 살면 좋겠다
그리고 진정으로 이나라와 자신의 직장과 이웃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정말정말 조켔따...
졸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글이 자신의 주관이나 소신과 방향이 다를지라도 그냥 이놈은
이렇게 생각하나보다 하시며 가볍게 흘려 주시길 간곡히 바램합니다
첫댓글 쫑우야! 득도한 여느 고승보다 더 속세를 해탈할 수 있는 깨달음을 익히었나 보네. 부럽고나 자네가
물흐르는 듯한 글솜씨에 취해 가야산 등산을 재미있게 했습니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