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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버섯 게시판 스크랩 선비의 고장! 영주(榮州)를 찾아서... 제Ⅱ편 : 소수서원(紹修書院)
치우천황 추천 0 조회 161 15.06.21 18: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선비의 고장! 영주를 찾아서

선비의 고장! 영주 여행은 재경대구고 18산우회의 2012년 친구가 사는 집 근처나 고향의 산을 찾아 산행을 실시한다는 계획의 일환으로 2월 안양의 수리산, 3월의 수원 광교산, 4월의 서울 대모산&구룡산, 5월의 서울 도봉산의 북한산둘레길에 이어 5번째로 1박2일간 영주여행을 겸한 소백산자락길 탐방을 목적으로 실시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부석사, 소수서원, 그리고 선비촌은 단풍철을 맞아 2007년 11월 방문하였으니 약 4년 6개월만에 계절을 달리하여 다시 찾게 된 셈이다.

이번 영주여행에서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1300여년의 역사를 지닌 부석사, 세조3년(1457) 10월 단종 복위 거사의 실패로 금성대군, 순흥부사 이보흠이 죽임을 당하고, 역모의 본거지였던 순흥도호부 사람들이 관군에 의해 함께 죽임을 당하였으며, 소수서원의 자리에 있던 숙주사가 관군의 방화로 폐허로 변한 사건인 '정축지변', 이 사건으로 순흥부는 폐지되고 땅 덩어리는 충북 단양, 강원 영월, 태백, 그리고 경북 풍기, 봉화, 예천, 안동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후 숙종9년(1683) '절의지향'으로 명예회복 될 때까지 227년간 긴 세월동안 역향으로 잃어버린 고난의 세월을 보낸 역사적인 장소에 자리한 우리나라 사액서원의 효시 소수서원, 그리고 산자락마다 선조들의 오랜 문화가 살아 있는 걷고 쉬고 즐기는 행복한 自樂! 소백산자락길을 1박2일 이라는 짧은 기간내에 탐방을 하게 된다.

서울과 경주를 제외하고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국가지정문화재를 가징 많이 보유한 지역인 이번 영주 여행에서 탐방하였던 관광명소를 6월30일과 7월1일 이미 '문화생태탐방로'란에 소백산자락길 제1자락을 두 편에 나누어 소개한 탐방기를 포함하여 총 4편으로 나누어 소개하기로 한다.

 

- 선비의 고장! 영주를 찾아서 Ⅰ편 : 우리나라 10대 사찰의 하나! 화엄종찰 부석사(浮石寺)

- 선비의 고장! 영주를 찾아서 Ⅱ편 : 한국 정신문화와 민족교육의 산길! 소수서원(紹修書院)

- 걷고 쉬고 즐기는 행복한 自樂! 소백산자락길 제1자락 Ⅱ죽계구곡길

- 걷고 쉬고 즐기는 행복한 自樂! 소백산자락길 제1자락 Ⅲ달밭골길

 

【 일 정 표 】2012년 6월 2일(토)-3일(일) 1박2일

                             ◈ 첫째날(6/2) 오후 : 부석사-소수서원

                             ◈ 둘째날(6/3) : 소수서원-소수박물관-선비촌-소백산자락길

 

선비의 고장! 영주를 찾아서(Ⅱ편) : 소수서원(紹修書院) ▶

한국 정신문화와 민족교육의 산실!  

첫째날 부석사 탐방을 마치고 서둘러 소수서원 탐방을 위해 서둘러 도착을 했지만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로 버스에서 대기를 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제대로 탐방을 하지 못해 둘째날 다시 소수서원 탐방을 실시하였다.

숙소였던 한국선비문화수련원에서 아침식사까지 마치고 오전 10시경부터 관광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을 탐방하고, 선비촌을 한바퀴 돌아 보는 것으로 소수서원 일대의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첫째날 소수서원의 탐방을 계획대로 마쳤더라면 둘째날 아침 일찍부터 선비촌에서 시작되는 소백산자락길 제1자락길 제1자락길 전체를 탐방할 수 있었겠지만, 오전 시간을 소수서원, 선비촌 탐방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제1자락길의 '선비길(선비촌~초암사입구)' 소구간을 포기하고, 영주의 유명 먹거리인 순흥묵밥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하고 차량으로 이동하여 두번째 소구간부터 진행을 하여야만 했다.

여행에서 그 지방의 볼거리와 먹거리 두 가리를 모두 체험한다면 금상첨화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이 두가지를 어느 정도 충족을 하여 만족할만한 여행이 되었다.

첫째날 부석사가는 길목에 위치한 장뇌삼 재배지를 방문, 장뇌삼 백숙에 장뇌삼주로 점심식사를, 저녁에는 소백산 자락에 자리한 동양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친구의 주말농장에서 한우에 영주 가전명주인 오정주로 저녁 만찬을, 그리고 간식으로 순흥 기지떡을 맛보는 즐거운 하루가 되었다.

한국선비문화수련원에서 한옥체험을 하며 첫째날의 피로를 풀고, 둘째날은 순흥 묵밥으로 점심을, 귀경길에 이천쌀밥정식으로 저녁식사까지 하였으니 이틀동안 맛집만 찾아다니며 입을 즐겁게 한 또 다른 1박2일간의 맛집 여행을 동시에 누리게 되었었다.

또한 여행 기념으로 풍기의 유명한 토종특산품인 '정도너츠'를 한 상자씩 싸 가지고 돌아온 즐거운 1박2일간의 여행이 되었다.

 

【 소수서원 소개 】

*사적 제55호(1963년01월21일 지정)

*면적:18,657㎡

*소재지: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1

 

 

 

우리나라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기관이다.

조선 중종37년(1542)에 풍기군수 신재 주세붕이 고려 말의 유현인 안향을 제사하기 위해 중종37년(1542)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38년(1543)에 안향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하였다.

그후 안향 선생의 11대손이며 경상감사였던 안현에 의하여 보강되었고 명종5년(1550)에는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에 의해 '소수서원'이라 사액을 받고 나라의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중종39년(1544)에 안축과 안보를 제사지냈고, 인조11년(1633)에는 주세붕을 더하여 제사지냈다.

 

◀ 조선 명종대왕 어필현판(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0호)

 

서원의 건물은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었는데 일반적인 서원의 배치가 완성되기 이전인 초기의 서원이기 때문인 듯하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는 일신재와 직방재가 연속으로 있다. 서원의 일반 배치가 강당 좌우에 대청으로 동,서재를 두는 것인데 비해, 소수서원은 현판의 이름으로 구분하였다.

사당은 명륜당의 서북쪽에 따로 쌓은 담장 안에 있다.

서원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의 절인 숙수사가 있었는데, 그 유적으로 당간지주와 초석 등이 남아있다.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후기에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지금도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2011년07월28일 고시로 명칭이 '소수서원'에서 '영주 소수서원'으로 변경되었다.

 

 

경내에는 강학당(보물 제1403호), 동,서재, 학구재, 지락재, 서고, 문성공묘(보물 제1402호) 등이 있고 회헌영정(국보 제111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제485호) 등 중요유물과 각종 전적이 소장되어 있다.

정문 밖에는 이곳에 통일신라시대 이래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제59호) 등의 불적이 남아 있다.

 

▷ 영주 소수서원의 문화재들

 

 

 

 

♧ ♧ 안향 초상(安珦 肖像)

*국보 제111호(1962년12월20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소수박물관

고려 후기 문신인 회헌 안향(1243~1306) 선생의 초상화로 가로 29cm, 세로 37cm의 반신상이다.

그림의 화면은 상하로 2등분되어 위에는 글이 쓰여 있고 아래에는 선생의 인물상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왼쪽을 바라보며 붉은 선으로 얼굴의 윤곽을 나타내었다. 옷주름은 선을 이용하여 명암없이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시선의 방향과 어깨선에서 선생의 강직한 인상이 보인다.

소수서원에 있는 이 초상화는 선생이 떠난지 12년 후인 고려 충숙왕5년(1318) 공자의 사당에 그의 초상화를 함꼐 모실 때 1본을 더 옮겨 그려 순흥향교에 모셔 내려오다가 세조3년(1457) 단종복위 사건인 정축지변으로 순흥부가 폐지된 후로는 한양의 인씨종가에 이안되었는데 종손 전주서 안정이 조선 중기 백운동서원(후에 소수서원)을 건립하면서 이곳에 옮겨 놓은 것이다.

선생의 초상화는 현재 전해지는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초상화로, 고려시대 초상화 화풍을 알 수 있어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귀중한 작품이다.

 

 

 

 

◈ 회헌 안향(晦軒 安珦, 1243~1306)

초명은 유(裕),

호는 주희를 흠모하여 스스로 회헌(晦軒)이라 하였으며,

본관은 순흥(順興),

시호는 문성공(文成公)이다.

경세가이며 교육사상가이기도 하다.

16~18세 때에는 고향 순흥의 숙수사를 왕래하면서 독학으로 경서강독 등 인격함양과 학문수학에 전념하였다.

당시 밖으로는 거란, 몽고, 홍건적, 왜구 등 이민족 오랑캐들의 잦은 침략과  안으로는 최씨무인 정권과 불교의 폐해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흔들리던 고려왕조의 통치기반을 안정시키고자 원나라에 가서 주자학을 수입하여 우리나라에 보급한 최초의 주자학자이다.

고려 후대의 명신, 학자로서 고려 원종1년(1260)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하였으며 충렬왕대에 고려유학제거가 되어 왕과 공주를 호종하여 원나라에 들어갔을 때에 '주자전서'를 필사하여 주자학연구를 시작하여 후에 '경사교수도감사'로 임명되어 유학을 크게 진흥시켰다.

성종11년(992)에 설립된 국자감을 다시 성균관으로 개설 인재양성에 매진하였으며, 안향 선생의 노력 덕분에 마침내 주자학을 수양과 치세의 원리로 삼은 성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훗날 새로운 왕조 '조선'을 개창하게 되고 유교를 국가 통치원리로 받아 들이게 되었다.

양현고를 세워 장학사업을 펴면서 섬학전을 마련하여 인재양성에 힘쓴 겨레의 참 스승이시다.

선생 사후인 1318년 충숙왕은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궁중의 화공에게 명하여 원나라 화공이 그린 선생의 초상을 다시 그리게 하였다.

겨레의 참스승이신 선생이 돌아가신 후 조선이 개국되면서 주자학을 나라의 통치이념으로 받아 들이게 될때 비로서 민족의 대성으로, 동방성리학의 비조로 추앙받게 되었다.

순흥에서 태어나셨고, 송도(개성)에서 벼슬하시다가 돌아가신 후 묘소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눌목리(현 북한땅)에 있다.

 

♧ ♧ 주세붕 초상(周世鵬 肖像)

*보물 제717호(1981년03월18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소수박물관

조선의 문신이며 학자인 주세붕의 상반신을 그린 초상화로 가로 62.5cm, 세로 134cm 크기이다.

주세붕은 중종38년(1543)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후의 소수서원)을 세워 학문진흥에 힘썼다.

이 초상화는 사모관대의 정장 관복을 차려입구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얼굴은 간략한 선으로 묘사하고, 넉넉한 몸체에 목은 거의 표현하지 않아 권위적인 기품이 엿보인다. 옷의 깃을 낮게 표현한 것은 다른 초상화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당시 유행하던 양식으로 생각된다.

이 그림의 정확한 제작연대를 추정하기는 힘들지만 색이 바래고, 훼손된 상태, 복식, 필법 등으로 미루어 제작연대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16세기 초상화가 대부분 공신상인데 비해 학자의 기품이 드러난 학자상으로 매우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영정이 이곳에 봉안된 것은 이와 같은 서원 창설과 안향에의 숭모라는 배경하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좌안8분면의 반신상인 이 초상화는 복식상의 특징이나 안면을 형용하는 필법에서 16세기 초상화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초상화는 현재 주씨문중에 전래되는 전신교의좌상의 저본(底本)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 신재 주세붕(愼齋 周世鵬, 1495~1554)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

시호는 문민공(文敏公)이다.

중종17년(1522)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교리, 예빈시정을 거쳐 중종36년(1541) 풍기군수로 부임해간 이듬해 백운동에 회헌 안향의 사당인 회헌사를 세우고, 이어 중종38년(1543) 주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본받아서 회헌선생이 어릴 때 수학을 하였던 선호동의 숙수사터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후에 소수서원)을 창설했다.

주세붕은 풍기군수 시절 군민들을 사랑하고 선정을 베풀어 그의 고마운 뜻을 기리고자 훗날 관아앞에 보기 드물게 선정비를 세웠으며, 소백산과 청량산을 유람하며 농암 이현보와 교류하며 주옥같은 시편과 많은 저서를 남기셨다.

또한 풍기에 처음으로 재배삼(參)을 성공시켰으며, 황해도 관찰사 시잘 풍기에서의 우리나라 최초의 재배삼 성공을 경험으로 송악산에서 다시 채취한 삼종자를 개성땅에 시험재배하여 풍기에 이어 제2의 인삼의 고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후 직제학, 도승지, 호조판서를 지내고 동지중추부사가 된 다음, 예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인조11년(1633)에는 소수서원에 배향되었다.

 

♧ ♧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坐圖)

*보물 제485호(1968년12월19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소수박물관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는 공자를 중심으로 제자들이 공자 앞에 길게 늘어서 앉아 있는 그림으로 가로 65cm, 세로 170cm이며 비단에 체색하여 그렸다.

지성공자를 주향으로 하여 아성제공제후를 종향하는 분묘향교의 동,서무 위패배향식을 보여주는 인물도로서 일종의 의궤도이다. 화기에 의하면 조선 중종8년(1513)에 제작된 이모본임을 알 수 있으며, 소수서원에는 이 작품과 함깨 원본격인 전좌도가 전해오는데, 일설에 의하면 그것은 고려 충렬왕29년(1303) 문성공 안향이 원나라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이 전좌도는 지본에 진채로 그렸는데 부분적인 채색의 박락은 있지만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단상 중앙에 배치된 공자상을 다른 인물들보다 크게 그렸고, 단 아래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좌우에 종렬로 중앙을 향해 2,3중으로 제자들이 앉아 있는 옆 모습을 표현하였다. 인물상은 각각 주색대에 금자로 이름을 명기했는데, 이들 인물은 모두 의조상으로 사각관모를 쓰고 손에는 홀을 든 동일 복식의 상용우로서 마치 군신의 조례의식과 흡사하다.

또한 화면의 상부에 위계의 정점을 두는 삼각형구도는 중국 송,원대의 의궤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양식으로서, 이 전좌도의 유입경로를 추정케 해 준다.

원래 있던 그림을 베껴 그린 것으로 회화성보다는 기록성이 강하고, 종렬 대칭 구도와 위에서 아래로 보는 듯한 부감법, 원근법 등을 사용하여 조선시대 궁중행사의 기록화 형식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소수서원 진입영역 ▦

 

 

서원 왼편에 봉긋하게 솟아있는 둥덕은 거북이가 알을 품은 모습처럼 보여 영귀봉이라 한다. 영귀봉 주변에는 수백년 된 적송이 장관인데, 소나무에게서 선비의 충절을 배운다는 뜻으로 학자수라 불리기도 한다.

 

                  ▲ 소수서원 입구의 적송군락

                      소수서원 경내에 3백년에서 길게는 1000년에 가까운 적송군락이 수백그루가 있는데, 소수잡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1654년1월15일 서원경내 소나무 1000그루를 식재했는데 겨우 500그루가 살아 남았다.잘 기르되 밭갈이, 소(牛)방목을 금지하고,

                       화재예방, 새길, 오솔길에도 심아 무성하게 "학자수림"으로 가꾸기를 당부한다"

 

보기에도 멋진 소나무 숲은 서원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영귀봉 위에는 작별의 정을 나누던 소흔대가 있다. 서원 정문인 지도문 앞 잔디 제단은 성생단이다. 매년 봄,가을에 안향 선생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할 가축의 흠결을 살피고 잡던 제단터이다.

 

                  ▲ 소수서원 지도문(志道門)

                      일명 홍살문, 홍전문이라고도 한다.

                      '지도'는 급산집에서 '사호얼(射志乎蘖), 선민소론(先民所論), 사불지(士不之道), 동서기분(東西其奔)'에서 따왔음.

                       (표적을 향해 활을 쏘듯 도를 향해 뜻을 세우고 나아감)

 

                  ▲ 소수서원 경렴정(景濂亭)

                      1543년 신재 주세봉이 세운 우리나라 서원 정자로서 가장 오래된 정자이다.

 

 

 

                  ▲ 소수서원의 보호수(1982년10월26일 지정)인 500년 된 은행나무

 

지도문 오른쪽 경렴정은 죽계수를 따라 펼쳐지는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학문을 이야기하던 곳으로 1543년 주세붕이 세웠다.

경렴정에는 스승인 퇴계 이황의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썼다고 전해지는 초서의 대가 고산 황기로(자암 김구, 봉래 양사언과 함께 조선3대 초성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조선 중기의 퇴계문인)의 현판이 남아 있다.

 

◀ 소수서원 입구 죽계천의 경자바위

 바위에 새겨진 '백운동(白雲洞)'은 퇴계 이황의 글씨.

 붉은 색의 경(敬)자는 신재 주세붕이 직접 써서 새긴 것으로 '신재집'에서 전하고 있는데,

 유교의 근본사상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머릿글자이다.

 

세조3년(1457) 10월 단종복위 거사가 관노의 고변으로 사전 탄로가 나 이 고을 유생들과 주민들이 정축지변의 사건으로 참화를 당하게 되었다.

그때 참절을 당한 순흥도호부민들은 시산시해를 이뤄 그 피가 유혈성천하므로 그 시신 일부가 죽계천에 수장되었고, 그일 이후부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원혼이 밤만 되면 울었다고 한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서원을 세운 뒤 유교의 근본사상인 경(敬)을 바위에 세겼다.

훗날 사람들이 혼령을 달래려는 의미로 붉은 칠을 하고 정성들여 제사를 지낸 후로는 울음소리가 그쳤다고 한다.

 

♧ ♧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榮州 宿水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59호(1963년01월21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8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으로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에 위치한 당간지주이다.

'당간지주'는 절에서 불교의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달던 깃대인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돌기둥을 말한다.

원래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숙수사의 여러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위치가 원위치로 보이고 통일신라시대 전기에 창건되어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다 소수서원의 건립으로 폐사된 듯하다.

지주의 바깥면에는 중앙에 능선형으로 꼭대기에서 1.7m 밑에서 부터 2.34m 까지 사이가 쑥 들어가 있어서 옆을 길게 음각해 홈이 길게 새겨진 것처럼 보인다.

네모난 기둥 끝으로 올라갈수록 약간 가늘어지고 맨끝은 둥글게 경사지도록 했으며 꼭대기 끝 안쪽 면에는 홈을 파서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원래는 지주와 당간을 받치는 바닥돌이 있었을 듯하나, 현재는 지주 양쪽으로 길고 큰 돌 1잔씩이 놓여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소박하며 그 조각수법이 세련되었다.

유명한 유교성지인 소수서원에서 만나는 이채로운 불교유적이다.

 

▦ 소수서원 제향영역 ▦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문성공묘(보물 제1402호)와 전사청, 영정각 등의 건물이 있다. 

문성공묘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문성공 회헌 안향의 위패를 모신 사묘로 1542년 주세붕이 세웠다. 문성공묘를 사(祠)라 하지 않고, 묘(廟)로 격을 높여 부른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매년 봄,가을로 두 번의 제(향사)를 지낸다.

문성공묘 뒤편에 있는 전사청은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준비하던 곳이다. 일반적으로 전당후묘(前堂後廟)라 하여 강학공간 뒤에 제향공간을 두는데 서쪽 방향을 중시하는 우리 전통사상에 따라 강학공간 측면 서쪽에 제향공간을 배치한 독특한 사례이다.

서원에 영정각이 있는 것도 특이한 일로 안향 초상(국보 제111호)과 주세붕초상(보물 제717호) 등 보물급 영정을 소장하고 있어 1975년에 특별히 지어진 건물이다. 현재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소수서원 문성공묘 전체 전경

 

♧ ♧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榮州 紹修書院 文成公廟)

*보물 제1402호(2004년04월0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내죽리) 

 

 

소수서원의 경내에 있는 제향기능의 사당으로 안향을 주향으로, 문정공 안축, 문경공 안보, 문민공 주세붕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좌를 놓고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 주두를 놓고, 첨차를 내어 그 위에 소로가 주심도리의 장혀를 받치고 보 방향으로는 쇠혀를 내고 안쪽으로는 보아지 모양을 하여 퇴간의 보를 받치는 초익공식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구는 오량으로서 대들보를 전면 고주와 후면 평주 위에 걸고, 첨차로 짜인 등자기둥을 놓아 종보를 받치고, 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맞배지붕의 양측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건물의 좌측과 뒷편에 장대석으로 축대를 쌓았으며, 사방에 돌담을 두르고, 정면에 외단문을 설치하고 우측에 협문을 두었다.

매년 3월, 9월 초정일날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주세붕이 직접 쓴 제향의식과 절차를 기록한 홀기문서(忽記文書)가 전하고 있다.

 

⊙ 배향인물

◆ 회헌 안향

◆ 근재 안축(安軸, 1287~1348)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흥녕군에 봉해진 문학자이다.

특히 그가 남긴 경기체가인 '관동별곡'과 '죽계별곡'은 국문학사상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시호는 문정공(文貞公). 중종39년(1544) 아우 안보와 함께 소수서원에 배향되었다.

◆ 안보(安輔, 1302~1357)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치다 어머니 봉양을 위해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과 가까운 동경유수를 제수받았다.

항상 청렴한 생활을 하였으며 역시 형과 함꼐 학문이 깊은 인물로 칭송받았다.

 

 

                  ▲ 소수서원 문성공묘 영정각(사진 上)

                      문정공묘 전사청(사진 下)

 

 

 

 

 

 

 

 

 

 

 

 

 

 

 

 

 

 

 

 

 

♧ 정료대(庭燎臺)와 관세대

정료대는 밤에 서원을 밝히던 조명시설로 윗부분 석재위에 관솔을 피워 정원을 밝혔다.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관솔불을 켜놓았던 것으로 오늘날의 거로등과 같은 것이다,

관세대는 사당을 참배할 때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대야를 올려 놓는 받침돌이다.

 

 

 

 

 

 

 

 

♧ 일영대(日影臺)

해의 그림자를 통해 시간을 재던 일종의 해시계이다.

읫부분 돌에 꽂은 막대기의 그림자가 아랫덜에 드리워지는 것을 보고 시간을 알았다고 한다. 막대기를 꽂았던 홈통이 중앙에 남아있고, 넓고 둥근 아랫부분은 '간지(干支)'로 시간을 나타내던 빗금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문도리석을 올려 놓은 것으로 보아 석수사의 유적이라는 설도 있다.

 

▦ 소수서원 강학영역 ▦

 

 

학문을 닦고 배우던 공간이다.

앞의 제일 큰 건물이 강학동이고 오른편 뒤편으로 돌아가면서 지락재와 학구재, 일신재와 직방재가 위치한다. 강학당 왼쪽으로 장서각이 있다.

건물배치는 하학상달, 즉 학문의 차례와 단계를 뜻한다.

독서를 통한 학문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지락재를 시작으로 성현의 길을 따라 학문을 수하는 학구재,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일신재.

그리고 깨어있는 마음을 곧게 한다는 직방재. 이 직방재에 이르면 학문을 크게 이루게 되므로 비로서 명륜당이라 불리는 강학당에 들어 세상의 위치를 밝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배출된 인재는 4,000명에 이른다.

1543년에 건립된 강학당 내부에는 명종 임금이 내려준 친필 편액이 걸려 있으며,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장서각은 책과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 ♧ 영주 소수서원 강학당(榮州 紹修書院 講學堂, 명륜당)

*보물 제1403호(2004년04월06일 지정)

*소재지: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내죽리)

 

 

소수서원 강학당은 서원의 양대 기능 중 하나인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장대석의 높은 기단을 쌓아 그 위에 자연석을 다듬은 초석을 놓았으며,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로서 웅장하면서도 고색이 잘 간직되어 있으며, 사방 둘레에 너비 1m정도의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툇마루 가장자리는 높이 6.5cm, 높이 8.5cm의 턱을 두었고, 기단 네 모서리에 추녀를 받는 활주를 설치하였다.

 

  

                  ▲ 소수서원 강학당

                     동북측면(사진 左), 좌측면(사진 中), 후면(사진 右)

 

강학당 정면은 동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서원 입구에서 바로 강학당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남쪽 기단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내부 대청의 북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이란 편액이 높이 걸려 있다.

 

 

 

                  ▲ 소수서원 강학당의 마루와 천장(사진 左), 강학당의 추녀(사진 右上), 강학당의 파련대공(사진 右下)

 

정면 4칸 중 좌측 3칸은 마루이며, 우측 1칸에는 방을 2개 설치하였고, 기단 3면(정면, 우측, 좌측)에 계단을 설치하였으며, 굴뚝은 마루 밑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처리하였다. 기둥 윗몸에서 앙서 하나를 내어 기둥위에 놓인 주두와 결구시킨 초익공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구는 오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치고, 종보 위에 파련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 직방재(直方齋)와 일신재(日新齋)

소수서원의 원장과 교수 제임 등이 함께 기거하던 집무실 겸 숙소이다.

'직방재' 현판 글씨는 퇴계 이황 글씨로서 판목이 오래되어 후손인 원장 이징도가 재생 이진주에게 시켜 새로 판각한 것이다.

'일신재'는 정조23년(1799) 서원 원장 성언근이 직방재 옆 신방을 늘려 지은 건물이다.

 

 

                  ▲ 소수서원 직방재와 일신재

 

 ♧ 학구재(學求齋)와 지락재(至樂齋)

학구재는 일면 동몽재(童蒙齋)로서 '주역'의 '산수몽괘(山水蒙卦)' 가운데 "단(彖)에서 말한 동몽구아(童蒙求我)"에서 따온 말이며,

지락재는 '앙고재'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장자'의 지락(至樂)'과 '명심보감'의 "至樂은 莫如讀書요, 至要는 莫如敎子(지극한 즐거움은 책을 읽는 것과 같은 것이고, 지극한 삶의 요채는 자식을 가르키는 것과 같다)"에서 따온 말로 서, 유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의 일부 건물이다.

학구재의 전신인 동몽재는 원래 제월루 옛터 위에 세웠으나 방이 좁고 낮아서 지금의 자리에 새로 건립한 후 , 한 때 잠시 운영되던 동몽거제 제도가 사라진지 오래되었기에 명칭을 주자의 "학구성현"에서 "학구"를 따서 편액 이름을 고쳐 걸었다고 한다.

 

 

 

 

 

스승의 숙소인 직방재와 일신재 건물을 오른쪽에 짓고, 제자의 숙소인 학구재와 지락재를 왼쪽에 지으면서 나란히 짓지를 않고, 스승의 그림자까지 피한다고 해서 두칸 물려 지었으며, 스승의 숙소보다 방 높이를 한자 낮춘 것이 특이하다.

 

♧ 소수서원 탁청지(濯淸池)

 

 

선조25년(1593) 풍기군수 경암 류운룡이 연못을 파고 대를 쌓았다고 전해진다.

퇴계의 '백운동서원' 7언시 종장에 "월조방당랭욕빙(月照方塘冷欲氷 방지에 비친 달빛처럼 마음은 얼음같이 차고 맑구나)"이라는 시 구절을 보아 경암 류운룡이 연못을 조성하기 이전 숙수사 때 부터 작은 연못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후에 지락재를 세웠던 창석 이준이 광해군5년(1613) 풍기군수로 있을 때 서원 동쪽 언덕에 대를 쌓고 못을 팠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탁청지는 1593년 경암 류운룡이 풍기군수 재임시 문성공묘를 참배하고 대를 쌓고 연못을 만들었다고 지락재에 걸린 류경암의 시판과 그의 문집 '경암집'에 '못을 파고 대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이를 근거로 지금의 장소를 시굴하여 그 원형이 발견되어 복원하였다.

푸른 하늘을 그대로 담아 낼 만큼 아름다운 풍광과 수백년된 느티나무가 멋지게 어우러진 곳이다.

영화 '쌍화점' KBS2TV의 역사사극 '추노'와 MBC 역사드라마 '동이', KBS '공주의 남자' 이외에도 '짝패', '인수대비', '해를 품은 달' 등의 촬영장소였다.

 

♧ 광풍정(光風亭)

 

 

소수서원에서 소수박물관 가는 길목에 자리를 하고 있는 정자로 인근에는 광풍대가 있다.

광풍대는 퇴계 이황선생이 명명하였다. 광풍정은 4각정자로 2002년에 세웠으며, 앞에는 죽계가 감아 돌고 뒤로는 연화산이 에워싸고 있어 주변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광풍대는 송사 주돈이전에 나오는 제월광풍에서 따온 말로 인근에는 제월교가 있다.

 

♧ 소수박물관(紹修博物館)

소수서원과 관련된 귀중한 문화유산과 유학의 전말을 눈으로 체험할 수 있는 한국 유일의 유교종합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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