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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재 찾기
1) 시의 소재는 무한하다
시의 소재는 시를 쓰고자 하는 이에게 감동을 준 것 -사물, 현상 등-이라면 어느 것이나 좋다.
그러나 일반적인(평범한) 감동은 시를 쓰고자 하는 이에게 시상(詩想)이나 시정(詩情), 시흥(詩興)을 일으키지 못한 채, 이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이 감동을 준 사물이나 작용, 현상 등에 주의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거기에서 무한히 잠재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시정과 시적 흥미를 느끼게 된다.
즉, 시의 소재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어느 하나 시의 소재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 다만 그 많은 소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어떻게 표현하여 자신의 시 속에 용해시키느냐가 문제다. 시는 바로 소재를 어떤 관점과 의식에서, 어떤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해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바꾸어 말하면 소재를 '발견'하는 노력과 의식에 따라 시는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2) 소재의 발견은 의식이다
불도저가흙을밀었다·········
불도저가흙을밀었·········다
불도저가흙을밀·········었다
불도저가흙을·········밀었다
불도저가흙·········을밀었다
불도저가·········흙을밀었다
불도저·········가흙을밀었다
불도·········저가흙을밀었다
불·········도저가흙을밀었다
·········불도저가흙을밀었다
밀린 흙은 밀린 쪽의 흙이 되었다
<불도저> 장원상
위의 시에서 우리는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장난처럼 보이는 이 행위적인 시는 소재의 발견과 동시에 한 편의 시가 완성되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첫행부터 마지막행까지 모두 다 읽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시이다.
이 시를 시로서 자리매김 하려한 시인의 의지는 마지막 행에 있다. 그러나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을 이 끝 행으로 해서 시를 시로서 확인시켜 주고 있다. 시인은 어쩌면 시는 소재의 발견만으로 시가 될 수 없다고 믿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밀린 흙은 밀린 쪽의 흙이 되었다>는 진술을 통해 힘과 권력, 인간의 세상살기가 다 그렇다는 삶의 진리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어쩌면 많은 독자가 마지막 행으로 인해 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면 장원상이란 시인이 불도저의 작업을 보고 밀린 흙이 밀린 쪽의 흙이 된다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그것은 바로 '의식(意識)이며, 부동산 업자가 불도저의 작업을 보았을 때 땅 값의 상승과 차익을 떠올리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80년대를 살고 있던 시인은 불도저가 흙을 밀어내고 있는 작업광경을 보고 밀리고 밀리는 힘의 이동을 보았으며, 데모대와 전경들의 투석전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2. 시의 소재와 주제의 관계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상아탑』 5호 (1946년 4월호)에 실린 박목월 시 <나그네>
거적장사 하나 산 뒤 옆비탈을 오른다
아-따르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길이다
산가마귀만 울며 날고
도적갠가 개 하나 어정어정 따라 간다
이스라치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 복이 서러웁다
주물같이 흐린 날 동풍이 설렌다
시집 『사슴』(1936년)에 실린 백석 시 <쓸쓸한 길>
두 시의 소재는 다같이 '길'이다. 그러나 시 속에 흐르는 정서는 완전히 정반대이다. 일제치하의 시대적 배경이 같으면서도 시의 소재를 다루는 시각은 정반대의 흐름에 있다. 또한 같은 길을 소재로 하면서도 주제 의식은 시대의식을 도외시한 낭만적 주제가 되었거나(나그네), 시대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고통스럽게 그려내면서도 향토성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시(쓸쓸한 길)가 대조적이다.
우리의 삶이란 모든 사물과 직·간접으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길에 생쥐 한 마리가 등장해도 그것을 무심코 바라보면 그만이지만, 그것에서 의미를 찾으려면 한없이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구상 <현대시 창작 입문>).
<생략>
쥐는 점점 납작해졌고
평평해지면서
쥐는 쥐도 아니고, 한 마리도 아니어서
그 죽음의 그림자마저 스러져버렸다.
그저 납작한 것이 한 장
햇빛을 받으며 젖혀져 있었다.
오노 도사브로 <쥐>
위의 시는 누구나 경험했을 길바닥에 깔려 죽은 쥐의 모습을 통해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현대문명의 냉혹함과 비정을 늘 염두에 두던 시인의 눈에 차 바퀴에 깔려 납작해진 종이장 같은 쥐의 시체는 더러움 이전에 현대문명의 희생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시인의 인식 세계가 어떠하냐에 따라 소재를 달리 해석해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평범한 사람이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쥐의 흔적을 보면서 무심할 수 없던 건 시인의 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3. 상상력을 부르는 체험과 관찰
천 년 몇 천 년이 걸릴지라도
네가 내게 입맞춤하고
내가 네게 입맞춤한
그 영원의 한 순간을
말, 다할 수가 없으리.
겨울 햇볕이 내리쪼이는 아침
<몽수리>공원에서의 일이었네.
<몽수리>공원은 파리의 안,
파리는 지구 위,
지구는 별의 하나.
자크 프레베르 <공원>
시의식의 확대를 통해 범우주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시이다. '벤취 위에서 입맞춤을 하는 연인―몽수리 공원―파리―지구―우주' 로 확대되는 상상력이 독자를 자연스럽게 우주적 사고로 이끌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소재에 이토록 크고 넓은 우주적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바로 시인의 상상력이다.
시는 소재가 훌륭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재를 어떤 의식에서 비라보고 관찰하며 또한 상상력으로 표출해내느냐에 달려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풀>, 1968.5.29)
4. 시- 체험의 결과물이다
시는 결국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쓰여지지만, 그 이전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면 시인의 체험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시를 머리로 쓰느냐, 아니면 가슴으로 쓰느냐, 아니면 몸으로 쓰느냐 하는 구분을 확연히 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시는 '온몸으로 쓴 시'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가슴(情)으로 쓴 시'에서 막연한 감동을 공감하게 된다. 이는 천박한 감상주의로 인해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명시'라고 들어 온 많은 시들에서 이러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고운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깃발>
관념적 체험만 있으며, 그 관념도 '왜?'란 질문에 뭐라 답할 수 없는 막연함이 느껴진다.
읽는 이에게 ' 깃발을 꽤나 어렵게 표현했군'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할 뿐 별 감동을 주지 못한다. 교과서에도 실린 <깃발>에서 비유·상징의 묘미는 얻을 수 있을 망정 시가 지녀야할 내용성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별로 할 말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추상적 의미를 구체화시키며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오히려 구체적 사물을 추상적 의미로 바꾸어 낯설게 하고 있음에 의의를 찾아야 할까? 날아가지 못해 찢기우고 헤지는 색바랜 깃발이 더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 않는가? 지금은 그래도 많이 바뀌었지만 이 같은 시들이 중·고등학교의 국어교과서를 온통 뒤덮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의 어린 학생들 시에서 우리는 머리로 쓴 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진실된 체험이기보다는 '그럴 것이다'란 당위성에서 쓰여지는 시, 어른의 흉내를 낸 시들이 백일장을 휩쓸고 있다.
봄의 소리
새롭다.
꽃잎이
열리는 소리.
나비의
날개 젓는 소리.
봄의 소리
들으면
가슴이 열리고
마음은 훠얼훨
하늘을 난다.
초등학교 6학년 의 시<봄의 소리>
초등학교의 어린이가 쓴 시에도 이처럼 억지 감동의 글이 있다. 어른들이 생각한 것보다도 더 심한 이 같은 꾸며진 상상은 상상이 아니라 거짓이다. 상상력과 거짓은 다르다. 상상력은 현실에 뿌리박고 있는 건강함과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하지만(딱지 따먹기), 거짓은 뿌리가 없으면서도 마치 있는 듯이, 그럴 수 있을 것이란 짐작으로 위장된다(봄의 소리).
딱지 따먹기를 할 때
딴 아이가
내 것을 치려고 할 때
가슴이 조마조마한다.
딱지가 홀딱 넘어갈 때
나는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
강원 사북초등학교 4학년 강원식 <딱지 따먹기>,『나도 쓸모 있을걸』1990.창작과 비평사
시는 마음이다.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시삼백이면 사무사(詩三百 思無邪)라고 했다. 진실된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거짓이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이쯤에서 뛰어난 독일의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충고 몇 마디를 떠올려 보아야겠다.
①모든 사건은 언어를 넘어선 영역 속에서 일어난다.
②자기 자신 속에 침잠(沈潛)하라
③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캐어라
④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써라
⑤쓰지 않고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필연 속에서 써라
⑥자연에 근접하라. 그리고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게 될 것을 모방하지 말고 표현하라
⑦보편적 주제를 피하라
⑧창조하는 자에게는 빈곤도 없다
⑨어린 시절의 풍성한 추억의 보고(寶庫)를 간직하라
⑩자기 자신 즉, 고독 속에 파고 들라
릴케의 이와 같은 충고는 우리를 주눅들게 하기 충분하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시도 하나의 글에 지나지 않으며,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담는 것에서 시작된다. 글에 대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포기하기 때문이다. 릴케의 충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I. 시창작의 실제
1. 시상(詩想)의 발견
시상(詩想)이란 좁은 의미로써 시를 직접 마음속에 그려내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상의 시작은 시심(詩心)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심 속에서 싹이 튼 시상은 마음속에 그림처럼 그려짐으로써 시를 일으키는 그 첫 단계가 된다.
여기에서 시심(詩心)이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이나 자연의 현상, 인간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고서 느껴지는 가장 순수한 마음의 상태로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슬픔, 고통, 기쁨, 황홀감 등의 일상적 심리상태와는 달리 자기가 일상적 감정으로 느낀 대상과 하나가 되는 순수한 마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시심은 시상을 일으키는 텃밭이 되며, 시심의 순수함은 시쓰기의 가장 기본이 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애틋함을 느끼는 이같은 시심이 풍부해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청소년들이 자신이 지닌 순수함을 계발하고 드러내어 한 편의 글로 표현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글을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글이란 어려운 단어나 추상적 어휘가 들어가야만 하는 것처럼 오해를 가지는 경우도 있어 자신이 무얼 쓰는지 조차 분명하지 않은 글들이 쓰여지게 되고, 결국은 글과 자신이 멀어지는 결과가 되고 있다.
시상의 발견은 우연(偶然)이라기 보다는 필연적이며, 수동적이라기 보다는 의지적이다. 다시 말하면 그냥 앉아 있으면 다가오는 것이 아니란 거다. 늘 마음속에 준비하는 자세로 인생을 살아갈 때 비로소 시상도 찾아온다고 할 수 있다.
시상을 맞을 준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자세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가. 자연이나 사물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하자.
관찰이란 이미 자신의 능동적 태도와 마음의 준비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다. 평소에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갖추어질 수 있어야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사물을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이해한다'는 것은 '잘 안다'는 것이며, 따라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느냐이다. 시인의 사상과 이념, 그리고 관심 영역에 따라 발견의 깊이와 모습은 달라진다. 자연을 아름답게 보는 마음에서 바라보면 <나비>처럼 아름다운 시가 된다. 나비가 예쁘기 때문에 예쁜 나비가 앉은 꽃은 당연히 예쁠 수밖에 없다. 꽃이 예쁜 이유는 꽃 자신에게 있던 것이 아니라 예쁜 나비가 앉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나비는 아주 예쁘다.
나비는 날 때도 예쁘다.
나비가 앉은 곳에는
꽃도 예쁘게 피어 있다.
(성주 대서초등학교 4년 한상재 <나비>)
다음의 <감자꽃 1>은 시인의 체험 속에서 발견한 시다. 농삿일에 허리가 휘어보아야 감자꽃이 허리 아픈 꽃임을 안다. 그 끊어질 듯 아픈 허리를 찍어누르며 모녀가 오뉴월 따가운 여름 햇살에 감자밭을 매는 모습이 결코 꽃처럼 예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감자꽃이 있기에, 농사를 짓는다는 삶의 진정한 모습이 거기 있기에 그 처절한 삶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앞의 <나비>와 그 발상과 관찰이 똑같다. 10살짜리가 바라본 사물과 50세의 시인이 바라본 사물이 너무도 똑같지 않은가?
앉아 피어도 허리 아픈 꽃
자줏빛 흰빛
서로 물들이며
어머니도 누이도
오뉴월 빛 속에 엎드리면
그렇게 꽃으로 보였다
(이상국, <감자꽃 1>, 시집 『내일로 가는 소』)
나. 상상력을 동원한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감정이나 감동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전율할 듯 강한 감동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남이 알 수 있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만의 감동일 뿐 남의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 이러한 감동의 표현을 위해서는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감동을 구체화시키고 이를 표현하여 전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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