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한국불교사
가마타 시게오 / 신현숙 옮김/민족사
2565. 10. 1
제3장 고려의 불교
2. 사원과 법회
僧錄司
승록사란, 승려와 교단을 일체 관리하는 일과 불교행사를 주관하는 국가적인 대행기관으로서 左右兩街로 분류되어 있었다. 고려 태조 21년(938) 3월, 마갈타국의 대법륜 보리사의 사문 弘梵대사 Śrivajra?가 왔을 때 태조는 양가승록을 갖추어 위의를 다하여 이들을 맞이하였다(《麗史》 권2). 이 兩街란 승록사의 초기적인 구성조직으로 보인다. 고려 현종 13년(1022)에 기록된〈高麗靈鷲山大慈恩玄化寺碑陰記〉(《總覽》上)에 따르면 官使左街都僧錄大師 光肅, 副使左街副僧錄 彦宏, 左街副錄 釋眞, 判官右街僧正 成甫 등의 명칭이 있어 현종대에는 좌가도승록·부승록·우가승정 등의 승록사가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右街僧正과 함께 左街僧正도 있어((浮石寺圓融國師碑) 同) 좌우 양가에 같은 명칭의 승록사가 설치되었던 것이다. 정종 9년(1043) 원융국사決凝이 부석사로 돌아올 때면 국사를 호위해서 봉송한 것이 좌가승정 得生이었다. 승록사의 직급은 僧維·僧正·副僧錄·都僧錄의 순서로 진급해 갔다.
또 좌우가를 통솔하는 관명이 만들어져 현종 17년(1026) 崔沖이 찬한 (〈稷山弘慶寺碣〉 同)에는 좌우양가승통 通眞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충선왕 5년(1313)에는 慈淨國尊 普明이 이 자리에 취임했다. 좌우양가를 총괄하는 최고기관인 좌우양가 도승통은 단순하게 ‘兩街都僧統' 또는 ‘都僧統' 이라고 불렀다.
승록사와는 다른 兩街僧摠과 兩街都摠攝이 있었다. 이 두 직책은 일종의 명예직으로서 학덕을 겸비한 고승들에게 하사되었다. 승관으로 실무를 시행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승려 최고의 지위를 표하는 것으로서, 예를 든다면 眞覺國師 千凞는 ‘國師大華嚴宗師禪敎都摠攝에 임명되었다(<眞覺國師碑銘>).
종진 옮겨 적고 두 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