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는 신전에 돈 맡기기도… 점토판에 채무 관계 기록했어요
은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많은 나라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러시아 주요 은행과의 거래를 중단했는데요. 은행은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을까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국가가 은행의 역할을 일부 수행했습니다. 왕궁이나 사원, 개인에게 돈을 빌린 사람은 나중에 추수한 보리 등으로 갚아야 하는데, 국가는 이 채무 관계를 증명하는 점토판<사진>을 발급했어요. 고대 그리스의 신전은 돈이나 귀중품을 보관해주는 역할도 했는데요. 사람들은 전쟁 기간 자신의 재산을 신전에 맡겼어요. 신전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기 때문에 남이 보지 않을 때 몰래 물건을 훔쳐가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고, 신성한 장소에서 도둑질을 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종교적 믿음도 있었기 때문이에요.
환전의 개념은 14~16세기 무렵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했어요. 십자군 전쟁으로 지중해 교역망이 성장하자, 이탈리아는 교역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나라들의 화폐가 이탈리아로 모이게 됐고, 주로 유대인 대부업자들이 환전상의 역할을 했어요. 대부업자들은 기다란 탁자에 각국의 화폐를 올려놓고 환전을 해줬는데, 이때 사용된 탁자의 이름이 '방카(banca)'였어요. 현대 은행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뱅크(bank)'는 여기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돈을 맡겼을 때 이자를 지급해주는 개념은 어떻게 등장했을까요? 17세기 영국의 금 세공업자들은 사람들의 금을 보관해주고 보관증을 발급해줬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금을 되찾아 가지 않고 발급받은 보관증으로 또 다른 거래를 하기 시작했어요. 금보다 보관증이 거래할 때 쓰기 편하기 때문이었죠. 세공업자들은 창고에 금이 쌓이자 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쳐서 돌려받는 대부업을 시작했어요. 자신이 맡긴 금으로 대부업자가 이익을 얻자 사람들이 항의하기 시작했고, 이에 세공업자들은 '금을 계속 맡기면 수익의 일부를 나눠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최초의 예금 이자 개념입니다.
이 시기 은행이 현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돼 파산하게 되는 '뱅크런'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는데요. 금 세공업자들은 점차 금이 아닌 금 보관증을 빌려주는 사업도 시작했어요. 그런데 창고 내의 금 보유량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보관증을 발급해 주는 상황이 벌어졌고, 있지도 않은 금으로 사업을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자신의 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실제 보관하고 있는 금보다 반환을 요구하는 금의 양이 더 많아지자 파산하는 세공업자도 생겼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