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 섭은낭 - 그래서 그녀는 저 너머의 세계로 갔다.
“검의 길은 무정하나, 성인의 덕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너의 검술은 적수가 없으나, 마음은 사람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구나”
- 자객 섭은낭 중의 대사
당나라 제국 말기 중앙집권의 권력이 약해지며 외곽 혹은 변두리 지역의 권세가 강화되며 경계를 강화하려고 설치하던 번진이 스스로의 독자권을 행사하는 번진이 되어 여러 곳 생겨나는 와중에, 위박 번진의 군주로 있는 전계안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은 자객 섭은낭. 그녀는 고위집안의 출신이고 한때 전계안과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운명의 기구함은 그를 죽여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그녀의 선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허우 샤오시엔이라는 이름과 그의 작품 이력을 잘 알고 있는 영화 애호가(!)들이라면 염려할 필요가 없지만 그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 그저 무협영화의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자객 섭은낭]을 보려고 한다면 일단 두가지 면에서 마음을 비우고 봐야 한다.
첫째로 암살자와 그 대상자의 인연과 관계이다. 서구이든 동양이든 그 특징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암살자로 나오는 소재의 영화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야기는 암살자와 대상자의 관계로 인한 갈등 구조이다. 섭은낭과 전계안의 관계를 볼 경우에도 한때 연인관계였다는 점을 두고 본다면 이 이야기의 소재는 어쩌면 흔한 것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설정에서 [자객 섭은낭]은 그것을 훌륭하게 극복할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지 않다. 이 관계의 설정은 이 영화를 이끌어 가기 위한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둘째로 무협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튀기는 액션과 활극의 장면들에 대한 기대도 접어야 한다. 물론 이전 사례로 볼 때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처럼 우아한 무협영화가 있어서 완충지대가 있긴 하지만 [자객 섭은낭]은 우리가 기존에 봐 왔던 특히 홍콩영화들에서 나타난 숱한 무협영화의 공식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 영화에서 완전히 마음을 비우고 무협영화에 대한 어떤 기대도 갖지 말고 - 이 기대조차도 사실은 습관화, 편견화의 하나일 뿐이다. 어떤 영화든 마음을 비우고 보는 것이 그 영화를 제대로 보는 것일 것이다 - 있는 그대로 본다면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의 아름다움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장르의 관습은 장르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있지만 자주 가치가 뛰어난 영화의 대중적인 등장을 방해한다.
[자객 섭은낭]에서 암살과 관련된 부분이나 액션이나 활극과 관련된 장면은 전체 상영시간에서 극히 일부분이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우리의 삶마저도 사실은 어떤 것을 직접 실행하는 경우의 시간보다는 그것을 모색하고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대부분이 아니겠는가. 마치 4년에 한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유도선수가 4년에 한번 벌어지는 단 3분간의 경기를 위해 4년을 준비하는 것처럼. 그러므로 이 영화는 액션과 활극으로 영화의 전체를 범벅하는 대신에 그 액션이 들어가지 않는 나머지의 시간에 주목한다. 그것에는 여백이 있고 기다림이 있고 삶으로서의 수행이 있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정중동(靜中動)에 관한 영화이자 동양적인 미학일 것이다. 그동안 정(靜)보다는 동(動)을 숱하게 봐온 관객에게는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무협영화의 외형을 띠되 이전 무협장르 영화들의 대척점에 서 있음으로써 한편으로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액션영화의 장르관습에서 보이는 영웅으로서의 이미지도 아니고 인물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것도 아니다. 이는 무협영화나 액션영웅 영화에서 주인공의 역할이 지대한 것과는 달리 영화 전체에서 한 부분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존재는 미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배경과 조화스럽게 한 부분을 이룸으로써 영화 미학에 일조를 한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과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는 인물들의 미장센을 보자면 배경의 산과 숲, 나무들 그리고 하늘과 구름조차도 등장인물들과 나란히 하면서도 넉넉히 감싸안는다. 이는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가 거대하고 거칠고 위협적인 자연 속에서 글래스란 인물이 가까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자연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에 있는 것이다. 동양의 자연이 풍기는 이미지를 허우 샤오시엔은 과감없이 재현해 낸다.
또한 [자객 섭은낭]의 이야기는 직접 보면 상당부분 알 수 있는 내용들이긴 하지만 인물들의 감정과 전개는 절제된 대사로 인해 분위기로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대사가 친절하지 않고 내러티브가 드라마적이지 않다고 해서 불평하지 말기 바란다. 이 영화는 전시회의 명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어떤 선입견을 갖지 말고 영화가 흐르는 대로 완상하며 즐기며 분위기를 느끼는 영화이다. 한번에 이 영화를 한번에 전부 이해했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줄거리를 보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회가 된다면 좋은 명화의 전시회를 몇 번 찾기도 하듯이 이 영화를 여러번 보는 것도 의미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이는 동양적인 도에 있어서 혹은 고전에 있어서 새로 발견하기의 재미와도 상통한다.
섭은낭으로 등장하는 서기와 전계안으로 등장하는 장첸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면서도 내면 연기를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롱테이크 위주와 결코 서두르지 않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미학에 있어서는 필수불가결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허우 샤오시엔은 [동동의 여름방학], [비정성시] 이래로 근래의 [카페 뤼미에르], [밀레니엄 맘보]로 이어지며 자신이 자란 땅과 환경의 의미를 외면하지 않으며 30년 넘게 작가적 가치를 견지하고 진정한 영화 탐구의 길을 벗어나지 않는 감독이다. 이번에 [자객 섭은낭]을 통해 무협영화같지 않은 무협영화, 동양적 여백의 미와 도(道)에 대해 관객들이 완상하면서 즐길 수 있는 수작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그의 작가적 고집과 철학에 존경을 보내며 영화관 수와 상영횟수가 많이 부족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첫댓글 실은 이런 영화는 낯설다는 이유로 외면받을수도 있어요. 그런데 낯설지만 차분히 감상하기에는 정말 좋을것같아요. '무협'영화가 한편의 시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감독의 힘이라고 봅니다. 명작가운데는 '작가주의' 덕분에 탄생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영화제작사와 배급사가 스크린을 점령하는 시대에 이런 영화와 이런 리뷰는 '축복'이라 하겠습니다!
동양의 전통미술에 조예가 깊으신 평화님이 이 영화를 보시면 정적이고 조화로운 미장센에 매료되실 듯 합니다.
설에 보고싶던 영화 셋중 하나.
보러가야 되는데 영화관은 멀고 일은 바쁘고 .
꼭 시간을 내야겠어요.
지방은 이 영화 상영관이 극히 제한적이던데 용이하게 보실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전시회의 명화 감상'
맞아요! 그런 기분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자알 보셨습니다^^
우아~ 이 얼마만에 들어보는 <비정성시>인가요? <그들 각자의 영화관> 이후에 허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와 인연이 잘 안닿았는데 이런 명작을 만들었군요. 율리시즈님의 영화리뷰를 읽으니 너무 보고 싶어지네요. 특히 자연을 묘사하는 방식이 서양감독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네요. 스틸사진의 서기도 멋지고 제가 좋아하는 장첸도 나오구ㅋㅋ
이 영화는 그저 이미지가 흘러가는 느낌에 시선을 맡기면 될 것 같습니다. 마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을 볼 때와 비슷한 시선으로요^^
아직 자객섭은냥 못봤는데 이미 근처 영화관을 떠났네요 ㅠㅠ 나중에 DVD로 봐야겠어요...
타르코프스키라면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향수>, <희생> 그런 분위기라면 정말 그 영화적 시간 속에 자신을 맡기면 되는데...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봉인된 시간>을 어렵게 읽고나서 영화감독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더랬죠...자신의 인생철학을 스크린에 옮길 수 있는 사람만이 메가폰을 잡는 거구나...뭐 이런 비슷한 생각이 들었어요~
IPTV 등의 VOD 리스트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비롯한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작품은 그 자체의 언어적 기술이 요구되긴 하지만 그 주제나 철학이 심오해서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점은 작가 자신의 자기다움, 그 온전한 마음과 가치를 견지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과 감동의 발생은 그 작품이 역대급이거나 1등이라서가 아니라 작가의 마음이 공명이 되어 전달이 되기 때문이겠죠. 그러므로 비교판단의 사회적 관습기제에 쉬이 휘둘리지 말고 일단 자기답게 살고 그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존재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The Best Film of 2015 by Poincare and UK's Sight & S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