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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인사를 나눈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연시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고 눈 깜짝할 사이 벌써 2010년의 마지막 달, 12월. 돌이켜보면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천안함 사건으로 온 국민이 울었고, 밤잠 설쳐가며 응원한 남아공월드컵 첫 원정 16강 진출로 온 국민이 웃었다. 남아공월드컵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2010년 올해의 단어로 뽑히기도 한)부부젤라 소리는 아직까지 귀에 맴도는 듯 하다.』
한 해 동안 ‘힘들었지만 잘살았노라’ 서로를 토닥여주는 연말 모임들도 하나, 둘 달력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술 마실 일도, 속 풀 일도 많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쓰린 속 달래주는 해장국집 하나쯤은 알고 있어야 할 터. 선지국, 황태국, 콩나물국, 올갱이국 등 해장국 종류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조금 색다른 해장국을 찾고 있다면, 경주의 팔우정 해장국 골목으로 가보자. 콩나물, 신 김치 등 평범한 해장국 재료에 메밀묵과 모자반과 같은 독특한 재료를 함께 넣고 끓여낸 메밀묵해장국. 탱탱하게 씹히는 질감과 향긋하면서도 시원한 맛에 술술 잘도 넘어간다는 술국이다. 이번 연말, 경주의 팔우정 골목에서 해장국 한 그릇 뚝딱 비워내며 한 해 동안 가슴 쓰렸던 일들에 ‘뜨거운 안녕’ 을 고해보는 건 어떨까.
애주가의, 애주가를 위한 팔우정 해장국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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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도, 경주에는 유별난 해장국골목이 있다. 경주시 황오동 팔우정 삼거리 서남쪽 태종로변에 20여곳의 해장국집이 골목을 이루고 있는데, 일명 ‘팔우정해장국골목’ 으로 불린다. 팔우정은 최치원 선생 후손들을 비롯한 선비들이 모여 시를 읊고 학문을 강론하던 유서깊은 곳. 팔우정해장국골목의 대표적 차림은 바로 경주의 토종음식인 메밀묵을 이용한 메밀묵해장국이다. 50여 년 전, 장터의 한 상인이 처음으로 해장국에 메밀묵을 넣어 팔았는데, 하나 둘씩 식당이 늘어나 지금의 해장국 골목이 생겨났다고. 메밀묵해장국은 말 그대로 콩나물과 찰진 메밀묵, 해초인 모자반을 담뿍 넣고 끓여낸 해장국, 술국이다. 콩나물과 메밀묵의 만남이라…. 언뜻 들으면 꽤 어색한 조합이다. 보통 메밀묵하면 양념장에 찍어 먹는 그런 묵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펄펄 끓여 내놓는 해장국의 재료로 쓰인다니 말이다. 허나 이게 웬일인가. 한번 해장국 맛을 본 사람들은 탱탱하게 씹히는 메밀묵의 질감과 시원하고도 담백한 국물 맛을 잊지 못해 술 먹은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찾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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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와 동태로 끓인 시원한 국물에 메밀묵, 신김치가 송송 들어간 팔우정 해장국. 모자반을 넣어 더욱 향긋하다
메밀묵해장국은 맛 뿐만 아니다. 재료에 담긴 영양학적 우수성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황태와 다시마를 끓여낸 육수는 기본, 주재료인 메밀묵 속에 들어있는 콜린이라는 성분 때문에 술로 피곤한 장을 시원하게 다스려줘 숙취해소에 탁월하다.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되어 있는 콩나물이 숙취에 좋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을 터. 여기서 또 다른 반전이 숨었다. 무엇 인고 하니 바로 해초류의 일종인 모자반이 그 주인공이다. 예로부터 바다의 신이 주신 선물로 알려진 모자반. 최근 항암해초로 손꼽히는 음식으로 혈압과 중풍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영양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심심할 수 있는 해장국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 또한 모자반이다. 마지막 하나는 신김치. 항암효과가 뛰어난 김치는 국물을 더욱 얼큰하게 만들어준다.
명불허전! 탱글탱글 메밀묵 담뿍 담긴 메밀묵해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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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글탱글 보드라운 메밀묵, 사각사각 씹히는 콩나물과 김치. 해장국의 업그레이드버전이라 할 수 있는 메밀묵해장국
백물이 불여일견이다.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찬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12월의 어느 날, 경주 팔우정 골목을 찾았다. 세자매 할머니가 번갈아가면서 가게를 지킨다는 팔우정해장국집에는 속 풀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 ‘해장국이요’ 라고 주문하기가 무섭게 뚝배기에 국물이 넘치도록 펄펄 끓여낸 메밀묵해장국과 밑반찬들이 당도한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해장국을 바라만 보아도 전날 먹었던 술로 쓰렸던 속이 풀리는 냥 금세 평안해지는 느낌이다. 역시나 구수하고도 향긋한 냄새가 입맛을 당긴다. 황태와 다시마를 푹 끓인 육수에 콩나물을 넣고 끓이다가 메밀묵과 신김치, 모자반을 얹어져 내놓는 메밀묵해장국. 해장국에 메밀묵이 올려져 있는 풍경이 살짝 낯설기도 하다. 허나 국물 한술 떠먹는 순간 그런 생각들이 기우였음을 알게 된다. 구수한 맛과 시원한 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온 몸 가득 뜨거운 기운이 퍼지니 ‘국물이 끝내줘요!’ 라는 찬사가 절로 나온다. 탱글탱글 씹히는 메밀묵은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눈 녹듯 녹아내리고 사각사각 씹는 콩나물과 신 김치의 맛도 일품이다. 향긋한 바다내음을 물씬 풍기는 모자반은 메밀묵해장국 맛의 방점을 찍는다. 한마디로 경주의 메밀묵해장국은 기존 해장국의 업그레이드버전인 셈이다.
시원하고 향긋한 국물 맛, 숙취 후 속풀이에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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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우정해장국집 세자매의 모습. 팔우정해장국 골목에 가면 인정이 담뿍 담긴 해장국을 맛볼 수 있다
“아가씨는 어디서 왔어? 혼자 왔어? 요거 먹으러?
내가 따로 줄 건 없고 메밀묵 더 먹고 싶으면 말해요. 내 팍팍 퍼 줄 테니까….”
조금은 무뚝뚝한 말씨지만 말없이 메밀묵 한 접시, 국물 한 그릇 더 올려주시는 모습에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다. 사진모델 좀 되어달라는 기자의 말에도 ‘뭐할라꼬?’ 하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수줍게 미소를 지어준다. 해장국에 밥 한 공기 뚝딱 말아먹고 나니 숙취는 물론 가슴 속까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좀더 얼큰한 해장국을 먹고 싶다면 함께 나오는 새빨간 양념장을 넣어서 먹으면 된다. 숙취 후 쓰린 속 부여잡고 속풀이에 나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경주의 팔우정 골목. 굳이 속풀이가 아니라도 좋다. 천년 고도 경주를 느릿느릿 걷다 배가 허전해진다면 들러보자. 경주만의 별미를 맛보는 것도 경주를 여행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일테니.
※ 겨울이면 더 좋은 경주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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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우정 해장국거리 가는 방법 : 경주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도보 - 팔우정로타리 - 팔우정해장국거리 간판(황오동 팔우정 삼거리 서남쪽 태종로변에 있다. 경주 터미널에서 도보로 15분 소요)
◎ 팔우정 해장국 맛집 안내 : 팔우정해장국(054-742-6515), 대구해장국(054-749-1577), 황남해장국(054-746-6649)등이 유명하다. 그 외에도 경주해장국(054-772-7431), 부산해장국(054-772-8062), 울산해장국(054-774-6270)등이 있다. 가격은 한그릇에 5000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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