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이태원참사 3차 시민추모제
일시 ㅣ 2023. 1. 14(토) 오후 2시
장소 ㅣ용산 전쟁기념관 앞
10.29이태원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한국작가회의 추모시 낭독회 시모음
(2022. 12. 30. 2차 시민추모제)
#저기에_내_사람이_있다
가지런히 놓인 운동화들이 호소합니다.
내 사람을 찾아 달라고
어떤 운동화는 급히 가야 하는 사람처럼
뒤꿈치를 연신 꼼지락거립니다.
보내 달라. 가야 한다.
저기에 내 사람이 있다.
혀를 빼어 물고 흐느낍니다.
자꾸 가로막는 것은 경호라는 벽.
무지와 무능의 벽, 차가운 벽들.
골목으로 쟁이듯 밀어넣고 봉쇄하는 벽들.
운동화들은 뛰어가고 싶습니다.
낑긴 채 스러지는 저 발들,
눌려 옴짝달싹 못하고 헐떡이는
저 발목들에게로
앞으로 나란히 나란히 놓아도
눈들은 뒤로 뒤로 달려가
쓰러진 내 사람을 좇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을.
가슴이 으스러져 황망히 져버린 눈망울을.
돌아올 수 없는 허공을 맨발로 넘어선 청년을.
발 잃은 내 사람이 언제 올지 몰라.
마치 죄인처럼 축 늘어져
운동화들이 신발끈 추스리고 있습니다.
덜컥거리는 심장 간신히 움켜잡은 채.
詩 정우영
*정우영 시인
-현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국립한국문학관 사무국장, 신동엽학회장 등 역임.
시집 『활에 기대다』 외 시평에세이 등 여러 권 펴냄.
#맨드레이크
나 약이 될게요 나를 심어 준 사람들을 위해 흙을 덮고 꼭꼭 밟아준 사람들을 위해서요 아픈 건 괜찮냐고 물었잖아요 그런데 그거 관심 없잖아요 사람이 사는 데에 꼭 필요한 게 바닥이죠 공중에 뿌리내린 사람도 있습니다 날파리처럼 지겨운 천사들 나의 죄와 벌레 언제나 웃으면서 법대로 해요 법대로 나를 온몸으로 껴안아 준 공기가 있다 나는 사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가요 비명입니다 아닙니다 노래입니다 살고 싶습니다 쉽게 말하고 싶어요 식물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죽는 건 화분뿐이죠 그러니까 나 흙 속에서 부어올라 화약이 될게요 나 목에 밧줄을 감고 태어나서 소리를 좀 지를게요 이제 좀 동물이 될게요 자랄수록 사람은 어렵고 어려진다 다 안다는 것처럼 부드러운 사람들을 부러뜨릴 거야 나 너무 많은 영매를 사랑하여 열매가 되어간다 전생으로 돌아가 몇몇 가지를 꺾고 돌아올게요 획이 많지 않은 글자가 될게요 그러나 읽을 수는 없는 목질화를
詩 김건영
*김건영 시인
-젊은작가포럼 위원장 역임.
《현대시》로 등단. 《박인환문학상》 수상. 시집 『파이』
#10월_29일
짝 잃은 신발 66켤레
나란히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창밖에는 흰 눈이 내린다
바깥을 온통 하얗게 지워버린다
이 신발은 당신의 것 같고
저 신발은 내 것 같아
숫자가 적힌 포스트잇이 신발 앞코에 붙어 있다
고작 몇 개의 숫자로 당신을 읽을 수 있을까
바깥의 눈보라는 영영 멈추지 않고
풀린 신발끈
내 것 같은 검은 얼룩
짙은
얼룩
당신의 발자국을 닮은
캄캄하고 깊은 이름 없는 어두움
어떤 슬픔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대
당신은 매번 나를 초과한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빈 잔이 되어
다 녹아버린 당신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영영
영원히
맨발로 먼 길을 떠난 당신을 떠올리며
신발끈을 묶는다
믿을 수 없는 바깥을
다시 믿어보려 한다
詩 장미도
*장미도
-2020년 제20회 《문학과 사회》신인문학상 시부문 수상
#수면의_신학
버려져 녹슬지도 못하는 플라스틱처럼 참았다가 미래에 울려고 하지 마 차가운 미끄럼틀이 따뜻해지도록 오래오래 누워서 이제는,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아주 오래전에 망자가 된 사람이 마저 울지 못한 원치 않는 울음을 넘겨받아 울어주는 음향기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몰라 더 많이 울어버리는 너의 몸을 미워하지 마 푸른색 촛불처럼 서늘한 척 하면서 실은 못 견디게 뜨거웠던 세상이라도, 세월에 줄줄 뭉개져 가는 네가 아무 데도 떠나지도 못하게 두고 가면서 자기 혼자서만 늙지도 않고 훅 꺼져버리는 세상이라고 해도, 은빛으로 빛나다가 초록빛으로 빛나는 대검의 날을 붙잡고 전해주면 그대로 손잡이를 잡고 다가와 너를 겨누는 가난한 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잠에서 막 깬 지 하루도 안 된 목화솜과 밀물들일 뿐이야, 잠들 시간이 오면 산 채로 타 죽은 사람을 보고 온 날에도 자야 하고 회색 머리칼과 시끄러운 웃음소리의 애인이 스파이라는 걸 알게 돼 버린 날에도 자야 하고 잘 시간이 오면 잘 시간이 찾아오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연주할 수조차 없는 악기들로 변해버리는 날이 도래해도 잘 시간이 오면 자야 하는 몸들일 뿐이야 그러니 더 이상 피리리 손톱부터 떨면서 울지 말렴 시간은 멈춤을 배우면서 처음 앞을 향해 나아간단다 그 뒤를 쫓아 하얗게 녹아가는 분홍색 아이스크림 손에 쥐고 너와 로데오를 거꾸로 걸었었지 그런데 로데오에도 거꾸로가 있다면 정방향으로 갔을 때 무엇이 나오나 너와 나 심장과 목과 발목과 턱, 어디서부터 이 별에 출현하기 시작했던가, 우리가 이 길의 순서를 모르듯 이 길도 우리들의 순서를 알지 못해서 여기는 시끄럽고 시끄러운가 봐 이 땅에 태어났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다들 모르는 게 한가득인가 봐, 로데오를 걷다가 걸어가다가 쓰레기통을 향해 아이스크림을 던졌는데 그만 아스팔트 위로 떨어져 버렸지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지 우리도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이유 없이 빤히 바라보는 건 끝내주게 실례인 일이라고 배웠으니까 아이스크림이 바닥에서 끈적하게 으깨져도 우리들의 얼굴까지 녹아버리지 않는 게 너 아니면 나의 한 줌이나마 기쁨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끝내주게 실례라고 하는 건 뭘까 그냥 실례는 어떤 불편한 자세로 숨을 죽이고 꽃의 암술처럼 소리도 없이 이 지옥도 천국도 아닌 별의 어딘가에 숨어 있을까 아무도 실례를 끝내준다는 형용사로 말하지 않는다고 네가 내 어깨를 때리면 그게 숨어 있던 실례가 터져 나오는 시간일까 터져 나오는 꽃봉오리처럼 향을 풍기면서 실례가 쏟아지면…쏟아지면… 그래도 모든 실례는 적어도 끝내주게 누군가를 화나게 하니까 너와 나는 조금도 화나지 않았는데 이유도 없이 로데오를 서성거렸지 로데오가 생전 처음 보는 생물의 입속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운데만 서성거렸지 앞으로 갔지 전진 전진 전진했지 너는 화가 난 게 아니라 단지 전화 걸고 싶었지 여보세요? 저 헤나에요 저한테 왜 이렇게 무례하세요? 왜 이렇게 끝내주게 무례하세요? 끝내주게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면서, 흡혈귀처럼 대낮에 나가 죽어요, 욕은 사랑하는 사람한테 쓰라고 있는 건가 봐 그런데 내가 꽃이 아니라서 욕을 암술처럼 담고 있기가 힘들어요 울렁거립니다 사랑한다고요, 사랑해 달라고요, 그거지 이젠 네가 전화기를 숨통처럼 붙잡고 참았다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네 몸으로 마저 다 울지 못해서 울음을 대신 넘겨줄 사람 찾아 헤매는 것처럼 휘청휘청 대면서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울지 말렴 헤나야, 수화기 구멍 너머로 달려 나가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가진 가장 위험한 것들만 대신 전화통 너머로 내뿜어대는 사람들일지라도 모두가 잠에서 깬 지 반나절도 되지 못해서 웅웅 헤매는 빛들일 뿐이야 잠이 생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생이 잠을 방해하는 거니까 우리는 잠들지 않는 시간이 아닌 잠에서 깬 이후만을 살아가니까 영혼은 주인의 육체 속에서도 고아였으니까, 하지만 너의 잠은, 나의 잠은 누군가의 잠으로부터 분명 사랑받고 있었을 테니까 사랑받을 테니까 그러니까 울음을 참느라 울지 말렴 하강하는 추운 엘리베이터 안에 주저앉아 울음을 참느라, 8층 버튼을 누르지도 못하고 7층 4층 12층 적색 불빛들을 켜대면서 울음을 참느라 울지 말렴
詩 서요나
*서요나
-계간 《페이퍼이듬》으로 작품 활동. 시집 『물과 민율』
#어머니의_나라
어머니, 여기가 어디입니까
여기가 어디이기에 자고 나면 죽음이고
자고 나면 울음입니까 자고 나면 절규고
자고 나면 비통뿐입니까
여기가 어디이기에 축제가 비극이고
비극이 일상이 된 것입니까
떨어져 죽고 기계에 끼어 죽고
바다에 침몰해 죽다 못해
웃음과 노래에 깔려 죽기까지 합니까
여기가 어디이기에 구하지도 않는 겁니까
여기가 어디이기에 창자를 끊는 슬픔이
조롱이 되고 야유가 되고 손가락질이 됩니까
여기는 어머니가 평생 밭을 매고
생선을 팔고 화장실 변기를 닦고
무릎과 허리를 바친 나라가 아닙니까
아버지의 노동을 굽고 삶고 조리고
다시 차비로 학원비로 급식비로
다 나누어 키운 나라가 아닙니까
어머니, 여기가 어디입니까
어디이기에 어머니가 이룬 나라를
군홧발에 이어 법복이,
언론 나부랭이가 더러운 돈다발이
여전히 독재를 떵떵거리고 있는 겁니까
웃으며 현관문을 나간 자식이 동생이 아내가
싸늘한 죽음으로밖에 돌아오지 못하는 겁니까
여기가 어디이기에 둘러대고 거짓말하고
도리어 어머니를 파렴치한으로 모는 겁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 이 나라를 먹이고
옷 갈아입히고 때 묻은 몸을 씻겨 놨더니
누가 어머니를 모욕하는 겁니까
아, 저들은 어머니의 잠자리에 얼음을 쑤셔 넣는 자들
아, 저들은 베인 상처에 끓는 물을 뿌리는 자들
아, 저들은 쉬지도 못하고 차린 밥상을 발로 차는 자들
어머니, 여기가 어디입니까
여기는 어머니 없이는 버려진 쓰레기인 나라
여기는 어머니 없이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나라
여기는 어머니 없이는 공기마저 희박해져
숨이 턱턱 막히는 나라
여기는 그것을 모르는 저 무뢰배들의 나라가 아니라
어머니에 의한 어머니의 나라,
어머니만이 죽은 목숨들을 살릴 수 있는 나라입니다
어머니 때문에 겨울 지나 봄이 오는 나라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로 다시 만들어질 나라입니다
어머니, 여기는 어디입니까
詩 황규관
*황규관
-《전태일문학상》 《백석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패배는 나의 힘』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이번 차는 그냥 보내자』 등이 있다.
#죽음의_골목
어느 누가 골목에 묻히고 싶겠는가?
그것도 청춘을
158명 신발의 주인은 어디로 갔는가?
그날, 2022년 10월 29일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길을 걷다가 선채로 압사당했다 얼굴과 입안에 피가 흥건하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로 아비규환이었다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압사당할 것 같아요, 지금 너무 소름 끼쳐요,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에요, 사람이 죽을 것 같아요, 긴급 출동하셔야 될 것 같아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애절한 목소리
어느 누가 꿀꺽 집어 삼켰는가?
너와 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바닥의 힘으로 장미를 피워 올리는
골목이 없는 도시는 없다
골목이 없는 나라도 없다
그런데
뜨거운 심장은 어디로 갔느냐?
피 끓는 청춘은 어디로 갔느냐?
말해 보라,
거기, 뒷짐 지고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당신,
당신이 말해 보라,
길을 걸어간 것이 죽을 죄인가!
청춘의 뜨거운 가슴을 살려내라!
詩 봉윤숙
*봉윤숙
-《농민신문》 신춘문예.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꽃 앞의 계절』
#너의_목소리가_들려
이태원에 가서 친구랑 놀고 온다더니
대문을 나선 너는
그날 이후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돌아오지 못했다
대문을 열고 네가 돌아올 것 같아
자꾸 문을 쳐다보게 된다
"엄마, 다녀왔어요-."
지금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사랑해요. 빨리 집에 갈게요."
자꾸 너의 목소리만 들려
그립고 보고 싶은 내 딸, 아들아!
tv드라마처럼 시간을 되돌려
집에 와 주면 안 되겠니?
긴 악몽에서 깨어
아침 햇살에 눈을 떠 주겠니?
즐겁게 소풍 잘 다녀왔노라고
환한 미소로 말해 주겠니?
그립고 안고 싶은 내 딸, 아들아!
詩 이가을
*이가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봄똥을 누다』 『슈퍼로 간 늑대들』
동시집 『예수님 귀가 자라요』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