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통일을 기념하며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웅장한 기념관으로 1885년 주제페 사코니가 설계하여 1911년 개관된 이 육중한 건물은 이탈리아의 통일을 축하하고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의 영광을 기리는 곳이다.

비토리오는 1849년부터 1861년까지 피에몬테, 사보이아, 사르데냐 왕국의 왕이었으며, 여러 해 동안 이탈리아를 통일하기 위한 움직임을 이끌어 왔다. 1860년 그가 이탈리아 북부와 중앙 지역 대부분을 자신이 다스리던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에 병합시키는 데 이르러 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왕국'이 탄생했으며, 비토리오는 그 최초의 군주가 되었다.

그의 이러한 노력에도 베네치아는 여전히 오스트리아가 다스리고 있었으며, 교황령과 두 시칠리아 왕국은 독립된 영토로 남아 있었다. 몇 년의 싸움이 더 이어진 다음에야 오스트리아가 베네치아에서 손을 떼었고, 프랑스 군대가 마침내 로마에서 철수했으며, 1871년 로마는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로 선포되었다. 천 년의 역사 속에서 최초로 이탈리아 반도는 외국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던 것이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비토리오 엠마누엘 기념관은 로마의 거의 모든 곳에서 보인다. 건물은 광대한 계단, 코린트 기둥, 분수,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 조각상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비토리오의 청동 조각상은 건장한 말에 올라타고 있다. 건물 안에는 이탈리아 통일 박물관과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다.

이 기념관은 종종 지나치게 크고 잘난 척하는 인상을 준다고 조롱당하며, '웨딩 케이크'부터 '타이프라이터'(미국인들이 1944년에 붙여준 별명이다)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별명으로 불려 왔다. 기념관을 지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카피톨리누스 언덕(고대 로마 시대에 주피터 신전이 있던 언덕)의 일부와 중세풍 동네 하나가 완전히 철거당했기 때문에, 처음 세워졌던 상황도 논란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이 건물은 이탈리아 역사 속의 중요한 순간에 바치는 찬사이며, 많은 관광객들을 이끌고 있다. 무솔리니는 근처에 있는 베네치아 궁전을 공식 거처로 삼았으며, 베네치아 광장을 내려다보는 발코니에서 많은 연설을 했다.


▲ 비토리오 임마누엘 2세의 기마상은 높이가 12m이며 기마상 아래는 제1차 세계대전 무명전사의 묘가있다.

▲ Dea Roma

▲ 노동(Allegory of Work)

▲ 애국심(Allegory of Patriotism)

▲ 아드리아해의 분수(Fountain of the Adriatic Sea)

▲ 티레니아해의 분수 (Fountain of the Tyrrhenian Sea)

▲ 용기(Strength) & 調和(Harmony)

▼▲ 비토리오 엠마누엘 ll세(Vittorio Emanuele II)의 기마상


▲▼ 비토리오 엠마누엘 ll세의 기마상과 상단의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 '통일(Unity)'상


▲▼ 비토리오 엠마누엘 ll세(Vittorio Emanuele II')의 기마상과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

▲▼ 용기(Strength)를 상징하는 조각

▲▼ 思考(Thought)의 조각
첫댓글 이제 이탈리아로 오셨군요. 잘 따라 다니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