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댐 수몰 지구를 지나오면서... 2010.08 불과 13ㅡ14년 전만 하여도 그 곳에는 미산 이라는 면 단위가 있었다.
아름다울美 뫼山산 이리하여 미산면 아기자기한 동네였다. 마을에는 꼭 있어야 할 것이 한 곳씩은 있었다.
면사무소 지서 우체국 금융수단인 단위조합 연세점, 약방, 슈퍼, 정육점, 음식점, 다방 그 외 방앗간, 철물점 기타 등등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물결을 쳐다 보면은 넘실 넘실 출렁거리는 물결 깊고 깊은 물속에는 갖가지 미산면민들의 희로애락이 깊은 물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숨결을 멈추고 지금부터 20여 년전에 운전면허증을 발부받아 미산면 국도로 주행을 밤낮 없이 나다녔던 길, 비인으로 웅천으로 조개 캐러 다니면서 지나쳤던 그길.
미산면 학교 안 운동장 옆에 커다랗고 잎이 푸르던 은행잎을 따서 살림에 보태 썼던 일들,
댐이 생긴다는 말에 마을 주민들이 빨간 글씨로 ‘투쟁! 농민을 정부와 수자원 공사에서 내몬다!
우리는 이곳을 못 떠난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나의 보금자리를 못 내준다!’ 는 등
그들의 아프고 슬픈 보금자리 희로애락의 마지막 절규를 빨간 글씨로 쫓기는 사람 글처럼 벽이나 담에 큼직하게 써 놓았던 일들. 옹기종기 모여 있던 마을. 마을의 한가운데로 국도가 있었다. 그 길엔 웅천, 대천, 비인서천, 장항, 군산, 옥산, 부여가 다 이어지는 지방의 작고 무시 해서는 안되는 어머니의 젖줄 같은 소중한 중도로 라고 할까? 저는 대로라고 하고 싶군요.
서해안이 다 연결되고 국도 옆엔 마을을 끼고 흐르는 커다란 개울이 있었다. 그 개울이 화근이었다.
그들의 쉼터를 빼았겼다.
말은 전북쪽 예군산 시민의 식수와 농수라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아무튼 그렇게 이슈화 되었었다. 미산면 경계인 주산쪽 으로 흐르는 것을 막으면 훌륭한 1급수인 농업용수 및 식수가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요즘 산업화 되어가는 세상에 물이 귀하니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하라는 정부의 방침이다. 얼마 안되는 면민이 어찌 정부를 이기겠는가? 주민들은 투쟁 또 단결을 외치었지만. 마을을 내주어야만 했다.
얼떨결에 갇혀있는 물들은 주민들의 지난날 애끓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넓고 넓었던 개울 아니 개울이라기보다 넓은 천 이였던 개천.
그곳에서 아이들은 한 여름에 물장구를 치고 놀고, 낚시꾼들은 낚시질하는 한 쪽에서는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 개울가로 놀러온 가족단위 사람들 개울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휴식공간을 계절마다 톡톡히 자연스럽게 내주었던 조그만한 초등학교 옆에 널따란 개울이 이였다. 한 여름 더울 땐 선생님과 아이들이 멱 감던 일들 조개를 캐러 차를 끌고 지나면서 아이들을 쳐다보니 모두들 개울가에서 초등학생들이 파란, 노란, 흰색, 빨간색, 얼룩무늬 팬티를 입고, 여자 아이들은 웃옷까지 입고 까까머리에 물장구치며 놀던 아이들. 그들은 그들이 살던 곳을 영원히 잃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늘날의 산업화가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 이다.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되기까지 우리나라는 불과 30 ~40년 사이에 급격히 공업화 시대에 진보적으로 빠른 변화를 보여주었다. 공업용수로 중요한 식수가 딸려 식수는 갈수록 고갈되어간다. 물없이 어떻게 사냐구요
우리가 쓰고 있는 식수, 농업용수, 공업용수 모두 나부터 자연 환경파괴의 주범인 셈이다. 아름답고 휼륭한 자연의 배경에 둘러 싸여있던 부여 끝 경계에 있던 미산, 외산, 대천 근처사시는 모든 이들이 사시사철 즐겨 찾던 그 곳 미산면민들은 오늘날 산업화 시대의 피해자인 셈이다. 예전에 고속도로 같은 길이 마을 한가운데로 멋지게 뚫어져서 길지나가기가 굉장히 편리하였다.
마을의 심장 역할을 했던 길은 깊고 깊은 물속에 잠겨 숨을 멈추었다. 그 바람에 강릉 아흔 아홉 고개처럼 길이 산 가장자리로 빙빙 돌아 산길로 지방 국도를 냈다.
미산을 지나가는 길이 그렇다.
위험하고 길옆엔 낭떨어지에다 한눈 잠깐 팔다가는 그냥 가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용왕님께.
그렇지만 자연은 그런대로 강제로 물 흐름을 막았어도 아름답게 출렁출렁 거리며, 갇혀있어도 물은 아름답게 이리저리 출렁거린다. 작은 파도도 때론 만들어내기도 한다.
미산을 지나오면서 미산면민들의 애완 섞인 사연 많은 보령댐을 바라보면서 오늘 날엔 강산도 인간에 의하여 억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아쉽고 쓸쓸히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저 깊은 푸른 물속으로 흘려 보낸다. 영원히 사라진 미산이여.......
-후기 - 사실 저는 미산이 우리 동네도 아니고 고향도 아녀요.
서천으로 조개 몇 번 캐러 다닐 때 빨리 가는 길이기에 지나쳤던 길이고 동네 였어요.
자연과 어우러진 정말 멋있고 아름답고 동화에 나오는 넓은 개울이 흐르고 마을을 감싸고 있는 미산면
이라는 조그마한 동네 가슴 에 여운으로 남아 있네요. 저구석에서 깊이 잠자고 있던 글을 찿아내 끌어 왔다 너무 아까와서요 지금 생각하니 이글을 읽으신분이 그딩시 부여군청에 근무하신다 하시면서 장미자가 누구인지 너무궁금해서 보고싶어 찿아왔다 하시데요 나이는 53-55세 였던것 같군요 그때는 몰랐는데 최초의 나의글에 팬이 생긴것을 모르고 그냥 가시게 했다 이그 바보 흔한 커피 한잔 대접 못하고 차 한잔 대접 못하는 바보 였다 그해가 2011년 봄이였던것 같다 이그 바보 장미자
2019년 7 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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