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시 50분에 떠나는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5시 30분 기상 6시30분 첫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6시 20분까지 식당에 나왔습니다. 부페식이 아니고 주문식입니다. 베트남 여행의 마지막 날 입니다. 아침일찍 움직이는 월남인들의 특성에 트리픽을 염려했지만 잘 빠져 나갑니다. 카운터에 아침일찍 택시를 부탁 했드니 호텔에서 운영하는 렌트카가 있어서 편 하게 7시경에 출발을 합니다. 투이호아는 시골이라 이런 제도가 없었는거 같습니다. 1번국도로 캄란으로 간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치 않았습니다. 나트랑에서 캄란 비행장까지 이렇게 자동차 전용도로가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바닷가 다이아몬드 해변을 따라 시원하게 둟힌 도로가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이쯤의 오른쪽이 30연대 연대본부가 있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일찌 도착한 캄란공항 모습입니다. 캄란국제 공항입니다. 우리가 타고온 제주항공도 캄란을 운항하는줄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호치민 까지 안가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는중에 베트젯 으로 호치민으로 향합니다. 전쟁 박물관은 베트남 호찌민 시에 있는 박물관입니다. 이 박물관은 원래 중국의 전쟁 범죄과 미국의 전쟁 범죄 박물관 이였으나, 이들 국가 관광객들의 반감을 사서 개칭했다고 합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했던 전차, 전투기, 미사일뿐만 아니라 고엽제 등으로 태어난 기형아들의 사체 등 전쟁 당시의 비참한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박물관 장소는 베트 남 전쟁 당시 미군의 정보부 청사였으며, 새로 개축한 3층 건물입니다. 저 멀리 하늘에 소나기 구름이 몰려 옵니다. 오후에 엄청난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끔찍한 사진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 잡았지만 , 박물관에 들어설 때만 해도 웃던 모두가 전시된 사진을 보며 표정이 점점 심각해 진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전시관 안에서는 모두 숙연해진다. 몇번 방문해 보았지만 많은 자료들을 보충한거 같고 전쟁범죄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키게 만든다. 전시관 한 켠엔 베트남 전쟁 당시 부대 배치도가 있다. 맹호부대, 백마부대, 청룡부대와 같은 이름도 보인다. 실외 전시관에는 전쟁 당시 사용한 포로 수용소를 재현한 시설이 있다. 이 곳은 사람들을 고문하는 데 사용된 도구와 사형 도구 등 잔혹한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한 쪽에는 단두대가 자리 잡고 있고 건너편에는 사람 모형이 있는 좁은 감옥이 재현되어 있다. 미군들이 월남전에 사용하던 온갖 장비가 진열이 되어있습니다. 105미리 포와 아래 155미리 포가 진열이 되어 있습니다. 4월29일 밤에 출발을 해서 오늘이 5월4일이니 5일간의 일정이 마무리 되는 순간입니다. 지난 1월부터 항공권과 호텔등을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투이호아에서는 렌트카가 없어 서 택시를 이용하고 베트남에 사용할수 있는 엡을 한국에서 9천5백원에 매입을 하고 다니 니 월남에서 한국으로 전화도 되고 인터넷을 할수가 있으니 통역 엡으로 대화를 하면서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고 우리가 가보고자 햇던 투이호아지역 중에도 참패를 한 11중대지역까지 가볼 수가 있어서 참 다행으로 생각을 합니다. 전쟁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서 기다 리고 있다가 비행기를 타고 다음날 한국에 아침 9시가 넘어서 도착을 합니다. 피곤해서 버스를 타고 자고 와야 되겠다 생각을 했는데 어린이날이라 고속도로가 막혀서 7시간이 넘어서 대구에 도착을 했습니다. 마지막 호치민에서 벤탐시장 투어를 하지 못했지만 전적지는 다 다녔습니다. 호치민을 구경 못한 뒷 이야기와 일정표는 시간을 내어 정리한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 ![]() ![]() 이만생 분대장과.그리고 한달쯤후,황음주 1소대 향도와 혼바산과 차이산 정상에서 같이 렌딩해 수색 소탕전을 벌이며 산 와지선에서 만나 잠시 쉬고 재집결지로 가는 도중에 뒤 수풀속에 숨어있던 VC가 겨눈 흉탄에 그들 두명은 말 한마듸 남기지 못하고 머리가 반은 날아가고 뒤통수로 두발의 총알이 관통.그대로 즉사 했습니다.사람에겐 天運과 人運이 있다지만,만약에 당시 vc 가 나란히 가는 둘중에 나를 겨눴다면.혼바산이나 차이산에서 난 죽었을 것 입니다.그랬다면 저는 지금 현충원 722번이나 803번에 묻혀 있을 겄 입니다. 백마 28 도깨비 연대軍歌 첫 귀절에..~백두산 솟은봉에 정기를 받고 압록강아 끊임없는 구름을 메고...~ 원주 1하사관 학교에서 그 험한 교육을 받는중에 교관이 하던말... "우리들은 백두산의 松柏과 같은 절개로 나라에서 죽으라고 하면 죽기로 적과 싸워야하는 군인이다....' 늘 그런마음으로 .. 밀폐된 동굴에서 수류탄 몇방 터지면 3개월은 두귀가 먹먹 들리지지도 않는 귀로 늘 긴장을 늦추지 않 -[05/16-21:21]- ![]() 도와준 德에 훌륭한 1진 전우들과 만나 어렵잖게 2중대 지역을 발견하고는 그 옛날을 생각하며 떨리는 맘으로 먼저 이세상을 하직한 전우들이 그립고 보고 싶어 애도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죽은 전우들을 생각하며 그 자리를 잊지 않고자.다시금 몇번이고 살펴 봤습니다. 그리고 "28연대는 가보나 마나야 나무도 많고 집들도 들어찾고 학교도 있고 모텔도 있다니깐.." 그런 소리가 전혀 엉터리라는걸 증명하듯 대구장로님과 서울장로님은 금방 2중대 자라를 찾아 주셨습니다. 세월을 잊은듯 2중대 자리는 그때보다 집이 줄었고 긴 가시를 뽐내는 선인장과 거친 나무들은 분대 벙커와 교통호 개인호를 팔때처럼 그대로 있었습니다. 매일 꿈에도 그리던 곳인데,최현득.배무언.임문오 전우님들 저는 한가지 소원을 이뤘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05/16-21:40]- ![]() 모집 하더군요. 투이호아를 모두 돌아보셨군요. 잘 다녀 오셨습니다. 이 여행기를 보니 저도 같이 동행할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최장로님 수고 하셨습니다. -[05/17-06:06]- ![]() ![]() 민간여객기는 예전 캄란비행장을 고쳐서 國際空港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05/17-11:25]- ![]() ![]() ![]() ![]() ![]() 이광웅님은 入隊를 좀 늦게해서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66년초에 백마 28연대 신병 2중대로 떨어져 6주간의 신병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 때 백마가 파병이 결정돼 신병 2중대는 바로 전투중대로 바뀌였고 아마...2소대 2분대로 소속이 됐던 것으로 압니다.저는 당시 하사로 1분대장 였습니다. 귀국후, 만났을 때,이광웅전우는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완전 까맣더군요.알고보니 건설회사를 운영했는데 몸소 ..앞장서서 일을 해서 그렇게 얼굴이 했볕에 탔더군요.사람이 조용하고 참 착합니다. 저는 2중대가 파병되기전,신병 중대 당시 조교 였어서 9사단가와 28연대가를 신병들에게 가르쳤기에 기억을 합니다. -[05/18-09:03]- ![]() 먼저 여기 베트벳에 공고를 하세요.맹호1진 모이라고요. 한 두번 갔던 사람이 있으면 더 좋습니다.저처럼 백마 1진 보.포병 네사람이 딱 - 만나긴 어렵겠지만,"구하라!"그런맘이면 같이갈 전우가 생긴다니까..노력을 해 보세요. 저같은 경우는 낮이나 밤이나 그리워 했던곳을 최현득 대구장로님과 배우언 서을 장로님을 만나 소원을 이뤄서 요새는 잠도 잘 옵니다. -[05/18-09:33]- ![]() 다리관절까지 이상 있슴에도 지팡이를 사용하며 잘 기획 활용하시는 지혜로운 모습에 더욱 고마운 마음 베푸시는 은혜로운 사랑에 뭉클한 마음을 느끼게 합니다.여독도 치료도 바쁨에도 홈에 연속 정성으로 노력해 주심에 감사한 마음이지요. 불편한 몸 치료 잘받으십시오.감사합니다. -[05/18-16:0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