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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수업 스크랩 플로베르와 노년
지금여기 추천 0 조회 265 17.09.22 02: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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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와 노년


진인혜 (목원대학교)



I. 머리말


현대에 이르러 노령화사회가 되면서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그에 따라 노인학(G?rontologie)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도 등장하게 되었다. 1945년 미국 노인학회가 창설된 것을 필두로, 1950년에는 벨기에 리에주에서 국제 노인학회 창설되었고, 프랑스 노인학회는 1958년에 구성되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1978년에 한국노년학회가 창설되었다.
이와같이 노년이 사회적 관심사가 된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지만, 노년은 인간의 숙명으로 늘 우리 옆에 존재해왔다. 죽음이 인간의 숙명이듯 노화 역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노년에 대해 침묵이 유지되어 온 것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말대로 노년을 마치 “수치스러운 비밀”처럼 여기고 서글픈 주제로 생각해 외면해버린 탓일 것이다.1)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일찍이 기원전에 노년에 관한 책을 쓴 키케로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고할수있다. 키케로는 노년이 불행해 보이는 이유에 대해 째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둘째 몸이 더욱 약해지고, 셋째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가고, 넷째 죽음으로부터 멀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

그리고 노년의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무기는 덕을 갖추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육체적 쾌락을 가장 치명적인 질병으로 꼽는다. 쾌락을 좇는 욕망이 악이나 나쁜 행위를 충동질하며 강간이나 간통등
모든 범죄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뛰어난 것은 바로 정신인데, 이 신성한 선물에 쾌락보다 더 큰 해를 끼치는 것은 없으며 쾌락의 영역에서 덕은 결코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키케
로는 노년이 쾌락을 거의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은 노년에 대한 비난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항변한다.3) 63세의 나이 많은 원로원 의원이었던 키케로가 오래 전부터 약화된 원로원의 권위를 강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노인에 대한 옹호문을 쓴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생각은 비단 키케로 혼자만의 견해는 아니었다.


영혼을 육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파악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영혼이 반드시 육신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 플라톤의 경우도 영혼은 나이에 따르는 영향을 받지 않으며 육체의 활기가 감소되면 그로 인해 영혼은 오히려 더욱 더 자유롭게 된다고 설파하였다. 그리하여『국가』에서 플라톤은 케팔로스의 입을 통해 “다른 즐거움들(육체적 삶의 즐거움들)이 약화되면서 정신적인 것들에 대한 나의 욕구와 기쁨은 점점 더 증가하는도다.”라거나 “노년은 우리 마음속에 무한한 평화와 해방감을 불러일으킨다.”라는 식으로 노년을 예찬하기도 했다.4) 이와 같이 노년을 특유한 초연함의 신화와 연결시키는 경향은 비참한 노년의 불행을 한탄하는수많은사람들 속에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왔다.

19세기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가장 두드러진 사례를 제공해준다. 그는 1869년 1월 7일의 편지에서, “오! 내가 늙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끼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영혼의 증거인가! 나의 육신은 쇠약해지고, 나의 사고는 성장한다. 나의 노년에 일종의 개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5)라고 하면서 플라톤과 동일한 견해를 보여준다.

하지만 노년에도 뛰어난 건강을 유지했고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위고이기에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노년의 신화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왜 노인은 정신적으로 성장함으로써 가치를 드러내야 한다고 전제해야 하는가? 노년기가 인생의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는 시기라고 해서 삶을 완성시키는 단계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이러한 노년의 신화가 노년의 삶을 더 힘겹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각자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다르게 살아가듯, 노화는 비록 모든 인간의 숙명으로서 초역사적인 현실이기는 하나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체험될 수 밖에 없다. 그
러므로 노년에 대한 탐구는 일반론에 앞서 개별적인 연구가 더 의미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 연구는 플로베르라는 한 개인이 늙음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살펴보고, 그의 작품에 나타난 노년의 모습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1) 시몬 드 보부아르, 홍상희 & 박혜영 옮김, 『노년,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 책세상, 2016, p. 8.

2) 키케로, 오홍식 옮김,『노년에 관하여』, 궁리, 2012, p. 35.
3) 위의 책, p. 71.
4) 시몬 드 보부아르, 홍상희 & 박혜영 옮김,『노년,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 p. 151.

5) 위의 책, p. 708.



II. 늙음에 대한 플로베르의 인식


플로베르는 초기에 쓴 작품에서부터 노인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청소년으로서는 희귀하고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Il y avait autrefois, ? Florence, une femme d’environ soixante ans [...] Elle avait d? ?tre grande dame dans sa jeunesse, mais alors elle ?tait si vo?t?e qu’onlui voyait ? peine la figure ; ses traits ?taient irr?guliers, elle avait un grand nez aquilin, de petits yeux noirs, un menton allong?, et une large bouche, d’ou
sortaient deux ou trois dents longues, jaunes et chancelantes, r?pandait sans cesse de la salive sur sa l?vre inf?rieure.6)
옛날 피렌체에 60세 가량의 한 여자가 있었다 [...]. 그녀는 젊은 시절 분명키가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허리가 굽어서 얼굴도 거의 안 보일 정도였다. 그녀의 이목구비는 반듯하지 않았다. 커다란 매부리코에 눈은 작고 검었으며 턱은 길쭉했다. 그리고 노랗고 허약한 긴 이빨이 두세 개 튀어나온 커다란 입에서는 아랫입술 위로 줄곧 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위의 인용문은 플로베르가 1836년에 쓴 소품 피렌체의 페스트La peste ? Florence 에 나오는 묘사이다. 이 초상을 묘사했을 때 플로베르의 나이는 고작 15세였지만, 허약하고 노란 기다란 치아, 아랫입술 위로 계속 침을 흘리는 입과 같은 상세한 세부묘사의 정확성은 매우 놀랍다.

 1838년에도 죽은 자들의 춤La danse des morts 에서흰머리를 늘어뜨리고 허리가 굽은 노인에 대한 유사한 묘사를 볼 수 있고,7) 취해서 죽은Ivre et mort 에서는 다양하고 풍부한 어휘를사용해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유쾌하게 술집 여주인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C’?tait une femme dont on ne datait plus l’?ge qu’aux replis de la peau de son cou, qui semblait celle d’un canard incuit, et aux poils gris et rudes qui se h?rissaient sur son triple menton.8)
설익은 오리 껍질 같은 목의 주름, 그리고 세 겹을 이룬 턱에 곤두선 뻣뻣한 회색 털로 밖에는 나이를 추정할 수 없는 여자였다."


또한 1839년에는 마튀랭 박사의 장례식Les fun?railles du docteur Mathurin 에서 중병에 걸린 마튀랭 박사가 “너무 익은 포도는 맛이 없다” 고 생각하고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 자살을 결심하는 진지하고도 철학적인 노인의 모습도 보여준다.9) 이와 같이 청소년기의 플로베르는 진지함과 그로테스크함을 뒤섞고 묘사를 다양화하면서 노인의 초상을 그려낸다. 10대의 그가 그린 노인의 초상은 성년기의 작품에서 묘사된 노인의 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성 쥘리엥의 전설La l?gende de saint Julien l’Hospitalier 에서 볼 수 있는 노부모의 초상이라든가『마담 보바리Madame Bovary』에서 존재의 덧없음과 허망함을 잘 보여주는 라바르디에르 공작의 혐오스럽고충격적인 노인의 초상 등은 상기한 청소년기의 소품들에서 볼 수 있는 노인의 초상과 유사하다. 이는 플로베르의 천부적인 관찰력이 일찍이 청소년기부터 발휘되어 노인의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묘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의 관찰력과 묘사력의 산물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그의 서간문을 보면, 20대 때부터 이미 자신이 늙었다고 말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노화에 대한 관심을 줄기차게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나이에 따라 다소 도식적으로 정리해보면, 플로베르가 자신이 늙었다고 말하는 것이 그저 일시적인 푸념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24세 : H?las! je ne suis plus si gai qu’autrefois. Je deviens vieux.10)
아, 슬프다! 나는 더 이상 옛날처럼 그렇게 쾌활하지가 않아. 난 늙었어.


25세 : maintenant je vois la maturit? toucher ? la fl?trissure.11)
이제는 완숙기를 지나 쇠퇴기에 이르는 것이 보입니다.


26세 : Mod?re cette violence de passion, cet emportement de caract?re qui t’a fait d?j? tant souffrir. Fais-toi vieille pour ma vieillesse.12)
이미 당신을 그토록 힘들게 한 그 격한 감정을, 그 열광적인 성격을 자제하도록 하세요. 내 늙음에 맞춰 당신도 늙어 보세요.


27세 : tout tombe autour de moi, il me semble parfois que je suis bien vieux.13)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어. 때때로 내가 정말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


30세 : Ce n’est pas un homme vieilli comme moi dans tous les exc?s de la solitude [...] qu’il fallait aimer.14)
사랑해야 했던 사람은 [...] 극한의 고독 속에 빠져 있는 나처럼 늙은 사람이 아닙니다.


31세 : Je me consid?re comme ayant quarante ans, comme ayant cinquante ans, comme ayant soixante ans.15)
나는 마치 내가 40살, 50살, 60살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플로베르는 왜 20대의 한창 나이 때부터 자신이 늙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일찍부터 자신의 늙음을 강조한 데에는 나름 근거가 없지않다. 그는 23세 때인 1844년 신경성 발작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학업을 중단하고 루앙 교외의 크루아세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병과 함께 갑자기 늙음이 찾아왔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발병한 바로 다음 해인 1845년부터 자신의 조숙한 늙음을 표명하기시작한 것은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는 병으로 인해 자신의 젊음이 지나가버렸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Ma jeunesse est pass?e. La maladie de nerfs qui m’a dur? deux ans en a ?t? la conclusion, la fermeture, le r?sultat logique.16)
내 젊은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지난 2년간 지속된 내 신경병이 바로 내 젊음의 종말이자 결산이며 당연한 결과였죠."


우선 플로베르에게 늙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신체적인 사실, 즉 육체의 변화로 관찰된다. 그의 신경병이 원인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실 동방여행 때부터 플로베르의 외모에는 노후의 징후가 일찍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몸에 나타나는 늙음의 징후를 고통스럽게 관찰한다.


"Je crois n’avoir rien perdu de cette belle voix qui me caract?rise. En revanche, j’ai bougrement perdu de cheveux. Le voyage m’a culott? la figure. Je n’embellis pas, tant s’en faut. Le jeune homme s’en va. - je ne voudrais pas vieillir davantage.17)
내 특징을 이루는 아름다운 목소리에서는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고 생각해. 대신 머리카락은 굉장히 빠졌어. 여행으로 인해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나는 이제 아름답지 않아. 어림도 없는 일이지. 젊은 남자는 가버렸어. 더 이상 늙고 싶지 않아."


그러나 더 이상 늙고 싶지 않다는 그의 바람과는 달리 3년 뒤인 1853년에는 이도 빠지고 주름살도 많아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혹스러워하며 중요한 것은 뇌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이라고 체념한다.18)

이때 그의 나이는 32세에 불과했다.


그런데 플로베르가 일찍부터 노화를 표명한 것은 비단 이와 같은 육체적인 변화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그의 타고난 심리적인 기질도 작용했다. 즉 “아이를 보면 그 아이가 노인이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요람을 보면 무덤을 생각하게 된다”19)는 그의 말이 가리키듯, 모든 사물과 존재의 양 극단을 꿰뚫어보는 그의 기질 말이다. 바로 이와 같은 기질 때문에 그는 젊은 시절부터 젊음의 반대편에 있는 늙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그러한 기질로 인해 자신이 일찌감치 노인이 되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6) Flaubert, Oeuvres compl?tes 1, Paris, Seuil. 1964, p. 74.
7) 위의 책, p. 172.
8) 위의 책, p. 175.

9) 위의 책, p. 220.
10) Flaubert, Correspondance I, Paris, Gallimard, 1973, p. 231. 1845년 5월 13일, Ernest Cheval‎ier에게 보낸 편지.
11) 위의 책, p. 290. 1846년 8월 11일, 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

12) 위의 책, p. 465. 1847년 8월 10일, 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
13) 위의 책, p. 496. 1848년 4월 10일, Ernest Cheval‎ier에게 보낸 편지.
14) Flaubert, Correspondance II, Paris, Gallimard, 1980, p. 13. 1851년 10월 23일, 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
15) 위의 책, p. 41-42. 1852년 1월 31일, 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

16) Flaubert, Correspondance I, p. 281. 1846년 8월 8-9일, 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
17) 위의 책, p. 732. 1850년 12월 19일, Louis Bouilhet에게 보낸 편지.
18) Flaubert, Correspondance II, p. 289-290. 1853년 3월 31일, 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



"Sous mon enveloppe de jeunesse g?t une vieillesse singuli?re. Qu’est-ce doncqui m’a fait si vieux au sortir du berceau, et si d?go?t? du bonheur avant m?med’y avoir bu? Tout ce qui est de la vie me r?pugne, tout ce qui m’entra?ne etm’y replonge m’?pouvante. [...] J’ai en moi, au fond de moi, un emb?tement
radical, intime, ?cre et incessant qui m’emp?che de rien go?ter et qui me remplit l’?me ? la faire crever.20)
내 젊은 육체 밑에는 기이한 늙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요람에서 나오자마자 나를 그토록 늙게 만들고, 미처 행복을 위한 축배를 들기도 전에 행복을 그토록 혐오하게 만든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나는 삶에 속하는 모든 것이 싫습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아 나를 삶에 다시 몰두하게 하는 모든 것에겁이 나요. [...] 내 안에는,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신랄하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철저한 내면의 권태가 자리잡고 있어서 아무것도 맛볼 수 없게 하고 내 영혼이 터질 정도로 영혼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육체적으로나 기질적으로나 늙음을 일찍부터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플로베르는 이를 받아들이고 길들여나가고자 한다. 동방여행 중에 막심과 함께 한 노인을 흉내내는 놀이는 늙음의 과정이 이르게 될 극단적
인 공포를 미리 연습하고 익숙해지고자 함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류머티즘에 걸린 것처럼 다리를 절뚝거리고 소화가 안 된다고 투덜거리며 처량한 목소리로 노인을 흉내낸다.21) 플로베르는 30대의 나이에도 친구 부이예와 함께 이러한 노인 흉내를 계속한다


"Bouilhet et moi, nous avons pass? toute notre soir?e de dimanche ? nous faire des tableaux anticip?s de notre d?cr?pitude. Nous nous voyions vieux, mis?rables, ? l’hospice des incurables, balayant les rues et, dans nos habits tach?s, parlant du temps d’aujourd’hui et de notre promenade ? La Roche-Guyon. Nous nous sommes d’abord fait rire, puis presque pleurer.22)
부이예와 나는 일요일 저녁 내내 우리의 노쇠한 모습을 미리 묘사해보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우리는 비참하고 늙은 우리의 모습을 보았죠. 불치병 환자들의 구제원에 있거나 거리를 비로 쓸고 있거나 또는 더러운 옷을입고
지금 이 시절과 로슈-기용에서 한 산책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을 말이에요. 처음에는 우스웠는데, 나중에는 거의 울 뻔했지요."


물론 노인 모습을미리연습한다고 해서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플로베르의 서간문에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늙음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는데, 그는 일찍부터 늙음을 체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다가오는 늙음”을 새롭게 지각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23)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는것 과 같은 다소 과장된 노인 연습이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효과가 있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플로베르가 그런 과장된 태도를 보일 정도로 청년기부터 늘 늙음이 그의 내부에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플로베르에게 늙음의 진행은 노년의 순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늙는 것을 인생의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즉 플로베르에게 있어서 늙는다는 것은 모든 나이와 관계된 것으로서, 인생의 각 단계에서 근본 조건을 이룬다.

“태어나자마자 부패가 시작된다”24)는 그의 말처럼, 인간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하여 늙어가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플로베르가 20대부터 이미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한 것도 전혀 부조리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늙음이 인생의 모든 단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인식하고 늙음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플로베르는 대신 두가지 정신적인 경향을 키우게 된다. 하나는 흔히 노인들이 젊은시절을 되새기는 것처럼 강렬하고 활동적으로 살았던 청소년기를 잊지 않고 추억하는 것이다.


"Jamais je ne vais ? Rouen chez mon fr?re sans regarder la maison du p?re Mignot, dont je me rappelle encore tout l’int?rieur et jusqu’aux devants de chemin?e [...] L’autre jour j’ai ?t? au coll?ge voir un gamin que l’on m’avait recommand? ? Paris ; tout le temps de coll?ge m’est revenu ? la pens?e. Je t’ai revu battant la semelle contre le mur, par un temps de neige, dans la cour des grands...25)
나는 루앙의 형네 집에 갈 때면 언제나 미뇨 영감의 집을 보게 되는데, 그 집의 내부와 벽난로 정면까지 아직도 모두 기억하고 있어 [...] 하루는 파리에서 추천받았던 한 아이를 보러 중학교에 갔는데, 중학교 시절이 전부 다 다시 생각나더군. 눈 오는 날네가 상급생들의 운동장에서 신발 바닥을 벽에 대고 두드리던 모습도 다시 보였어..."


위의 인용문이외에도플로베르의 방대한 서간문은 청소년기의 즐거운 산책, 친구들과의 끝없는 수다, 치기어린행동, 그 시절에 입던 옷 등 세세한 부분들을 추억하는 모습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청소년기의 성향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다. 젊은 플로베르에게 늙음이 공존하고 있었듯이, 늙은 플로베르에게 청소년의 열기와 열정이 공존하는 셈이다. 그것은 동방여행에서 돌아온 후 막심과의 사이가 나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한 비평가의 지적처럼, 진지한 태도의 성인이 된 막심에게서 플로베르는 출세주의자의 모습을 보았고 막심은 플로베르가 여전히 혈기왕성하고 혼란스런청소년으로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6)

플로베르는 1870년의 한 편지에서도 자신은 여전히 18세 때와 동일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Je n’en connais pas un seul qui soit capable de passer avec moi un apr?s-midi ? lire un po?te. [...] Notez que je suis dans la m?me position sociale o? je me trouvais ? 18 ans.27)
나는 나와 함께 시를 읽으며 오후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알지 못합니다.

 [...] 나는 18세 때와 동일한 사회적 상황에 있다는 것을 주목해 주세요."


이와 같은 플로베르의 두 가지 정신적 경향은흥미롭게도 그의 작중인물의 노년의 모습에 각각 투영되어 있다. 『감정교육L’Education sentimentale』과 『부바르와 페퀴셰Bouvard et P?cuchet』에 나타난 노년의 표상을 통해 이를 좀 더 고찰해보자.


19) Flaubert, Correspondance I, p. 275. 1846년 8월 6-7일, 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
20) 위의 책, p. 420. 1846년 12월 20일, 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

21) 위의 책, p. 641, p. 735 참조.
22) Flaubert, Correspondance II, p. 177-178. 1852년 11월 16일, 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
23) 하지만 대개의 경우 플로베르는 노인의 이미지를 스스로 떠맡는 것을 즐긴다. 그의 서간문을 보면 ta vieille Nounou, vieux troubadour, vieux quarafon, vieux cruchard 또는 단순히 vieux라고 하는 서명을 즐겨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4) 위의 책, p. 289. 1853년 3월 31일, 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
25) Flaubert, Correspondance III, Paris, Gallimard, 1991, p. 390. 1864년 4월 19일, Ernest Cheval‎ier에게 보낸 편지.

26) Henri Troyat, Flaubert, Paris, Flammarion, 1988, p. 125.
27) Flaubert, Correspondance IV, Paris, Gallimard, 1997, p. 190. 1870년 5월 21일, Georges Sand에게 보낸 편지.



III. 작품 속에 나타난 노년의 표상


1. 청소년기를 추억하는 노년 : 『감정교육』


『감정교육』은 프랑스의 격변의 시기인 1840년대를 배경으로 18세의 프레데릭이 연상의 여인 아르누 부인에게 전격적인 사랑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해 29세가 되기까지 겪게 되는 여러 사랑의 양상을 담고 있는 소설이
다. 소설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와 2부는 1840년에서 1848년까지, 3부 1장에서 5장은 1848년에서 1851년까지, 그리고 3부 6장과 7장은 16년 후인 1867년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인 3부 6장과 7장에서 묘사된 프레데릭의 모습이다. 이때 프레데릭의 나이는 45세이다. 45세를 과연 노년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갖지 말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노인학에서는 노화의 개념을 생물학적인 면에서퇴화기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면에서 정신기능과 성격이 변화되고 있는 사람및사회적인 면에서 지위와 역할이 상실된 사람을 포괄하고 있는데,28) 그런 맥락에서 보면 여러 사랑의 경험을 한 후 3부 6장에서 프레데릭이 보여주는 모습은 노년의 심리상태이기 때문이다.


"Il fr?quenta le monde, et il eut d’autres amours encore. Mais le souvenir continuel du premier les lui rendait insipides; et puis la v?h?mence du d?sir, la fleur m?me de la sensation ?tait perdue. Ses ambitions d’esprit avaient ?galement diminu?. Des ann?es pass?rent; et il supportait le d?soeuvrement de son
intelligence et l’inertie de son coeur. 29)
그는 사교계를 드나들며 다시 몇 번의 사랑을 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첫사랑이 생각나 그 사랑들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었고, 이어 격렬한 욕정도 사라지고 관능의 꽃마저 시들어버렸다. 마찬가지로 지적인 야망도 줄어들었다. 세월이 흘렀다. 그는 나태한 지능과 무기력한 마음을 견디고 있었다."


이와 같이 노년의 상태에 이른 프레데릭에게 그의 첫사랑 아르누 부인이 찾아온다. 그녀 역시 50세가 넘은 나이였다. 프레데릭과 아르누 부인의 이 마지막 만남에 대해 “씁쓸하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대장면”30)이라고 하

거나 “숭고한 장면”31)이라고 하는 등 플로베르 연구가들은 많은 주석을 달았다.

또한 모자를 벗은 아르누 부인의 흰머리를 보고충격을 받는 프레데릭에 대해 “프레데릭은 18세 청년으로 그대로 남아있고 오직 아르누 부인만 늙었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준다”32)고 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프레데릭도 늙었다고 인식하여 플로베르가 묘사하지도 않은 프레데릭의 “회색 머리”를 언급하는 비평가도 있다.33)

하지만 젊은시절을 회상하고 과거의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프레데릭과 아르누 부인은 과거를 추억하는 노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Ils se racont?rent leurs anciens jours, les d?ners du temps de l’Art industriel, les manies d’Arnoux, sa fa?on de tirer les pointes de son faux col, d’?craser du cosm?tique sur ses moustaches, d’autres choses plus intimes et plus profondes. Quel ravissement il avait eu la premi?re fois, en l’entendant chanter! Comme elle ?tait belle, le jour de sa f?te, ? Saint-Cloud! il lui rappela le petit jardin d’Auteil,
des soirs au th??tre, une rencontre sur le boulevard, d’anciens domestiques, sa n?gresse.34)
그들은 지나간 과거의 일들을 서로 이야기했다. ‘공예사’ 시절의 만찬, 뗐다 붙였다 하는 깃끝을 잡아당기거나 화장품으로 콧수염을 짓누르는 아르누의 버릇, 그 밖에 보다 더 마음 깊은 곳에 남몰래 간직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처음으로 그녀의 노래를 들었을 때 얼마나 황홀했던가! 그녀의 축일에 생클루에서 그녀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는 오퇴유의 작은 정원, 극장에서 보낸 밤들, 대로에서 만난 일, 옛 하인들, 흑인 하녀를 그녀에게 상기시켰다."


인간의 삶에서 과거에 대한 회상은 어느 시기에나 존재하지만 노년기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노년이 경험하는 현재는 과거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하고 건강, 재산, 사회적 지위, 능력등 모든 것이 결여되어 있어서 늘아쉬운 마음으로 과거를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노년의 과거 회상은 종종 서글픔의 정서를 동반하고, 그들에게 현재는 과거를 추억하는 장으로서의 가치 밖에 지니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있다.

하지만 김태현은 노인들의 과거에 대한 회상은 현재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기능을 하고, 또한 과거를 돌아보며 의미있는 한평생을 살았다는 느낌을 갖는 자아통합을 이루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이라고 평가한다.35) 우리는 아르누 부인에게서 이와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눈여겨 볼 수 있다. 프레데릭의 찬사는 비록 더 이상 그녀 자신의 모습이 아닌, 과거의 자신에 대한 찬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젊음도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 자존감을 회복하고 소리친다.


"? mon ?ge! [...] Aucune n’a jamais ?t? aim?e comme moi! Non, non, ? quoi sert d’?tre jeune? Je m’en moque bien!36)
제 나이에! [...] 저만큼 사랑받은 여자는 결코 없었어요! 정말 없었지요. 젊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런 건 상관하지 않아요!"


『감정교육』의 마지막 장인 3부 7장은 프레데릭과 친구 델로리에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이루진다.

서로의 가치관과 처세술이 상이하여 우정에 금이 갔던 두사람이 천성적인 숙명처럼 다시 화해하여 지나간 삶을 반추하는 이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도 비평가들이 많은 언급을 하고 있는데, “위안, 순박함, 안락함, 신뢰, 경쾌한 조롱이 드러나는 기분 좋은 장면”37)이라는 평이 있는가 하면, “두 사람 사이에 몰이해, 거짓, 질투, 배신이 축적되었고 이제는 훼손된 우정 밖에 남지 않은 상태”38)라는 부정적인 평도있다. 어쨌든 그들의회복된 우정의 양태에 대한 가치 판단이 어떻든 간에 분명한 것은 인생의 굴곡을 지나온 두 사람이 과거를 돌아보는 두 노년의 모습을 표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t, exhumant leur jeunesse, ? chaque phrase, ils se disaient :
- Te rappelles-tu?
Ils revoyaient la cour au coll?ge, la chapelle, le parloir, la salle d’armes aubas de l’escalier, des figures de pions et d’?l?ves [...] - puis une terrible ribote en promenade, leurs premi?res pipes fum?es, les distributions des prix, la joie des vacances.39)
그들은 시시콜콜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끝날 때마다 서로 이렇게 말했다.
“기억해?”
그들은 중등학교 교정, 예배당, 면회실, 층계 밑의 검술장, 자습감독과 학생들의 모습 [...] 그리고 산책 나가서 끔찍하게 취했던 일, 처음 피우던 파이프 담배, 종업식, 방학 때의 기쁨 등을 회상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가 제일 좋았어!”40)라고 결론짓는다. 이와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은 다분히 쓸쓸하고 허무해 보이기도 하지만,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노인들이 삶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살았던 삶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브라이언 코너리의 말처럼,41) 그들은 지나간 삶을 기억함으로써 다시 체험하고 그 체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탐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프레데릭과 델로리에는 자신들이 실패한 이유를 매우 명석하게 분석한다.


"Ils l’avaient manqu?e tous les deux, celui qui avait r?v? l’amour, celui qui avait r?v? le pouvoir. Quelle en ?tait la raison?
- C’est peut-?tre le d?faut de ligne droite, dit Fr?d?ric.
- Pour toi, cela se peut. Moi, au contraire, j’ai p?ch? par exc?s de rectitude,
sans tenir compte de mille choses secondaires, plus fortes que tout. J’avais trop de logique, et toi de sentiment.42)
사랑을 꿈꿨던 자나 권력을 꿈꿨던 자나 그들은 둘 다 삶에 실패했다. 그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어쩌면 직선적인 점이 부족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프레데릭이 말했다.
“자네의 경우는 그럴 거야. 하지만 난 반대로 너무 직선적이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수많은 부차적인 것들을 고려하지 않는 바람에 잘못을 저질렀어.
나는 너무 논리적이었고, 자네는 너무 감상적이었어.”"


물론 그들은 지난날의 실패에대한원인분석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록 실패했다 하더라도 기억할 수 있는 풍부한 과거가 있기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하찮고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 친구들의 근황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프레데릭과 델로리에의 어조에는 그 어디에도 질투나 절망과 같은 격한 감정의 흔적을 찾아 볼 수없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과거에 대한 회상은 결코 노년의 우울한 초상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28) 임춘식, 『현대사회와 노인 문제』, 유풍출판사, 1991, p. 2.
29) Flaubert, L’Education sentimentale, in Oeuvres II, Paris, Gallimard, 1975, p. 448-449.

30) Jean Borie, Fr?d?ric et les amis des hommes, Paris, Grasset, 1995, p. 261.
31) Philippe Berthier, “La Seine, le Nil et le voyage du rien”, in Histoire et langage dans
“l’Education sentimentale” de Flaubert, Paris, CDU et CEDES, 1981, p. 12.
32) Pierre Cogny, “L’Education sentimentale” de Flaubert : le monde en creux, Paris,Larousse, 1975, p. 173.
33) Jacques-Louis Douchin, le bourreau de soi-m?me, essai sur l’itin?raire intellectuel de Gustave Flaubert, Paris, Minard, 1984, p. 109.
34) Flaubert, L’Education sentimentale, in Oeuvres II, Paris, Gallimard, 1975, p. 450.

35) 김태현, 『노년학』, 교문사, 1994, p. 63-64.
36) Flaubert, L’Education sentimentale, in Oeuvres II, p. 452.
37) Jean Borie, Fr?d?ric et les amis des hommes, p. 266.

38) Philippe Berthier, “La Seine, le Nil et le voyage du rien”, in Histoire et langage dans
“l’Education sentimentale” de Flaubert, p. 9.
39) Flaubert, L’Education sentimentale, in Oeuvres II, p. 455-456.
40) 위의 책, P. 457.
41) 서정자, 존재탐구의 글쓰기, 그리움의 시학 , in 문학을 생각하는 모임, 『한국노년문학연구 II』, 국학자료원, 1988, p. 72.

42) Flaubert, L’Education sentimentale, in Oeuvres II, p. 455.



2. 순수한 열정을 유지하는 노년 : 『부바르와 페퀴셰』


『부바르와 페퀴셰』는 필경사라는 같은 직업을 가진 부바르와 페퀴셰가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정년퇴직을 한 후 시골에 정착하여 여러 가지 학문 탐구에 몰두하다가결국모든연구에서 실패하고 필경으
로 돌아간다는이야기이다. 소설은총 10장으로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두 인물의 만남과 주제가 제시되고, 2장부터 그들의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되는데 그들의 연애 사건을 다룬 7장을 제외하고 총 8개의 장에 걸쳐 그들이 탐구하는학문분야는 원예, 농학, 수목재배, 식품가공, 화학, 해부학, 생리학, 의학, 천문학, 지질학, 고고학, 역사, 문학, 미학, 정치, 체조, 최면술, 신비술, 철학, 종교, 교육에 이르기까지 실로 엄청나다. 인간의 모든 지식 체계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몰두할 수 있는 연구나 학문이 있다면 어떠한 것도 한가한 노년보다 더 즐겁지 않다”고 하면서 “많은 위인들에게 있어서 탐구활동은 일생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43)고 말한 키케로의 견해에 비추어 보면, 정년퇴직을 한 후 방대한 학문 분야를 탐구하는 부바르와 페퀴셰의 노년은 가히 위인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플로베르는 부바르와 페퀴셰를 위인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키케로가 바람직한 노년의 특성으로 분류한 신중함과 원숙함을 지니고 있지 않다. 우리는 작품 곳곳에서 그들의 치기어린 모습을 볼 수있
다.


"Bouvard, en passant pr?s de la charmille, d?couvrit sous les branches une dame en pl?tre. Avec deux doigts, elle ?cartait sa jupe, les genoux pli?s, la t?te sur l’?paule, comme craignant d’?tre surprise.
- Ah! pardon! ne vous g?nez pas!
Et cette plaisanterie les amusa tellement que, vingt fois par jour, pendant plus de trois semaines, ils la r?p?t?rent.44)
소사나무 묘목 옆을 지나가다가, 부바르는 나뭇가지 아래서 석고 여인상을 발견했다. 그 여인상은 무릎을 굽힌 채 두 손가락으로 치마를 벌리고,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겁이 난 듯이 머리를 어깨 위로 숙이고 있었다.
“아! 미안해요! 마음 놓고 일 보세요!”

그들은 이 농담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후 석 주 동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위 인용문에 묘사된 부바르와 페퀴셰의 모습은 십대의 청소년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만큼 천진난만하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이와 같은 천진난만함으로 인해 연구하는 모든 학문 분야에서 실패를 되풀이한다. 그들은 어떤 책에서 끌어낸 이론이더라도, 또한 그 이론이 실제적으로 불합리한 모순을 나타내더라도 상관없이 순진하게도 모든 이론에 대해 무한한 믿음을 갖고 절대적인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때로는 동일한 주제에 대한 상반된 이론들 앞에서, 때로는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치지 않은 채, 변함없는 열성과 호기심으로 또 다른 학문에 주저 없이 뛰어들면서 절대 진실을 찾고자 노력한다.

2장에서 그들이 처음으로 농업 연구에 뛰어들게 되는 모습과 마지막 장인 10장에서 두 고아를 맡아 교육에 전념하고자 할 때의 두 인물의 모습을 비교해보자.


"Tout ce qu’ils avaient vu les enchantait ; leur d?cision fut prise. D?s le soir, ils tir?rent de leur biblioth?que les quatre volumes de la Maison rustique, se firent exp?dier le cours de Gasparin et s’abonn?rent ? un journal d’agriculture.45)
부바르와 페퀴셰는 그들이 본 모든 것에 매료되었다. 그리하여 결정을 내렸다. 그날 저녁부터 그들은 서재에서 『농촌가옥』이라는 네 권의 책을 꺼내 봤고, 가스파랭의 강의록을 구해 읽었다. 그리고 농업 잡지를 구독 신청했다."


"Un r?ve magnifique les occupa : s’ils menaient ? bien l’?ducation de leurs ?l?ves, ils fonderaient plus tard un ?tablissement ayant pour but de redresser l’intelligence, dompter les caract?res, ennoblir le coeur. D?j? ils parlaient des souscriptions et de la b?tisse.46)

그들은 멋진꿈에 사로잡혔다. 아이들을잘 교육시키면, 지식의 연마와 성격의 순화 그리고 고상한 인품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을 설립하리라. 그들은 벌써 가입 신청과 건물 공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농업에 매료되자마자 곧바로 농업에 전념하기로 결정하고 서적을 탐독하는 두 인물의 모습에서 우리는 마치 청소년과도 같은 다소 성급한 열정과 호기심을 볼 수 있는데, 마지막 장에 이르러 두 고아의 교육을 시작하면서도 그러한 성급한 열정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사이 그토록 수많은 실패를 겪었던 사람들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플로베르는 작품 속에서 정확한 연대나 시간의 흐름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지만, 작품 속에 산재하고 있는 몇 가지 시간적 지표들을 토대로 두 인물이 학문연구에 몰두한 기간은 대략 이삼십 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부바르와 페퀴셰가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가 47세인 것은 작품속에 분명히 밝혀져 있으므로, 작품의 말미에서 두 인물의 나이는 최소한 70대 이상인 셈이다. 하지만 고아들의 교육을 시작하자마자 성급한 열정에 부풀어 이상적인 교육기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그들의 모습
에서 70대의 나이를 가늠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클로드 디종Claude Digeon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매우 적확하다고 할 수 있다.


"Les deux hommes sont ?g?s de quarante-sept ans au premier chapitre, et d’environ quatre-vingts ans ? la fin du livre. Pourtant ils n’ont jamais paru ressentir les atteintes de la vieillesse.47)
두 인물의 나이는 1장에서는 47세이고, 작품의 마지막에서는 대략 80세이다. 하지만 그들은 노화의 침해를 전혀 느끼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클로드 디종은 부바르와 페퀴셰의 나이를 80세로 추정하고 있지만, 80세이든 70대이든 그들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늙음의 과정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문 연구를 처음 시작하는 2장에서 10장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학문을 접할 때마다 그 분야에 관계된 모든 서적과 전문가의 이론을 연구하고 거기에서 얻은 지식을 실행에 옮기는 그들의 단순하고 우직한 태도와 열정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은 변함없이 성실하고, 배우고자 하는 욕구 이외에는 다른 사리 사욕을 채우지 않으며,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열정과 호기심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기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반복하고 다양하게 제기되는 모순에 유연하게 대처하여 극복하는 원숙함이 결여된 어리석은 인물로 상정되어 있더라도, 나이에 맞지 않게 철없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독자의 호감을 이끌어낸다. 그리하여 빅토르 브롱베르Victor Brombert는 “종국에는 두 인물이 감동적인 위엄을 획득하게 된다”고까지 말한다.48)

하지만 브롱베르가 말하는 “감동적인 위엄”은 전설 속에서 영원한 젊음의 혈기와 용맹을 구가하고 있는 영웅들이 지닌 위엄은 아닐 것이다. 부바르와 페퀴셰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이 영웅적인 위업을 달성해서가 아니라 나이와 상관없이 청소년기의 순수한 열성과 호기심을 유지하고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클로드 무샤르Claude Mouchard의 정의대로 그들이 변함없는 “늙은 아이들(vieux enfants)”이기 때문이다.49) 이것은 작가인 플로베르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앞에서 조르주 상드에게 보낸 1870년의 한 편지에서 보았듯이, 그는 18세 때와 다름없이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현실적인 삶과 거리를 유지했다. 그의 나이의 다른 사람들은 가정을 꾸리고 직업을 갖고 출세를 바라면서 기성세대의 삶을 이어갔지만, 플로베르는 청소년기와 다름없이 여전히 시를 읽고 글을 쓰며 지냈다.

러한 플로베르의 삶을 장-피에르 리샤르Jean-Pierre Richard는 “연장된 청소년기”로 명명한다.


"Flaubert est le premier grand ?crivain fran?ais ? cultiver d?lib?r?ment en lui le pouvoir qu’a la jeunesse de sauvegarder tous les possibles, et ? consid?rer la vie comme une adolescence continu?e.50)
플로베르는 모든 가능성을 보전하는 젊은 시절의 능력을 일부러 마음속으로 키우고 마치 삶을 연장된 청소년기처럼 생각한 최초의 위대한 프랑스 작가이다."


플로베르는 마치 청소년기를 연장시킨 것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창작에 자유롭게 몰두할수있는예술가의 자질과 성향을 변함없이 유지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찍부터 자신이 늙었다고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바르와 페퀴셰처럼 청소년기의 일면을 그대로 유지한 “늙은 아이”로 남는다.


43) 키케로, 오홍식 옮김, 노년에 관하여, p. 77, p. 45.
44) Flaubert, Bouvard et P?cuchet, in Oeuvres II, Paris, Gallimard, 1975, p. 731-732.

45) 위의 책, p. 736.

46) 위의 책, p. 958.
47) Claude Digeon, Flaubert, Paris, Hatier, 1970, p. 241.

48) Victor Brombert, Flaubert, Paris, Seuil, 1971, p. 174.
49) Claude Mouchard, “La consistance des savoirs dans Bouvard et P?cuchet”, in Revue d’Histoire litt?raire de la France, no 4-5, juillet-octobre 1981.

50) Jean-Pierre Richard, Stendhal et Flaubert, Litt?rature et sensation, Paris, Seuil, 1954, p.172.



IV. 맺음말


감정교육과 부바르와 페퀴셰에 나타난 두 가지 노년의 표상, 즉 청소년기를 추억하는 노년과 청소년기의순수한 열정을 유지하는 노년의 모습은 사실 누구나 쉽게 추론해 볼 수있는 노년의 두가지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양상은 서로 상반된 성향이므로 공존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추억과 회상은 과거를 지향하는 것이고, 열정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추억에 사로잡힌 프레데릭은 나태하고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고, “늙은 아이들”인 부바르와 페퀴셰는 성급한 호기심과 열기에 이끌리느라 과거를 추억할 한가함과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작가 플로베르에게는 놀랍게도 이 두 가지상반된 성향이 동시에 나타난다. 플로베르에게 위대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키케로나 플라톤처럼 노년에 이르러 오히려 향상되고 고양되는 영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상반된 두 노년의 양상이 공존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25세라는 이른 나이에 “행복은 기괴한 것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벌을받거든요.”51)라고 말하는 플로베르에게 있어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점점 더 병들고 고독해지는 노년에서는 행복하기가 더
욱 어렵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플로베르에게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예술, 즉 문학이었다.


"La vie est une chose tellement hideuse que le seul moyen de la supporter, c’est de l’?viter. Et on l’?vite en vivant dans l’Art, dans la recherche incessante du Vrai rendu par le Beau.52)
삶은 너무나 끔찍한 것이어서 그것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피하 는 것뿐입니다. 예술 속에서 살면서, 아름다움이 재현해주는 진실함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피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청소년기를 추억하는 성향과청소년기의 순수한 열정을 유지하는 성향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며 플로베르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문학에 전념할 수 있는 원천을 제공해 준다. 문학이 삶을 재현하는 것이라면, 추억이 없이는 삶에 대한 깊은 재현을 할 수 없고 세속적인 이해타산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열정이 없이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문학에 몰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일찍이 자신이 늙었다고 여기면서 지난날을 자주 추억하는 플로베르였지만, 또한 그는 가까운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경제적 궁핍함에 시달리던 말년에도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를 변함없이 토로한다.


"Les choses ne sont pas superbes, mais enfin elles sont tol?rables. Je me sens rem?t?. J’ai envie d’?crire.53)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지만 참을 만합니다. 나는 다시 일어선 것을 느끼고 있어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인들의 지위는 스스로 ‘획득되지’ 않고 ‘부여된다’”고 말한다.54) 노인의 권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이나 존경에 근거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노화를 미리 인식하고 스스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상반된 두 가지 성향을 균형 있게 유지함으로써 노년의 지위를 스스로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 염려하지 않고 끝까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노년을 포함한 인생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51) Flaubert, Correspondance I, p. 281. 1846년 8월 8-9일, Louise Colet에게 보낸 편지.
52) Flaubert, Correspondance II, p. 717. 1857년 5월 18일, Mlle Leroyer de Chantepie에게 보낸 편지.

53) Flaubert, Correspondance V, Paris, Gallimard, 2007, p. 56. 1876년 6월 19일, Edma
Roger des Genettes에게 보낸 편지.
54) 시몬 드 보부아르, 홍상희 & 박혜영 옮김,『노년,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 p.116.



[주제어] 플로베르, 노년,『감정교육』, 『부바르와 페퀴셰』, 추억, 늙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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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ubert et la vieillesse


Jin, In-Hea (Universit Mokwon)


Dans ses correspondances, ? chaque ann?e de sa jeunesse, puis de son ?ge m?r, Flaubert ne manque jamais d’insisiter sur son vieillessement pr?matur? et progressif. on peut dire qu’il avait ses fondement ? sa mani?re. En 1844, il a eu une premi?re crise d’?pilepsie qui a chang? sa vie. Par cons?quent, il a r?alis? son vieillissement survenu avec la maladie. Pour Flaubert, le vieillir ?tait avant tout un fait physique. Il a commenc? tr?s t?t ? ?pier avec d?sarroi les signes du vieillissement sur sa propre personne. Et puis il y avait aussi son temp?rament particulier par lequel il n’a jamais vu un enfant sans penser qu’il deviendrait un vieillard. Alors Flaubert a voulu accepter et cultiver le vieillir. Pour lui, le processus du vieillir n’investit pas seulement le moment de la vieillesse, mais la vie enti?re de l’homme; de sorte que le vieillir constitue une condition fondamentale de chaque ?tape de la vie. En revanche, il a cultiv? deux dispositions d’esprit : d’une part ne jamais oublier les ann?es de son adolescence pendant lesquelles il a v?cu activement et intens?ment, et d’autre part garder la passion candide de son adolescence. on peut trouver avec int?r?t ces deux dispositions d’esprit dans L’Education sentimentale et Bouvard et P?cuchet respectivement.

A la fin de L’Education sentimentale, on peut voir les retrouvailles de Fr?d?ric et Mme Arnoux et celles de Fr?d?ric et Deslauriers. Ils montrent la vieillesse typique qui se souvient de sa jeunesse. Mais leur souvenir n’a pas de nature n?gative. Par ce souvenir et en revivant leur jeunesse, ils peuvent avoir un sentiment de fiert?.

Bouvard et P?cuchet sont ?g?s de 47ans au premier chapitre, et ? la fin du roman, apr?s vaingtaine ann?es, ils n’ont jamais pu ressentir les atteintes de la vieillesse. Mais ils n’ont pas de jeunesse h?ro?que des personnages l?gendaires. Ce qu’ils restent sans les atteintes de la vieillesse, c’est qu’ils demeurent honn?tes et d?sint?ress?s avec de la curiosit? et de la passion candides. En un mot, ils sont de vieux enfants.

L’aspect de la vieillesse de Fr?d?ric et celui de Bouvard et P?cuchet semblent incompatibles et contraires. Si Flaubert a quelque chose de grand, c’est parce que ces deux aspects coexistent chez lui. Et c’est la force de sa recherche incessante du Vrai rendu par le Beau.



[Key words] Flaubert, La vieillesse, L’Education sentimentale, Bouvard et P?cuchet, Le souvenir, Vieux enfants


(논문투고일: 2016.11.04./ 논문심사일: 2016.12.08./ 게재확정일: 201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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