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초 청산은 횡성군에 있는 옥스필드 골프회원권을 1억원을 주고 샀다.공사가 좀 지연되는듯 싶었지만.2010년 10월 4일 그랜드 오픈을 했다.나는 정회원이었기 때문에 부부 동반으로 저렴하게 라운딩을 할 수 있었다.
초창기 멤버였기 때문에 여러 곳의 동호회가 생겼고 나는 그중 그래도 호감이 가는 한 동호회에 가입했다.조금 지나자 회원은 50여명이 되었고 월 2회 정기라운딩 때는 6개조 정도도 같이 참여했다.
그들의 직업은 다양했다.건설회사 사장 또는 회장,변호사,대기업 고문,아마 기억에 월급쟁이는 없었고,대부분 지영업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다.그 중 한분이 이웅균 선생이었고 연락책(회장)을 맡아 동호회의 갖가지 좋은 일,힘든 일에 봉사했다.나도 당연히 자영업자로서 일원이 되었다.
그런데,그분의 기억력이 너무 뛰어나 놀랐다. 회원과 부인의 이름 아는 것은 기본이고 핸드폰 번호,직업 나이등 한번 들은 것은 빠짐없이 기억했다.한번은 라운딩 후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대필작가라고 했다.그때만 해도 나는 대필작가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막연히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그는 동호회를 겸손하면서도 물 흐르듯 편하게 이끌어 나갔다.그래서 작가라서 저렇게 기억력이 좋나 아니면 본래 영리해서 좋나하고 의아해했다.
2012년경 사업자금으로 쓰려고 회원권을 팔려고 하자 반값도 안되는 겨우4,700만원 밖에 나가지 않았지만 울며겨자 먹기로 팔았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최근 내가 자서전을 쓰면서 그분의 생각이 났다.그래서 휴대폰의 주소록을 다 뒤져보고 보았으나 이름이 삭제되어 없어서 옥스필드 동회회 명단을 보고 싶어 홈페이지에 들어 가려했지만 비회원이라서 들어갈 수 없어 포기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P.C 주소록을 우연히 보다가 그분의 주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반가운 마음에 카톡으로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답변을 기다렸지만 답변이 없어 그제는 문득 문자메시지로 보내면 어떨까 하고 보냈다.
그랬더니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답변이 왔는데 지난 14일 교통사고를 당해 경찰병원에 입원해 있다며 전화 해달라고 했다.
나는 너무 반가와 즉시 전화를 드렸다.그리고 어제 병문안을 갔는데,옥스필드로 공치러 가던중 상대방이 중앙선을 침범했고 7 주간 진단을 받았는데 9월중순에 퇴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4년여만에 뵙는 웅균 선생은 그때보다 머리가 많이 희게 보였다.왜 그렇게 나이들어 보이느냐고 했더니,그때는 염색을했기 때문에 젊어 보였던 것 같다고 했다.또 어떻게 그렇게 기억력이 좋으시냐고 물었더니 어렸을 때 부터 기억력은 조금 좋은 편이었다고 했다.
그분께 나도 지난 5월3일 비슷한 교통사고를 당해서 천재일우로 살아났다고 했다.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는 "자서전 쓸 결심을 하기 어려운데 어떤 계기로 자서전을 쓰게 되었습니까?"하고 물었다.그래서,교통사고 후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고등학교 친구가 "병원에 누워있지만 말고 자네는 글쓰기 좋아하니까 이 기회에 자서전 좀 쓰게나.특히 자네는 인생경험이 풍부하니까 좋은 자서전이 될꺼야""해서 심심 풀이로 쓰게 되었고고 했다.그런데" 막상 쓰다보니 너무 방대하고 단순히 태어나서 학교 다니고 아들 딸 낳고 하는 것을 쓰는게 아니고 자신이 인생을 거울에 비추는 것 철학같은 것 같더라.그래서 전문가의 도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고사장님은 참좋은 친구를 두셨군요.자서전은 그 사람의 제2의 인생길을 열어 줍니다."했다.그러면서 " 자기 인생을 가장 솔직하게 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좋은 자서전이 됩니다.심지어는 팬티에 똥묻었다는 것까지도 솔직하게 써야합니다.다만,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부분은 그분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됩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나는 한번도 정식으로 문학공부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오직 학교 국어 또는 작문시간에 배운게 전부이고 내가 글쓰기를 좋아해서 학교시절에는 교지.대학에서는 대학신문에 소설연재를 했고,직장생활할 때는 사보에 글을 거재했고,옛날 동아일보에 시를 올린 적은 있습니다.그리고 사업하면서 직장에서 조금씩 쓰거니 외국 출장시에는 메모를 해두거나 조금씩 썼습니다.그러나 그 모든 것이 아마추어로서 한 것일 뿐 돈을 받으면서 한 전문적인 작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그래서 지금까지 약 300편을 썼는데 그 모든 것 이 콩트이기도 하고 떼놓고 보면 단편소설이기도 합니다.
또,사랑이야기는 전문작가가 조금만 각색을 하면 좋은 .드라마 소재로 탈바꿈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도 했습니다.그러나 나는 장르조차 구분을 못합니다.다 똑 같습니다.
나는 그에게 6편을 준비해서 가지고 갔는데 읽더니"참좋습니다.이것은 다만 원석이라고 생각하시고 형식이나 내용에 구애받지 마시고 쓰고 싶은 대로 열심히 쓰십시오.다 쓰시고 난 다음 제가 도외드릴 게 있으면 그때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겠습니다.그리고 퇴원하면 제가 고사장님 동네 명일동으로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외에도 그는 유명작가들의 글을 대필해 줘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있다고 했다.유명작가들이 실제로 대필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저명인사.즉 정치가,스포츠맨등 많은 분들이 실제로 대필 작가의 손을 거쳐 자서전이 탄생된다고 했다.그러나 누구의 자서전을 대필해 주었다고 밝히지 않는 것이 도리이고 예의라고 했다.
나는 또 출판기념회를 하고 나면 한권도 팔리지 않는 것은 일년이상 고생해서 쓴 글이 너무 가치가 없게 되어 안타깝다. 분명히 팔릴 수 있는 길이 있지 않느냐고도 물었다.그는 작품만 좋으면 직접 파는 것이 아니고 유통조직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그래서 나는 "지난 16년전 주피터 국제결혼을 창업했을 당시 한번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오직 도전정신과 신념으로 2년 만에 1,500개 업체중 1위가 되었다.처음 맥만 알면 할 수 있을 겁니다"하고 말했다.
이제 이웅균 작가가 9월 중순 퇴원하면 동네서 만나 청산의 자서전의 지금까지의 문제점.앞으로의 쓸 방향에 대한 조언등을 보다 많이 듣고 좋은 자서전이 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할예정이다.
~~후기~~나는 옥스필드를 비록 반값이하인 4,700만원에 팔았지만 그렇게라도 잘 팔았다며,이제는 부도가 나서 아예 빈털터리가 되었고 앞으로 퍼블릭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한다.우리는 건강해지면 거기라도 기자고 하고 또,9월 중순 만나자고 다시 약속하며 헤어젔다.
첫댓글 화룡점정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