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27 재물의 신(神) 관성제군(關聖帝君)

관우(關羽, ?~219)만큼 중국인에게 친근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대개의 중국인들이 이야기와 연극, 책 등을 통해 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관우는 산서성 출신이지만, 하북성으로 망명해서 유비(劉備 : 촉한(蜀漢)의 건국자, 161~223)와 장비(張飛, ?~221)를 만나 의형제를 맺었다. 그리고 쇠망한 한(漢) 왕조를 부흥시키기 위해 유비에게 힘을 보탰다. 이 세 사람의 관계는 말 그대로 형제와 같은 것이었다.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세 사람의 꿈은 곧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승상 조조(曹操, 155~220)가 이들을 배반하고 위(魏)를 건국하게 된다.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위나라와 손권(孫權, 182~252)이 이끄는 오(吳)와 맞서 싸우면서 유비는 자신이야말로 한 왕조의 정통 후계자임을 내세우며 촉(蜀)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관우는 오와 연합해서 위의 군대를 적벽(赤壁)에서 크게 물리치지만, 이후 오와 위의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고 만다.
그의 무장으로서의 늠름한 모습은 『삼국지』에 잘 표현되어 있다. 중국인은 그를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무장인 '2대 무성(二大武聖)'1)의 하나로 꼽고 있다. 그는 대단한 애국자인데다 우정과 의리가 있으며, 금전 관계도 깨끗하고, 성격마저도 침착한 아주 이상적인 사나이였다. 이런 영웅이 이유야 어떠하든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하여간 관우가 죽은 후에도 수백 년간 그의 영혼이 이 세상을 떠돌았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그의 혼은 형문주(荊門州) 당양현(當陽縣)에 있는 옥천산(玉泉山, 현재 호북성에 있는 불교 사찰)으로 날아왔다고 한다. 당시 이 산에는 보정(普靜)이라는 노승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보정이 명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절규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내 머리를 돌려주시오!"
보정이 주위를 살펴보니 말에 올라탄 관우가 부하들을 데리고 공중에 떠 있었다. 보정은 관우를 안으로 인도한 다음 입을 열었다.
"생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시비는 이제 아무 소용이 없소. 무엇이 좋고 나쁜지 그 경계란 없소이다. 당신은 지금 내게 머리를 돌려달라지만, 그렇다면 당신에게 죽음을 당한 장군들은 누구에게 가서 돌려달라고 한단 말이오."
이 이야기를 들은 관우는 큰 깨달음을 얻어 성불(成佛)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후 자주 옥천산에 나타나 악령을 퇴치하기도 하고, 재해를 미리 알려주는 등 주민들에게 영험을 보여주자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사당을 세워 관우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이것이 관우가 신격화된 최초의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1949) 전까지만 해도 관우의 탄생일(음력 6월 24일)에는 학교가 휴교하고, 각 가정에서는 공양을 하는 등 국민적 영웅으로서 대단히 높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불교와 유교에서도 신으로 숭배받는 관우
관우가 불교 사찰에서 성불했다는 전설은 관우가 불교와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실제로 관우는 불교에서도 관제보살(關帝菩薩) 또는 가람보살(伽籃菩薩)로 불리며, 호법신(護法神 : 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숭배되고 있다. 유교의 경우에도 관우가 항상 『춘추(春秋)』2)를 애독했다는 사실 때문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다.
무장이었던 관우는 현재 재신(財神 : 재산을 증식하게 해주는 신)으로서 사람들에게 깊은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관우는 원수인 조조에게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조조는 관우에게 많은 금과 은을 주면서 몹시 환대했지만,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같이 붙잡힌 유비 부인과 함께 탈출했다. 그런데 그때 조조로부터 받은 금과 은에는 하나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고 떠났다. 즉, 금전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청렴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기원을 하면 반드시 원하는 것을 이루어준다는 믿음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신에게 의지하는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관우는 무신이자 재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밖에도 재난을 예지하는 신, 요괴를 퇴치하는 신,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는 신, 천계를 지키는 신으로서 숭배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신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중국의 여러 신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신이다. 한국이나 일본에도 관우를 모시는 무당이나 사당이 있으며,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어김없이 관우의 사당이 있다. 휘날리는 듯한 긴 수염과 혈색 좋은 얼굴이 관우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관제 사당
『자불어(子不語)』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마(馬)라는 남자가 과거('문창제군' 항목 참조) 공부를 하기 위해 어느 집에 방을 빌렸다. 그런데 옆집에 살았던 아낙네가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마가 세들어 있던 주인집 닭을 훔쳐먹었다. 닭이 없어진 것을 안 주인집에서 옆집에 따지자, 아낙네의 남편은 크게 화를 내고는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며 아내를 죽이려 했다. 그러자 아낙네는 어쩔 수 없이 "닭을 훔쳐먹은 사람은 마"라고 거짓말을 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마는 관제 사당에 가서 신에게 사건의 진위를 밝혀줄 것을 호소했다. 그래서 점을 치니, 마가 범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마는 억울하게 그 집에서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어떤 사람이 신이 들려 자신을 관우라고 말하며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본 마는 관제의 점은 도무지 믿을 게 못 된다며 갖은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그 남자가 마에게 말했다.
"마여! 내가 그때 사건의 진위를 숨기지 않았더라면 옆집 아낙네는 죽고 말았을 것 아니겠는가.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야. 내 판단은 옥황상제께서도 칭찬해주셨고, 덕분에 천계에서 내 위치도 높아졌네. 나에게 너무 원한을 품지 말게나."
마는 그 점에 대해서는 수긍했지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소생은 관성제군이라면 대단히 높은 신으로 알고 있사온데, 천계에서 위치가 높아지셨다니, 그 위에 또 누가 있단 말씀입니까?"
"과연 마는 똑똑하구나. 사실 나는 관제님이 아니란다. 나는 다만 여기에 있는 관제 사당을 지키고 있을 뿐이야. 관제 사당이 전국 각지에 있다는 사실은 마도 잘 알고 있겠지. 관제님께서 아무리 영력(靈力)이 뛰어나시다 해도 그렇게 많은 장소에 모두 가실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처럼 작은 관제 사당에는 천계의 신 중에서 뽑힌, 나처럼 선행을 쌓은 사자(死者)가 관제님을 대리하고 있단다."
그제야 마는 지난날 관제에게 가졌던 원한을 풀고, 더욱더 관제 신을 잘 받들어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각주
1 2대 무성 : 또 한 사람은 남송(南宋)의 무장이었던 악비(岳飛, 1103~1141). 그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외적의 침입으로 어려움에 빠진 조국을 위해 의용군으로 참가했으나, 후에 장군이 되어 백전백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외적과의 휴전을 주장했던 강화파(講和派)의 재상 진회(秦檜, 1090~1155)는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악비를 무고해서 옥사케 함으로써 강화론의 걸림돌을 제거했다. 그후 송의 효종(孝宗)이 즉위하면서 악비는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관성제군 [關聖帝君, guanshengdijun] (도교의 신들, 2007.10.26,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