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쿠바 관계 정상화와 북·미관계 전망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2월 17일 미국과 쿠바 간국교를 정상화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특히 그는“미국이 쿠바의 고립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했지만, 쿠바 정부가 자국민을 억압하는 명분만 줬다”며 53년간의 봉쇄정책이 실패했음을 공식 인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미얀마와 관계를 정상화하여 방문까지 하였고 이란과도 핵 협상을 진행하면서 협상의 성공을 위해 의회에게 제재 부과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며 이제 쿠바와도 관계 정상화 과정을 공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로베르타 제이콥슨 미 국무부 서반구담당차관보가 아바나를 방문하여 지난 1월 21~22일 양일간‘긍정적 분위기’에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첫 회담을 가졌다.
그렇다면 미국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불량’적성국으로 이제 북한만 남은 셈인데, 향후 북미관계도 오바마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 동안에 관계 정상화 방향으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인가?
미-쿠바 관계 정상화 과정 1898년 미서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쿠바를 4년간 점령 통치했고 미국의 후원을 받는 정권이 전복되자 1933년 쿠바를 침공했으며 이후 친미 바티스타 정권이 집권했다. 1959년 1월 사회주의자 피델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군이 아바나에 진주하여 폭정을 행해온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타도했을 때 이는 바를 미국의 뒷마당 휴양지로 활용하여온 미국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카스트로는 소련의 조언에 따라 미국과 우호관계를 수립하려고 노력했지만 미국은 이를 외면했다. 1960년 10월 무역 제재를 가했고 1961년 1월 단교를 선언했으며 그해 4월 미 중앙정보부의 훈련을 받은 1,500명의 쿠바망명자들이 피그(돼지)만을 공격했지만 이틀만에 섬멸되고 말았다. 미국이 터키에 미사일기지를 건설하자 1962년 소련은 쿠바를 보호하고 미국을 가까이에서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기지를 쿠바에 건설하려했다.
동년 10월 미 U2정찰기가 이를 적발하여 미·소간 핵전쟁이 야기될 뻔한 미사일 위기가 벌어졌다. 이때 소련이 쿠바 미사일기지 건설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은 수년내로 터키 미사일기지 건설을 취소하고 쿠바를 침공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 후 미국의 카스트로 제거 시도는 반복되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1977년 카터 행정부는 쿠바와 이익대표부를 교차 설치하면서도 경제 봉쇄는 지속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미국이 쿠바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화하자 국내외에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쿠바 공산 정권도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서 1993년 달러 유통을 일부 허용했고 1990년대 중후반엔 토지의 개인 소유와 종교자유도 부분적으로 용인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9년 양국간 여행 제한을 완화하였으며 2000년에는 유엔에서 카스트로와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대통령은 쿠바를 적대시해 임기내내 압박을 강화했다. 2008년 피델 카스트로의 권력을 승계한 동생 라울은 모든 일반인에게 휴대전화 소지와 호텔 숙박을 허용하는 자유화 조치를 취했다. 불량국가와도 대담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양국 관계는 정상화 쪽으로 급선회했다.
오바마는 대외정책에서 쿠바와의 수교협상을 최우선시했고 취임 직후인 2009년 3월 쿠바계 미국인들의 쿠바여행 제한을 완화했다. 2012년오바마가 재선되면서 수교 협상은 본격화됐다. 벤로즈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쿠바 대사관이 있는 캐나다에서 2013년 6월부터 쿠바 대표단을 아홉차례 만났다. 수감 중인 간첩들을 맞교환하는 문제가 주로 협의됐다.
2014년 5월 존 네그로폰테 전국가정보국장 등 44명의 유명인사들이 쿠바 여행 허가 확대, 자금 제한 철폐, 이동통신 장비 판매 허가, 마약단속 및 환경문제에 대한 협상 등 대통령 직권사항들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10월 쿠바가 단일국가로는 최대 규모인 460여명의 의료진을 서아프리카에 파견하여 미국인들의 쿠바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에서 양국간
협상을 주선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쿠바 외무장관과 4차례나 전화 통화를 했고 12월 16일 오바마와 라울 카스트로가 45분간 전화통화를 한 뒤, 그
다음날 쿠바에 수감 중이던 미국인 간첩 앨런 그로스가 워싱턴에 도착하고 오바마는 국교 정상화 협상을 지시했다. 미-쿠바 국교 정상화 성사 배경 이렇게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데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동했다.
첫째, 오바마 대통령이 53년간의 쿠바 봉쇄가 득보다 실을 더 많이 초래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말처럼 쿠바에 대한 경제 봉쇄가 쿠바 정권을 붕괴시키거나 굴복시키기보다 오히려 카스트로 형제가 권위주의 체제로 집권하는 데 악용되었고 쿠바 국민들의 삶만 더욱 각박하게 만든 측면이 컸다.
둘째, 미국의 쿠바 봉쇄 명분이 박약했고 국제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친미 바티스타정권을 타도하여 미국의 미움을 샀지만 그 정권은 폭정과 독재로 인해 국민들에게 배척을 받은 정권이었으므로 쿠바인들은 혁명을 지지했다. 또한 카스트로 정부가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가졌지만 미국과는 지속적으로 우호관계를 맺으려 노력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친미정권을 타도한 정권이고 미국의 체제에 이질적인 체제라는 이유로 가혹한 경제 봉쇄조치를 취해왔기 때문에 미주대륙과 UN 등 일반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행위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 특히 미국이 중국 및 베트남 같은 공산국가들과 이미 오래전에 수교했으면서 바로 이웃의 쿠바만 배척한 이유는 매우 궁색했다. 최근에 중남미 국가들에 진보정권이 늘어나면서 미국의 행위는 독단적인 행위로 인식되고 있었다. 더구나 중국과 러시아 뿐 아니라 브라질같은 신흥 강국들이 쿠바에 적극 진출하고 있어 자칫하면 카리브해에서의 미국의 위상이 약화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셋째, 적성국가와도 대화를 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은 라울 카스트로의 개혁·개방 및 실리주의적 정책과 타협할 수 있었고, 오바마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존경받으며 남미출신이어서 쿠바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재에 나선 것이 양국간 합의를 촉진했다.
넷째, 오바마 대통령은 작년 11월 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여 여소야대 구도 속에 레임덕 상황에 빠지지 않을까 부심하여왔다. 이런 맥락에서 바마가 외교적 지도력을 유지하고 차기 선거에서 남미계 미국인들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전격적인 미-쿠바 관계 정상화 결심을 추동했다고도 볼 수 있다.
북·미관계 정상화?
그렇다면 이제 미국의‘불량’적성국으로 홀로 남은 북한도 오바마의 임기 중에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가 우리의 관심을 끈다. 작년 봄 북한이 핵 실험 가능성을 위협하면서 긴장을 고조시켰지만 결국 작년에는 자제했고, 11월초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이 평양을 방문하여 두 명의 미국인 억류자와 함께 귀국했을 때만 하더라도 북·미관계는 개선 가능성이 엿보였다.
그런데 작년 연초부터 유엔과 EU 및 미국이 북한 인권문제를 따지면서 북한 지도부를 직접 겨냥하여왔고, 12월 19일 BI와 오바마 대통령이 소니영화사 해킹이 북한의 행이라고 단정한 뒤, 금년 1월 2일 오바마 대통령이 새로운 대북 제재를 가했으며 미 행정부와 의회가 추가 제재 방안을 강구하고 나설 뿐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궁극적인 붕괴를 단언하는 미국의 대북 정책은 중단기적으로 강경기조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와 이란에 이어 쿠바와의 관계를 전격적으로 개선하면서 공화당이나 보수세력들로부터 적성국들에게 원칙이나 큰 대가없이 양보적인 정책을 펴고있다는 공격을 받고 있으므로, 핵을 개발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에 대해서는 강경한 정책을 펼쳐 원칙에 입각한 대외정책을 사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국제정치나 미국의 국가전략 측면에서 볼 때, 이미 약 4년 전부터 오바마 행정부는 급부상하는 중국을 포위·견제하겠다는 아태재균형전략을 일관되게 추구해왔으므로 이 노선에 한국과 일본이 실하게 가담하도록 하기 위해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납치자문제에 대한 북·일 교섭이 정체상태이고 국이 일본의 대북 접근을 견제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미국과 정면 대립하면서 북한과 접근하는 현 황도 북·미관계 개선 전망을 낮추고 오히려 한·미·일 대 북·중·러간 진영 대립과 유사한 갈등구조가 한반도 주변에 형성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향후 미국의 주도로 북·미관계가 단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단지 북·미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련국들이 이를 위한 여건이나 환경을 조성해줄 경우에는 오바마 대통령도 굳이 북·미관계 개선을 마냥 배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된다.
먼저 북한이 핵 문제에 대해 미국이 바라는 프로그램 정지, IAEA 사찰단 복귀, 핵과 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 등 양보적인 조치를 취할 경우 미국은 당연히 북·미대화와 6자회담 개최에 응할 것이다. 그러나‘불량한’북한이 상응한 대가없이 이런‘양보’를 선제적으로 취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둘째, 6자회담 의장국이자 북한의 핵 개발 및 각종 도발로 한국 못지않게 전략적 피해를 당해온 중국이 북한의 또 한 차례의 장거리미사일 및 핵 실험으로 인해 전략적 궁지에 몰리지 않기 위해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초청하는 등 종전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을 설득하여 북한이 핵문제에서 어느 정도 성의를 인다면 북·미관계가 개선 과정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나 차 핵실험 감행시 우리의 전략적 손실이 제일 크다는 점에 입각하여 남북관계에서 보다 전향적인 자세와 정책을 취하고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정책을 펼친다면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해결이 선순환 관계로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위 세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아 북한이 또다시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거나 4차 핵실험 또는 대남 군사 도발을 감행할 경우,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나 통일대박론은 모두 한반도 안보 위기 속에 물거품이 수 있다는 데 있다.
정부는 남북관계 뿐 아니라 북아 각국의 정책과 국제정치 역학구도 변화를 주도면밀하게 포괄적으로 분석·파악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에 입각하여 지혜로운 대북·대외정책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