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학 시간에 처음으로 ZOOM수업 했을 때가 떠오른다. 참 신기하고 기발한 수업, 먼 미래에 학교를 갈 필요 없이 어디서든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거란 상상을 하며 야밤에 많은 사람들과 화상채팅은 처음이여서 재밌었다. ZOOM 수업 도중에 교수님께서 직관경험에 대해 언급하셨을 때 바로 떠올랐던 나의 첫 홀로 제주도여행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무 계획도, 준비도, 생각도 없이 떠난 무모한 여행을 갔다. 그 때를 회상하며 나의 제주 이야기를 시작한다.
3년 전엔 직장을 다녔고 여름휴가를 8월 막바지로 잡았는데 남들은 여행계획을 열심히 짜고 해외여행도 잘 다녀오고 했지만 나는 도통 여행날짜를 맞춰 같이 여행갈 동행자를 못 구해서 답답해하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도 슬슬 직장을 갖기 시작하고 누구는 여름휴가도 주지 않는 회사 때문에 화가 나있는 상태여서 쉽사리 가자고 말 꺼내기가 어려워 업무 스트레스를 날리고는 싶고 시간 맞춰 같이 갈 가족도, 친구도 없어서 답답해 미쳐버릴 상태였다. 그러다가 혼자 이곳저곳 잘 돌아다니는 한 친구가 이미 제주도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망설임 없이 ‘그래? 그럼 나도 제주도로 갈까?’라는 말과 함께 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비행기 표를 끊기 전에 혼자 여행갈까? 혼자 갈 수 있을까? 혼자 어떻게 가지?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등등의 별별 걱정을 했지만 이대로 여름의 무더움과 직장의 스트레스를 집에서 허투루 보낼 바에 혼자 어디든 가보자는 심정으로 시작된 것 같다.
제주도 여행까지 하루 정도를 남기고 혼자 가는 여행이라 누군가에 맞춰주고 미리 어디를 갈지 계획을 짤 필요가 없어서 그런지 아주 느긋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떠나기 직전 날은 8월 20일 교육대학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라 전공 교수님부터 재학생들과의 인사와 술자리를 갖고 다음날 새벽 비행기에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면서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기절했다. 비행기에서 꿀잠을 자고나니 제주도에 도착해 있었고 제주도의 맑은 공기와 아침햇살이 나를 반겨주는 것만 같아 설렜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친구가 머물고 있는 곽지해수욕장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몸을 실었다. 그 때는 운전면허가 없어서 제주도에서의 이동수단을 버스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겁쟁이, 걱정쟁이가 혼자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와의 동행 없이 제주도라는 먼 거리를 건너와 있다는 게 스스로 뿌듯했고 신기했다. 사실 나는 원래 무얼 하든 계획을 짜고 실행해야 마음이 편하고 불안감을 덜 느끼는 편인 것 같다. 전에도 계획 없이 친구랑 여행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렇게 여행을 갔다가 계속 불안함을 느끼는 나 때문에 친구도 점점 불안하고 불편했다고 들었었다. 그리고 그 때 알았다. 나는 계획에 맞춰 실행하는 걸 더 편하다고 느낀다는 걸.
제주도에서 먼저 와있던 친구랑 만나고 나서는 그 친구가 짜놓은 일정에 따라 하루 종일 같이 다니고 게스트하우스도 같은 곳으로 당일 날 예약해서 쉬고 있을 때였다. 친구는 나에게 다음 날부터는 본인 혼자 가보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다니고 싶다면서 다음날은 따로 각자 여행하자고 말했다. 워낙 혼자서 이것저것 사람들이 전혀 안 가본 곳을 찾아다니는 친구가 은근히 내 신경이 쓰였나보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각자 여행을 따로 하기 시작했고, 나는 진짜 혼자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국내였지만 걱정쟁이가 이런 날벼락이라고 생각하면서 막막한 심정에 ‘그럼 이제 어디 가서 뭐하지?’라는 생각으로 고민에 빠져 버스정류장으로 향해 걸어갔다. 제주도 곳곳을 다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과 재정을 줄이며 크게 대표적이고 꼭 가보고 싶은 곳만 701번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추려냈다. 701번 버스가 제주도 테두리 쪽으로 한 바퀴 도는 버스라 겉핥기식의 여행만 해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혼자 처음 가본 곳은 성산일출봉이였다. 급하게 2박3일 간의 옷들만 챙기고 샌들만 신고 내려와서 선글라스도 운동화도 없었다. 운동화 없이 샌들로 일출봉 꼭대기까지 올라가 제주도를 보는 그 느낌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막바지에 다다른 휴가철이지만 성산일출봉에 사람은 무지 많았지만 모두 중국인이여서 국내에서 사진 좀 찍어달라는 말을 영어로 부탁할 정도였다. 그리고 땀으로 흥건히 적신 몸을 세화해수욕장에 가서 식혔다. 혼자 해수욕장에서 물놀이 하는 게 정말 재미가 없었지만 바다와 풍경을 바라보면서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거에 계속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 숲을 걸으면서 피톤치드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모든 짐을 싸고 택시를 처음으로 탔다. 제주도민인 택시운전기사님과의 짧은 대화는 신선했다. 제주도 사투리를 처음 들어봐서 따라 하기 힘들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 근처 비자림이라는 곳은 적색 땅으로 1000년 된 나무처럼 고목들이 많았고 연리목이라는 두 나무들이 만나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제주도 시내에 있는 맛집을 들렸다가 근처에 구경할 수 있는 용두암을 보려고 했지만 맛집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로 점심을 거르고 용두암으로 향했다. 용두암은 정말 허무했지만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혼자 여행하는 여자를 만나 마치 같이 여행 온 것 마냥 수다를 떨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짧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이였다.
제주도 여행기를 잠깐 소개했는데 나 혼자 떠난 여행 모든 것이 3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혼자서 여행 다니는 걸 그 전에도 시도하려했지만 걱정과 두려운 마음에 포기하고 집순이로 여름휴가를 보냈는데 제주도에 있는 친구 소식을 듣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제주도행 비행기 표를 끊고 내려간 것이 내 삶에 가장 무모하고 갑작스런 도전이 아니였나 싶다. 아무 계획도 준비도 없이 내려가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버스가 운영하는 시간이나 구경 갈 곳의 개방시간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을 맞추며 효율적으로 돌아다니고 싶었으나 당일 날 대충 계획을 짜도 변수들이 항상 있었고 이런 점에 있어서 나 혼자여행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쉬고 싶을 때 아무데도 가지 않고 그 날 하루의 마침표를 마음대로 마치며 쉴 수 있어 좋았다. 비록 여행을 갔다 와서는 샌들만 신고 산과 바다, 숲을 거닐어 물집과 벌레 물린 곳 투성이에 몸살을 앓았지만 갚진 경험이였다. 이런 직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여행의 첫걸음을 떼게 해준 건 혼자 잘 다니는 친구의 도움으로 나도 혼자 여행이라는 시도를 해보고 여행 다니는 동안 사진 찍어주는 사람들, 길을 안내해주셨던 사람들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혼자 다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걷어졌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다가도 제주도의 자연에 또 빠지며 걸으면서 혼자 어딘가를 혹은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한 생각도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면서 더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혹시 이번 여름방학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떠나라!(단, 운동화는 꼭 챙기자ㅠㅠ발이 너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