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청명시조문학상 수상작품 심사평
- 안태영, 김종식 공동집필
올해 제6회 청명시조문학상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170편이다. 여기서 출품 수 초과와 정격 외 작품을 제외한, 심사 대상 작품은 총 157편이다. 경쟁에서 심사위원들의 눈을 끌기 위해선 새롭거나 떨림을 줘야 한다. 시조도 마찬가지다. 인도 고대시가 ‘수바시따’에 이런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심장을 뚫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도 않는
시나 화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1)
또한, 최길하 시인은, 시조에서 음향학의 중요성 즉 곡조와 가락이 생명임을 강조한다.
"시조에서 토씨(조사) 하나가 그 문장의 결을 바꾼다. 냇물에 돌멩이 하나가 물결을 바꾸고 교란시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운문에서는 음향학이 중요하다. 글짓기(주제. 뼈대)도 중요하지만 말하기(音의 울림 살결)는 더 중요하다. 韻이 먼저고 文이 뒤다. '운문'이다."
대상 수상작인 김귀례 시인의 단시조 <정한수>에는 정성으로 진동하는 곡조와 가락이 찰랑인다. 파동으로 떨리는 한 그릇 마음은 바다에 닿아 출렁인다. 새벽은 밤새도록 모인 에너지가 태양처럼 팽팽해지는 시간이다. 툭툭 불거져 나온 삶의 애환을 비비면서 맑고 숭고한 내면에 파도를 일으키는 새벽 기도는 정한수 한 그릇을 ‘푸른 바다’로 확장하여 공감각의 꽃이 핀다.
감상할수록 가슴에 긴 울림이 떠나지 않는 작품이다. 간결한 마흔석 자 속에 어머니의 세월과 드넓은 바다를 담을 수 있다는 시조의 진수를 보여 주는 대단한 작품이다.
다음은 <정한수> 전문이다.
어머니 손등 위에 앉았던 풍랑들이
옹이진 손바닥에 서둘러 누웠을까
한 그릇 물기 털어서 푸른 바다 품는다
정한수는 정화수다. 사전적 의미는 '이른 새벽에 길은 우물물. 조왕에게 가족들의 평안을 빌면서 정성을 들이거나 약을 달이는 데' 쓰는 물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특별한 존재다. 그래서 맑은 소망이 하늘과 땅에 닿을 수 있는 정성의 파동, 물이 필요하다.
김귀례 시인은 당선 소감에서 밝혔듯이 '시조가 제 삶의 언어이고 치유의 언어'이며, '절제의 선율에서 오는 완결의 미학이며 멋과 맛'의 장르임을 잘 알고 있다. 나아가 '민족문화 정체성의 종자요 꽃인 정격시조 부흥 운동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정한수’다. 단시조 한 그릇에 담긴 압축된 내재적 가락이 가슴 백사장에 밀려와 발가락을 간지럽히지 않는가.
금상 수상작인 김선옥 시인의 ‘미틈달’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늦가을 풍경화 속으로 들어간다. 작가가 늦가을 황혼을 바라보며 인생을 독백하듯 읊조리는 어조에 잔잔한 감동이 전해오는 작품이다. 다음은 ‘미틈달’ 전문이다.
하느작 휘날리는 은백색 갈대 위로
살며시 걷는 바람 사뿐히 이는 생애
노을빛 황혼을 밝혀 십일월을 수놓다
강 위에 붉은 얼굴 조그만 쪽배 타고
늦가을 이별 예고 뱃사공 떠난 자리
억새떼 목이 맨 사연 마른 낙엽 떨군다
십일 월에 뜨는 달, ‘미틈달’이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부터 새롭다. 호기심의 마중물이다. 한 사발 마시지 않고 떠날 수 없게 한다. 바람 부는 늦가을 밤에 뜨는 달은 청춘을 거세당한 ‘은백색 갈대’와 ‘강물’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삶의 끝자락에 수놓는 풍경화를 맺어주는 연등인양 아름답다. 다만, ‘갈대, 노을빛 황혼, 쪽배, 뱃사공, 억새떼, 마른 낙엽’ 등, 평이한 이미지의 시어들이 범람해서 심장을 뚫고 들어갈 화살이 약하고, 곡조와 가락이 춤출 수 있는 공간인 여백이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창의적인 발상이 가장 요구되는 종장 처리에 있어 인상적인 떨림이 전해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은상 수상작인 김인희 시인의 ‘접시꽃 연가’는 사랑이 떠난 자리에 슬픔과 이별을 맛깔스럽게 버무리한 작품이다. 또한 시조에서 종장의 중요성은 절대적인데 이 작품에선 종장 처리가 압권이다. 빛나는 구슬이 많아도 잘 묶어야 목걸이가 될 수 있다. 다음은 ‘접시꽃 연가’의 전문이다.
하얗게 웃는 얼굴 길목에 지켜 서서
오가는 길손 잡고 나직이 전하는 말
사랑은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그림자
마른침 삼키면서 목젖이 내려앉고
사랑이 떠난 자리 하늘땅 무너져도
당신은 거기 그 자리 박제되어 웃는 꽃
1연 종장, ‘사랑은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그림자’와 2연 종장, ‘당신은 거기 그 자리 박제되어 웃는 꽃’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접시꽃의 이미지로서 긴장감이 떨어지고 평범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림자’와 ‘박제되어 웃는’이라는 시어와 시구가 아무나 쉽게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최길하 시인의 ‘시조에서 토씨(조사) 하나가 그 문장의 결을 바꾼다. 냇물에 돌멩이 하나가 물결을 바꾸고 교란시키는 것과 같다.’라는 내용에서 보았듯이, ‘그림자’라는 명징한 슬픔 하나가 물결을 바꾸고 교란시켜 읽는 이들의 가슴을 뚫고 흐르는 떨림의 화살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시적 화자의 애타는 그리움이 ‘마른침 삼키면서 목젖이 내려앉고 / 사랑이 떠난 자리 하늘땅 무너져도’ 그림자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박제되어 웃는 꽃’이라고 비유했다.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십자가를 짊어져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저 피가 묻은 웃음이 토하는 이별의 서글픈 곡조를 왜 모를 것인가.
끝으로, 아쉬움의 씨 한 톨을 시조 밭에 뿌리면서 졸렬한 심사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큰 돌이 되어 의식의 여울에 박혀 있는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적인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는 성질을 통해 획득되는 법이다. 남들이 늘 하던 방식 그대로 행과 연을 배치해서는, 상투적이고 뻔한 언어를 상습적으로 구사해서는, 현실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뒤집고 튕겨내고 해체하는 상상력이 없이는 동시를 동시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어디 동시뿐이겠는가. 시조도 시대의 아픔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는 옆 사람의 지적에 삶을 성찰하는 눈빛으로 한 번쯤 돌아보며 살 일이다.
다음은 정혜작가상을 수상한 황경란님의 ‘고백’ 전문이다.
소심한 밴댕이 속 겁보에 옹졸하고
욕심은 늘어가고 끈기는 부족하다
남모를 단점투성이 숨겨놓고 사는 나
남의 말 읽기 전에 서둘러 가로채고
약점을 누가 알까 꽃으로 포장하고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토해내고 싶은 밤
시조가 솔직하고 담백하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숨겨놓은 단점 하 나씩은 있을 것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하여 고해성사를 보듯 내면의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시조로 잘 마무리 하였다. 감상할 수 록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정갈하면서도 담백한 심정을 시조로 잘 승화시킨 작품이다. 심사평- 김종식
이어서 연담작가상을 수상한 박관희님의 ‘촛불’ 전문이다.
육십을 가득 채워 칠십을 앞둔 지금
당신의 아픈 가슴 내 이리 몰랐을까
자식들 키워낸 손이 어찌 이리 말랐소
건강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나이
손편지 한줄 한줄 읽다가 흘린 눈물
웃음 속 함께 살다가 머리 흰줄 몰랐소
연담작가상 '촛불'은 평생을 함께 한 아내에게 보내는 연시조 연서이다.
어느날 문득 눈에 띈 아내의 마른 손, 감출 수 없이 드러나는 흰 머리에서 자식들 키우며 고단한 살림 사느라 이제 건강마저 약해진 아내의 삶을 고마운 마음으로 돌이켜 보고 있다.
젊은이처럼 뜨겁고 격렬하지 않지만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충만한 황혼의 사랑이 촛불처럼 은은히 타고 있다. 심사평- 권오상
다음은 신옥선님의 늘봄작가상 ‘가을이 오기 전에’ 전문이다.
산비탈 바위 옆에 소복이 돋아나서
지나는 길손들의 발길에 차이면서
나는야 한 포기 잡초 눈길 한번 못 끌고
찬바람 불어와서 노란 꽃 피워내니
그윽한 향기 뿜어 모두의 눈길 끄네
가까이 더욱 가까이 다가서는 길손들
제6회 청명시조문학상 늘봄작가상에 당선됨을 축하드리며 두 수로 짜여진 신옥선 시인의 시조 <가을이 오기전에>는 신옥선 시인 인생 그 자체인 듯 소박한 시심을 담은 깔끔하고 참신한 정격시조다. 시인의 작품속에 지금까지 걸어 온 여정이 사무치게 눈길 한번 끌지 못함을 시린 시심으로 창화시켜 인생의 한 켜 한 켜 쌓인 꽃탑이다. 한번도 찜 당한 적 없었으나 이제 그 향기 무르익어 눈에 띤 꽃탑이라 하겠다.
심사평- 여량정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