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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거룩 : 가증한 죄인의 멸절 (레 20장)
- 설교 : 김강호 목사
레위기 20장이다. 17장부터 20장의 한 단락의 마지막이다. 그냥 이런 저런 규례를 모아 논 것이 아니라 어떤 체계를 가지고 배열했기 때문에 그런 구조들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17장-20장까지는 이스라엘의 집에 거룩에 대해서 말씀하신 규례다. 17장은 피를 제사는 하나님께만 드리고 피는 하나님의 단에다만 드리고 일체 먹지 말도록 한 것이 17장내용이다. 그러니까 피는 죄를 속하도록 주셨기 때문에 이 생명을 속하는 피는 하나님께만 드리고 너희는 먹지 말아라 한 것이 17장에 내용이다.
그래서 17장은 생명의 피를 속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고 그들은 그 피를 하나님의 단에 드리고 또 하나님의 단에다만 예배하고 그렇게 함으로 피로 속함 받은 백성으로 살라는 규례가 17장이다.
이어서 18장에서 이 피로 속함 받은 백성이 하나님께서 쫓아내신 가나안 족속을 본받지 말아라 하는 것이 강조점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의 백성들의 죄의 항목들을 나열하는 것이 강조점이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백성을 따라 살아서는 안될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속한 백성으로 그 거럭한 규례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19장에서 말씀하신 내용이고 20장은 이제 이 단락의 마지막인데 만일에 가나안 땅에서 이러이러한 죄를 지은 사람은 둘다 죽여라 전부 죽여라 하는 말이 열쇠되는 말이다. 다 죽이면 그 땅에는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일에 여호와께서 쫓아내신 백성들의 죄를 지으면 그런 사람들을 다 죽이고 만일에 그런 죄를 계속해서 지으면 그 땅이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은 토해 내쳐버려서 그 땅에는 그런 사람이 없게 하겠다. 그렇게 해서 가증한 죄에 대한 경고가 강조점인데 거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가나안 땅에는 그런 죄가 없게 하겠다 하는 것이 목표다. 이러이러한 죄는 너무너무 나쁘니까 하나님이 죽인다 하는 그런 형벌적인 문제보다는 핵심은 그런 자들을 다 죽임으로 가나안 땅에는 그런 자들을 없게 하겟고 만일에 있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토해내쳐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그 땅에는 그런 자가 없게 하겠다. 그렇게 해서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룩한 나라로 완성하신 것이 이 20장의 내용이다.
20장에는 이스라엘이 거룩해야 되겠다. 특별히 가증한 죄를 멸절해서 거룩해야 되겠다. 하는 것이 20장의 내용이다. 주제는 그 결론에가 나타나 있는데 너희는 내게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너희를 내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중에서 구별하였음이라 하는 이 언약적인 언어가 결론에 나타나 있고 어덯게 거룩하게 하는가? 범죄자를 다 죽임으로 거룩하게 한다고 되어 있다.
전체를 요약해 보면 거룩한 하나님 여호와의 소유가 된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이전 여호와께서 쫓아내신 가증한 족속의 죄를 짓는 자와 그의 영향을 받은 자가 하나라도 있지 못할 것이다. 하는 내용이다.
먼저 2-5절을 보면 우상에 속한 자는 다 죽이라고 그렇게 나와 있다. 2절을 보면 누구든지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여라. 누가 그 지방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여라. 나도 그 백성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이름을 욕되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땅히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려야 되는데 가장 가증한 방식으로 자식을 몰렉에게 주었으니 그는 내 이름과 내 성소를 더럽혔으니 나도 죽이겠고 그 지방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여라. 만일에 그 지방 사람들이 못본체 하고 나 두면 내가 그 사람들만 죽인 것이 아니라 나중에 보면 그 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음란히 우상을 섬긴 자는 다 죽이리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지방 사람보고 죽이라고 그랬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이 그 지방 사람들에게 있고 그 지방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행자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그 백성이 미워하고 하나님이 죽이는 자를 그 백성이 죽여야 되고 그렇게 해서 그 땅에 우상 섬기는 자가 없도록 해라. 만일에 그 지방 사람이 못본체 하면 같이 죽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백성 삼으려고 부르셨으니 너희들은 내 소유가 되었으니 18장에 이방 백성을 본 받지 말라. 20장에 나를 대신 해서 악한 자를 진멸해라 그런 자를 없도록 하고 너도 그를 죽여야 되고 나도 너와 함께 해서 그를 죽이리라. 나와 함께 싸우자 이 나라에는 그런 자가 없도록 하라. 그렇게 해서 그 나라를 완전히 거룩한 나라로 성별시킨 내용으로 되어 있다.
주보를 읽겠다. 몰렉에게 제사하는 자는 누구나 그 지방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여라. 나도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을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 지방 사람이 못본체 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 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들을 그 백성중에서 끊으리라. 이것이 20장을 여는 대표적인 규례다. 나머지는 이제 이 우상에게 속한 죄들을 쭉 나열하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그런 죄인과 싸워야 되고 죽여야 되는데 그런 내용으로 구체와 될 것이다.
62절부터 16절까지가 또 한 단락인데 여기6절을 보면 (레20:6)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레20:7)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들은 그런 자들을 본 받지 말고 거룩하라 그 말이다. 그리고 나서 8절에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무릇 하면서 규례가 쭉 나온다. 다시 우상 섬긴 문제가 6절부터 7절부터 나오고 이어서 8절부터 내 규례를 지키라 하면서 거룩한 규례가 나온다. 이 규례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해야 할 규례다. 여기서 죽임 받을 대상은 음란하듯 신접한 자들이 행한 규례다. 그렇게 해서 제일 앞에는 우상 섬기는 제일 사악한 문제 아들을 몰렉에게 주어 죽이는 일 그들을 죽일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속한 자로서 이러이러한 죄를 짓는 자들도 다 죽일것이라 하면서 6절에 다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몰렉에게 자식을 주는 일과 함께 그런 자들을 숨기는 선지자들 말하자면 신접한 자들 그런 사람들을 본받지 말고 죽이라 너희들은 내 소유가 아니냐? 너희들은 그들에게 속한 악한 자를 죽임으로 내 규례를 지켜라. 그것이 6절 이하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는 내용이다.
주보.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너희는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키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둘다 죽여서 너희중에 악행을 없게 하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부모를 저주한자 간음한자 계모나 자부와 동침한자 동성 연애자 아내와 장모를 아울러 취한자 짐승과 교접한자. 반복되는 말은 이런 일을 행한자는 둘다 죽여라 다 죽여라 이런 말이다. 그 말이 반복되고 있다.
이들은 누구에게 속한 자인가? 앞에는 물렉을 섬기는 자요 거짓 선지자인 신접한자 박수 우상 선지자 그들에게 속한 자다. 그런데 너희들은 내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예물을 드리고 신접한 자를 따라서 이런 저런 죄를 지은 자를 너희들이 대신 죽여라. 너희들이 죽이면 나도 그들을 백성 중에서 끊으마 그런 이야기다. 그것이 20장에서 말하는 중심이다.
물론 이런 일에 있어서 합법한 결혼의 한계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결혼 제도를 설립하는 핵심보다는 우상에 속한 악한 죄들이 없게 하는데 강조를 하고 있다.
그 다음 17절부터 21절은 또 성적인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누구든지 자매 어미의 딸이나 아비의 딸을 취하는 자 또 경도하는 여인과 관계하는 자 이모나 고모의 하체를 범하는 자 또 백숙모와 동침하는 자 형제의 아내를 취하는 자 이런 자도 다 죽이라 그 말이다.
주보에는 성경에 있는 구절들을 요약을 해 놨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죽냐면 자식이 없이 죽으리라 그렇게 되어 있다. 여기 왜 하필이면 이것을 새로운 문단을 나누었는지 17절부터 그것을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런데 앞에서는 다 죽이라 그런 말이 강조되어 있고 뒤에서는 다 죽이라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런 말보다는 죽인 이유들이 더 많이 설명이 되어 있다. 그런 죄들이 그래서 자매를 범하면 하체를 범하면 부끄러운 일인데 그렇게 해서 죄를 당하리라. 여긴 죽이라는 말은 직접 없지만 죄를 당하리라. 그리고 경도한 여인과 관계를 한자도 피의 근원을 드러냈기 때문에 둘다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또 골육지친을 범하면 그도 죄를 당할것이고 그렇게 무자하게 죽으리라. 그런 말로 되어 있다.
실은 18장에 있는 죄목들이 함께 언급되어 있다. 단지 왜 17절부터 문단을 구분을 해 놨는지 이것은 잘 모르겠다.
22-26절이다. 여기도 새로운 단락인데 22절을 보면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 내가 인도하여 거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여 내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해서 새로운 시작을 가져오고 있다. 이 앞에 17절을 문단은 나누어져 있지만 어떤 새로운 출발점들은 가지고 있지는 않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런 말이 있다거나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그런 말이 없다. 그런데 나누어져 있고 22절은 그런 선명한 구분이 있다. 너희들이 내 규례를 지켜야 가나안 땅이 너희를 토해 내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해서 언약의 땅에 삶과 관계된 방식으로 한층 더 강화시켜서 설명하고 있다.
주보.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키라. 그리 하여야 너희에게 거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해 내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내가 가증히 여겨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쫓지 말라.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른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리라. 나는 너희를 만 민중에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조금 요약해서 적어 놨는데 너희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내 규례를 잘 지켜라. 내가 쫓아 낸 백성들의 풍속을 본 받지 말아라. 내가 조상들에게 약속한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면 너희는 내가 쫓아 낸 백성을 본 받지 말아라. 내가 너희를 모든 백성중에서 구별하여 내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구별했고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준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희들이 그 땅을 받으면 그 땅에서 쫓겨난 백성들을 본 받지 말아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내용이 23절을 보면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신 족속의 풍속을 쫓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함으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내가 전에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으로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내가 너희를 만민중에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것까지가 언약을 체결하는 그런 문구가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신 언약을 회상하고 그 언약이 성취되었을 때 하나님은 가나안 땅 백성의 죄가 관영하면 그들을 쫓아내리라 했는데 그들은 가증한 죄를 지었으니까 그들을 본 본받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한 번 더 말씀하고 나서 25절에 보면 음식물의 정하고 부정한 것으로 더럽히지 말라. 그리고 나서 26절에 결론적인 말을 또 하고 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너희는 내 소유이니까. 그렇게 말씀하고 27절에 또 신접한 자 박수를 반드시 죽이라는 말이 또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이 동심원적인 물결 구조라고 그랬다. 그러니까 27절이하에서는 다시 언약적인 문제는 조상들때부터 다시 회상하고 나서 그 가나안 땅에서 가증한 죄를 짓지 아니할뿐만 아니라 음식물의 정하고 부정한 것을 잘 지켜라. 그 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볼때는 음식물의 정하고 부정한 것을 별볼일 없고 그 앞에서 가증한 죄가 너무너무 더러운데 성경은 제일 끝에다가 음식물의 정하고 부정한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다가 언약 체결적인 문구를 길게 삽입하고 있다. 실은 그들이 가증한 죄를 지었는데 그들을 여기서는 언급하지않고 이 앞에 이미 언급을 했다. 이것이 더 강화된 것이다. 이런 죄를 짓지 아니할뿐만 아니라 그들의 먹고 마시는 모든 삶에서 그들은 생에 거룩을 지켜야 된다. 그들의 먹는 일상 생활에서 그렇게 해서 성화를 한층더 진행 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먹고 마시는 것은 별볼일 없고 도덕적인 죄는 고약한 것이고 그렇지만 성경은 가나안 땅 백성의 가증한 죄를 쭉 열거하고 나서 그 다음에 한 번 더 언약 체결을 조상들때부터 다시 언급해서 가나안 땅을 상속한 일까지 언급하고 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내가 너희에게 주는 음식물 까지 거룩하게 해서 완전히 거룩하게 해라. 그렇게 해서 마무리를 짓고 있다. 그 말이다.
그리고 나서 27절에 한 번더 쉽게 붙이면 우상 선지자다. 왜냐하면 술객과 박수들 그들은 자식을 몰렉에게 주도록 유혹하는 자들이다. 말하자면 우상 선지자다. 만일에 그런 사람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돌로쳐라. 이스라엘 백성중에 만일에 이런 우상에 속한 선지자가 생기면 반드시 죽이라고 되어 있다. 제일 처음에는 그 지방 사람들이 몰수히 달려들어서 죽이라고 그랬다. 만일에 그 지방 사람들이 그 일을 못본체 하면 그 지방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이리라는 그 말이다. 왜 그에게 유혹되어서 함께 음란히 우상섬김으로 죽이니까. 해 놓고 제일 끝에 다시 그 말을 반복하고 있는 식이다. 박수나 우상을 섬긴 자는 죽여라. 그렇게 해서 한 번 경고적인 문구로 제일 마지막에 언급함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가증한 자들을 완전히 죽이는가 하는 문제를 강화시켜서 마치고 있다. 이런 27절 말씀 같으면 일반 논문으로 보면 쓸데 없는 말이다. 이미 앞에 다 언급 되었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제일 뒤에 이것을 다시 붙여 놨다. 어떤 의미로 보면 기분 나쁜 말이다.
한참 좋은 말하다가 제일 끝에 가서 이말 한 번 딱 하면 이제까지 한 말이 이 말이다. 그런 표현법이다. 그래서 만일에 너희 자녀들이 박수나 술객이 되면 그를 죽여라.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은 소위 구약에서는 신성 모독 죄를 짓는 것이다. 왜냐하면 손을 대지 않고 죽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죽이는 일에 있어서 그에게 아무 부정도 옮기지 않고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니까 이것은 살인죄가 안된다. 왜 피흘린 죄가 그에게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그를 죽임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그의 피로부터 깨끗케 되고 그리고 그런 사악한 죄를 짓지 않고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이 흐르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시면 이것까지 거룩하게 먹어서 완전히 거룩해라. 그렇게 함으로 이스라엘 집의 성화에 대한 명령들을 마무리 짓고 있다.
20장의 죄의 목록은 18장과 비슷하다. 차이점은 18장은 가나안 땅 족속의 죄의 항목에 치중하고 이러이러한 벌을 받은 다는 문제보다도 이렇게 하지 말아라고 항목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 18장이고 20장은 그러한 죄가 가증하다고 말하고 있고 그러한 가증한 죄를 지은 가나안 족속을 쫓아냈기 때문에 그러한 가증한 죄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소유가 된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에게 준 가나안 땅에서는 없게 하라는 거룩을 강조한다. 20장에 열쇠되는 말은 다 죽이라 이다. 둘다 죽이라 이런 말이다. 그런 의미로 가증한 죄와 그런 사람이 가나안 땅에는 없는 것이다.
만일에 그런 사람을 그냥 두면 그 땅에 토해 내치면 가나안 족속이 쫓겨난 것처럼 그들도 쫓겨날 것이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땅으로 옮겨간 것이 그런 이유다. 이것은 그런 죄는 너무나 더럽다 강조되지만 핵심은 더럽다는 강조보다는 다 죽이라 그렇게 해서 그 땅을 거룩한 땅으로 성화 시키는 것이 실은 핵심이다.
반드시 죽이라는 죄의 항목은 주로 우상에 속한 가나안 족속의 음행이며 전반부에서 우상 숭배의 금지와 부모를 저주한 진노를 명령하시고 후반부에서 가나안 족속의 가증한 풍속과 여호와께서 금하신 부정한 음식으로 인하여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심으로 여호와께 속한 자의 총체적인 거룩을 말씀하신다.
후반부에서 거룩하라는 말은 주제를 언약적으로 마무리하신 후에 맨 마지막 절에서 가나안 족속의 우상 숭배를 따르는 자들의 심판을 한 번 더 반복하심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를 강조하신다. 이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냐면 18장과 19장이 연결된 구조다. 20장은 내용이 그래도 제일 중심적인 죄의 항목들은 18장에 있는 항목들과 같다. 차이가 있으면 다 죽이라 하는 말에 강조점에 차이가 있다. 그런데 18장은 이러이러한 죄의 항목만 쭉 나열되어 있는데 20장은 그런 말이 아니라 앞에 우상 섬긴 자는 죽여라 그리고 그 뒤에는 부모를 저주 한자는 죽이라. 이런 말이 따라 있다. 그러면 부모를 저주하는 자를 죽이라 그 말은 19장과 연결되는 말이다. 그러니까 가증한 죄에 대한 심판들이 강조되었는데도 실은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 속한 백성으로 이런 가증한 죄인들 죽여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고 저주 한자를 죽여야 된다. 이런 말은 18장에는 없다. 부모를 저주 한자를 죽이라 하는 말은 19장에 나오는 말이다.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고 노인들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고 이러이러한 죄를 멀리해라. 그것이 19장이다. 왜 부모가 하나님의 대리자이니까. 그러니까 그것이 합쳐져 있기 때문에 20장에 보니까 부모를 저주한자를 죽여라 하는 것이 앞부분에 있고 가운데는 가나안 백성의 우상 범죄들을 쭉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뒤에 다시 언약 체결에 대한 문제와 먹는 음식까지 거룩하라는 총체적인 거룩을 말씀하고 나서 제일 뒤에 가증한 자는 죽이라는 항목이 하나 더 붙어 있다. 그러니까 실은 18장과 19장이 조합된 형식 구조다.
핵심은 너희와 그 땅을 거룩하게 해라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구원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된 자들이 어떻게 이방을 본 받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살 것인가? 특별히 그들이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서 어떻게 죄를 미워하고 악과 싸우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땅을 거룩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기록 핵심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구원론적으로 읽어서는 안되고 언약 백성의 삶의 윤리로 읽어야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구약 때는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을 심으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단에다 봉사하는 그런 거룩한 백성으로 구원하셨다. 그러니까 그들은 가나안 땅의 우상에 속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자의 행위를 본 받지 않고 여호와의 단에 드리는 백성으로 피로 속함 받은 백성으로 살고 여호와께 속한 백성으로 이방인과 싸우고 그런 죄를 지은 자들을 죽이고 그렇게 하면 그들은 거룩한 백성이다. 그것이 구약의 성화다.
이제 신약 교회에서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가나안 땅 백성을 쫓아내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이 세대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주 예수께 속한 자가 되도록 하셨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 세상을 본 받지 말고 주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 그것이 이제 구원 역사에서 우리가 만나고 있는 현실이다.
주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속한 나라를 교회에 주셨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방인의 행함같이 행하지 말고 악한 것을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고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한다. 그것이 신약에서 윤리의 권면 방식이다. 물론 베드로서에 있지만 로마서 에베소서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구약에서는 이런 자들은 죽임으로 언약의 땅에는 그런 자가 없도록 해라. 하는 문제였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치리 문제를 단순히 다루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 신약 때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나라를 주셨다. 이 세대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 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으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본 받아서는 안되고 이 세상에 속한 자의 흔적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 여호와의 거룩을 따른 것처럼 하늘에 속한 분의 거룩을 닮아서 주님을 닮고 그것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는 말이다.
여기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 하는 것은 어떤 교리적인 문제들이 아니다. 하나님을 따라 새 사람을 입으라 하는 말이고 하나님을 따른다는 말이 뒤에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았다. 이렇게 설명이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와 진리 거룩함 이런 말은 도덕적인 문제를 직접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의인데 구약적인 그 의가 아니라 진리의 거룩함 그것이 하나님을 따라 새 사람을 입는 것이다. 그것이 신약 시대 백성이 누리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라.
그것이 성도의 마땅한 바이다. 만일에 너희들이 저희들처럼 행하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는가 에베소서에 나온 말이다. 너희들을 이상이 여기지만 놀래지 말아라. 그들의 마음이 둔해지고 그들이 생명에서 떠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런 것을 본 받지를 말아라. 하나님을 본받아라. 그렇게 새 사람을 입어라. 그것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모세 제도를 따른 새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마땅한 바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몸으로 전체로 산 제사를 지내야 된다.
피를 하나님 앞에 드렸던 것처럼 속함 받은 생명을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을 하나님앞에 드리고 그럴뿐만 아니라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라.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로서 교회가 사는 삶이다. 그러니까 지금 가나안 땅 땅 백성이 했던 죄 이런 죄를 짓지 않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의 명령은 너희들은 어떻게 하라 하는 적극적인 명령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여기서는 출애굽기에서는 어떻게 하라 하는 것이 더 적극적으로 주어져 있다. 그것은 언약 체결적인 문제니까. 여기서는 우상에 속하지 않고 내게 속한 백성으로 살아라.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이 핵심이다. 그런데 가나안 땅은 그전에는 우상과 교제하는 나라였다. 이제는 하나님의 성소안에서 사는 삶이기 때문에 이제는 우상과 대비된 방식으로 언급이 되어 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적극적인 윤리의 방식으로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것을 교회에 그래도 줄긋기를 해 가지고 아 이러이러한 죄만 안 지으면 되는 구나 그러면 교회는 수준이 형편없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적인 범죄만 없으면 다 살아 남을 것이니까. 그러면 여기서의 성적인 범죄를 지금 우리가 보면 너무나 형편없는 일이다. 그런데 요새도 있다. 요새 미국 연애인들 정치인들 다 이런 죄를 짓고 있는 자들이다. 전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면 교회는 이런 죄만 안 지으면 되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죄의 항목을 봤을 때는 지금도 동성연애자 하는자가 있고 형편없는 죄를 짓는 자들이 많이 있다. 구약때도 있고 로마서도 있다. 아하 이것은 모든 세상에 있는 똑같은 죄구하 하고 읽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가나안 땅의 죄를 언급하면서 이런 가증한 자를 쫓아 냈으니 너희들도 그런 자들을 쫓아 내고 죽이고 없도록 해라. 가나안 땅백성과 대비된 방식으로 가나안 땅의 성소를 이야기 할 때 이 문구다. 그러나 지금은 가나안 땅의 백성의 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의 교회로 세우셨기 때문에 이제는 의외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 세대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가나안 땅의 백성과 대비된 여호와의 백성 이제는 하늘에 속한 새 백성으로서 대비된 백성 이런 구원 역사적인 새로운 관계에서 이 계명을 보고 새롭게 해석을 해야 된다 그 말이다. 이것 자체만 안하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성경을 읽는 방식이다. 여기 죄 안걸린 사람은 너무너무 많다. 그러면 이정도 죄만 안지으면 교회에서 충분히 견디어 내겠는가? 그런 식으로 성경은 설명을 하지않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하늘에 속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땅의 분깃도 없고 관계도 없다. 그런 의미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을 따라서는 안되고 그들이 우리를 이상히 여겨도 우리가 놀랠 필요가 없다. 악한 것은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고 주님게 향기로운 제사로 몸을 드려라. 그렇게 에베소서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것이 남녀를 거룩하게 취하는 방식이다.
우리의 부르심은 하늘에 있다. 가나안 땅 백성과 싸우라는 정도가 아니라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싸우는 부르심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악과 싸우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교회는 거룩한 새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런 죄가 있는가 보자 하고 보면 자기도 온전함이 없게 된다. 이런 것을 자기의 감독관으로 삼아 봤자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부르신 거룩한 분 거룩한 교제로 삶으로 그 교제의 빛가운데 삶으로만 자유요 이런 죄가 보인다. 그러면서도 이 죄가 여러분을 더럽히는 감독관이 안될 것이다. 교제로 사니까. 가령 우리들이 바른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를 경배하면 거기에 우리의 새로운 결심들이 따른다. 그러나 더럽다고 막 울고 있는 따름이 아니라 완전히 깨끗함으로 누리는 결심이다. 주님 자신을 뵈므로 깨끗함이 있고 진정한 자유가 있다. 감독관으로가 아니다. 듣고는 나가서 잘해보자 하는 그런 교육용이 아니라 주님을 즐거워함으로 완전한 자유가 있다.
이것은 이런 저런 항목들을 넘어서는 참다운 교제다. 그렇게 믿음으로 깨어있으라 그 말이다. 그리고 그와 대비된 모든 것은 미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주님이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악을 미워하라 그 말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다음에는 21-22장이 한 단락이다. 읽어 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