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54 AI 알고리즘의 가면을 쓴 ‘탐욕의 시선’ — 디지털 파놉티콘의 실체와 대응 전략
휴헌 간호윤 ・ 2026. 4. 30.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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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55 - 한겨레:온
6.3 선거가 한 달도 채 안 남았다. 거리마다 형형색색의 현수막이 나부끼고, 확성기에서는 세상을 바꿀 듯한 포부가 터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 화려한 수사 뒤에 숨은 본질을 들여다보면, 대중[유권자]은 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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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54
AI 알고리즘의 가면을 쓴 ‘탐욕의 시선’ — 디지털 파놉티콘의 실체와 대응 전략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설계하고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권력의 감시 기제로 해석했던 ‘파놉티콘(Panopticon)’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감시’였다. 죄수는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누가, 언제 자신을 지켜보는지 모르기에 스스로를 규율하고 통제한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며 우리는 이 감시의 주체를 ‘AI 알고리즘’이라 믿어왔다. 기계는 차갑고, 계산적이며, 적어도 인간적인 ‘관음증’이나 ‘편견’으로부터는 자유로울 것이라는 낙관적 가정(假定)이었다.
하지만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디스토피아를 그린 《1984》에서 경고한 ‘텔레스크린 (telescreen)’은 오늘날 더 은밀하고 정교한 형태로 부활했다. 구글을 비롯한 거대 플랫폼들이 우리의 음성 명령, 이메일, 검색 기록을 ‘인간 검토자(Human Reviewers)’들이 직접 듣고 열람하며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이는 디지털 파놉티콘의 본질이 기계적 알고리즘이 아니라, ‘기업의 탐욕에 의한 노골적 관음’임을 뜻한다.
우리는 그동안 데이터가 기계에 의해 처리된다고 믿으며,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고 위안해왔다. 하지만 구글의 경고처럼, 인공지능 스피커에 뱉은 사적인 대화, 무심코 검색한 민감한 정보들이 익명의 계약직 검토자들에 의해 ‘데이터 품질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실시간 청취·열람·분석되고 있다는 현실은 충격을 넘어선다. 이것은 감시를 넘어선 노골적인 사생활 침해이며, 우리의 삶을 낱낱이 해부하여 상품화하는 냉혹한 디지털 해부이기 때문이다. 오웰의 ‘빅브라더(Big Brother)’가 공포로 군림했다면, 현대의 ‘AI 알고리즘’은 편리함이라는 미끼로 우리의 사생활을 강취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알고리즘 뒤에 숨은 실체가 ‘상업적 이익을 위한 극대화하기 위한 타인의 시선’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검토하는 사람의 도덕적 잣대, 문화적 편견, 심지어는 관음적 호기심까지도 데이터의 분류와 처리 과정에 개입된다. 그렇게 AI 시대 우리는 이제 데이터의 주인이 아니라, 끊임없이 분석당하고 평가받는 ‘상품’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방어적 주체성’이 필요하다.
첫째, ‘데이터 미니멀리즘(Data Minimalism)’을 실천해야 한다. 기술의 편리함 뒤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모든 활동을 디지털화하는 관성을 멈춰야 한다. 검색 이력, 위치 기록, 음성 명령 저장을 상시로 활성화해 두는 것은 나의 사생활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것과 같다. 계정 설정에 들어가 ‘내 활동’을 주기적으로 삭제하고, 불필요한 맞춤형 광고 동의를 철회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내가 생성하는 데이터의 총량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파놉티콘의 창을 가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둘째, ‘데이터 자주권(Data Sovereignty)’에 대한 법적·제도적 요구를 강화해야 한다. ‘인간 검토’가 필수적이라는 기업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개인정보의 수집 단계부터 인간이 개입하는 프로세스가 존재한다면, 이를 명확히 고지하고 별도의 ‘옵트인(Opt-in)’ 동의를 의무화해야 한다. 유럽의 GDPR(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 수준을 넘어, 인공지능 학습 및 알고리즘 고도화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의 폐기 절차와 검토자의 보안 규정을 법제화하도록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요구해야 한다.
셋째, ‘비디지털 영역(No-Digital Zone)’을 확보하는 문화적 실천이 필요하다. 모든 일상을 연결하려는 기술의 유혹에 저항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잠자리에서 스마트폰 금지, 대화 중 기기 차단, 중요한 사유를 기록할 때는 디지털 장비를 배제하는 등 ‘의도적인 단절’을 선택해야 한다. 파놉티콘의 원리가 ‘내가 감시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이라면, 이에 대한 대응은 ‘나는 감시할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자존이다.
우리는 알고리즘에 의해 박제된 표본이 아니라, 살아 숨 쉬며 고뇌하는 주체다. 구글의 경고는 기술적 오류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디지털 유리 감옥’에 갇혀 있다는 뼈아픈 현실의 고백이었다. 이제 기계의 눈을 핑계 삼아 인간의 욕망을 투사하는 이 시스템을 향해 분명히 자문해 보아야 한다. “내가 보는 것은 데이터인가, 아니면 데이터 뒤에 가려진 내 삶인가?” 이것이야말로 알고리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