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수행과 사념처, 그리고 삼법인
위빠사나는 멀리 있는 무언가를 찾는 수행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몸과 마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수행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없애려 애쓰는 대신, 일어나는 그대로를 판단 없이 알아차리는 것이 핵심이다. 이때 무엇을 어떻게 관찰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길잡이가 바로 사념처다.
사념처는 몸, 느낌, 마음, 법이라는 네 가지를 차례로 관찰하는 수행이다.
신념처는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살피는 것이다.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 배가 부풀고 꺼지는 움직임, 걸을 때 발바닥에 닿는 느낌, 가만히 앉아 있을 때의 몸의 자세 같은 것을 그저 알아차린다.
수념처는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느낌을 보는 것이다. 좋다, 싫다, 좋지도 싫지도 않다는 세 가지 반응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심념처는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욕심이 끼어 있는지, 화가 올라와 있는지, 차분한지, 산만한지를 살핀다.
법념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마음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보는 것이다. 단지 "화가 났네"에서 멈추지 않고, 이 화가 어떤 조건에서 생겨났는지,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어떻게 하면 가라앉는지까지 들여다본다.
이렇게 사념처를 꾸준히 관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삼법인이라는 진리에 다다르게 된다. 삼법인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특징이다.
첫째, 제행무상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뜻이다. 영원히 머무는 것은 없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고, 더 오래 붙잡고 싶은 기쁨도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둘째, 제법무아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나'는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내 몸', '내 마음'이라 부르지만, 정작 숨 쉬는 일도, 심장이 뛰는 일도,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 일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 몸과 마음은 조건에 따라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흐름일 뿐이다.
셋째, 일체개고는 그 변하는 것을 붙잡으려 할 때 괴로움이 생긴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변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도, 좋은 것은 계속되길 바라고 싫은 것은 사라지길 바라며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라온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사념처와 삼법인이 책 속의 개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느꼈다. 특히 어떤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에 바로 휩쓸리는 대신 "지금 내 마음이 이렇구나" 하고 한 발 떨어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위빠사나는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지켜봄으로써 무상의 이치를 깨닫고, 집착을 조금씩 내려놓아 마음의 평안으로 나아가게 하는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월님, 과제 #4 를 아주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 과제의 내용에 대해서 잘 정리하고 있으며,
******** 결론 부분에서, "이번 과제를 하면서 사념처와 삼법인이 책 속의 개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느꼈다." 라고,
월님, 지금 까지 명상을 배우고 직접 수행하면서, 알아차리고 챙겨본 것들에 대해서,
이젠 명상지도자로써, 일상의 삶에 있어서도 자신을 틈틈이 지켜보면서, 알아차리고 자각한 내용으로,
확신을 가지고, 더욱 지혜롭고 자애로운 삶이 되기를 기대 합니다. 수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