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우리 사회에서는 무교나 무당이라 하면 흔히 천하게 여기고 미신으로 치부한다. 많은 사람들이 점집에 드나들며 대학입시나 취직등의 중대사를 앞두고 흔히 점을 치거나 굿을 하고 부적을 만드는 등 수많은 무속적 일을 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사람들은 이것을 터부시하며 인정하려 들지않는다. 사실 무당은 예나 지금이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왔다.
조선사회에도 유교가 사회의 기본이념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무교는 혹세무민의 세력으로 양반들의 공격받았다. 또한 근대 개화기에 이르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말살시켜 철저히 식민지화시키려는 일제에 의해, 이후에는 이승만, 박정희등 독재정권의 전통 미풍양속 말살정책에 의해, 그리고 근래에 이르러서는 서양문물과 같이 유입되어 무섭게 성장한 기독교 세력에 의해 맹렬히 공격받으면서, 현대의 무교는 우리사회에서 하나의 종교로 인정받기 보다는 민간신앙이나 심하면 미신쯤으로 오해받아온 것이다.
그러나 고대의 문헌사료를 보면, 예로부터 제정일치의 고대국가를 이루면서 무당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누려왔었다. 국가의 중요한 제사를 주관하는 한편, 사람들을 다스리고 병을 치료하고 예언을 해주고 귀신을 쫓아주는등 집단내의 지도자적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러던 것이 왕권이 강화되면서 점차 그 기능이 분리되고 후대로 내려올수록 민간사회에 뿌리내려, 이후 집단 농업 공동체하에서 민중들의 삶과 함께 호흡하는 종교가 된 것이다.
더구나 무교는 오랜세월이 흐르며 단순한 종교로서만의 기능이 아닌, 복합적이며 사회적인 기능을 맡아왔기 때문에 우리 한국인의 심성 전반에는 그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까지 남아있는 무교의 모습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개인이나 가족의 중대사를 앞두고 흔히 점을 치거나 굿을 하거나 부적을 만드는것과 같은 행위이다.
사실, 점복을 치는 것은 무당의 한 기능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온 문화적 행위이지만 한국 무교에서의 점복행위는 좀더 특수하다. 즉, 무당의 몸에 그가 모시는 신령이 씌워 신복을 보아주는 것이다. 이는 시베리아적 샤머니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하는데, 무교에서는 이것을 '무꾸리'라고 하여 그 영험함과 특수함을 중시해왔다.
이것은 흔히보는 사주, 궁합과는 다른 것으로, 무당은 신과 인간의 중재자가 되어 신의 말씀을 전하고 그것을 해결하기위해 그가 직접 노력하는 것이다.
그 노력중 하나가 부적을 만드는 행위라고 할수있는데, 오늘날에도 각계각층의 많은 한국인들은 적게는 몇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돈을 들여가며 이 부적을 만들어 몸에 지니거나 집의 문설주에 붙이는 행위들을 하고 있다.
부적에는 시험에 붙게하는 부적, 남편의 첩을 떼게하는 부적, 재물이 붙게하는 부적, 병이 달아나게 하는 부적 등 그 종류는 여러 가지로, 요즘에는 이러한 부적도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것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개 그러한 부적은 가짜이다)
이렇듯 많이 이용되는 것을 보면, 부적은 그것을 믿든 안믿든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심적인 위안을 주는 것 같다. 심지어 기독교인이나 불교인들도 몰래 부적을 만들어 지니는 사람이 있다하니, 이를 볼 때 무교가 한국인의 심리에 얼마만큼 기본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짐작케한다.
또, 무당들이 신의 뜻을 전하고 해결하려는 또다른 방편으로 굿이 있다. 이러한 굿은 전통 농업사회에서는 개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온 마을사람들이 모두 다같이 참여하여 굿판을 벌이며 즐기는등,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역할을 해서 사회적으로 의미가 깊었지만, 현대 산업 사회에 이르러 개인화 경향이 심해지면서 굿도 개인기복적 경향으로 기울어지는 듯 하다.
어쨌건, 오늘날에도 집안에 부정이 탔다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 가끔 굿을 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굿보다도 일반적으로 더 많이, 또한 대중에게 거부감없이 행해진다고 할 수 있는 무교적 의례행위는 바로 '고사(告祀)'이다.
흔히 새 건물이나 사무실에 입주할 때, 혹은 어떤 사업이나 장사를 새로 시작할 때 베풀어지는 고사를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고사는 본래 무교에서 행하는 치성의 한 종류로써 봄 가을에 가정집에서 안택(安宅)고사를 지냈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따로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고사는 오늘날 우리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무교적 행위 중 하나이다.
그러나 위와같은 행위는 그래도 무교를 어느정도 인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일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 한국사회에서 전반적으로 무교는 인정을 받지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정종교에서는 그러한 행위를 공공연하게 금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무교가우리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에 끼친 깊은 영향은 다른 측면, 즉 언어적 측면에서도 상당수 볼수있다. 때문에 무교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저도 모르게 무교적인 말을 사용하곤 한다. 우리는 흔히 '재수좋다', '재수없다' 등의 말을 자주 쓰는데, 이 '재수(財數)'라는 말은 원래 '재물에 대한 운수'의 뜻으로 무교에서 '재수굿'처럼 많이 쓰이던 말이었으나 이후 행운의 개념으로 일반화되면서 많이 쓰이는 말이 되었다. 또한 어떤 나쁜 일이 있었을 때는 흔히 '액땜했다'고 하며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역시 무교에서 나온 말로, 나쁜 일을 막는 굿의 과정에서 닭을 죽인다거나 돼지를 잡는등 다른 희생물을 통해 그 화를 대신 덧씌우려는 행위에서 나왔다고 한다.
또한 어떤 물건을 사놓고 쓰지않아 무용지물이 되었을 경우 '고사지냈다'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역시 위에서 전술한 바와 같은 무교의 의식, '고사(告祀)'에서 나온 말이다. 그 외에도 어떤 일에 정신없이 몰두했을 때 '신들렸다'라는 말이나, 흥이 오를 때 '신난다'라는 말 등, 생활 언어속에 남은 무교의 영향은 이외에도 많다. 고대에 외래에서 전해진 종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불교는, 토착신앙적 무교에게서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불교에서는 원래 칠성각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으나 민간에 신앙되면서 민간 무속신앙과 결합되면서 생겨난 우리고유의 것이다. '칠성(七星)'은 무교에서 북두칠성을 신성시하여 붙인 '칠원성군(七元星君: 탐랑(貪狼), 거문(去文), 녹존(祿存), 문곡(文曲), 염정(廉貞), 무곡(武曲), 파군(破軍)'의 일곱성군)에서 나온 말로, 무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신들이다. 우리나라의 불교에서는 이러한 무교의 신들을 포용하여 그들을 따로 모시는 장소를 마련함으로써 민중들을 회유하려 하였다. 그 외에도 산신령을 모신 산신각(山神閣)이나 정신(井神)신앙, 신중신앙(神衆: 화엄신장)등 한국 불교에는 무교적 개념을 도입한 것들이 상당하다.
그러나 불교와 무교의 습합과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미륵신앙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토 전역에는 갖가지 모양의 크고작은 미륵 돌부처상이 곳곳에 널려있다. 사학이라는 전공의 특성상 전국에 답사를 다니면서 이름난 경치가 있는 산이나 절벽은 물론, 마을 어귀, 큰 나무 아래, 심지어 논밭 가운데에서도 굴러 다니는 미륵상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이것은 대개 조선시대에 주조된 것들로써, 당시의 미륵신앙이 얼마나 민중들사이에 광범위하게 신봉되어왔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당시 숭유억불적 정책을 펴던 조선시대에 불교의 미래불(未來佛)인 미륵이 어떻게 그렇게 민간에 널리 신앙되었나 하는 것이다. 당시 불교사찰등은 산속으로 모두 도피하였고 마을에는 유교적 교화를 담당하는 양반층이나 혹은 무교의 무당들이 민간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토록 많은, 그것도 민중의 손에 의해 갖가지 소박한 미륵상이 주조된 것은, 당시 미륵신앙이 불교적 개념을 초월하여 무교와 습합되면서 어떤 영험한 존재라면 무조건 '미륵'이라는 이름을 달고 민간신앙화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현상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연구가 진척되지 못했으나 앞으로 많은 연구가 기대되는 분야중 하나이다. 한편, 현대에 와서는 기독교가 눈에띄게 융성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지구상에서 기독교가 가장 활발하게 신봉되고있는 국가중에 하나이다. 특히 6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에, 한국에서의 기독교는 어느나라보다도 더욱 급속하고 빠르게 성장해왔다. 오늘날에 주변에서 기독교 신자가 많고 길거리에 가면 건물 하나에 교회가 하나씩 있을 정도이다. 길거리에서 무슨무슨 부흥회에 오라는 전단이 수없이 나돌고, 전철에는 예수를 믿어 지옥가지 말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의 급성장은 우리나라 심성에 깊이 깔린 무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라 한다. 그것은 70년대의 성령운동과 그 제반되는 신앙의 양상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얼마전에 모 방송사에 불시 침입해 큰 혼란을 빚었던 교회의 예배모습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었다. 흡사 무대장치라고 할만큼 극적인 연출을 보여주는 예배당, 열광적으로 박수치고 눈물흘리는 신도들, 하느님의 성령을 받았다며 모든 병을 고친다고 손을 들고 소리치는 교주의 모습은 언젠가 본적 있던 굿판을 확연하게 연상시켰다. 물론, 그 교회의 경우는 지나치게 비이상적 행위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경우이나, 굳이 그 경우가 아니어도 우리는 주변의 교회에게서 그와 유사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한국 기독교에서는 영적 권능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무수하고, 무슨 기적을 일으켰다거나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많은 신도들이 그러한 말들에 귀를 귀울이고 그 밑에 모여든다. 그들은 일체의 의심도 하지않은 채 자신의 많은 것을 바치고 심지어 전재산까지 바쳐가며 지극정성으로 하느님을 부른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어나는 새벽기도회, 철야기도회, 기도원 등은 다른나라의 그리스도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성령 부흥회야말로 이러한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데, 집단으로 모여 기도하면서 울부짖고, 손뼉치며 찬송하고 '아멘'과 '할렐루야'등을 자유롭게 소리치는 모습은, 신들린 무당이 하는 울부짖음과 굿판 주변의 사람들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굿에서도 무당이 신이 들리고 절정에 달하면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고 일어나 춤추며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치는등 일종의 패닉 상태를 일으키며, 이때는 전속 악단이 동원해 흥을 돋우며 다같이 분위기를 고조시켜 굿에 참가하는 주변사람들도 덩달아 같이 울고 웃는다. 무엇보다도 가장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받아 하느님과 대화할 때 쓴다는 '방언'이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정점에 올랐을 때 트인다는 특이한 언어로써, 흥분상태에서 마구 말함으로써 보통사람은 알아들을수 없는 특이한 말이다. 이것은 굿판에서 무당들이 접신상태에서 신의 말을 횡설수설하듯 마구 내뱉는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 이것은 서양 기독교 교회의 경건한 기도자세와는 상당히 틀려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두드러지는 현상임은 확실하다. 이것은 기독교역시 외래종교의 하나로써 우리것화 시켰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네이버 graciella님의 글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