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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端의 追憶 #138, 회상에 젖어... 회한에 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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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추억' 기록을 통해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 세칭 동방교의 실상을 알게 되고 그곳을 탈출하는 도움을 받게 된다면 나의 기록 '이단의 추억'은 보람찬 일이 될 것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한 사람의 영혼은 천하보다 더 귀중하므로...
가끔씩, 아주 가끔씩 옛일을 추억하는 상념에 젖어들게 된다. 그것이 회상인지 회한인지... 그리고 흘러간 인연들의 자락을 반추해 보곤 한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살아 왔으며 지금은 모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철없던 중2 어린 시절의 나를 세칭 동방교의 사상 8교회로 데려왔던, 중년에 스치듯 언뜻 연락이 닿더니 지금은 감감 무소식으로 연락이 두절된, 역시 철없기는 마찬가지였던 같은 또래의 친구 사무엘...
그들 3형제의 철없고 안타까운 사연은 이미 '이단의 추억'에 한 단원의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군기피자로 대기처에 숨어 지내더니 이제 70줄의 중반에 들어서 있을 사무엘의 형 스라야는 그동안 과연 어떤 회한을 가슴에 품고 동방교의 삶을 버텨내고 있을까...
세칭 동방교에서는 목사라고 불리우고 4명의 副柱중에 하나였지만 기독교의 목사는 전혀 아니었던, 이단 사이비 세칭 동방교에 있어서 나의 스승이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입다목사...
겉으로는 인자함을 풍겼지만 실상은 황소고집이었던 입다목사, 안질이 나쁜 그 입다목사의 눈이 되어 어디든 모시고 다니다가 결국 노총각 입다목사의 젊은 처가 되어 아들 하나를 두었다고 알려진 무단가출 빈집초월의 대기자 사사...
아버지를 닮았던지 눈이 나빠 군대를 못가고 점자를 배우고 있다고 들은 얼굴도 한 번 본적 없는 입다목사와 사사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
그리고 사상8교회의 그 억척같던 사람들... 고무공장 다니면서 월급 받으면 겨우 먹고 살기 바빴으나 그래도 쪼개고 쪼개어 지성이란 명목의 각종 헌금으로 동방교에 억측스레 갖다 바치며 살아가던 성민이라 불리던 세칭 동방교의 신도들...
마리장로, 로데장로, 벨릭스장로, 사가리아장로 ...
몇 안되는 신도중에 무신 노무 여자 장로들이 그리 많았던지... 누구나 돈만 갖다 바치면 받았던 직분상신 지성만 해도 수 십 점, 현재의 화폐가치라면 아마 몇백만원의 돈을 고스란히 갖다 바쳤을 빛나는 직분의 그 의지할곳 없었던 과부 아지매들...
외아들 하나를 서울의 동방교 대기처로 보내놓고 굽은 허리로 밤마다 장작불로 재첩국 끓여 새벽마다 양철동이에 이고 골목마다 소리치며 그것을 팔러 다니던 아브라함의 모친...
아들 3형제를 키워 둘은 동방교의 대기처로 올려 보내고 막내아들 하나 데리고 어려운 살림살이 힘겹게 이어가던 또 다른 할머니 장로...
세칭 동방교의 전라도 방면 순회전도사로 일하다가 동방교의 완전허구를 깨닫고 뜻있는 그 지방의 전도사들과 단체로 동방교가 가짜임을 선포하고 신학교를 졸업한후 흘러 흘러 남미까지 가서 목회하다 지금은 은퇴한 니고데모...
태권도 고단자였던 그들 형제는 아브넬 노영구를 잡아 경찰에 넘기기 위해 추적을 계속하다 간발의 차이로 놓치고 안타까워, 햐~ 그때 노영구를 붙잡아 땅바박에 패대기 쳐놓고 경찰에 넘겼어야 하는데 말이야~ 하던 격앙된 모습...
칠백리 낙동강이 대동에서 갈라져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빠져나가는 끝자락 천자도, 그 인근에 얄궂은 소문 자자했던 동방교 살짝교에 중학교 어린 나이에 교과서값 다 갖다 바치고 출입이 들통나 "내 오늘 자식 하나 없는셈 친다"고 하면서 휘두르는 아버지의 지게작대기에 맞아 죽을뻔한 서쪽 둘넘에 아무개 둘째 아들 '누가'...
학교를 마치면 지성(헌금) 바칠 목적으로 얼른 달려가 정류소 사거리 박스같은 부모님의 담배가게 안에 들어가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담배를 팔았고 그 판 돈 중에 일부를 셀수없이 삥땅쳐서 부지런히 동방교에 갖다 바치던 소바더...
조방에 다니던 키크고 인물좋던 원숙한 처녀들 세라와 에스더 자매는 동방교의 대기처로 들어가더니 이제 거의 80줄에 가까웠을텐데 어떤 生을 보냈는지...
영풍방직이란 직물공장에서 주야간 교대로 부지런히 일해서 받은 월급으로 동방교에 열심히 헌금 갖다 바치고 내게 짜장면도 사주었던, 당시 혼인이란 불가했던 동방교의 교리와 이룰 수 없었던 사랑 사이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오니케...
초량 12교회에 출입할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더니 부모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후 자식혼사까지 다 마치고 한국에 다니러 나와 물어 물어 세칭 동방교 초량 12교회가 이전한 부산 문현동 한빛교회를 찾아와 내 안부를 묻더라는 리브가...
이제는 이름마져 까마득한 초량12교회와 주학교회의 그 초롱초롱하던 눈빛의, 지금은 많이도 보고싶은 어렸던 중고등부 학생들... 국희, 애경, 종헌... 50여년 세월 끝자락에 아직까지 겨우 기억속에 남아있는 몇 몇 이름들이다. 그들도 지금은 모두 환갑을 지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겠구나...
보따리 행상으로 생활력 강했던 요나단 목사의 부인은 딸만 키웠는데 그 딸들은 어찌 되었는지...
생활력이라고는 전혀 없어 대기처 농장에 들어와 얹혀 살던 베드로 목사의 부인은 아들 둘만 두었는데 지금은 모두 어찌 살고 있는지... 통일교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하고...
악령으로 지칭되어 동방교 대기처 내에서 린치를 당하고 심판받아 마산으로 낙향했던 요나단 목사와 초량 12교회 2층 저 뒷방에서 간음죄를 지었노라 공개석상에서 손을 들어 스스로 자복했던 눈이 동그란 그 여자 장로는 아직 생존해 계시는지...
상냥하고 여성스럽던 간호원 출신의 주학교회 실라는 대기처로 들어간후 소식이 끊긴 것으로 보아 혹시 중노동으로 받은 월급을 모두 동방교로 송금하여 다 빼앗겼던 동방교의 파독간호원이 되지나 않았는지...
세칭 동방교 역사에 전무후무한 돌풍을 일으키고 그 내막을 터뜨린후 출가하여 불교에 귀의, 수계 받고 중이 되어 불사를 일으켜 주지스님에 까지 이르렀던 갈렙전도사... 그의 원대로 지금은 자미원에 돌아가 있을까...
명문 경남여고 출신인 주학교회의 헤스톤은 동방교 내에서 짝지워준 남편이 아브넬 노영구에게 배척당해 일반 예배당으로 나가 목회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잘 살고 있는지...
첫 사랑 스불론을 잊지 못한채 상처한 유부남과 재혼해서 남의 배에서 탄생한 자식들 다 키워내고 그 남편의 사후 카나다로 떠나간 납달리...
갓 시집온 올케언니 결혼패물 몽땅 챙겨나와 동방교에 바쳐버리고 대기처로 들어갔다가 도망나와 얼굴에 철판깔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결혼한후 조기치매 증상으로 50대에 벌써 요양원으로 들어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던 보리올은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나 초량12교회에 출석하던 학생중의 '하나는' 세칭 동방교를 한때 벗어나는듯 하다가 만만찮은 세상사에 휘둘리고는 도피하듯 동방교 안으로 숨어들더니 지금 세칭 동방교가 명칭을 위장하여 잠복하고 있는 예수교 장로회 무슨 무슨 교단의 수장이 되었다고 한다.
교육자였던 부친과, 남편 대신 돈벌이에 평생 목줄이 매여 천지사방을 헤아리지 못했던 그의 처와,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 세칭 동방교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과 며느리와 손자들에게 과연 떳떳할까... 아니면 철면피는 아닐진데 얼굴이 화끈거리지나 않을까... 왠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눈이 있고 귀가 있는 그들이 언제까지나 세칭 동방교의 그 음습하고도 부도덕한 이단 사이비적 종교 비밀을 모르고만 살아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들도 언젠가는 인터넷의 검색창을 두드리고 '이단의 추억'을 읽는 날이 찾아오게 되리라...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의 어느 여고 교사까지 하던 친구는 다시 동방교 안으로 변명처럼 도로 들어가더니 역시 지금은 이단 사이비 세칭 동방교의 수장이 되었다고 한다. 두 딸과 만일 그들에게서 사위를 보았다면 그 사위들에게 과연 부끄럽지 않을까...
예수교 장로회 무슨 무슨 교단으로 위장해서 잠복하고 있는 지금의 세칭 동방교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이래 노광공을 교주로 섬기고 그 차남 아브넬 노영구를 神처럼 떠받드는 그 말썽많던 사회적 패악질의 이단 사이비 종교범죄집단이 아니었던가...
지금도 그 내막을 숨긴채로 가게 앞에는 양머리를 걸어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팔듯 양두구육의 기독교연 하는 위장술수로 인간의 영혼을 훔치고 사냥하는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이 아니던가...
애비와 자식의 두 교주는 벌써 북망산천 넘어갔지만 긁어모았던 재물은 그대로 남아있고 도저히 바뀔줄 모르는 골수꼴통들은 아직도 잔존하고 있으나 교주행세 할만한 후계자나 두드러진 인재가 없다보니,
집단지도체체속에 총회장이랍시고 돌아가며 뽑아놓고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콩알만한 그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도 두쪼가리가 나서 서로가 정통이라 우기는 코메디 집단이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ㅎ ㅎ
뒷배가 누구인지 모르게 숨겨진채로 '주간 기독교'라는 세칭 동방교가 발행하던 주간지였던 신문은 아직도 발간되고 있는것 같더라마는 내 군복무시절 외출 나가면 휴식처로 삼았던 종로5가의 그 장소... 무임금 노력봉사하던 50여년전 그때 그 사람들... 고니아, 디몬, 게나, 요담, 장현*, 하박국, 지금은 모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당치도 않았던 세칭 동방교의 본산이었던 서울 용산의 수원정에서 숙식과 고락을 같이 했던 동방교의 가짜목사, 순회자, 대기자... 그들은 또 과연 어떤 삶을 살아 내었을까...
허구헌날 수원정 안의 쪽문 앞에 앉아 대문을 지키고 출입자를 감시하던 '뚱', 연단선님 순회나가는 새벽길에도 변함없이 쪽문 옆에 앉아 손 흔들어주며 멋적은 미소를 날리던 그는 내가 도망나온 그후 어떤 生을 보내게 되었을까...
수원정 제2성전에서 이전, 확대개설된 용산 철도병원 뒤편 세칭 동방교 용산교회에 드나들었던 이대 숙대생들, 나에게 날인된 백지 진단서 몇장을 아무 의심없이 갖다 주었던 세브란스의 간호원들... 앞길이 창창하던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풀려 나갔을까?
학업도 팽개치고 가족도 떠나서 집단 합숙생활하며 일년 열두달 삼백육십오일 하루도 쉬는날 없이 껌팔고 행상하여 돈을 갖다 바치던 앵벌이 같은 수많은 연단선님들의 행방은 모두 어찌되었을까...
팔작밥 오작죽에 하루종일 대기처 지키며 청소하고 잡일하고 농사짓고 소똥치우던 무임금 착취노동의 무단가출 빈집초월한 대기자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졌을까...
세칭 동방교에 맹종하던 한없이 우매했던 내 젊은 날, 그 허구에 몸서리치던 또 다른 순간들, 신검 기피 몇 년 만에 내가 만일 늦게나마 군입대라는 챤스를 놓쳐버리고 뛰쳐나오지 못했다면 이후의 나의 인생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세월은 西山으로 넘어가는데 상념은 꼬리를 물고
머리속을 맴돈다.
이는 아직도 지울 수 없는 기억속에서 아른거리는
無言의 회상인가...
아니면 정녕 잊을 수 없는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無心의 회한인가...
아~ 세월이 꿈이런가, 꿈이 세월이런가...
이것이 回想이라면 기억속에 그리움을 남길것이고
그것이 悔限이라면 가슴속에서 아픔이 남을것이다
첫댓글 수많은 나의 선배와 동기, 후배들이 동방교의 대기처에 갔다가 일부는 술주정꾼이 되거나 생활무능력자로 전락했고, 좀 똑똑한 사람들은 선교사라는 명목으로 외국으로 쫓아내서 맨땅에 헤딩하며 살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또 어떤 후배는 절로 보내서 스님으로 만드는 해괴한 집단인 동방교! 거기서 하루라도 빨리 탈출해서 삶을 즐기고 살길 바랄 뿐입니다.
부산 문현동 한빛교회에 지금 출석하고 있는 여신도 중에도 성깔때문에 통제가 안되어 충청도의 수덕사 절로 보냈으나 견디지 못하고 도로 돌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양산 내원사로 보낸 여신도도 있었는데 그녀는 중이 되어 후일 한 번 만난 일이 있고요... 참 해괴한 집단이죠, 세칭 동방교는...
동방교는 나와 이레 노광공과의 충성만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성경적인 인격을 갖춘다는 것은 연목구어-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일- 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수록 철저한 개인주의를 넘어서 이기주의로 변신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일 겁니다. 평신도 중에는 심성이 착한 분들이 대다수지만, 직책이 높아질수록 조여오는 경제적 압박과 이웃와의 부조화 때문에 서서히 위선적이고 독선적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단사이비에 빠져버리면 천지분간이 안되고 인격은 말살되지요.
그안에 있으면 이것을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게 되니 하루빨리 탈출하여 진실을 간파해야 될텐데...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워 눈물이 날 지경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