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에 성공한 사람들 / 막 10 : 46-52
많은 사람들이 인생역전을 위해 복권을 사고 도박을 하다가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간혹 그것을 통해 뜻을 이루더라도 더 큰 불행에 빠져 고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인생역전은 어떻게 이뤄질까요? 예수님을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바디매오는 아름다운 여리고 성에 살았지만 불행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성입니다.
이 성읍은 예루살렘 동남쪽 24Km 지점에 있었는데 많은 종려나무가 도시를 감싸고 있음으로 도시가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종려나무 성읍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그것들을 보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소경이었고 가난하고 불쌍한 거지였기 때문에 날마다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아무 소망이 없었고, 이런 인생을 반전 시킬만한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다가 죽을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아담 안에서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모든 인생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끊어짐으로 영적 거지요, 영적 소경이 되었습니다.
눈은 있지만 아름다운 천국을 볼 수 없고, 천국의 풍성함을 소유하지 못한 거지입니다.
그래서 썩어질 것들을 보물로 여기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열심을 낸 만큼 얻지 못함으로 탄식하며 살다가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을 살던 바디매오가 인생역전을 함으로 천국을 소유하고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절망적인 인생이 소망있는 인생으로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바디메오는 소문을 통해 예수님의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47절
그는 날마다 구걸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구걸 했습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가며 동정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여러가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바디매오에게 소망과 기쁨을 준 것은 예수님의 대한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수많은 기적들이 가는 곳마다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났고, 온갖 병자들이 고침을 받으며 소경들이 눈을 떴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소식들을 계속 들음으로 예수님의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자꾸 들음으로 나는 것입니다. (롬 10:17)
바디매오가 사는 환경은 똑같았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인해 기쁘고 평안했습니다.
그래서 바디메오는 하루라도 빨리 예수님 만나기를 사모하며 기다렸습니다.
이런 변화가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예수님의 대한 소식을 들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소망 없는 인생들의 역전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음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계속 증거해야 됩니다.
<롬10:14-15>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불신자들이 교회에 와서 구원과 소망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음식을 먹어야 성장하지만 먹지 못하면 병에 걸리고 죽게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생명의 말씀을 잘 듣고 먹어야 생명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대한 바른 믿음과 지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과 마귀와 사워 이길 수 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참 믿음이고 구원받은 믿음이며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2, 바디메오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바르게 고백했습니다. 47절
길가에 앉아 있던 소경은 나사렛 예수란 말을 듣고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신앙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나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구원자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바디메오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친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고백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가지 호칭으로 불렀는데 하나는 나사렛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30세까지 부모님을 공경하며 살다가 공생애 이 후에는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살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또 하나는 다윗의 자손 예수였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다윗의 혈통을 통해 보내 주신다고 IS에게 약속했습니다.
(렘 2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리고 그가 오면 <사 35:5>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메시아를 학수고대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메시아를 보내주셨는데 유대인들은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니까 예수님은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한 세례요한도 감옥에 갇히자 예수님을 의심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여러 소문을 들어 보니 그의 대한 의구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진짜 메시야가 맞는가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마11:5)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보거나 그의 직접 말씀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지나가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믿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분이 내 눈을 뜨게 함으로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바뀌시기를 원합니까? 인생이 변화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나의 하나님으로 확실하게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고,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실하게 믿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3, 바디매오는 앞에 있는 장애물을 극복했습니다. 48절
구원을 받을 때도 거듭난 이후에도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고 시험이 있습니다.
이런 장애물과 시험을 어떻게 극복하고 승리하는 가를 바디메오를 통해 보여 주십니다.
바디매오는 그렇게 사모하며 기다렸던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기뻐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잠잠히 하라고 소리를 지르며 방해했습니다.
그럴수록 바디메오는 더욱 큰 소리로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까운 이웃들이, 같은 교인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방해합니다.
그리고 자기교만과 자존심과 이기심이, 잘못된 믿음과 열심이 방해거리입니다.
또 세상에 있는 것과, 마귀와 악한 영들이 끊임없이 신앙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그것들을 바라보거나 방해소리에 집중하면 넘어지고, 실패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응답을 받고 물위를 걷다가 주변을 바라봄으로 물에 빠졌습니다.
(마 14:28-30)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성도는 방해를 받을수록 더욱 주님만 바라보고 더욱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바디매오는 방해자의 소리를 외면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봄으로 장애물을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디메오의 소리를 듣고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장애물을 통해, 믿음을 테스트하기도 하고, 연단하여 더욱 성숙한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장애물 앞에서 주저앉기 보다는 바디매오처럼 적극적으로 주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4, 드디어 바디메오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인생역전에 성공했습니다. 52절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바디매오는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의지하고 살았던 더러운 겉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겉옷은 지금까지 바디매오에게 있어 자기 생명과 같이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 더러운 겉옷을 의지하여 추위를 이겼고 동냥하며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주저하지 않고 아무 미련 없이 겉옷을 벗고 던져버렸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옛사람을 포기하는 것이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남으로 소경과 거지인생이 끝났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새 사람, 새로운 인생이 되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드디어 바디매오는 예수님 앞에 섯는데 예수님은 그의 간절한 소원을 알면서도,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51절)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을 원문으로 보면 "주님 당신을 보기 원한다는 뜻입니다.
오직 바디매오의 소원은 죄악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주님을 보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믿음입니까?
그래서 주님은 그의 눈을 만져 주셨고 그 믿음대로 눈을 떠 주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소경과 거지로 살다가 죽을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을 보고 천국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을 따르며 복음을 증거하다가 천국을 상속받는 진정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인생역전입니다. 지금 우리도 이런 인생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됨으로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고 영생을 누리게 되었으니 늘 감사하고,
기뻐하며 주님과 동행하며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복을 주변사람들이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나라 복음을 증거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