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전문학의 특징은 그것이 어린이들의 서가에도 꽂혀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쿠퍼James Fenimore Cooper(1789~1851)의 <모히칸족의 마지막 전사>, 포Edgar Allan Poe(1809~1849)의 <탐정소설 선집>, 호손Nathaniel Hawthorne(1804~1864)의 <주홍 글씨>, 멜빌Herman Melville(1819~1891)의 <모비 딕> 등 성인용 작품들은 아이들도 즐겨 읽는 책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마크 트웨인Mark Twain(1835~1910)의 소설들은 시공을 초월해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명작이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바보 윌슨> <왕자와 거지> 등 트웨인의 대표작들은 모두 문명비판서이면서도 어린이들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재미있고도 유익한 소설들이다.
트웨인은 자신의 작품에서 늘 권력층의 위선을 유머스럽게 비판하곤 했는데 <왕자와 거지>(1882)에서는 16세기 영국 튜더왕조 시대의 사회악을 고발하고 있다. 에드워드 왕자(나중에 에드워드 6세)는 자신과 닮은 거지소년 탐 캔티를 발견하고 장난삼아 옷을 바꿔 입은 후 거지로 몰려 궁중에서 쫓겨나게 된다. 거지 옷을 입고 왕자라고 주장하는 그는 미친놈 취급을 받는다. 다만 우연히 만난 마일스 헨든 경만이 그를 가엽게 여겨 보호해주고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에드워드는 하류 계층의 참상을 목격한다. 또 단지 침례교도라는 이유만으로 화형당하는 두 여인을 보며 에드워드는 종교와 권력의 횡포에 의해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한편 왕자로 오인된 거지소년 탐은 궁중에서 온갖 실수를 저지르지만 차츰 궁중생활에 익숙해져 서투른 대로 왕자 역할을 해낸다. 드디어 그가 대관식에서 왕관을 받으려는 순간 에드워드가 나타나 둘의 신분은 다시 원상태로 회복된다. 왕이 된 에드워드는 자신의 거지시절 경험을 살려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다.
<왕자와 거지>는 윌리엄 키글 리가 감독하고 에롤 플린이 주연한 1937년 판과 돈 채피 감독, 가이 윌리엄스 주연의 1962년 판이 있다. 그러나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는 리처드 플레이셔가 감독하고 마크 레스터·올리버 리드·라켈 웰치 등 초호화 배역이 출연해 연기 대결을 벌인 1978년 판이었다. 이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레스터와 리드가 다시 나란히 출연하는데 아역 배우 레스터는 1인 2역을 맡아 에드워드 왕자와 거지 탐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고 있다.
<왕자와 거지>에서 트웨인은 평소 즐겨 사용하던 ‘쌍둥이 주제’를 다시 한 번 활용, 똑같은 외모의 두 사람이 상황과 환경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고 적응해 가는가를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 트웨인은 후기 소설에서 인간의 환경 적응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과정을 유머스럽게 묘사하고 있어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를 즐겁게 한다. 영화는 그와 같은 쌍둥이 소동을 통해 궁중 내 귀족과 성직자들의 위선과 횡포, 그리고 궁궐 밖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는 왕자와 거지가 경험하는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과 모험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스크린 위에서 생생하게 펼쳐져 원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신분이 뒤바뀌거나 정체를 감추는 것은 언제나 스릴을 느끼게 한다. 그 중에서도 왕자가 거지가 되고 거지가 왕자가 되는 극단적인 상황은 가장 스릴 있는 경우다. 아마도 그것은 왜 <왕자와 거지>가 시대를 초월해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작품인지를 설명하는 일차적인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