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가는 길 (마지막 회)
무관심 속에선 사랑도 미움도 없고,
배신도 믿음도 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난 정말로 이방인처럼
살았던 것 같다.
주희의 말대로 남의 나라에 살고있는
외국인-이방인, 이방인은 주인이기를
원치 않으면서 책임 또한 원치 않는다.
그 나라에서야 어떤 일이 일어나 건
신경쓰지 않지. 그나라 사람에겐
분통 터질 일도 태연할 수있고
신날 것도 슬플 것도 또 창피할 것도
없음이야.
주희가 내게 이방인 같다는 말을
했을 땐 가슴이 뜨끔 했었지.
'너 웃기는구나. 난 이 나라의
역군이였어. 주인이였지. 한 때는....'
호프집에서 3000CC의 술을 마시고
나는 거리로 나왔다. 어디선가
캐캐묵은 캐롤송이 들린다.
요즘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캐롤송도 사라진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디에서 보낼까? 흥청거리는
취객도 어디로 숨었는지 아니면
마실술이 떨어졌는지.
또 아니면 호주머니 동전까지
자식들이 다 털어가서 자식놈은
오락을 즐기는 건지 중년의 남자는
거리에서 사라지고, 연말의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
이 도시가 어딘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꽤 번화가 같은 곳이다.
앞에 무슨 크다란 불들이 왔다가는
꺼지고 또 켜지고..있었다.
'내 차를 어디다 뒀더라... 빌어먹을...'
차를 둔 곳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꾸만 돌고 돈다. 거리의 차들도
잘도 돌아간다.
너도 돌고 나도 돌고... 허허허 같이
도는구나. 으흐흐흐흐흐... 예전에
딸아이가 즐겨읽던 동화책에서
본듯한 용궁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고싶었다.
그때는 '아빠 이거 봐 참 이쁘지
나는 어른이 되면 이런 곳에서 살거야'
그렇게 말해도 난 '응 그래...' 그렇게
건성으로 대답할 뿐 자세히 보지도
않았다.
오늘은 자세히 봐야지. 그런데
내 앞으로 자동차들이 줄줄이
지나가고 있어서 걸어 갈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뛰었다.
자동차보다 내가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런데 코 앞에 택시가 멈춰섰다.
"미쳤어 야이 이새끼야 !!" "정말
퇘지고 싶어 환장한 놈을 다봤네."
"야이 개만도 못한 놈아 얼른 죽고
싶어서 악을 쓰는 놈아!!" 비쩍 마른
운전수, 뚱뚱한 운전수,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 운전수, 모두가 난리가 났다.
"미치긴 누가 미쳤나 임마, 나도 한 번
하고싶은 대로 해보자 이 놈들아, 나도
살아있다구. 멍청이들아 야이
새끼들아,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니들이
미쳤어.!!!"
고함을 지르며 올려다 본 검은
하늘에서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눈송이는 내 얼굴에 떨어져 녹아서
눈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술 처먹었군 따라와욧!" 순경 한
사람이 가까이 오더니 나를 파출소로
끌고갔다.
"아저씨 거기서 뭘 했수?"
" 용궁 구경하고 있었소" " 용궁?
하하하하 하기야 용궁은 용궁이야
하도 휘황 찬란하니 하하하"
"뭐가 우습소? 내사 하나도
안우습구먼" "이봐요 아저씨 길로만
다녀요 길로만... 그러면 누가 뭐라
하나요?"
"아하 당신들이 줄 쳐놓은 곳으로?
허허허 그리로만 다니라고?
허허허허"
"아저씨 직업이 뭐요?"
" 나요? 그냥 구경꾼이요. 허허허
이방인, 구경꾼, 주인은 아니요.
절대로 주인이 아니니까 잡아가도
소용없을거요 허허허"
뒷전에 앉아있던 순경들이 여럿이
함께 웃는다.
"아저씨 재미있는 분이구먼.
술 드셨으면 빨리 집으로 들어 가시오"
" 집? 우리집으로 가라구요? 허허허
맞아 집으로 가야지.. 암, 술 먹었으면
집으로 가라? 맞어 허허허허 시방
집으로 가려던 참이오 허허허"
" 네 그래요 집으로 가세요. 담부턴
조심하시구요
" 파출소를 나선다. 문밖에 서니
하얀눈이 제법 쌓여있다.
호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어
꺼내 문다.
라이타를 찾아도 쉽게 찾지 못하자
문밖에 서서 지켜보던 순경이 얼른
라이타를 켜서 갖다 댄다.
"고마워이 허허허"
"선생님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눈이 옵니다.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거리에 나서니 눈이 내려서 그런지
포근함을 조금 느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아직 가을 옷이다. 껴 입긴
했어도 썰렁해 보일 것인데도
나는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흔들흔들 제멋대로 돌아가는 양팔을
흔들며 걷는다. 내 차를 찾아서...
그러다 바닥이 미끄러워 그 자리에
쓰러졌고, 그러곤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땐 아주 따뜻한 곳이다.
천천히 눈을 떠 살펴보니 병원이었다.
"아저씨.. 웬 술을 그렇게 많이
드셨나요? 다친대는 없는데요,
피 검사를 한결과 간이 좀 안좋은 것
같아요. 조직 검사를 해보세요
큰 병원으로 가셔서요"
간호사의 말이다. '검사는 무슨...
이 나이에는 속이 제대로 있겠어.
망가져 있을테지' 하룻밤을 보내고
검사를 한 댓가로 123,400원의 돈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지러웠다.눈앞이 순간적으로 핑~
돌아 눈을 감았다가 떴다. 꼬깃꼬깃..
호주머니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만져졌다.
그 지폐를 들고 피씨방을 찾아 자꾸
계단을 올랐다. 간판이 어지러이
늘려있어 몇 층에 피씨방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몇 번을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겨우
피시방을 찾았다. 나는 그 지폐를
젊은친구 주인에게 건네고 잠시만
쓰겠다하곤 메일함을 찾아 들어갔다.
나의 딸.. 아가야 보아라 못난 애비를
실컨 원망해라. 수랑 좋은 보금자리
가꾸고 정이도 잘 보살피고..막내도...
충이도.그자식 요즘도 자다가
잠꼬대로 눈물 범벅이 되는지....
정이 잘 다독거려서 외롭지 않게
해줘라. 인생은 혼자서 살아가는 거
아니다.
친구 많이 사귀고 의지가 되는 이웃도
많이 만들고.. 이 애비... 자가용이
필요가 없구나.
김천 선구동 선암 주차장에 키를
맡겨놨다. 찾아가고 늘 운전
조심하거라. - 못난 애비가 -
나는 유년의 기억으로 수련암을
찾아간다. 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몇 십리를 걸었을까?
가구 수는 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동네가 있고
그 옆을 돌아가니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느티나무 등걸을 만져보았다.
그러다 커다란 옹이 자국을 발견했다.
언제 생긴 흉터가 옹이로 남았을까?
그러다 순간,나는 문득 호주머니를
뒤져 항시 가지고 다니는 맥가이버
칼이라는 것을 꺼냈다.
콩닥콩닥 가슴만 뛰던 짝사랑으로
끝났던 영이, 고통보다 더한 이름
아내 정순, 내 마음에 옹이로 남았을
다혜, 그리고 생각하면 눈물 먼저나는
이름 주희, 네명의 이름을 새겼다.
서툰 칼솜씨로 손이 피범벅이 되었다.
먼 훗날 이 이름들이 옹이처럼 보여질
때 쯤 이 느티나무를 지나면서
개구장이들은 그럴것이야
[이 이름들을 함부로 부르면 안된데
여기는 귀신이 붙어있대, 울엄마가
그랬어.]
'그렇게 옹이로 남은 이름들은
만지면서 내 가슴에도 옹이로 남아
그리고 피범벅이 되면서 그 속에
각인되어 남겨질까?'
내 어릴때 그랬다. 동네 앞에 크다란
회양목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슨 글자같은 게 새겨진 상태로
옹이로 남아 있었던 것,
우리들은 또래의 계집애들을 보고
놀렸지. '저것은 니 이름이야. 그래서
니는 오늘 밤에 삽짝에서 누가
니 이름을 불러도 절대로 나가지 마라.
귀신이 부르는 것이다.
세 번이상을 부른다면 귀신이 아니다
알겠나?' 세 번 이상 부르기 전에는
절대로 나가면 안돼'
'여자 아이들을 그 말만 듣고도
기겁해서 눈물이 글썽거렸고
우리는 돌아서서 낄낄거렸지.
느티나무의 옹이에다 또다른 전설을
혼자서 만들어 보고는 다시 길을
걸었다.
저쯤 보이는 곳에 수련암이 보인다.
어릴적에 내 어머니가 오래 살라고
병치레 잦은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어느 스님의 말에 저 수련암에다 내
이름을 올려서 팔았다지.
'저기에 가면 내 흔적이 있을거야
이름이라도 있을거야.' 어제부터
내리는 눈은 기상 예보 대로 폭설이
내리며 온 산하를 뒤덮고 있다
하얀 눈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두구 발자국 누가누가
새벽 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 발자국 소복소복 도련님
따라서 새벽 길 갔나 겨울해 다
가도록 혼자 남았네
길손 드문 산길에 구두
발자국.
고향 논둑에 하얗게 눈이 덮힌 날
새벽에 일어나 대청마루 끝에 앉아
눈을 바라보면서 내 여동생이
불러쌌던 동요다
문득 그 동요가 그리워졌다. 혼자서
흥얼흥얼 거리며 걷는다.
아무도 밟은 흔적이 없는 눈길에
내 발자국을 찍으면서
또 뒤돌아 보고는
내 발자국을 지우며, 나는 수련암을
향해 합장처럼 은혜로운 이름이듯
눈길을 걷는다.
한참을 걷다 돌부리에 넘어져 그대로
누워 하늘을 본다 눈이 내린다
조용히 눈을감는다.
내가 걸어온 흔적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없는
전설속으로 묻히고 있었다.
https://youtu.be/zweMXe3b9eQ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20대 암것도 모르는 철없든 시절에 썼었든 단편소설의 결말과 비스무리하네용ㅎ
수고하셨어요~^^
해피앤딩했으면 더 좋았을걸
읽으면서도 그거하고는 상관없어보였지만 ㅠ
다음 소설은 해피앤딩으로 부탁할께용-ㅎ
그때 그 주인공은 이 세상에 없고 다시 부활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만이 존재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추석 잘 쉬었나요 , 확실히 고흥 내려가면 그냥 기침이라도 한번 꼭 하겠습니다~^^
@한음(용인) 콜록콜록 기다리겠습니당 ㅎㅎ
자신의 삶을 개척해야지 무너져 내리는건 비겁한 거에요. 게으름을 절망이란 단어로 포장하며 몸을 술에 절여 놓고 회피와 낭만으로 포장하는 시간은 짧게 끝내야 해요. 다시 비상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과 조물주에 대한 예의입니다. 삶은 소중하니까요. 글의 주인공에게 감히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글에 주인공은 한 발만 뒤로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보았더라면 결코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 그 주인공의 그순간 삶에 희망이 스스로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크게 하였나 봅니다 그래서 그 주인공은 그것으로 마감하고. 끝 내려고 했지만 살아온 삶이 아까워서 종교의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부활하여 새롭게.삶을 잘 살고 있답니다~^*
@한음(용인) ㅋㅎㅎ 맞아요
부활해야 해요.
세상은 노력한만큼은 결과로 보여주거든요
비록 주인공을 멀리 보내버렸지만 슬프지만은 않네요
댓글들 그리고 사진에 보이는 모습은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으로 부활하셨다니 해탈??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 되셨네요~^^
반갑습니다 그래요 소설은 소설일 뿐 나는 나니까 전혀 소설하고 비교 하지 말아주소서 저는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구~
제가 소설과 지은이를 혼돈해 버렸군요~
너무 실감나게 잘 써 주신 글앞에 어리석음을 드러냈군요~
언짢으셨겠습니다
정중하게 사과 드립니다.
댓글을 지워 드리고 싶네요^^
아닙니다 글이라는 것은 쓰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각각 다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재미있게 보아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설의 끝이 좀씁쓸하네요
활기차고 희망적이였으면
그냥 바램입니다~~
잘읽었습니다
원래 소설은 감동도 중요하지만 슬픔으로 끝을 맺으면 시청자들이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 주인공은 영혼은 날려 보내고 새로운 인생에 경허을 하면서.아주 재미나게 즐거운 모습으로 잘 살고 있다는~^ㅎ,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간간히 공감가며 때로는 멀직히 바라보며 사는것 같더이다
그렇게 보이셨나요 아마 보는대로 존재하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늘 건강관리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