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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장 넓어지는 천하 (1)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주왕실이 몰락하면서 어지러움이 난무하던 시대가 도래하는가 싶더니, 다시 제환공(齊桓公)이라는 패공이 등장하여 질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또 다른 변화도 생겨났다. 천하의 넓어짐이 그 중 하나였다.
진(秦)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진나라 영토는 결코 중원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서쪽 변방에 치우쳐 있었다. 위수(渭水)와 견수가 합류하는 지점에서부터 서쪽으로 삼각지대를 이루는 협곡과 고원 일대가 진(秦)나라의 주 영토이다. 그 곳 주민들은 한족계가 아니었다. 서융(西戎), 혹은 견융(犬戎)이라는 티베트 계열의 부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그 곳의 문화 역시 중원의 여러나라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를테면 오랑캐 문화였다. 성격이 거칠고 적극적이었으며 호전적이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후일 오랜 춘추전국시대를 마감시키고 천하를 하나로 통일한 진시황제(秦始皇帝)는 바로 이 진나라 공실의 후예이다.
진(秦)나라는 주왕실의 핏줄과는 무관한 이성(異姓)의 제후국이다.
여기서 잠시 진나라의 내력을 살펴보겠다.
진나라의 선조는 오제(五帝)중의 한 사람인 전욱의 자손이다.
그 후손 중에 여수(女修)라는 사람이 있었다. 여수가 베를 짜고 있는데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자 여수가 이 알을 먹고 아들 대업(大業)을 낳았다.
대업(大業)은 소전의 딸 여화를 아내로 맞아 대비(大費)를 낳았다. 대비는 우(禹)와 함께 물을 다스리고 새와 흉악한 산짐승들을 몰아냈다. 그 공으로 그는 순(舜)임금으로부터 '영'이라는 성(姓)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축목(畜牧)의 일을 맡아보았다. 이 사람이 곧 백예이다.
백예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하나는 대렴(大廉)이고, 다른 하나는 약목(若木)이라 하였다. 약목은 서(徐)나라를 받았는데, 비(費)씨의 선조가 되었다.
은나라 말기인 주왕(紂王)에 이르러 대렴의 자손으로 비렴(蜚廉)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달리기를 매우 잘해 하루에 5백 리를 갈 정도였다. 그 아들 중에 오래(惡來)란 사람이 있었다. 오래는 힘이 천하장사여서, 맨손으로 능히 호랑이 가죽을 찢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장사였기 때문에 주왕(紂王)은 그들을 총애하였다. 그들은 주왕(紂王)을 도와 온갖 포악무도한 행동을 저질렀다. 주무왕이 주왕을 치고 은나라를 평정하자 제일 먼저 비렴(蜚廉)과 오래(惡來)를 죽였다.
비렴의 5대 손으로 조보(造父)라는 사람이 있었다.
조보는 말을 기르고 다루는 데 천재였다. 이때는 주목왕(周穆王)시대였다. 한 번은 주목왕이 서쪽으로 순수를 나갔다가 도성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조보는 주목왕의 수레를 끄는 말을 몰아 천릿길을 하루 만에 돌파했다. 그 덕분에 손쉽게 난을 진압한 주목왕(周穆王)은 그 공으로 조보에게 조(趙) 땅을 하사하였다.
이로써 조보의 가족은 조씨(趙氏)가 되었다.
그 후 조씨의 일족 중 조숙대(趙叔帶)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주왕실에서 벼슬을 하다가 주유왕 때에 이르러 진(晉)나라로 망명한다. 후일 진문공(晉文公)이 패업을 이루는 데 일등공신이 되는 조쇠(趙衰)는 바로 이 조보와 조숙대의 후손이다.
또 조보의 자손으로 비자(非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비자가 견구(犬丘)에 살면서 말의 사육과 번식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주효왕(周孝王)이 이 소문을 듣고서 비자(非子)에게 견수와 위수 사이에서 말을 기르게 하였다. 말은 잘 번식했다. 주효왕은 크게 기뻐하여 비자에게 진(秦)땅을 봉읍으로 내려주고 끊어졌던 영씨의 제사를 다시 잇게 하고는 진영이라 이름하였다. 진 땅은 오늘날의 감숙성 청수현 동북쪽 일대이다.
진영인 비자로부터 6대가 지나 진양공(秦襄公)대가 되었다.
이때는 주유왕이 견융에게 살해되고 주평왕이 즉위하여 동주시대가 열리던 때였다. 진양공(秦襄公)은 왕실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군사를 모아 달려왔고, 그 공으로 백작의 관작을 받으니 이때부터 진(秦)나라는 정식으로 제후국이 되었다. 시호도 이때부터 붙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가(史家)들은 진나라 초대 군주를 진양공으로 기록하고 있다.
진양공이 죽자 진문공(秦文公)이 즉위하였다. 진문공 또한 진양공의 뜻을 이어받아 주왕실의 발원지인 기산(岐山)과 풍읍(豊邑)으로 진출하여 견융을 몰아내고 그 곳을 진나라 땅으로 삼는 등 영토를 크게 넓혔다.
그리고 기산에다 커다란 성읍(城邑)을 구축하니 그것이 바로 평양이다. 평양은 오늘날 섬서성 기산현 서남쪽 일대이다. 옹(雍)이라고도 한다. 진나라는 아들인 진영공(秦寧公)대에 이르러 옹으로 도성을 옮김으로써 보다 활발한 중원과의 교류를 꾀하게 된다.
진(秦)나라는 건국 초부터 천하 통일에 대한 염원이 대단히 컸던 것 같다.
어쩌면 천성적으로 남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기질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만큼 관습이나 예법 등에서 상당히 파격적이고 독선적인 행동을 자주 보여주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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