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의 시편들, 그리고 「꽃밭의 독백」/강희근

[강명수]

미당의 시편들, 그리고 「꽃밭의 독백」


강희근




1.
내 시의 첫사랑은 미당이다. 미당의 시다. 미당의 시는 아무 조건 없이 내게로 왔다. 연애가 이유를 제시하고 오지 않듯이 미당의 시도 좋은 이유를 걸고 오지 않았다. 내가 미당의 시를 외우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할 때 시집 ‘화사집’에서는 「수대동시」, ‘귀촉도’에서는 「푸르른 날」, ‘서정주 시선’에서는 「무등을 보며」, ‘신라초’에서는 「꽃밭의 독백」, ‘동천’에서는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등이 내게로 온 것이다.
이와 같은 미당의 시는 다 낭송하기에 좋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 중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가 애송시로서는 리듬감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 시도 낭송하기에 따라서는 낭송가나 듣는 이에게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애송시 중에서도 나는 하나를 선택하라 하면 「꽃밭의 독백」을 꼽을 것이다.


노래가 낫기는 그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게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서정주 「꽃밭의 독백」 전문


이 시는 부제로 ‘파소 단장婆蘇 斷章’으로 되어 있는데 이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을 암시하고 있다. 파소는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인데 처녀로 잉태하여 산으로 신선수행神仙修行을 간 일이 있다. 이 시는 그가 떠나기 전 집안의 꽃밭에서 독백을 한 줄거리이다. 수행의 목표는 꽃으로 비유되는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지상 가치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신선수행과 무관하게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들의 지향을 간절히 표현하고 있다고 보면 오히려 더 시적 무게를 지니고 있음을 알아내게 된다.


우리나라 향가연구의 독보적 학자인 양주동 박사는 미당의 이 작품을 두고 향가 이래 우리나라 최고의 시작품이라 말하면서 이 한 편을 가지고 한 시간 강의를 하곤 했다. 지금 기억으로는 이 작품도 미당의 신라 풍월도(풍류도) 지향의 구도가 있는데 그 구도 속의 한 작품으로 풀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말하자면 꽃밭에서의 독백 부분이 풍월도 거대 구도의 한 지점으로 이해했던 것이었다.
각설하고 좀 발전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구도라는 말을 한 내게는 미당이 제자 강희근을 두고 풍류도 구도 어디쯤인가에 세워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느껴지는 바가 있다. 이는 서정주 시인이 강희근에게 3가지 메시지를 준 것에 기대어 풀 수가 있어 보인다.


1)첫 번째 메시지 : 강군은 지리산에서 잣을 까먹다가 날아온 무슨 새와 같다.
2)두 번째 메시지 : 나는 말이야 자네가 태어난 산청이 좋다네.
3)세 번째 메시지 : (돌아가시기 5년쯤 전) 자네 고향 지리산 밑에 집 한 채 사주게. 집값은 내가 대고 등기는 자네 앞으로 하시게. 산에서 개울이 흘러내리어 마당으로 들어와 한 바퀴 돌아나가고 마당 귀퉁이 세워진 소나무 가지들이 집 처마를 드리우는 집, 그 곳에서 나는 소 나무 숨소리에 맞춰 솔 솔 숨 쉬다가 저승으로 가는 것, 좋지 않은가? 자네 주선 좀 해주시 게.


이 소원을 들어주지는 못했지만 미당이 인생 최후를 풍류도 정신에 기대어 돌아가시고자 한 점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자연의 숨소리에 맞춘다는 것이 그 비밀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미당은 제자 한 사람에 준 메시지로도 그의 삶이라든가 임종을 스스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양주동 박사가 「꽃밭의 독백」을 한 시간 동안 풀어낸 것도 미당 시의 거대한 구도속의 한 작품에 초점이 잡혔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시를 미당은 스스로 외울 때 ‘꽃아’를 ‘꼬사’로 읽은 기억 하나가 남아 있다. 문법적 발음은 틀린 발음이다. 미당의 제자 문정희 시인은 ‘꼬다’로 읽는다고 내게 말했다. 다 같이 발음에서 격음을 피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꼬차‘ 그 연음 현상을 별다른 현상 없이 받아들인다고 했다.


2.
어쨌거나 이 ‘독백’을 하고 떠난 파소는 이듬해 가을에 편지를 집으로 보내왔다. “잉잉거리던 병은 이제는 다 나았습니다. ……홍싸리의 수풀마냥 피는 서걱이다가/ 비취의 별빛 불들을 켜고/ 요즈막에 다시 생금의 광맥을 하늘에 폅니다”라 하여 주체할 길 없는 피를 삭여서 이제 비취의 별빛 불들을 켠다는 것이다. 정렬과 넘치는 성정을 죽이고 이성과 냉정의 뒤안길로 돌아온 것이니 신선수행이 잘된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꽃밭의 독백」은 되풀이해 읽으면 그 신선수행의 수행의 정진을 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가 리듬을 타는 것이어서 이미지나 리듬만으로도 수행의 한 가닥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시와경계>2019 봄호


강희근 / 경남 산청 출생. 1965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시집『소문리를 지나며』외.
천상병귀천문학대상 외 수상.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