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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수필창작아카데미 13차시 합평 자료(2026년 6월 1일 월)
1.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진일5
1. "누가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지난 3월 말, 벚꽃 축제 시작하였던 이곳에 불과 열흘도 되지않아, 벚꽃은 바람결에 비오듯 떨어지고, 벚나무는 푸른 새 잎으로 짙어지고 있구나! 송해공원 벚꽃길로 운동삼아 산책 나왔는데, 4월 초순이 채 가기도 전에, 벌써 벚꽃은 절정을 지나서 낙하하고 있다.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듯이, 젊음도 잠깐 사이에 지나가 버렸고, 권세도 십년 못가고(勸不十年 권불십년), 사람사이의 좋은 사이도 千日(천일)가기 어렵다
(人無千日好인무천일호)."는 고사들이 뇌리에 스친다.
2. 하천에 냇물이 시원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시도 머무르지 않고, 흐르는 저 물도 강을 지나 언젠가는 바다에 이를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流水(유수)같이 흘러 바다에 이르듯, 내 나이 벌써 70이 넘었다. 이제 어깨가 굽어지고 허리, 다리도 약해졌는지 오래 걷기가 힘이드네. 속도도 자꾸 떨어짐을 느낀다.
3. 저 나무는 일년을 순환으로 내년에도 봄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울 것이나, 우리네 인생은 한번 청춘이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으니, 人生無常(인생무상) 이로다! 하루 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귀한 날이다. 온전하게 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 작은 日常(일상)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4. 젊은 날은 몰랐었다. 이렇게 빨리 세월가고 늙어갈 줄을ᆢ. 한때는 자신만만하여 자만하였고, 무슨 일이든지 급하게 밀어붙이고, 추진하여 좌충우돌 실수와 실패로 낙심도 하였었다. 청년시절에는 배움을 등한시 하고 놀기와 낭만에 젖고, 사랑 구하기에 갈등하고 고민하며 좌절과 방황도 하였다.
5. 그러다가 대학 4학년때, 불교 서적을 많이 읽으며 심취하였고, 가슴에 病병(폐결핵)을 얻어 스님이 되고 싶어 무작정 山으로 뛰어들어 어설픈 禪(선)을 해 보기도 하였다. 마장이 들어 혼돈속에 헤메이다가, 아버지의 訃音부음을 듣고,下山(하산)하여 집으로 가니, 다음 날이 三憂祭(삼우제)를 앞둔 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불효막심한 자식으로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고 통곡하였다. 그때 하산 시에 주지 스님이 주신 장엄염불 책을 보면서 '나무 아미타불' 염불이 저절로 가슴을 타고 나오면서 집에서나 삼우제 가는 길에서나 산소에서 계속 이어졌다.
6. 나의 못다한 장남으로서의 도리와 이복 누나들의 차별과 시기에서 억눌려 있던 서러움까지 밷어낸 염불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산에서 홀로 참선한다고 하거나, 미치듯 뛰어다닌 기행을 스님들이 보시고, "이 학생은 출가시켜야 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하면서 모친과 상의하였었다. 모친은 "집에 큰 일이 났으니, 집에 가서 큰 일을 치르고 나서, 출가 시키겠다"고 하시고, 나를 데리고 집에 오게 되었다. 그 날이 아버지 삼일장을 치른 다음 날이었다. 산소에서 아버지의 삼우제를 지른 후, 남은 대학4학년의 학기일정을 마치고, 졸업하고 취업하게 되어, 나의 출가 계획은 무산되어 버렸다.
7. 이후의 직장생활이 20년간 이어지고, 40대 후반에 불교와의 끊어진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한국 불교대학 입학, 계속되는 불교정진, 조계종 포교사 자격 취득으로 삶의 목표가 바뀌게 된다. 중고등학교 일요법회 지도법사, 용연사 지도법사 활동을 하면서 스님으로 출가의 꿈을 키워갔다.
8. 이후, 49세 말에 출가의 뜻을 집에 告고하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출가하여 바로 행자시절로 들어갔다. 기본 승가교육을 받고, 50세 여름에 승려증을 받게 되었다. 이후 20여년이 번개같이 지나가 버린 것 같다. 스님이 되어 15년간은 두문불출하여 기도 정진에 몰두 하였다.
9. 이곳, 달성군 화원읍 중심 상가로 이전해 온, 2019년 7월 이후부터는 포교를 위해 사회생활에 참여하고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주역사주 인생상담 전문가가 되었다. 사주 상담 밴드도 운영하고 있고, 노인복지관에 열심히 다니고 있고, 초등학교 고등학교와 군대동기들 모임에도 빠짐없이 다니고, 작년에는 파크 골프 동우회 초대회장도 엮임하기도 하였다.
10. 이 나이들어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저 하천의 물같이 流水(유수)같이 빠르게 흘러갔고, 젊었던 紅顔(홍안)의 청춘시기도, 열흘도 채 못가서 바람따라 미련없이 떨어지는 벚꽃의 落花(낙화) 모습마저도 아름다워 보인다. 내 남은 여생도 마지막까지 붉은색을 유지하는 저 꽃들같이 열정적으로 살다가, 비오고 바람불며는 그대로 몸을 맡겨 미련없이 떨어지리다. 一期一會(일기일회)의 삶이니, 매 순간이 마지막 기회이니, 지금에 至誠(지성)다해 살아갈 뿐이다. 피어나는 꽃도 아름답지만, 바람따라 떨어지는 저 꽃잎도 아름답구나!
추신
'花無十日紅'은 남송 시인 양만리의 詩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서는 ‘권불십년(權不十年)’과 함께 권세·성공의 무상함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2. 지혜로운 이기주의 / 김창남 5
1. 아침 운동 삼아 산책을 다녀온 아내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말을 꺼냈다.
“글쎄, 내 말 좀 들어봐, 산책하고 오는 길에 아범이 전화가 왔어요. 어디냐고 묻길래 운동 중이라고 했더니, ‘엄마 운동 열심히 하네’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이거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거야. 건강하게 늙어서 너한테 폐 안 끼치려고’ 그랬더니 ‘엄마 최고! 내가 엄마 좋아하는 스테이크 사 줄까?’ 그러는 거야 그 녀석 참.”
2. 아내의 들뜬 수다를 듣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났다. 듣고 보니 아내 말도 맞고, 아들 말도 맞았다. 나이 든 부모가 건강하면 자식의 수고가 줄어드니 좋고, 짐이 되지 않으려는 부모 마음도 편안하니 좋다. 결국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바탕에는 각자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놓여 있는 셈이다.
3. 얼마 전 ‘사람은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례로 고깃간 주인이 옆집 채소가게의 단골이 되면, 채소가게 주인도 그 고깃간의 고기만 사게 되어 결과적으로 두 집 모두 이익을 본다는 내용이었다. 상생相生의 원리를 이기주의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대목에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4. 그 글을 떠올리다 보니 오래전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객차 안에서 볼펜을 파는 장애인을 만난 적이 있다.
“불쌍한 사람 좀 도와주세요. 볼펜 하나만 사 주세요”
반신불수인 듯한 그는 절름거리면서 사람들 무릎 위에 볼펜을 한 자루씩 놓으며 지나갔다. 그러고는 객차 끝에서 다시 돌아오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옆자리 아주머니는 핸드백을 열어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들고 있었다.
5. 나는 짐짓 눈을 감은 채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못내 불편했다. 지금이라도 지갑을 꺼낼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그는 내 무릎 위의 볼펜을 거두어 갔다. ‘쓸 데도 없는 볼펜을 왜 사나’ 싶은 마음과 ‘그래도 도와줬어야지’ 하는 마음이 자꾸만 엇갈렸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그 찜찜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천원이 아까워서도 아니고, 지갑에 돈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던 내 모습이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아, 한참 동안 마음의 앙금으로 남았다.
6. 다음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옆자리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은 구걸하는 사람이 안 보이잖아. 그런데 그날따라 백화점 앞에 한 사람이 깡통을 앞에 놓고 엎드려 있더라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는데 엎드린 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거야. ‘명색이 성당에 다닌다면서 이게 뭐지?’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다시 돌아가 천 원짜리 한 장을 넣고 왔더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데. 그 사람 모습도 금방 잊히고.”
7.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천 원짜리 한 장이 장애인이나 구걸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 마음은 내내 불편했고, 그 친구 마음은 편안해졌다는 사실이다. 결국 남을 돕는 일은 타인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평온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8. 나는 생각을 조금 더 키워, 모든 일상적인 일을 ‘나를 위해서’라고 바꿔보기로 했다.
아내가 동호회에 파크골프를 치러 나가는 날이면 나는 혼자 점심을 챙겨 먹어야 한다. 처음에는 그게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아내의 운동이 곧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을 바꿔보았다. 운동하면 건강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려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게 아닌가. 그러면 훗날 나이 들었을 때 병 수발을 드는 내 수고가 줄어드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9. 요즈음은 오히려 내가 먼저 부추기듯 묻는다.
“오늘 운동 안 가? 점심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다녀와.”
생각 하나 바꿨을 뿐인데 부부 사이가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나는 자유를 얻었다. ‘지혜로운 이기주의’가 가져다준 선물이다.
10. 이기주의를 조금 더 넓게 바라보면 어떨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가르침이었다. 세상에는 억울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차별 폭력 사건으로 자식을 잃고 지옥 같은 삶을 사는 부모에게 어떻게 용서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오래도록 마음속 깊이 남아 있던 이 의문은 어느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서야 비로소 실마리가 풀렸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내 마음을 묶어 두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를 용서함으로 인해 나 또한 나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겠다는 결심입니다”
11. 이 얼마나 처절하고도 명쾌한 이기주의인가. 용서는 상대를 위한 시혜가 아니라 나를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자기방어인 셈이다.
12. 문득 친구에게 투자 사기를 당해 평생을 울화 속에 살다 떠난 친구가 생각난다. 사기를 친 이는 멀리서 뻔뻔하게 잘 살고 있다. ‘단지 사업이 잘 안 풀려 그랬을 뿐’이라며 별로 미안한 기색이 없다는 말도 들려왔다. 정작 피해를 당한 친구는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화병을 얻었다. 돈도 잃고 마음의 평화도 잃은 채 생을 마감한 그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13.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면 그 번민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를 위해 더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때 내가 그 친구에게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인제 그만 내려놓아라.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아끼는 이기주의다.”라고, 말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4. 상호이타주의라는 말이 있다. 서로 돕고 서로 도움을 받는 삶을 말한다.
이렇게 살펴보면 내가 생각하는 이기주의는 상호이타주의 가운데 어디쯤일 것이다. 남을 돕는 일이 결국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 내 삶을 살려내는 길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이기주의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마음이 모이면 세상은 더 따뜻해지리라.
15.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면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쉬워진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지만, 나를 위해 잊어버리자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16. 운전하다 보면 앞차가 무리하게 끼어드는 경우가 있다. 순간 화가 나서 욕이 튀어나오려 한다. 따라가서 혼내 주고 싶은 생각이 오래 남는다. 하지만 이미 그 차는 멀리 가버려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으니,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흥분한 마음에 사고라도 난다면 나만 손해다. 차라리 ‘어 그놈 참’하고 혼잣말 한마디로 빨리 내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바로 나를 위한 길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기술이 아닐까.
17. 결국 중요한 것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동시에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키며, 누구보다 나 자신을 깊이 아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적인 의미의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지혜로운 이기주의’, ‘조금 다른 방식의 이기주의’. 이 작은 생각의 전환이 우리의 삶을 훨씬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3. 밀삐/황무선5
1. 시골집 창고 한자리에 지게가 의젓하게 앉아 있다.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밀삐가 온통 삭아 있다. 밀삐는 지게를 지는 어깨끈을 말한다. 밀삐가 단단하거나 조여지지 않으면 지게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집에서 지게의 밀삐같은 존재가 언니이다.
2. 하나 밖에 없는 언니는 나보다 아홉 살이 많다. 얼굴이 하얗고 눈이 큰 언니는 예뻤다. 언니는 초등학교 다닐 때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나를 업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 등교하니 언니 친구들이 등에 업힌 동생이 귀여웠다. 나는 음악 시간에 언니 옆에서 동요를 곧잘 불렀고 언니들의 노리개였다.
3.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했던가. 나는 언니와 함께 학교에 간 어느 날 내 옷에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선생님은 냄새의 주동자인 나를 보며 난처했다. 언니에게 공부에 방해되니 동생을 학교에 데리고 오지 말라고 부탁했다.
4. 언니는 내가 교실에 고약한 냄새를 풍겨서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했을까? 나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언니의 상기된 얼굴이 내 눈 앞에 걸려 있다. 그럼에도 개의치않고 동생을 인정하고 탓하지 않았다.
5. 언니는 학생이었지만 할일이 많아서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어머니는 오빠들을 제쳐 두고 언니에게 집안일을 시켰다. 부모님이 곡식을 팔려고 시장에 가면 언니는 집에서 작은 손으로 청소와 식구들의 밥을 챙겼다. 언니의 삶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오늘에서 내일로 매 순간 미로 속을 헤맸다. 특히 농번기에는 일손을 보태기 위해 결석을 하는 날이 잦았다. 헐벗은 가난이 원인이었고 어머니 옆에서 집안일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6. 소나기가 쏟아진 어느 날이었다. 언니는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창밖의 굵은 빗방울을 보고 공부를 멈추고 멍석에 말리던 벼가 생각나서 집으로 내달렸다. 언니는 학교에서도 집안일을 머릿속에 기억했던 것이다. 언니의 보이지 않은 가족 사랑이 집안을 무탈하게 해 주었다. 언니는 어깨에 짊어진 책임감으로 삶의 무게를 고독하게 삼키곤 했다.
7. 시골에서 언니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언니 친구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만큼 시골 살림살이가 곤궁했고 여자는 교육을 받기 어려운 시대였다. 언니는 남녀공학인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여학생은 고작해야 여덟 명에 불과했다. 어머니는 집안일을 시킨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서 고등학교에 보냈을 것이다.
8. 농번기가 다가오면 어머니는 이웃의 품앗이인 새참을 준비하기 위해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언니는 밥과 반찬을 만들어 다라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인부들을 위해 논으로 갔다.
9. 언니는 겨울이면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으로 갔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가족의 따뜻한 난방을 위해 생명을 잃은 나뭇가지를 수북하게 주워서 새끼줄로 동동 엮어 머리에 이고 왔다.
10. 언젠가 언니는 집안일이 너무 싫어서 부모님께 알리지 않고 며칠간 친구 집에서 놀다 온 적이 있었다. 부모님은 언니의 바람 구멍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언니가 그저 노동에 필요했을 터이다. 언니는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밀알이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오빠들에게 바람막이가 되었다.
11.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언니는 부모님과 사돈이 될 어른의 주선으로 형부를 만났다. 형부는 고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였다. 언니는 백마를 탄 왕자에게 다가가려고 밤을 새워 연애편지를 썼다. 언니는 형부에게 달뜬 마음으로 연서에 정성을 담았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평생 나의 짝이라는 걸 알았어요.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요”라고 말머리를 용기있게 시작한 것을 보았다.
12. 나는 언니의 문학적인 표현이 부러웠다. 형부는 언니의 연애편지에 감동해서였을까. 얼마 후에 언니와 형부는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언니는 노동에 지친 고향 집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벚꽃같은 모습으로 형부에게 날아갔다.
13. 부모님은 언니가 시집을 가면 집안일을 도운 대가로 알토란 같은 논을 팔아서 유산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부모님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메아리가 되었고 논을 판 돈은 도시에 정착한 오빠들의 집을 마련하는데 사용되었다.
14. 연로한 어머니가 큰오빠네 집에 계실 때였다. 어머니와 올케의 불협화음으로 어머니는 언니네 집에서 몇 년을 함께 지냈다. 부모님은 살아 생전에 아들에게 유산을 증여했지만 오히려 한 푼의 유산을 받지 않은 언니가 부모님께 인간적인 효도를 다했다.
15. 나는 효심이 지극하고 의리 있는 언니를 기억한다. 어릴 때는 나의 보모가 되었고 자라서는 부모님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은 언니였다. 한편으로 그런 언니를 보면서 시린 마음의 몸살을 앓았다. 어머니는 궁핍한 환경으로 집안일을 부득이하게 언니에게 맡겼다. 빈곤한 시대의 자화상에는 언니의 희생이 있었고 가족을 평안하게 만드는데 기여했다.
16. 나는 사랑의 얼굴이 여럿이란 걸 언니를 보고 깨달았다. 언니는 삶의 벽을 뛰어넘으려고 고통을 겪으며 혹독한 겨울을 견뎠다. 언니는 지게의 밀삐처럼 닳아 없어지도록 가족을 보살피고 헌신했다.
4. 나의 느티나무 / 임성림 4
1. 시골 마을을 지나는 길이었다. 동네 어귀에 이르자 겨르로이 서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붙들었다. 차에서 내려 나무 밑 평상에 걸터앉아 보았다. 짙은 그늘로 드리워진 빼곡한 가지 사이로 느실느실한 바람이 들어차 있었다. 고단한 일상에 잠깐의 쉼을 전하는 나무는 청량한 찬물 한 대접을 마신 것처럼 상쾌해졌다.
2. 방학이면 고향 마을 평상에 누워 큰언니와 무성한 느티나무를 바라보곤 했다.
"너는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햇살이 잎사귀 사이로 부서져 내려왔다. 반짝이는 무늬가 얼굴을 간지럽혀,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감은 눈에 내려앉은 무늬들은 다시 강물처럼 눈꺼풀 위를 출렁거렸다. 바람이 잎들을 툭 건들자, 일제히 '쏴아아' 하는 물결 소리가 밀려왔다.
3. 생각해 보면 큰언니는 고향 마을 느티나무를 닮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의 든든한 느티나무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 모른다. 내 꿈을 물어봐 주는 큰언니의 목소리는, 힘이 있기도 하고 아늑하기도 했다. 사람이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느티나무 아래서 처음 알았다.
4. 내가 중학생이 됐을 때 큰언니는 갓 스물이 되었다. 일을 나가시는 새엄마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떠맡았을 때, 큰언니는 멍하니 마당을 바라보거나 한숨을 쉬는 일이 많았다. 집안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했던 게 분명하다.
5. 그즈음 큰언니에게 선이 들어왔다. 혹시 집안일이 싫어 시집을 후딱 가버리지 않을까 염려가 됐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야 하는 교포 색시감 자리였다. 큰언니가 먼 나라로 떠난다는 건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새엄마는 저녁마다 중매쟁이 말을 전했다. '혼수가 필요없는 결혼이니 색시감에게 유리하다고.' 그 말에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한게 새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가 없다는 것은 든든한 방패막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디선가 큰언니를 구해 줄 운명의 왕자님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6. 큰언니도 해외로 떠날 생각은 없었는지, 대구 인근에 있는 어망회사에 취업을 했다. 많은 여직원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큰언니는 그들의 생활을 지도 관리하는 사감 업무를 맡았다. 모난 데 없는 인상과 책임감 있는 성격이 일과 딱 맞아 보였다. 나는 큰언니가 직장에 오래 다니길 바랐다. 저축도 많이 하고 내게 용돈도 주며, 일에 대한 만족도 느끼면서 오래도록 커리어우먼으로 일하길 바랐다.
7. 그러나 1년 후에 큰언니는 같은 회사 노총각을 집에 데리고 왔다. 식구들 표정은 그리 탐탁지 않았지만 나는 괜찮았다. 큰언니가 멀리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으니까.
8. 큰언니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동생들 걱정을 했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유난히 집안이 반짝거리는 날이 있다. '아, 언니가 왔구나.' 책가방을 섬돌에 던지고 부리나케 언니 방으로 뛰어갔다. 방은 텅 비어있고, 건넌방 문을 여니 작은동생이 울고 있었다.
"큰누나 좀 전에 갔어. 내가 가지 말라고 했는데ᆢ"
지금이라도 길 건너 정류장으로 달려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실망해 기운이 쭉 빠져 버렸고, 날 만나지 않고 갔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루에는 희미한 걸레 자욱이 남아 있었다. 시간이 모자라 청소를 다 못한 것 같았다.
9. 부엌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어묵국 한 냄비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싸우지 말고 많이 먹어라.' 얌전한 큰언니 글씨가 적힌 메모를 읽자, 금세 눈물이 쏟아졌다. 마당 빨래 줄에는 해질녘 선들거리는 바람에, 이불 홑청이 젖은 물기를 흘리고 있었다. 담장 쪽 빨래줄에는 내 속옷이, 연한 꽃물이 든 채 널려 있었다. 뜰에는 샐비어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10. 큰언니 결혼식 날에도 나는 학교에 갔다. 담임선생님이 계시지 않아 늦게 조퇴증을 받았다. 열다섯이 되었는데 나는 볼거리를 하고 있었다. 침을 삼켜도 따갑고 귀 밑의 염증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아팠다. 언니의 결혼. 분명 행복한 날인데 으슬으슬 춥고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건 볼거리 때문 만은 아닌 것 같았다.
11. 예식장에 들어서니 작은동생이 2층으로 연결된 계단 귀퉁이를 툭툭 차고 있었다. 뭐에 골이 났는지 내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일곱 살짜리 애를 혼자두기가 애매했지만 그 애는 한사코 식장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식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큰언니와 화음을 넣어 불렀던 '한 송이 흰 백합화'의 노랫말처럼, 큰언니의 자태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이따금 잔잔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신랑과 다정하게 귀엣말도 나누었다. '큰언니가 좋다면 된 거야.' 나는 억지로 마음을 바꾸려고 애를 썼다.
12. 큰언니가 산뜻한 투피스 정장을 입고 신혼여행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택시 한 대가 예식장 앞 쪽에 대기해 있었다. 큰언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가방을 택시에 밀어 넣고 내게로 왔다.
"왜 그리 늦게 왔어? 안 보여서 걱정했잖아. 볼이 퉁퉁 부었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큰언니에게 나는 진심 어린 당부를 건넸다.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고 언니만 잘 살라고.'
13. 큰언니는 신혼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친지들께 인사를 했다. 택시 뒷자리에 신랑신부가 앉아 마지막 눈인사를 끝내고 출발하려는 찰나였다. 작은 동생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택시 쪽으로 뛰어들었다.
"나도 갈 거야, 누나 따라 시집갈 거야, 나도 데려가."
동생은 큰 소리를 내며 택시 손잡이를 열려고 했다. 옆에 계시던 친척이 울부짖는 동생을 붙잡았다. 차가 멈췄다. 동생은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울부짖었다. 맺힌 서러움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 말고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큰언니가 어느새 내려 손수건으로 동생 눈물을 닦아주며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내년에 학교 갈 학생이 울기는ᆢ 며칠만 잘 놀고 있으면 누나가 맛있는 거 사 갖고 갈게. 응? "
그제야 동생은 울음을 멈추었고 간간이 새어 나오는 엷은 흐느낌을 참으려고 애썼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손도장을 찍고서야 안심을 하는 듯했다. 떠나는 택시 뒷 창으로 손을 흔드는 큰언니를,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동생은 바라보고 있었다.
14. 동생이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친엄마가 병환으로 돌아가셨을 때, 그 애는 만 두 살이었다. 이모댁에 맡겨졌다가 우리와 합류했지만, 말도 못 했고 예민했다. 필요한 엄마의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 짐작은 했다. 유난히 여름을 타고 칭얼댔다. 우리는 시끄럽다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큰언니는 동생을 업고 장독대에 올라가거나 동네 골목길을 서성댔다. 몇 시간을 배회하다 잠든 애를 눕힐 때,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재우느라 노래를 부를 때도 있었고, 동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15. 작은동생에게 큰언니는 엄마 같은 존재였다. 눈앞에 늘 보여야 안심을 하고, 업고 밤하늘 별도 함께 헤아리는, 라일락 가지를 끌여당겨 라일락이라 말해 주는, 매일 달라지는 달 모양을 이야기해 주는, 자장가를 부르며 토닥이며 잠을 재우는 그런 엄마. 엄마를 잃고 늘 서럽던 큰언니는 엄마가 뭔지도 모르는 동생에게, 잠시라도 따스한 품을 내어 주려는 엄마였다.
16. 어쩌면 우리 형제들은 큰언니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웠는지 모른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몰아닥친 어려움과 삶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게 했다. 우리는 느티나무의 그늘에 숨어 따가운 햇볕을 피하고 비바람도 막아냈지만, 큰언니는 한 번도 짐을 내려놓으려고도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굳은 껍질이 생채기에 뚝뚝 떨어져 나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17. 느티나무도 처음부터 모양을 갖춘 것은 아니었으리. 세찬 바람과 추위를 견디면서 단단한 가지와 무성한 잎을 이뤘을 것이다. 어쩌면 큰언니는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힘든 동생들을 쉬게 할 큰 느티나무가 되려고 그토록 애썼는지 모른다. 이제는 모두 성장해 예전의 그 결핍에서 벗어났지만, 큰언니의 보살핌과 사랑을 되갚을 길이 없다.
18. 곧 신록과 함께 느티나무에 겹겹의 잎사귀가 달리며 푸르러질 것이다. 햇살 사이로 반짝이는 무늬에 두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생각했던 꿈들이 다시 떠오르는지 궁금해진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그때처럼 '쏴아' 물결소리를 내는지, 꿈결처럼 들리던 큰언니의 목소리가 담겨있는지, 다시 고향 마을 느티나무에 누워보고 싶다.
5. 마지막 봄/손정희4
1. 비 내리는 새벽, 자두밭을 둘러보았다. 겨우내 메말랐던 땅은 물기를 머금어 숨을 고르고 가지 끝마다 여린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봄은 이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다. 과수원 안쪽, 지난해 산불을 이겨내고 늠름하게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 곁에 어머니를 모셨다. 살아남은 나무와 이제는 말을 잃은 어머니가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셋째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언제든 지켜보실 수 있는 곳이 어머님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었다.
2. 4월 8일, 청송으로 출발해 막 동명휴게소를 지나고 있었다. 어머님이 위급하셔서 안동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요양원에서 조심스럽게 며칠을 보낸 후 어머님은 체온이 38.5도를 넘어서 119구급차로 이송 중이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응급실에는 보호자 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어 아주버님은 어머님 곁에, 남편은 대기실에 있었다. 세 명이 교대로 어머님을 뵈었다. 어머님은 눈도 못 뜬 채 입은 벌리고 호흡기에 의지해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머님”하고 불러보니 알아보시는지,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조금 움직이셨다.
3. 검사 결과가 나오자 응급실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뇌혈관은 혈전에 막혀 온몸에 온기를 전하지 못했고, 신장과 폐마저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의사는 보호자들을 불러 위급 상황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와 연명치료에 관해 설명했다. 어머님은 영양공급을 위해 목 밑 부위에 튜브를 삽입한 채 그날 저녁 중환자실로 옮겨지셨다. 그때부터 하루 한 번 정해진 시간에 한 사람이 5분씩 두 명만 면회할 수 있었다. 그날 밤늦게 아주버님께 연락이 와서 혈액투석도 시작되었다.
4. 4월 10일, 5분간의 면회 시간에 어머님을 만났다. 며칠의 투석 덕분인지 어머님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어머님의 손을 잡았는데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한 손으로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어루만졌다. 어머님은 눈을 겨우 뜨고 나를 찬찬히 살펴보며 말씀하셨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작은 소리가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머님,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어머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자꾸 이야기하려고 애쓰셨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나도 고개를 끄떡였다. 그것이 어머님과의 마지막이었다. 이어서 남편이 5분간 만났다.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머님께서 웃는 얼굴로 따뜻하다고 하시는 것 같더라 했다. 눈 좀 크게 떠보시라 해서 사진도 한 장 남겼다.
5. 토요일엔 큰 아가씨가, 일요일엔 남편이, 월요일 낮에는 남편과 아주버님이 면회했다. 비닐 방역복을 입고 손을 잡으며 눈을 마주쳤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계속 말씀하셨다고 했다. 어머님 상태는 전날보다 안 좋아졌다. 남편은 며칠 사이 달라진 어머님의 모습을 다시 사진으로 남겼다.
6. 낮에 면회하고 왔는데 저녁에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으로 가는 사이 어머님은 이미 숨을 거두셨다. 우리는 모두 어머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4월 8일 입원하여 4월 13일 저녁 8시에 어머님은 끝내 말을 멈추셨다. 돌이켜보면 마지막은 길지 않았으나, 그 안에는 평생의 시간이 압축되어 있었다.
7. 열한 살에 가족을 잃고도 살아낸 시간, 타인의 집에서 버텨낸 세월, 어려운 살림 속에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을 키워낸 날들,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던 마음조차 어머님은 마지막까지 선택하고 있었다. 어디에 머물 것인지, 누구 곁에 있을 것인지. 병원이 아닌 집, 낯선 침대가 아닌 익숙한 방, 따뜻한 가족의 손. 그 모든 선택의 끝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삶이란 결국 어디에서 끝나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8. 봄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사과밭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마당의 진홍빛 진달래는 빛이 조금 옅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나의 봄은 그전과 같지 않다. 어머님은 평소 유언대로 화장해서 자두밭이 내려다보이는 뒷산의 큰 소나무 주변에 모셨다. 남편이 과수원에서 일할 때면 언제든 아들을 지켜보실 수 있는 자리다. 이제 매일 밤 나누던 모자의 이야기는 자두밭의 바람 소리에 섞여 머물 것이다. 어머니는 그곳에 계신다. 떠나신 것이 아니라, 소나무의 푸른 잎으로 다시 오셨다.
6. 나는 대박이다/ 김숙자3
1)현관 앞에 서면, 문 안에서 자신의 전부인 나를 기다리고 있을 존재가 떠오른다.
2)나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낯선 집으로 오게 되었다. 엄마는 활짝 웃으며 반겨 주었고, 내 집과 장난감도 있었다.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애견샵에서 뿌려준 향수 때문인지 눈물이 자꾸 났다. 누나와 엄마가 이리저리 살피며 걱정하더니 샵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나를 다른 강아지와 바꿔 준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는데 떠나야 하는 걸까? 덜컥 겁이 났다. 한 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책임진다며 보내지 않겠다는 엄마가 고마웠다.
3)저녁이 되자 가족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왔다. 귀엽다며 떠들썩하게 반겼지만, 아빠는 내 근처에 오지 않았다. ‘내가 싫은 걸까?’ 아빠가 TV를 볼 때 슬쩍 옆으로 다가갔다. 발을 핥으며 애교를 부렸더니 저리 가라며 밀쳐 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빠가 퇴근하면 온몸으로 반기고, 꼬리를 흔들었다. 처음엔 무심한 듯하더니, 점차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간식도 사 오고 산책도 시켜주셨다.
4)엄마는 내 털을 직접 다듬으려고 바리캉과 발톱깍기를 사 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바리캉으로 얼굴과 몸의 털을 밀기 시작했다. 솜씨가 영 서툴렀다. 귀를 자를까봐 조마조마 했고, 털도 듬성듬성 깎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엄마는 아주 흡족해 하면서 앞모습 옆모습 사진을 찍는다.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내 발톱을 깎다가 신경을 건드려서 피를 냈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그날 이후, 누구든 내 발을 만지면 으르렁거리며 깨물어 버렸다. 가족들 모두 한 번씩은 내 이빨 세례를 받았고, 이제는 아무도 내 발을 만지지 않는다. 통쾌했다. 엄마는 비싼 미용 도구를 사 놓고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며 투덜댔지만, 나는 미용실 이모가 훨씬 좋다. 이모는 간식도 주고, 잘 참는다면서 칭찬까지 해주기 때문이다.
5)가족들이 모두 출근하면 나는 혼자다. 인간의 하루는 나에게 일주일이다. 일주일을 매일 같이 외롭게 주인을 기다린다는 것은 큰 고통이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낮에는 잠만 잤다. 가끔 누나가 홈캠으로 나를 부른다. 누나가 온 줄 알고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들리는 건 소리뿐이다. 처음에는 반가웠지만, 이제는 공허한 울림으로 받아들인다. 퇴근한 엄마는 여전히 바쁘다. 조용히 엄마 발 옆에 궁둥이를 붙이고 엎드려 기다린다. 바쁜 일이 끝났는지, 엄마가 공을 던졌다. 벌떡 일어나 공을 물었다. 그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을까. 엄마가 산책 가방을 챙기면 이리저리 뛰며, 빨리 나가자고 보챘다.
6)바깥 공기는 상쾌했고, 귓가에 스치는 바람이 기분 좋다. 바람의 냄새가 좋아서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다리가 아프다. 조금 걷다가 주저앉고, 다시 조금 걷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내가 걷기 싫어서 그러는 줄 알고 강제로 뛰게 했다. 심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뛰라는 말에 냅다 뛰었다. 절뚝거리는 내가 안쓰러운지, 엄마가 안아주었다. 허벅지 쪽으로 엄마의 손길이 오면 비명을 질렀다.
7)집에 와도 서 있지 못했다. 엄마와 누나가 한밤중에 나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엑스레이를 확인한 결과, 슬개골이 살짝 빠졌고 고관절에는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걸을 때 아주 아팠을 거라는 말을 듣고 엄마와 누나는 눈물을 흘렸다. 부랴부랴 고관절 수술을 받고 이제는 마음껏 뛸 수 있다.
8)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본능이 꿈틀거린다. 내 나이 일곱 살. 인간의 나이로 치면 마흔 중반쯤 된다. 가끔 예쁜 여자 친구가 불쑥 생각날 때가 있다, 그게 어디 마음만으로 되는 일인가. 그렇지만, 방석을 둘둘 말아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 한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우리 대박이,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어쩌노”하며 안쓰러워한다. 누나들은 민망하다며 말렸지만, 엄마는 스트레스 풀라며 못 본 체 해준다.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엄마가 고맙다.
9)누나들은 시집을 가고, 나는 엄마 아빠와 지낸다. 엄마는 내가 너무 외롭다며, 누나들이 집에 오면 대박이 좀 데려가라고 소리친다. 작은 누나 네는 학군 좋은 아파트라 내가 짖기라도 하면 민폐가 되고, 큰누나는 전셋집 계약할 때부터 반려동물은 반입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엄마는 그걸 알면서도 으름장을 놓는다. 그럴 때면 슬며시 엄마 무릎위로 올라가 가슴팍에 안기면서 꼬리를 흔든다.
10)엄마도 쓸쓸할 때가 있는가 보다.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둘만 있었으면 아주 허전했을 텐데, 대박이가 있어서 집안이 생기가 도는 것 같아.”
그 말은 바람처럼 스며들어 내 마음 깊은 곳까지 감쌌다.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나 보다. 오늘도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현관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지루하고 쓸쓸하지만, 나는 안다.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나의 전부라는 것을. 내 삶의 분명한 이유다. 살면 살아진다고 하더니 그래,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랑하며, 기다리며.
우리 집 귀염둥이, 대박이를 역지사지해 보며 문득 생각해본다. 나에게 전부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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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4차시(6월 8일 ) 합평 예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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