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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탕의 시간
김 철 희
무거운 쇳덩이가 하늘로 치솟다가 아래로 곤두박질치자 쩍 하고 나무토막이 쪼개진다. 치켜든 팔과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낙차를 이용해 굵직한 토막을 여러 개로 쪼갤 때마다 온전히 충격을 감내해야 한다. 찬바람에 온몸을 내맡기고, 날을 세워 내리치는 도끼질에 쓰러져가는 소리를 홀로 묵묵히 받아내는 일을 아픔이라 여겨본 적이 없다. 주어진 소임이 그러하거늘, 어디에 대고 하소연할 곳도 없다. 진종일 패고 또 패고 그렇게 쌓인 장작은 겨우내 아궁이 속으로 던져져 장렬하게 회색빛 재로 산화한다.
타고난 운명은 늘푸른나무였다. 땅속에서 씨앗을 틔워 가늘디가는 줄기로 햇빛과 바람을 마주하며 하늘 향해 솟구치고, 옆으로는 팔을 뻗어 가지를 만들었다.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거뜬히 육중한 몸을 지탱해 온 힘이다. 남들은 가지를 거추장스럽다 부러뜨리지만, 지상의 뿌리는 가지다. 잡풀과 우거진 군락에서 햇빛을 쫓아 생존의 치열한 경쟁을 하며 몸집을 키우고, 지구상에서 멸종되지 않고 버텨온 시간이 억겁의 세월이다.
무릇 생명체는 탄생과 소멸이란 짐을 함께 갖는다. 제명대로 소임을 다한 생은 복된 삶이지만, 뜻하지 않은 일로 원하지 않는 시기에 맞닥뜨리는 초라한 퇴진은 쓸쓸하다.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익히 각오하고 있었다. 부질없다 할 때 그저 빨리 소멸하기를 바랐다. 수백 년을 어둠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풍파를 견뎌온 고목이 세상에 유용한 자재로 환골탈태한 것은 부러운 일이다.
잔가지는 쭉정이 불쏘시개로 쓰임을 다하지만, 모탕은 몸집이 굵고 딴딴한 재질 덕에 제때 스러지지 못하고 남겨져 방치되다 땅과 가장 밀접하게 살갗을 맞대며 쓰인다. 뿌리로부터 분리된 처지라 재질은 사막 바닥처럼 건조해 두들겨도 아픔을 모르는 허허로운 처지다. 마치 마취제 맞은 듯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도끼가 표면을 찍어 홈이 파이는 우여곡절을 겪어도 묵언 정진의 자세로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속절없음은 짊어진 숙명이다.
고되고 힘든 삶을 살아오면서 낙오가 된 적이 어디 한두 번일까. 좌절을 소주로 달래며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온 여정을 생각하면 그저 눈물겹다. 견뎌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며 가난의 먼지를 털기 위해 쪽잠으로 버텨온 만신창이 몰골일지라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건 잉걸불로 남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몸체가 실금에 갈라지기라도 하면 나무로서의 최후를 맞아야 하지만 그중 온전한 것은 곡식을 땅바닥에 쌓을 때 밑에 괴는 나무토막으로 쓰인다.
농부는 추수를 마친 벼를 따가운 가을 햇빛에서 건조해 마당 한켠에 재인다. 지면과 살을 맞춘 굄목은 비가 내려도 가마니를 젖지 않게 하는 게 목적이다. 가마니 위에 또 한 가마니, 그 위에 또 얹히기를 반복해도 묵언으로 다 받아내야 하는 고달픈 삶을 견뎌내야만 한다. 무게를 버텨내지 못하면 농부의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일이기에 사명감으로 인내한다.
형형한 별빛이 가득한 늦은 밤, 농부의 가족이 마당 한가운데 놓인 마루에 앉아 오순도순 밤이 이슥하도록 얘기꽃을 피울 때 비로소 홀가분함을 느낀다. 달이 휘황하게 대지를 밝히고, 농부의 다솔식구들이 깊은 잠이 들면 평화로운 시간을 맞이한다.
어느 날, 쌓여있던 나락 가마니가 방앗간으로 옮겨지고 나면 급기야 소임은 끝이 난다. 농부는 뒤란 장작더미 옆에 쓰임을 다한 나무토막들을 던져놓는다. 내년 다시 쓸 요량이지만 장담 못 할 일이다.
소멸하는 모든 것들의 운명은 잊힘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존재할 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내 가슴이 잊지 않는 한 그 존재는 기억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볼품없는 취급을 당하면서도 스러져가는 순간까지 제 운명을 모두 바치는 모탕의 일생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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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랑대
나무 사이에 매단 느슨한 줄 한가운데를 들어 올린 장신의 지지대가 태양의 광휘에 지친 기색 없이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누군가의 질책을 호되게 맞은 양 건조하고 시무룩하니 처량한 모양새다. 깡다구만 남은 바짝 마른 몸체가 그저 자닝하다.
어느 햇볕 따스한 날, 두툼한 솜이불 두어 개라도 얹히는 날에는 무게감에 팽팽하던 줄이 아래로 축 처져 더 애처롭게 서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꼿꼿하던 자존심이 한풀 꺾이어 뒤로 밀려난 그 기울어진 모양새가 큰 바윗덩어리를 디밀 듯 안간힘 쓰는 것 같다.
땅에는 작은 상처들이 있다. 농부의 앞마당이 반가의 정원만 하겠는가. 온전히 사람의 발길만 오가는 곳이 아니니 하루도 생생한 날이 없다. 비 온 뒤 빨랫줄에 이불이며 물기 젖은 옷가지들이 줄줄이 매달리던 날 앙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면서 파인 생채기다. 논에서 써레질 마치고 흰 거품 흘리며 구르마 끌고 들어오는 소 발굽, 가을이면 콩 타작으로 생긴 도리깨의 흔적, 장작이라도 나르던 날이면 질질 끌려가던 나무 밑둥치의 눈물겨움도 남아있다. 그 땅 위에.
한갓진 마을, 산 아래 자리한 우리 집은 유난히 햇볕이 잘 들었다. 어머니가 없는 집구석에 햇빛만 그득하다 푸념하면 들 일에 지친 아버지는 허름한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 한 개비 물고 시큰둥하게 뒤란으로 피신했다. 대나무가 서걱이는 뒤뜰은 언제나 음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농부에겐 평안을 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아버지는 동그랗게 담배연기를 말아 올리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성격 까탈스러운 여인의 마음을 달래줄 꽃이라도 사서 들어오는 여유로운 삶을 한 번이라도 꿈꿨으려나.
마흔아홉, 너무나 이른 나이에 별이 된 울 아버지. 그의 빼앗긴 청춘만 생각해도 눈시울이 젖어 든다. 한 번 빼앗긴 청춘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결혼하고 간 군대는 엄혹하기만 해 결국 첫 휴가를 나와 복귀하지 않고 탈영병이 돼 두메로 숨어들어 생활해야 했다. 봇짐 하나 들고 따라나선 어머니가 겪었을 고생은 굳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허나 가정을 건사해야 할 사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았으리. 한 집안의 기둥으로 살아간다는 건 힘에 겨운 일이다.
청새치를 상어 떼에게 빼앗겨버린 산티아고 노인이 남루해진 돛대를 어깨 위에 걸머메고 언덕길을 올라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겹친다. 절망하지 않고 어부로서의 소명에 최선을 다하는 산티아고. 거부할 수 없는 ‘나의 일’이기에 불평이나 좌절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역할에 순응할 뿐이다.
아버지는 왜 평생 힘든 일만 찾아다녔을까. 서러운 시대를 살면서 아버지가 운명을 쫓아갔는지, 운명이 아버지를 따라붙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손에 쥔 꿈은 늘 버거웠다. 오랜 방앗간 생활을 접고 끝내는 삽차를 타고 아득한 지하로 내려가 석탄을 캐는 광부로 살았다. 그 시절 광산업은 우리나라 산업의 핵심, 돈을 벌기 위해 건장한 사내들을 어둑하고 절벽처럼 아득한 곳까지 유혹했다. ‘잘살아 보겠다’는 실날같은 꿈을 찾아 이른 새벽 천근만근 같은 육신을 갱 속으로 떠다밀었다. 깊은 잠이 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일터로 향했을 아버지의 처처한 뒷모습은 물기 먹은 빨랫감을 힘겹게 떠받치던 바지랑대를 닮았다.
바람이 분다. 고요 속에 말라가던 축축했던 빨랫감이 바람의 기척에 놀라면 출렁이는 파도처럼 바지랑대와 함께 요란하게 흔들린다. 저러다 금방이라도 뚝 하고 부러질 것만 같다. 그 순간 불안하게 살아온 아버지 삶의 격랑이 겹친다. 가시로 가득한 삶의 파편, 가슴이 아리다. 이제야 철이 드는 모양이다.
물기라곤 없는 바지랑대의 단단함은 마치 앙상한 몰골의 사내 뒤태 같다. 남자는 결코 앞으로 소리 내 우는 법이 없다. 힘들면 뒤돌아 서서 신세를 한탄한다. 들썩이는 남자의 쓸쓸한 어깨처럼 바람이 세게 불면 바지랑대도 흔들린다. 줄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버틴다. 아직 마르지 않은 옷감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흙이라도 묻는다면 언제든 호된 질책을 받을 걸 아는 눈치다. 어쩜 최후에는 성난 주인의 격분에 부러져 아궁이로 들어가는 처참함을 겪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지랑대에도 꿈은 있다.
스스로를 그늘인 양 일체 지니지 않은 채 낮에는 햇살을, 저녁에는 바람을 앉혔다. 어느 가을, 바지랑대 끝에 빨간 잠자리가 날아들어 살포시 앉는 걸 바라본 적이 있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살랑이듯 허공에서 잔잔한 바람을 맞으며 한가로이 오수라도 즐기는 모습은 평안하다.
형형한 달빛, 창공에 별이 총총히 박히는 밤이 찾아오면 바지랑대는 온전히 혼자 몸이 된다. 마당 한가운데 모깃불을 피우는 것으로 여름밤은 시작된다. 봉화를 피우듯 덜 말린 쑥이나 논두렁 풀들이 성마른 연기를 굼실굼실 피우면 들풀 냄새가 한껏 밤하늘을 타고 올랐다. 무시로 오가던 마당엔 어느새 평상이 놓이고, 저녁상을 물린 가족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별을 사랑한 나는 누워 은하계가 쏟아낸 별의 무리를 쫓아 거문고자리, 독수리자리, 백조자리 등 별자리를 찾는다. 힘든 시간 뒤에 맞이하는 평온의 시간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밤은 깊어진다. 별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이는 잠이 든다.
옹색한 살림살이를 떠받들고 삶의 순간을 함께 버티어 온 바지랑대. 꼿꼿이 창공을 향한 치솟음이다. 그 우듬지에 유난히 밝은 별 하나 걸리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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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화
김 철 희
삭정이에 불씨가 옮겨붙자 시뻘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불길이 거세게 일렁인다. 타들어 가는 나뭇가지 위로 굵직한 나무토막이 얹히고, 그마저 순식간에 화마의 볼모가 돼 장렬히 산화한다. 불기둥은 더 거세게 아궁이 속으로 뜨거운 입김을 불어 넣는다.
아궁이의 열기가 얼굴에 얼비치자, 뒤로 주춤 물러나 앉은 어머니는 한참을 불멍으로 아무런 말이 없다. 가마솥 뚜껑 사이로 하얀 김이 새어 나오고, 쓰러진 숯불 위에 또 하나의 장작을 보태자 잠시 열기가 잦아들었다. 그 틈을 이용해 어머니는 고단하고 버겁던 세상사의 짐을 벌건 숯불 위에 올려놓았다. 사그라들던 불씨가 활활 살아나더니 어머니의 볼에는 새빨갛게 홍조가 돌기 시작했다.
부지깽이 하나 들고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며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그리하셨을까? 찬장 하나 덜렁하니 놓여있는 부엌, 정갈한 부뚜막, 석유풍로가 집기의 전부로 살림살이라곤 알량하기 그지없었다. 바지런히 살아도 늘지 않는 터수에 희망이라곤 품 안의 자식뿐이니 참으로 기구한 팔자가 아닐 수 없다. 자식은 책임져야 할 골칫덩이라지 않던가.
자칫 자리를 비웠다간 불씨가 부엌 한편에 쌓아둔 마른 솔잎에 옮겨붙기라도 하면 큰일이기에 어머니는 아궁이 앞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만 지켜볼 뿐, 묵언 정진의 자세로 일관했다.
30촉 백열등 빛은 검은 더께로 가득한 부엌의 허전한 공간을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차라리 아궁이에서 삐져나온 열기로 가득한 장작의 불길이 더 뜨겁고 밝았다. 찬 바람 부는 산비탈을 누비며 삭정이와 나뭇가지를 꺾느라 뻐근해진 삭신을 달래기에는 뜨끈한 열기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하셨을까. 배는 곯아도 추위를 견디는 게 곤욕이었던 어머니는 애옥살이 시절을 아궁이 앞에서 지친 몸을 추슬렸다.
배가 고팠는지, 막내가 안방에서 부엌으로 난 쪽문을 열고 밥 언제 먹느냐고 떼를 쓰다가 어머니 손에 쥐어져 있던 부지깽이에 머리를 된통 맞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새끼 입에 먹이가 들어가는 게 어미 새의 기쁨’이란 건 늘 그런 게 아닌가 보았다. “참고 기다릴 것이지, 그새 그걸 못 참고 밥타령이냐.”라며 진종일 초주검이 되도록 몸을 혹사한 어머니가 불같은 성정을 버럭 냈다. 자식들이 당신의 전부였던 어미로 사는 삶, 아직은 어린 자식들을 건사해야 할 여자의 삶이 불에 타들어 가는 지저깨비처럼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조촐한 행복은커녕 아버지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작가 장석주는 “자식의 생물학적, 도덕적 성장을 돕는 책무를 다해야 진짜 아버지“라 했지만, 울 아버지는 쉰 살이 되기 전에 병마를 이기지 못한 채 생의 역사에서 사라지셨다. 쓸쓸히.
홀어머니 품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네 남매가 함께 생활했던 우리 가족은 늘 타다 남은 차가운 잿빛처럼 침울한 나날을 보냈다. 곤궁하게 살았지만, 누구 하나 반찬 투정하는 법이 없었다. 며칠이고 수제비만 먹은 일도 있다. 밀가루 반죽을 편편하게 뜯어 호박과 푸성귀를 넣고 끓인 수제비에 파와 고춧가루를 다져 만든 간장을 놔 먹으면 왜 그리도 맛나던지. 요즈음도 가끔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부러 해달라고 해서 먹곤 한다.
안방과 부엌이 연결된 쪽문은 생과 사의 문이기도 했다. 위암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별다른 치료도 못 받고 고통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어느 날 밥상이 드나들던 쪽문을 열고 부엌 부뚜막에 물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양동이를 놓고 거꾸로 머리를 처박으며 죽으려고 한 적이 있다. 마침,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가 부엌문을 열고 들어와 기겁하고 양동이에 담긴 물을 쏟아버린 덕분에 아버지는 목숨을 부지할 수가 있었다.
놀란 가슴에 어머니는 의지하며 살아온 아버지의 등짝을 종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앙상하게 드러난 뼈밖에 없는 마른 체구에 한 서린 눈물이 한되박 쏟아져 내렸다. 산은 넘고 물은 건너며 사는 게 인생이라는데 물속에 머릴 처박고 있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어머니는 양동이를 아궁이 속에 마구 쑤셔 넣으며 울부짖었다. “나는 어찌 살라고 이럽니까. 죽을 거면 같이 죽지 왜 혼자 죽으려고 해요.” 삶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견디는 거라는 걸 항변하는 것 같았다. 나는 ‘불의 신’이 가진 힘을 빌려 어머니가 방금 뱉어낸 절규 서린 말들을 불에 죄다 태워버리고 싶었다. 막상 태울 수 없다는 사실에는 두고두고 마음 아파했다. 세월이 흐를 만큼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의 소동은 기억에 선명한 자국으로 남았다.
장작을 분구(焚口) 속으로 던졌다.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구들장이 밤새 식지 않고 오래도록 열기를 간직하기를 바랐다.
인류가 불을 처음 사용한 것은 호모 에렉투스로 살았던 14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은 날 것을 익혀 먹게 했고, 추운 밤을 따뜻하게, 위험으로부터는 안전을 가져다주었다. 문명의 진화를 가져온 불의 역사는 어머니의 삶으로 이어져 숱한 애증의 역사를 일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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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된다는 것, 애초에 어머니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갓 스무 살에 낯선 곳으로 시집와 숱하게 혼자 밤을 보낸 걸 여태 한스러워하셨다. 노름판에서 밤을 새운 아버지를 기다리다 쫄딱 밤을 지새웠던 날이 왜 그리 길고도 외로웠던지 오도가도 할 수 없는 벼랑 끝에 선 느낌이었다고 훗날 회고하셨다. 시댁의 작고도 차운 골방에서 혹독한 시집살이에 눈가가 짓무르도록 흐느꼈던 어머닌 따뜻한 방에서 곤히 깊은 잠에 드는 게 꿈이었다고 말씀하셨다. 큰어머니가 백순하고도 서너 해를 더 살다 돌아가실 적에도 눈물 한 방 흘리지 않으셨던 분이다. 호된 시집살이를 시킨 시누이에 대한 원망이 앙금으로 남았던 거였다. 살다 보면 미움도 사라지더라고들 한다지만 왜 난 그게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가슴 아파하셨다.
단독주택에 기름보일러를 들여놓고 사는 요즈음 시절에도 어머니는 겨울 한 철을 연탄으로 나신다. 영춘화가 얼었던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봄이 오면 단골 가게에 연락해 연탄 천 장을 들여놓는다. 미리 쟁여놓아야 석탄이 잘 마르고 화력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연료비가 석유보다 저렴하게 드는 것도 이유겠지만, 22공탄은 진종일 훈기를 방안에 돌게 해 어머니를 평안케 하는 고마운 연료이다.
가난만큼이나 추위를 몹시도 타는 어머니의 올해 연치는 여든일곱이다. 아궁이 속에서 벌겋게 타들어 가던 장작이 토막 불이 되기 직전쯤의 상태, 잉걸불로 사그라들다 한 줌 재로 사라지기까지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마지막 불씨마저 꺼지고 나면 차운 잿빛만 남는다. 인생은 그런 거다.
성큼성큼 다가온 3월, 온 산과 들에 꽃이 만화방창할 즈음에 때아니게 내린 폭설로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였다. 창문 너머 눈발이 나린다. 자작자작 나무가 타는 아궁이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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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뚜레를 걸다
김 철 희
말뚝에 묶어둔 소가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연신 되새김질 중이다. 마구간에서 오물로 뒤엉킨 지푸라기를 삽쇠로 걷어 거름더미에 내다 버렸다. 시굼하니 구린내가 코를 자극하지만, 어미 소는 여전히 여물을 반추하며 망중한이다. 소가 연신 입을 오물거리자 벌름거리는 코에선 문짝에 걸린 옛날 문고리처럼 코뚜레가 덩달아 움직인다.
아침을 드시고 밖에 나가셨던 아버지가 잠시 후 뒷짐을 지고 돌아오셨다. 마구간 안에서 아버지가 손에 쥐고 나온 건 달포쯤에 불에 구워 둥글게 휜 채 묶어둔 코뚜레였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황갈색을 띤 노간주나무로 만든 코뚜레는 제법 그럴듯했다. 잠시 후 친척뻘 되는 아재가 나릿나릿한 걸음으로 삽짝을 지나 말뚝 있는 밭 가장자리로 다가왔다.
아재는 어미 소와 함께 묶여 있는 작은 소의 등을 쓰다듬으며 한동안 아버지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눴다. 코뚜레는 농사가 근본이던 시절에 소를 손쉽게 다루기 위해 생후 15개월쯤 되면 행하던 의식이다. 중소(中牛)가 될 무렵 코의 안쪽 종잇장처럼 가장 여린 살 부분에 물푸레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구멍을 뚫는다. 대략 15초, 피가 나지 않고 염증이 생기지 않게 뚫어야 한다. 아버지가 건넨 코뚜레를 아재가 능수능란한 솜씨로 금세 코에 옛날 문고리처럼 채웠다. 어린 소는 그새 듬직한 소가 됐다.
코뚜레, 농가에선 신성한 의식이다. 변변찮은 터수에 소는 농촌에선 재산목록 중 첫손에 꼽힌다. 자식 하나 늘면 땟거리를 걱정해야 할 시절에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난다는 건 살림이 편다는 걸 의미한다. 코뚜레를 한 소는 곧 농사일에도 익숙해질 것이다. 누런 호박에 콩깎지, 쌀겨를 듬뿍 담아 쇠죽을 끓여 소에게 먹이는 일을 식구들 저녁 밥상만큼이나 중하게 여겼던 시절. 결코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곤궁한 시골살이가 지겹다고 두메를 떠나올 때 어머니가 빼놓지 않고 챙겨온 건 코뚜레였다.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재로 가세가 바닥을 치자 시내로 이사를 결정했다.
“니는 장남이데이. 엄마하고 시내로 나가서 살 자신 있나? 나도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니도 고생 쪼금만 하고 살면 예서 농사짓는 거보다는 안 낫겠나?”
어머니의 설득에 난 그리하겠다고 대답했다. 스물셋, 가을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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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무망하던 어느 날, 아버지는 코뚜레를 하나 더 만드셨다. 살고자 하는 의욕을 놓지 않았던 당신에게 그 순간은 최고의 명상이고 기도였을 것이다. 위암으로 몸이 부쩍 말라갔지만, 산에 올라 노간주나무 곁가지를 꺾어다 코뚜레를 만들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암 투병으로 미구에 있을 죽음 앞에서도 생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본능적 욕구일 테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의 갈구도 간절했을 터. 비록 헛된 욕망일지라도 가족을 생각하면 놓지 못했을 끈. 욕망은 인간이 참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비워야 한다지만, 죽음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탐욕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불교에는 '코뚜레를 낀 소처럼 살지 말라'고 하는 말이 있다. 인간들은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두 손에서 놓지 못하고 끝을 행해 치닫는다. 그러다 되레 욕망에 지배당하는 누(累)를 겪고 좌절하는 인간들에 대한 경계이다. 마치 태양 가까이 날다가 이카로스의 날개가 녹아 바다에 추락해 죽음을 초래하는 것처럼. 과도한 자만과 무모함은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과연 욕망 없는 삶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되묻는다. 욕망은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인간이 욕망이라는 것을 끝까지 갖는다는 것이 삶을 생동감 있게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더 큰 욕망을 갖고자 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병든 몸으로 코뚜레를 만들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몰두하는 그 순간 가졌을 가장 순수하고 평온해진다는 건 삶에 대한 진지한 의지가 아니었을까. 본능적인 욕망은 늙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땅 한 뼘 남겨두지 못한 사내의 속내, 불에 달궈 휘어진 나무를 끈으로 묶어 마구간 문설주 위에 달 때 흘렸을 눈물을 생각하면 내 눈에서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버지는 한번 잘살아 보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음에도 삶이 영 풀리지 못했다. 차라리 술을 드셨으면 나았을까. 줄창 담배만 물었던 끽연가, 속을 시커멓게 덮었던 타르. 결국 남보다 일찍 맞닥뜨린 죽음, 당시의 나이 마흔아홉이셨다.
어머니는 소를 판 돈으로 시내 외곽 골목인 곳에 전세로 집을 마련했다. 애써 태연하게 ‘죽을 각오로 살아보자’라고 하셨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그 두 칸짜리 방에서 우린 5년을 보냈다. 그 차가운 삶. 고향 생각에 잠을 설치곤 했던 긴 밤. 피곤함에 지친 육신을 바라보며 쏟아냈던 소리 없는 울먹임, 약봉지를 보며 건넸던 따뜻한 한마디, 그리고 견디며 살아낸 숱한 이야기들이 이젠 아릿한 추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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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쉰 살이 된 막내가 하던 사업을 확장해 새로 건물을 지어 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온 일이 있다. 한때는 정처 없이 떠돌며 제 갈피를 못 잡던 녀석이 결혼하고 안정을 찾더니 10년 만에 그럴싸한 광고회사를 차렸다.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1820~1903)는 “결혼이란 숙녀의 손가락엔 결혼반지를, 신사의 코엔 코뚜레를 거는 예식”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자수성가로 일가를 이룬 동생이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하고 자랑스러웠다. 희무량심(喜無量心), 나는 나의 일처럼 기뻐했다. 사무실을 찾아가던 날, 마땅한 선물이 무얼까 고민할 겨를도 없이 어머니는 이미 코뚜레를 손가방 안에 준비해 품고 계셨다.
번듯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사면을 둘러보던 어머니는 출입구에서 바라다보면 가장 밝고 맞춤한 위치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저기 저곳에 걸어둬라“
무탈하게 사업이 번창할 거라는 덕담도 잊지 않으셨다. 노모에겐 액막이 그 이상의 바람이 깃든 선물이었다. 한때나마 풍찬노숙하던 아들을 염려하던 시간이 안개 걷히듯 사라지고 있었다.
말년에 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 깎고 다듬은 코뚜레. 볕을 받자, 황갈색 코뚜레가 금빛으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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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고독
팔순하고도 서너 해를 넘긴 시인의 목소리가 쟁쟁하다.
해묵은 책을 들고 읽는다. 누렇게 바래 세월의 더께가 묻어 귀한 책이란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수석(壽石)이 취미인 시인은 그의 스승으로부터 돌에 대한 깊은 의미를 새겨듣고 시를 썼다. 스승이 쓴 잊지 못할 단상을 낭독하고 있다.
시인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터에서 7대째 살고 있다. 땅에서 캐낸 돌로만 쌓은 담의 길이가 결코 짧지 않다. 돌이 경계석이 됐다. 돌에 애착이 많았던 스승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고 펴낸 첫 시집 제목이 『돌담 쌓기』이다. 벌써 40년이 흘렀다.
이 밤에 내가 한 시인의 이야기를 불러낸 까닭은, 얼마 전 도청 북카페에서 콘서트를 하며 삶과 문학에 대해 진중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평일 저녁 7시에 열린 이날 콘서트에는 절친들이 참석해 못다 들은 이야기를 경청했다. 지인들은 시인을 잘 안다고 생각했으나 전혀 알지 못한 대목에서는 놀라워했다. 그의 삶에 대한 이해와 자신들의 문학 열정이 밀려들자 안타까움과 새 다짐을 동시에 쏟아냈다. 공감은 잠자는 의식을 깨워 지적인 수준을 높여준다. 이 밤 사람들은 시인으로부터 지금껏 듣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묵언의 무게와 번뇌를 안고 살아온 시인의 고독에 대해서.
글에는 작가의 삶이 묻어난다. 시인의 글에는 흙 내음이 나고, 어둑한 자기만의 방에는 스탠드 조명에 의지해 써내려 가던 원고지와 탑처럼 쌓인 책들이 놓여있다. 사십 년을 넘긴 문력(文歷)으로 치자면 펴낸 책이 여느 작가에 비해 그닥 많지는 않지만, 글이 갖는 무게감은 절대 가볍지 않다. 고향인 『상주(尙州)』에 대한 연작시를 500편 가까이 써온 세월이 삼십 년이다.
이날 시인은 ‘동학’과 ‘물’을 이야기했다.
문단에 나오면서 들고나온 화두는 동학(東學)이고, 희수(喜壽)가 되던 해 노란색 표지에 『우리도 사람입니다』 만장 문구 같은 절규를 새긴 다섯 번째 시집을 냈다. 박경리의 『토지』와 송기숙의 『녹두장군』 같은 대하소설에서 다뤘던 역사의 한 줄기 동학사상을 시인은 평생 안고 살아왔다. 자신의 작품세계가 갖는 원류를 단정 짓는다는 건 오랜 시간을 버텨온 작가만의 내공이라야 가능한 일이다.
시인은 철학자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해서가 아니라, 늘 세상에 대해 깊이 천착하는 사색의 글을 써왔다. 어차피 모든 예술은 의미화에 목숨을 건다. 곧이곧대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 문학은 그 선상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시인은 낙동강 700리 줄기에서 가장 절경인 곳에 터를 잡고 집을 지었다. 태백산의 못 황지(潢池)에서 발원해 남해로 흐르는 강.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선비들은 강에서 뱃놀이에 시회(詩會)를 즐기며 후대에 한 사람이 나타나 이를 전승하리라 예견했다고 문헌에 적고 있다. 역사 기록을 쫓아 탐색의 외로운 작업은 오래도록 지속됐다. 시인에게 꿈이 현실이 된 것은 2021년의 일, ‘낙동강문학관‘이 그렇게 갱다불길 100번지에 둥지를 틀었다.
낚시를 즐겨셨던 외할아버지를 종다래끼 들고 따라다니던 소년이 나이 들어그 강변에 우람한 기와집 한 채를 세우리라곤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시인은 문학관 관장직을 맡고서야 『물의 집』이란 시집을 냈다. 젊은 시절부터 줄기차게 써온 ‘물’과 관련된 시만을 선별해 개관을 자축했다. 옛 선비는 배를 타고 달빛을 벗 삼아 시를 읊었으나, 오늘날의 시인은 배가 사라진 터에서 홀연히 시를 낚고 있다.
지금 시인은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북콘서트를 하고 있다. 책이 빼곡하게 병풍을 쳤다. 많은 사람이 오갔던 도청의 로비는 어느새 한적하다. 사방이 조용한 게 강가에 있는 듯하다. 유난히 불빛을 받은 시인의 은빛 머리카락이 윤슬처럼 빛이 난다. 언제 다시 이런 자리에 설 것인가. 그래서 더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예정된 한 시간 반을 곱으로 열강하던 시인은 물러가는 사람들을 위해 몇 자 적는다. 자신의 이름과 날짜를 적던 시인의 등이 칼날을 벼리던 숫돌의 휘어진 등처럼 느껴졌다. 그 등 뒤로 고독이 어깨 너머로 시인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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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희 chk1500@naver,com 010-6505-1500
◆ 주요 약력
-경북 상주 출생
-월간 한국수필 등단(2019)
-수필집 ‘흰눈과 돼지고기?(2023)
-경북작품상(2023), 한국수필독서문학상 최우수상(2024), 달구벌수필작품상(2025), 더수필 빛나는 수필가 선정(2025년, 2026년 2회)
-무크지 <평론가가 뽑은 좋은수필> 발행인.
-현재 데일리한국 대구경북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