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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수태골 → 비로봉(정상) → 동봉 → 염불봉 → 신령재 → 관봉(갓바위) → 갓바위주차장' 13km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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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八公山]
높이: 1,193m
위치: 대구광역시 동구, 경북 경산시 외촌면
대구의 진산으로 198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최고봉인 주봉 비로봉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봉과 서봉을 거느리고 있으며, 마치 봉황이 날개를 편 것처럼 뻗쳐있다.
정상의 남동쪽으로는 염불봉, 태실봉, 인동, 노족봉, 관봉 등이 연봉을 이루고 서쪽으로는 톱날바위, 파계봉, 파계재를 넘어 여기서 다시 북서쪽으로 꺾어져 멀리 가산을 거쳐 다부원의 소아현에 이르고 있다.
특히 동봉 일대는 암릉과 암벽이 어울려 팔공산의 경관을 대표하고 있다. 봉우리의 암벽은 기암이다.
동쪽의 은해사, 남쪽의 동화사, 서쪽의 파계사 및 북쪽의 군위, 삼존석굴(국보 109호) 이외에도 많은 문화유적이 산재해있고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가 많다.
팔공산 관봉(850m)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조성된 단독 원각상 갓바위는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어있으며, 본래의 이름은 관봉석조여래좌상으로 갓바위라는 이름은 이 불상의 머리에 자연판 석으로 된 갓을 쓰고 있는 데서 유래 된 것이다. 갓바위는 누구에게나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을 간직하고 있다.
인기 명산[34위]
대구의 진산인 팔공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갓바위, 동화사 등 볼만한 곳도 많아 특정 계절에 치우치지 않고 사계절 두루 도시민의 휴식처로 인기가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6km에 걸친 능선 경관이 아름다우며 대도시 근교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 도시민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8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동화사(桐華寺), 은해사(銀海寺), 부인사(符仁寺), 송림사(松林寺), 관암사(冠岩寺) 등 불교문화의 성지로 유명하다. - 한국의 산하
대구 팔공산은 소위 100대 명산을 선정하는 단체 모두가 선택했다. 해서 산악회 단골 메뉴라 서둘러 갈 이유가 없어 우선순위를 뒤로 미뤄두었었다. 그런데 10월 1주 목요일은 개천절로, 2주 수요일은 한글날로 공휴일이었다. 그냥 넘기기 아까운 휴일이라 주중 산행을 하기로 했다. 그중 9일 한글날은 애초 12일 오르기로 했던 노추산을 당겨서 가기로 했지만, 3일 개천절은 딱히 갈만한 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산이 갓바위가 있는 대구의 팔공산이다. 개천절에 시끄러운 시국을 진압해 달라고 제를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생각되었다.
대중교통편으로 당일 산행으로 다녀오기로 하고 산행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번에는 태풍 미탁이 올라오고 있었다. 2주 전에는 태풍 타파로 금오산에서 한계 산성 및 천제단[산행기] 탐방으로 변경했었다. 그리고 그전에는 태풍 링링 덕에 태기산에서 장산으로[산행기]. 지난 두 번은 태풍의 영향이 특정 지역에만 미쳐 다른 지역 산에 가면 문제 될 게 없었지만, 이번 태풍은 한반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지라 10월 3일 개천절 산행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폭우를 뚫고 올라도 되지만, 2019년 우중 산행은 지겨울 정도로 많았고, 예보에 따르면 태풍답게 팔공산 기준 풍속 30~40km/h, 강수량 20~40mm라 무리해서 할 산행이 아니라는 판단에 취소하기로 했다.
그때 마침 회사에서 목요일 개천절과 토 주말에 낀 금요일에 특별한 일이 없는 임직원은 연차를 사용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나야 목요일 태풍으로 산에도 못 가고, 그렇다고 금요일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 심드렁했지만, 혹시나 하고 기상청 중기 예보를 확인해보았다. 다행히 태풍의 영향은 목요일까지고 금요일은 날이 흐리기는 했지만, 비가 오가나 하지는 않았다. 그럼 금. 토 연속 산행에 약간의 무리는 있지만, 팔공산행을 금요일로 옮길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금에 대구로 내려가 팔공산행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와 토 아침에 산청 웅석봉을 다녀오는 건 산에서 내리 1박 2일 산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래도 휴일이 아까워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태풍 후 산행이라 뭔 일이 벌어질지 몰라 일단 혼자 산행하는 거로. 그리고 금. 토 연이은 산행인 만큼 목에 팔공산용 배낭과 웅석봉용 배낭을 각각 싸놓을 예정이다. 라면은 일주일에 한 번만 산에서 먹자는 주의인 만큼 금 팔공산용 배낭에 평소처럼 라면, 햇반, 김치와 위스키 등으로 싸고, 토는 뭘 먹어야 할까 계속 고민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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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 기상해 냉장고에 있던 디팩을 꺼내 배낭에 넣고 보니, 간식 또는 비상식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서 부랴부랴 꼬마 소시지 하나, 사과 하나, 미니 핫바 하나를 챙겼다. 서울역발 동대구행 6시 45분 KTX를 타기 위해 5시 58분에 집을 나섰다. 6시 38분에 서울역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KTX에 탑승해 동대구로 향했다. 달리는 기차에서 잠을 청해봤지만, 잠이 오지 않아 패드로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는 거로 시간을 보냈다.
8시 29분 동대구역에 내려 다른 등산객의 산행기에서 읽었던 1번인가 2번 출구를 향해 갔다. 아무리 찾아도 1번 출구는 보이지 않아 2번 출구로 나가니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뭔가 이상해 내가 카페 산행 안내에 올린 지도[보기]를 다시 확인해 보니, 차를 타기 위해 지하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해서 역 주변을 둘러보니 4번 출구 앞에 지하도가 있었다. 지하도로 내려가자 택시 승차장과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가 버스를 기다렸다. 목적지인 수태골 주차장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패드로 길 찾기를 해보니 3분 후에 '급행 1'이 2번 주차장에 도착한다고 나왔다. 그런데 내가 서 있는 곳의 주차장 번호는 1! 길을 건너지 말아야 했다. 다시 길을 건너 2번 주차장으로 가 버스를 기다렸다. 2분후 도착한 급행 1번은 거의 만원으로 동대구역에서 몇 명이 내리고 나를 포함 3명이 탔다. 뒤에 빈자리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아 탑승객의 면면을 보니 등산객이 적었다.
등산객이 적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만 노는 날이지 금요일 평일이었다. 고로 휴일에만 다닌다는 '팔공 3(휴일)'번이 다닌다는 보장이 없었다. 버스에 탄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지도의 "길 찾기"가 시키는 대로 '대구 학생 수련관 입구 앞' 정류장에서 내려서 버스가 없으면 택시를 타기로 했다. 9시 36분경 홀로 학생수련관 입구 정류장에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것도 없는 산 중 도로였다. 당연히 택시가 있을 리 없었다. 해서 길 찾기의 지도를 유심히 보니 목적지인 수태골주차장이 버스 종점에서 1.3km에 불과했다. 결론은 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어야 했다는 거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에서 들머리인 수태골 주차장까지 거리를 확인하니 3.4km에 불과해 걸어가기로 했다. 사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논다고 남들도 다 노는 줄 알았던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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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번 팔공산 산행의 들머리는 수태골 입구에서 대구 학생수련관 입구로 바뀌었다. 먼저 출발하기 전 등산 앱을 기동하고 높이를 보니 해발 140m에 불과했다. 애초 들머리로 생각했던 수태골 입구가 해발 400여 미터가 넘으니 수태골로 올라가는 도로의 상태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길 찾기가 보여주는 지도도 예상대로 지그재그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도로를 따라 올라갈 이유가 없었다. 분명 이 포장도로가 생기기 전에 등산객 또는 신자가 다니던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도로를 벗어나 길을 찾아보니 있었다. 그리고 소수의 인원이 지금도 다니는 거 같았다. 구 등산로로 굽이치는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9시 53분에 동화사 입구에 도착했다.
동화사에서부터 수태골 입구까지는 도로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수태골로 가는 길목에 팔공산 케이블카 출발지가 있었고, 동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도 보였다. 동봉을 향하는 등산로로 접어드는 노인 몇 명만 보일 뿐 주변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버스는 계속 사람을 실어 날랐는데, 다 동화사로 들어갔다. 동화사에서 "승시"라는 축제를 하는 중이었다. 도로를 따라 계속 길을 가 10시 19분에 수태골 입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차가 있었고, 이제 막 도착한 등산객이 차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주차장에서 본격적인 산행 준비를 마치고 사실상의 팔공산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10시 23분이다.
동해안에 큰 피해를 끼친 태풍 미탁의 영향인지 수태골은 엄청난 수량의 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길은 물이 넘쳐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 수태골을 따라 난 정규 코스의 길을 따라가면 비로봉 밑에 이르게 된다. 내가 팔공산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마당에 서봉을 오르고자 했지만, 정규 등산 지도에는 길이 없었다. 그리고 등산 앱에도 길 표시가 없었다. 다만, 앞선 산꾼의 산행기에 성지골로 오르면 서봉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만 믿고 올라갔다. 그리고 지도상으로 봐도 수태골이 아니라 성지골로 오르면 서봉에 갈 수 있었다. 길의 상태는 어떨지 모르지만, 아예 길이 없을 수도.
수태골 물을 동화사 지구 주민의 상수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계곡 출입을 하지 못하게 등산로를 따라 쳐놓은 울타리 너머로 계곡을 구경하며 상류로 계속 올라갔다. 계곡을 끝까지 가보지 않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계곡의 낙차가 심하지 않아 길 상태는 거의 산책로에 가까웠다. 수태골을 따라가며 성지골 합류 지점을 찾기 위해 계곡을 살피고 등산 앱의 지도도 계속 확인했다. 그리고 10시 39분에 마침내 성지골 갈림길에 도착했다. 계곡이 아니라 우리만 아는 표지가 알려주었다. 능선을 향해 오르던 길은 5분여를 지나자 계곡을 따라가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난 길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 앞에 뭔가 움직여 보니 일광욕 중이던 뱀이 급하게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올해 산에서 본 뱀 중에 가장 길었던 거 같은데 길이에 비해 가늘었다. 길고 가는 뱀이라 무슨 종류일까?
계곡을 따라 10여 분 가니 계곡을 따라가던 길이 왼쪽 능선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급경사에 쌓인 낙엽이 미끄러워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길이라고 생각되는 걸 따라 올라갔지만, 길은 아니었다. 그런데 성지골로 접어들고 난 이후 산악회가 매단 리본을 전혀 보지 못해, '산악회도 잘 오지 않는 코스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 11시 12분에 부인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났다. 그 위치가 해발 730m 정도로 서봉 해발 1,150m까지 420m를 더 올라가야 한다. 이 말은 비록 길은 있지만, 급경사라는 얘기다.
급경사를 힘겹게 오르니 앞에 거대한 암봉이 나타났다. 조금 더 올라가자 당연히 이정표도 없는 갈림길이 나왔다. 왔던 길을 따라 위로 직진하는 길과 암벽을 따라 우로 꺾어지는 길이었다. 밑에서 본 서봉의 위치가 오른쪽에 있어 주저하지 않고 오른쪽 길을 택했다. 길을 가로막고 있던 쓰러진 나무를 넘은 후 기다시피 급경사를 올라가는데 앞에서 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살무사가 급하게 도망가고 있었다. 제대로 손을 짚었으면 살무사를 잡았을 수도. 기겁해 뒤로 물러서는 순간 등에선 식은땀이 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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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을 따라가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뒤로 요란한 물소리가 들리는 암벽이 나타났다. 길은 그 암벽에서 끝났다. 일단 그 암벽을 기어오르니 그 너머로 보이는 놀라운 광경. 그 광경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사진으로 찍고, 동영상으로 남긴 후 내가 서 있는 곳을 살펴보니 폭포 위로 서봉이 보이고 그 서봉을 가기 위해서는 거대한 암봉을 넘어가거나, 우회로를 찾아야 했다. 내가 서 있는 암벽 왼쪽으로 마치 성벽처럼 암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쉬워 보이지 않은 코스가 보였지만, 단독 산행이고 암봉 뒤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어 감행할 수가 없었다. 해서 암벽을 내려간 후 갈림길로 돌아가 우회로를 찾아보기로 했다.
암벽을 내려가 갈림길로 돌아가 이번에는 위로 향해 갔다. 그 길에서 이 코스 처음으로 몇 개 산악회에서 나뭇가지에 단 리본을 볼 수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 10여 미터 올라가니 다시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번에는 암벽을 넘는 코스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누가 봐도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암봉을 우회하는 길이었지만, 혹시 암벽을 넘어 뭔가 길 같은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암벽을 넘어 길을 따라가니 아까 뱀을 본 그 장소였다. 다시 돌아가 어쩔 수 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길로 암봉을 우회했다. 그런데 암봉의 암벽에 붙어 돌아가는 중에 암벽에 설치된 추모 철판을 발견했다. 아까는 멀어서 보지 못했던 거다. 추모 문에 의하면 이 암봉이 '신원 바위'인 듯. 누군가 설치한 사다리를 내려가 암봉을 돌아 우회해 서봉 바로 아래 능선에 올라, 왔던 길을 돌아보니 내가 우회한 거대한 암봉이 보였다. 그 암봉 직벽에는 누군가 매달아 놓은 밧줄이 보였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저 밧줄을 잡고 오르거나 내려보기로.
앞에 보이는 작은 봉우리를 오르기 위해 다시 네발로 기어 급경사를 오르는데 햇살 좋은 건조한 낙엽이 쌓인 곳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그쪽을 보니 처음 보는 문양의 뱀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겁해 뒤로 한 발짝 물러나니 내 뒤에서 또 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커다란 살무사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반경 1m 내에 다른 뱀 두 마리가 있다니. 정말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 나도 모르게 펄쩍 뛰어 두 놈으로부터 멀어졌다. 수태골에서 서봉까지 올라오는 3km 정도의 구간에서 뱀 네 마리를 본 거다. 앞으로 뭘 더 보게 될지 무서울 정도였다. 이후 이 산행이 끝날 때까지 절대 손으로 바로 땅을 짚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 후 가능하면 나무를 잡고 다녔다.
마지막 깔딱 100여 미터를 올라 마침내 해발 1,150m 삼성봉(서봉) 정상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36분이다. 서봉에서 보이는 주변의 조망은 괜찮았다. 날씨는 무덥고 후덥지근해 온몸이 땀으로 목욕을 했지만, 덕분에 시야는 좋았다. 학생 수련원에서 9시 36분에 산행을 시작해 3시간 만에 팔공산의 주요 봉우리 중 하나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인증을 찍고 팔공산의 상봉인 비로봉을 보니 온갖 안테나와 천문대로 보이는 시설이 정상에 자리 잡고 있어, 마치 다른 세상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때 앞선 산꾼이 쓴 산행기에서 비로봉을 "개방"한다는 내용이 생각났다. 혹시 그 "개방"이 휴일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 개방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어차피 저기가 내가 가야 할 길이니 서봉에서 주변을 조망한 후 비로봉을 향해 갔다.
비로봉을 향해가는 길은 높게 쳐진 철조망을 따라 나 있었고, 어느 순간 길이 없어졌다. 뭔가 이상해 주변을 살펴보니 철조망은 계속되었지만, 길이 끊겼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다 혹시 철조망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철조망에 접근해 조금 따라가니 철조망 한 칸이 통째로 훼손된 부분이 나타나고, 길은 그 훼손된 부분을 통과해 비로봉 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비로봉 쪽에는 서너 명의 등산객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 비로봉, 동봉 갈림길에 도착하니 위에서 등산객 한 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해서 쓸데없는 수고를 덜기 위해 "비로봉에 갈 수 있나요?"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등산객이 뭔 소리지 하는 투로 "당연히 올라갈 수 있어요."하고 답했다. 난 비로봉 개방이라는 의미가 방송국 안테나 시설 내에 비로봉이 있어서 거기에 가기 위해서는 철책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대구에서 한 건지, 방송국에서 한 건지 모르겠지만, 비로봉만 쏙 빼고 철책을 디귿 자 형태로 설치한 거였다. 고로 사시사철 늘 개방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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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르는 길에 비로봉 천제단임을 알리는 비석이 있었다. 팔공산 비로봉에도 천제단이 있었구나, 갓바위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럴 줄 알았으면 제물이라도 들고 올 걸 하는 후회가. 비로봉에 도착하니,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을 부탁해, 몇 장 찍어 주고, 제단에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걸 꺼내 - 물론 버너, 코펠, 라면 등은 빼고 - 제물을 차렸다. 그리고 절을 할 분위기가 아니라 간단히 묵념하고 그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애초 라면을 끓여 먹을 생각이었지만, 귀차니즘에 사과와 꼬마 소시지, 위스키 몇 잔만 먹기로 했다. 그리고 길을 가다 혹시 배가 고프면 라면을 먹기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인증을 찍은 후 1시 45분에 다음 봉우리인 동봉을 향해 떠났다.
다시 동봉, 비로봉, 서봉 갈림길로 내려가 440m 떨어진 동봉을 향해 출발했다. 동봉을 오르는 깔딱을 지나 고개를 도니, 갑자기 동봉 정상 아래로 나타난 부처를 보고 놀랐다. 아니 해발 천이 넘는 곳에 마애불이? 내가 아는 한 마애불로는 남한 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부처다. 마애불 밑에는 제단이 있었고 시주한 공양미가 있었다. 그리고 작은 전각이 있어 열어보니 한쪽에 향이 쌓여있었고, 산불이 나지 않게 전각 안에 향을 피워 놓았다. 물론 정성이 지극한 신자는 초를 가져와 초도 피워 놓았다. 해서 나도 시주를 하고, 향 세 개를 꺼내 불을 붙여 향로에 꽂고 가볍게 묵념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나 동봉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2시 17분 동봉 정상에 올라서니 등산객 예닐곱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동봉에서 보는 주변의 조망은 훌륭했지만, 관봉(갓바위) 쪽으로 보이는 골프장의 흉물스러운 모습이 그 절경을 반감시켰다. 어쨌든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으로도 남기고 7.3km 떨어진 갓바위를 향해 출발한 시각이 2시 20분이다. 동봉에서부터 관봉(갓바위)에 이르는 7.3km의 구간에는 염불봉, 신령봉(유봉지맥), 삿갓봉, 은해봉, 노적봉 등의 1,100m에서 900m에 이르는 봉우리가 있어 기복이 심하다. 그리고 간간이 암봉도 있어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날은 후덥지근하고 땀은 비 오듯 하는데, 얼려간 물은 얼음이 녹지 않아 전혀 쓸모가 없어 갈증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디팩에 들어 있는 생수를 꺼내 마실까도 생각해봤지만, 그 물은 비상시 라면을 끓이기 위한 용도라 최악이 아니면 참기로 하고 계속 길을 갔다. 등산로를 따라 갓바위를 향해 정신없이 가는데 정규코스가 아닌 갈림길이 나타나고, 아래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볼 것도 없이 바로 그 비정규 탐방로를 따라 50여 미터 내려가 지난 태풍에 생긴 거로 보이는 작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물통에 받아 먼저 한 모금 마신 후, 그 물통을 배낭에 꽂았다. 이후 다시 갈림길로 돌아가 갓바위를 향해 갔다. 4시 16분에 골프장의 정상인 삿갓봉에 도착했다. 5시가 넘자 갑자기 안개가 몰려오며 날이 흐려졌다. 그리고 20여 미터 앞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마침 그때 노적봉을 지나고 있었는데 동봉에서 관봉(갓바위)까지 오는 동안 유일하게 본 등산객이 노적봉 아래에 앉아 혼잣말하고 있었다. 뭔 말을 하는지 듣고자 했던 건 아니지만, 그 뒤로 지나가는데 그의 말이 들렸다. 말인즉 "일몰을 보려고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이게 뭐야?"였다. 내가 그 입장이라도 아마 무척 짜증이 났을 거다. 지금까지 쨍쨍했던 날이 갑자기 안개가 끼어 이제는 10m 전방도 제대로 구분이 안 될 정도니. 내가 보기에 갓바위에 왔다가 노적봉에서 일몰을 보기 위해 많이 기다린 거 같았다.
그 일몰꾼을 뒤로 하고 관봉을 지나 악명 높은 갓바위를 오르는 계단에 도착했다. 몇 계단을 오르자 눈에 띄는 표시가 보였다. 1,365 계단 중 1,303번째 계단이라는. 나는 60여 개만 더 올라가면 되지만, 처음부터 시작한 신자는 1,365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갓바위의 부처가 무슨 소원이든 하나는 들어준다는데 계단을 오르는 고행을 했기 때문인가? 뭐든 60여 계단을 오르자 절집이 나타나고 그 절집을 돌아가자 안개에 싸인 '석조 여래 좌상'이 나타나고 그 앞에는 간절히 뭔가를 갈구하는 신자들이 오체투지하고 있었다. 그 시각이 5시 47분이다. 주변을 구경하고 나도 삼배를 올린 후 다시 계단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 그 입구에 있던 자판기에서 식혜를 뽑아 먹었다. 봉 감독과 같이 다니다 든 습관 중 하나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시간에, 올라온 계단은 아니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1,365개의 계단을 내려갔다. 와중에 먼저 내려가던 부부를 지나쳤는데, 남편이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다. '올라오는 건 모르겠지만, 내려가는 건 힘드니 이런 곳에는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한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그리고 좀 지나자 말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힘들게 올라와 지성을 들여놓고, 그 지성을 말로 다 갚는다고 뭐라고 했다. 두 부부의 대화를 뒤로하고 나는 달리다시피 계단을 내려갔다. 애초 그 계단만 다 내려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계단 끝에서 관암사가 있었고, 관암사에서도 1km가량을 내려가야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해 이번 산행을 끝낸 시각이 6시 4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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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차장에 도착할 때, 마침 버스가 들어오고 있어 바로 출발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대략 20여 미터를 뛰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런데 정류장에는 손님 몇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걸 본 버스를 포함, 두 대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막차 시간을 알았더라면 굳이 뛸 필요가 없었을 것을. 정류장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6시 50분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가 승차장으로 왔다. 생각보다 많이 기다리지는 않았다. 버스에 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코레일톡'으로 동대구에서 서울 가는 KTX를 검색해 보았다. 길 찾기 앱에 따르면 동대구역에 7시 43분경에 도착할 예정이라 그 이후의 시간대 기차를 확인해 보았다. 가장 빠른 건 7시 50분 차! 지정석과 자유석은 이미 매진이고, 동대구에서 대전까지는 1호차 대전에서 서울까지는 6호차로 앉아 가는 메뚜기 자리가 있어 바로 예매했다. 이런 자리도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그런데 이 버스가 시내에 접어들자 교통체증으로 지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앱이 알려주는 동대구역 도착 시각이 계속 늦어지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동대구역으로 들어가 승차장까지 가는 시간도 고려해야 해 도저히 7시 50분 차는 탈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해 예매한 표를 1,400원의 위약금을 물고 취소했다. 그리고 다음 차를 검색하니 8시 1분 차에 자유석이 있어 바로 예매했다. 7시 45분에 동대구역 1번 정류장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서둘러 동대구역으로 갔다. 그 시간도 대략 3분 정도 걸린 거 같다.
동대구역에서 승차장을 찾아 역 구내를 지나는데 편의점이 보였다. 마침 배도 고파 뭔가 요깃거리를 찾아 거기로 들어갔다. 뭘 먹을까 고민하며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눈에 띈 도시락! 도시락을 하나 들고 계산을 하려고 가니, 한 노인이 나와 같은 도시락과 음료수를 들고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 음료를 보자 나도 뭐 음료를 사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시락에 물 이상 가는 음료가 있을 리 없어, 물통에 담아온 팔공산 산삼, 백사, 더덕, 멧돼지, 도라지, 고라니 썩은 불로장생수를 마시기로 했다. 노인의 계산이 끝나고 나도 계산을 하고 난 시각이 7시 53분이었다. 그 노인은 부산으로 가는 차를 타야 하는데 어디서 타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해서 내가 같이 가 승차장을 알려준 이후 서울행 승차장으로 가 막 들어오고 있던 KTX에 탔다. 자유석은 처음 타 보았지만, 지정석보다 오히려 더 좋았다. 앞으로 자유석만 탈 예정. 어쨌든 자리를 잡고 앉아 배낭에서 남은 위스키 꺼내 저녁을 먹었다. 건너 옆자리에서 그걸 지켜보던 중년 남성이 본인도 가방에서 뭘 꺼내 먹기 시작했다.
몇 번의 환승 과정을 거쳐 집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30분경이다. 내일 새벽에 산청 지리산 웅석봉으로 떠나야 해 배낭을 다시 싸야 했지만, 가져간 배낭에서 간식과 위스키 외에는 꺼낸 게 없는 만큼 특별히 배낭을 다시 쌀 건 없었다. 부족한 위스키를 다시 채우고 음식이 든 디팩은 다시 냉장고에 넣고 물통에 결명자차를 넣어 냉동실에 넣었다. 그리고 카메라의 모든 사진을 PC로 옮기고 충전기를 꽂았다. 패드, 보조 충전기, 핸드폰 등 모든 전자기기에 충전기를 꽂은 후 샤워로 이번 산행을 마감했다.
애초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게 '대구학생수련관입구앞 → 수태골입구 → 수태골 → 성지골 갈림길 → 성지골 → 신원 바위 → 삼성봉(서봉) → 오도재 → 비로봉 → 미타봉(동봉) → 염불봉 → 신령봉(유봉지맥) → 삿갓봉 → 은해봉 → 노적봉 → 관봉 → 갓바위 → 갓바위 주차장' 20.19km(트래글 기준), 9시간 15분의 산행이었다. 이동 8시간 18분, 휴식 57분. 그중 수태골 입구에서 성지골을 거쳐 삼성봉(서봉)에 이르는 3.5km, 해발 696m를 올라가는데 2시간 16분이 걸렸다. 물론 성지골 코스는 길다운 길이 없었다.
팔공산 꼭 가봐야 하는 산이다. 갓바위는 뭔가 바랄 게 있을 때, 등산은 서봉, 비로봉, 동봉. 추천은 이번 산행처럼 서봉에서부터 관봉(갓바위)까지 종주하는 거. 그 역이나.
신원 바위, 암벽 정상에서 보이는 거대 물줄기? 폭포는 꼭 봐야 한다.
서봉에서 관봉까지 달리며, 광청종주 대신에 이런 종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비만 8만 원이 넘지만, 서울 기준 해발 1,000여 미터를 넘는 능선 10km여를 당일에 달리는 게 가능한 산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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