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초시학인문 해설
《초발심자경문》은 보조국사 지눌이 지은 《계초심학인문》과 원효 스님이 지은 《발심수행장》, 그리고 야운 스님이 지은 《자경문》을 합본하여 《초발심자경문》이라는 이름으로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강원과 사찰의 생활규범으로 읽혀 왔다.
그런데 각각의 책들이 언제부터 《초발심자경문》이라는 이름으로 합본되어 한 권으로 묶여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자경문》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허흥식 교수와 종진 스님의 연구결과에 의해 고려말에 살았던 야운 스님으로 확실시됨에 따라 이로 미루어 본다면 이 책의 합본은 아마 조선초 이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보조국사가 지은 《계초심학인문》은 줄여서 흔히 ‘초심’이라고 하며 《발심수행장》은 ‘발심’이라고 한다. 《자경문》은 ‘자경서’라고도 부른다. 자세한 해설은 각 책의 앞머리에서 서술하기로 한다.
처음 불법을 배우고자 발심한 사람, 즉 초발심학인을 위하여 경계한 글이다.
이 《계초심학인문》의 저자는 고려시대의 불일보조국사이다. 보조국사의 휘는 지눌이고, 자호는 목우자이며, 시호는 불일보조국사, 탑호는 감로라 한다.
1158년(고려 제 18대 의종)에 지금의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정씨, 아버지는 국학학정인 광우이고, 어머니는 조씨로서 지금의 아산군 온양면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몸에 병이 잦아 여러 방면은로 약을 구하였으나 쾌차함을 얻지 못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출가시킬 것을 발원하고 불전에 기도하였다. 이에 감응이 헛되지 않아 병이 나았다. 그리하여 1173년 (명종 3)에 품일의 운손 종휘 선사에게 출가시켜 구족계를 받게 하니, 그때 나이 16세였다.
1182년 (명종 12), 선사의 나이 25세 때에 선과에 합격하였고, 경기도 안성의 청원사에 이르러 《육조단경》을 보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 속세를 피하고 도를 구하기 위하여 지금 예천 학가산 보문사에 들어가 대장경을 보았다. 특히 이통현의 《신화엄론》 (40권)을 보다가 원돈의 신해가 투철하였다. 또 32세 때에는 뜻있는 도반들과 함께 팔공산 거조사에서 정혜결사를 하고 철저히 수행하였다.
국사는 일정한 스승이 없이 도를 구하였는데, 1198년 (신종 1)에 도반과 함께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수도하여 깊은 뜻에 계합하였다.
1200년(신종 3)에 송광산 길상사로 옮겨 크게 법을 베푸니 스님들과 세속불자들이 모여들어 큰 총림을 이루었다. 선사의 나이 43세 때였다. 이에 수선사의 청규로 제정한 것이다.
이들에게 주로 《금강경》. 《육조단경》. 《화엄론》. 《대혜어록》으로써 지침을 삼게 하고, 성적등지문. 원돈신해문. 간화경절문의 세 문으로 하여금 수행하게 하였다. 억보산의 백운정사와 적취암 등은 모두 보조국사가 창건하여 왕래하면서 수도하던 도량이다.
1205년 희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명으로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길상사를 수선사로 각각 고치고, 친필로 액자를 써서 만수가사 1령과 함께 보냈다.
1210년(희종 6) 3월 27일 법상에 올라 앉아 설법하시다가 주장자를 잡으신 채 그대로 입적하시니 세수는 53세요, 법랍은 36세였다.
왕이 문신 김군완에게 비문을 짓게 하d였으나, 병화 중에 귀부만 남았던 것을 1678년(숙종4) 백암성총 스님이 다시 세워 송광사 비전에 전하고 있다.
스님의 저서로는 《계초심학인문》 1권, 《정혜결사문》 1권, 《수심결》 1권, 《진심직설》 1권, 《화엄론절요》 3권,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1권, 《원돈성불론》 1권, 《간화결의론》 1권, 《염불요문》 1권, 《상당록》 1권, 《법어》 1권, 《가송》 등이 있다. 이 저술 중에 《상당록》. 《법어》. 《가송》 등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남아 있어서 수도인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그 동안 《계초심학인문》은 얼마나 판각. 인쇄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883년 (광서 9) 판이 현재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는데 1579년(만력 7) 신흥사에서 각판한 것을 중간하였다는 간기가 있다.
또 언해본은 현재 순천 송광사와 해인사 시간판권에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중국의 명장과 상해 양인산이 봉간한 《빈가대장경》에도 입장되어 있고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에도 수록되어 있다.
《계초심학인문》은 1397년에 상총 선사가 조계종의 총본산 흥천사 제 1세 주지로 부임하여 왕의 뜻을 받들어 전국의 사찰에 청규법(스님들의 생활규범)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이 책은 오늘까지 스님들의 기초과정인 사미과의 교재로 편입되어 필독서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해방 후 1945년에 이종욱 스님의 번역본이 있고, 1963년 이운허 스님의 번역본(팔공산 동화사 간행)이 있으며 근래 한정섭. 심재열. 이혜성 스님의 역해가 있고, 또 탄허 스님의 번역본이 있으며, 법정 스님의 번역이 송광사 수련교재에 실려 있다.
그 내용은 처음 불법을 배우고자 하여 발심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밝힌 것이다. 이 《계초심학인문》은 1203(희종 1) 동월에 수선사의 낙성과 함께 선포한 것으로 총 908자이다. 이 글은 우리나라 선종의 사찰에서 지켜야 할 청규로는 그 효시가 된다.
처음 마음을 발하여 믿음을 낸 이가 지켜야 할 기본자세인 불교의 윤리에 대하여 계를 받되 잘 지키고, 범하고, 열고, 막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여 계율제정의 과정과 그 내용을 알아야만이 적극적 실천을 할 수 있다는 데에 강조점이 주어져 있다.
이 같은 계율관은 부처님께서 2,500여 년 전에 제정한 그름을 방지하고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제정한 뜻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타당한 적극적 수행참여의 법을 간명하게 나타낸 것이다. 아무리 출가, 입도하더라도 계율을 배우지 않으면 수행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사미승의 행동규범을 가르친 조항 23가지를 살피고,
둘째로는 총림(수선사)에서의 위의를 가르친 부분으로 서로 보호해야 할 여섯 가지를 말씀하셨다.
셋째는 승당에서의 집단생활에 관한 사항을 말씀하셨다.
넷째로는 사당승의 바른 믿음을 확립토록 하는 부분이다. 선원에서 주의해야 할 점과 법문을 듣고 법사를 존경하는 법 등으로 설하였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뒤 계율에 관한 관심은 지대하여 백제의 성왕(재위 523-553) 때에 담욱, 혜인에 의하여 《오부율소》 36권이 찬술되고, 신라의 원광(?-630), 자장(?-650). 원효(617-686) 등을 거치는 전통을 이어받아 고려시대에 와서 선원의 일상생활의 청규를 율장에 의거, 제정함으로써 출가사문이나 재가의 불자라도 불타의 제계정신을 받들어 불교의 기본이상을 확립시키려는 실증적 사상이다. 목우자의 이러한 사살은 한국선종의 중심사상이며 오늘날에도 총림청규에 의해 면면이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