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홍 씨 족보의 역사는 1709년(숙종 35) 기축년(己丑年)에 당시 경상도 관찰사이셨던 홍만조(洪萬朝)께서 초보(初譜)를 간행하신 것이 풍산홍 씨 족보의 시초이다.
기축보(己丑譜)가 간행된 뒤 58년만인 1767년(영조 43) 전라도 관찰사 홍낙인께서 간행한 정해수보(丁亥修譜)가 두 번째 족보이며, 이어서 165년이 지난 1932년 일제치하에서 간행된 세번째 족보인 임신수보(壬申修譜) 요, 30년 뒤 1962년에 네 번째 족보인 임인수보(壬寅修譜), 다섯 번째는 23년 후인 1985년 간행된 을축수보(乙丑修譜), 다시 23년 후인 2008년 무자보(戊子譜)가 여섯 번째이다.
고서경매를 통해 풍산홍씨 평은공파보(平隱公派譜)를 모셔왔다.
평은공의 휘는 천기(千㼄) 字는 汝奎(여규), 號 평은(平隱)으로 남평공계 반환공파에 이은 두 번째 계파의 중시조님 이시다.
비록 대동보는 아니지만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계보를 잊지 않으려는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중일전쟁중 일본군에 지원하면 성씨(姓氏)를 주었지만 풍산홍 씨는 일본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고 본다.
간행 시기는 崇禎紀元五周庚申肇秋下澣(숭정기원오주경신조추하한)이다.
숭정기원원년은 1628년으로부터 五周(다섯번째) 庚申(경신 1920) 肇秋(이른가을) 下澣(하순) 불초 후손 承祚가 공경히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