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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면 기념비 주변 잔듸만 유독 풀이 죽어 있어요. 오히려 흐뭇합니다. 누군가는 한번쯤 기념비를 둘러봤다는 것이니까..."
김선호 교장(광주효광중학교)의 말이었다. 김 교장이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담장을 허물어 그곳에 통일기념비를 세우는 문제를 논의에 붙인 것은 지난 해 3월경. 이 학교에 부임하고 난 바로 얼마 후였다. 그러나 전혀 예상 밖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참담한 결과였다. 예산도 예산이려니와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구 이름을 새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교장이라고 내 이름을 새기자고 하는 것도 아니다. 금강산 관광도 중단되고, 개성공단도 지지부진하고, 6.15 공동선언의 의미조차도 희미해져 가는데, 그대로 보고만 있을수 없지 않는가"
먼저 담장을 허무는 일에 착수했다. 전주언 서구청장을 만났지만 예산 지원을 요청했지만 적지 않는 예산 부담에 거듭 난색을 표명했다.
"담장을 허물어 동산을 꾸미고자 하는 데는 또 다른 숨은 뜻이 있다. 광주 시민들치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 하지 않은 사람 있는가.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냐. 이곳에 바로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 염원비를 세우고자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나"
진의를 알게 된 서구청장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행여 어느 하나라도 차질이 빚어지면 안 될 일이었다. 본인 일로는 어디서 아쉬운 소리 한번 해 본일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것을 따질 개제가 아니었다. 서구청에 이어 광주시의회, 심지어 지역 국회의원의 소매를 붙잡고 아예 담판을 지었다. 확약을 얻어 내기 위해서였다.
6천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늘푸른 동산이 조성된 건 올 봄. 음침하고 칙칙하던 담장을 걷어낸 그곳엔 조경수와 조경석이 옹기 종기 들어서 학교 얼굴부터가 달라졌다. 학교 뿐 아니라 주변 동네 골목까지 밝고 환해졌다며 동네 주민들부터 먼저 반겼다. 그러나 이는 다만 하나의 관문일 뿐이었다.
"다시 회의에 붙였죠. '이제 동산이 만들어졌으니 이 한켠에 통일염원비를 다시 추진해도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번엔 정 반대의 결과가 나왔어요. 됐다 싶었죠"
그러나 마냥 일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를 통해 학생, 교직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통일기념비 조성을 위한 성금모금에 나서기로 했으나, 뜻하지 않게 한 언론이 이를 문제 삼고 나선 것.
"규정위반이라는 거예요. 비용 문제도 없지 않았지만, 그 보다는 이왕 지역 주민, 학생, 교직원, 학부모들이 통일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십시일반 하는 것이 뜻이 있겠다 싶었던 거죠. 나중에라도 누군가는 영원히 가슴 속에 통일을 기억할 것 아니겠어요?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기도 했고..."
아쉽지만 결국 학교 예산을 들이는 방법 밖에 없었다.
우여곡절끝에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일인 지난 6월 15일. 이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아진 덕분이었다. 국전에서 3번이나 수상한 서예가 임춘식 선생은 기꺼이 글씨를 내놨다. '솔직히 돈은 없다. 다만 당신의 글씨를 꼭 여기에 새기고 싶다'는 김 교장의 진심어린 뜻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 기념비는 원석 자체를 다듬어 만든 것이었는데, 멀리 충남 보령까지 가서 구해왔다. 취지를 듣게 된 그 석재상 역시 원가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마음을 보탰다. 자매결연을 맺어 온 낙도인 완도 청산중학교에서도 기꺼이 100만원을 보태왔다. 그 밖에 일일이 세지 못할 많은 분들이 마음과 정성을 보태고 보탰다.
기념비에 새길 글귀 하나를 정하는데만 무려 1달여의 기간을 거쳤다.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공모에 부친 것이다. 최종 2개의 문구 중 다시 국어 교사들에게 의뢰해 다듬고 다듬은 기념비는, 이명박 정부들어 6.15 공동선언마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던 지난 6월 15일 그렇게 세상에 얼굴을 내 밀었다.
"우리의 소원은 겨레의 통일"
2009년 6월 15일
광주효광중학교. 청산중학교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기념비 주변에 작지만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또 다른 돌들.
"이건 제주도입니다. 가운데 파인 것은 백록담이고. 저쪽은 울릉도. 또 그 옆에는 일본이 건뜻하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해서, 아예 독도까지 새겨 뒀습니다. 독도가 두개의 섬들로 되어 있다고 하기에..."
기념비 주변에 자리잡은 작은 돌들에 숨은 그 의미를 안 것은 솔직히 이번이 처음이었다.
통일염원비 제막식이 열린 지난 6월 15일. 기념비 앞에는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등 각계 인사와 함께 완도 청산중학교 및 광주 효광중학교 교직원, 학생, 학부모들이 함께했다. 특별히 초대받은 가까운 지역 경로당 어르신들이 맨 앞 외빈석 한 자리를 차지한 것 또한 물론이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알았을까요?. 이 사실을 아셨다면 좋아했을텐데..."
팥죽이나 나누자며 삼삼오오 모인 어느 10월 초가을의 저녁. 어둠속에서 던진 어느 회원의 말이었다.
모르긴 하지만 휴전선 이남에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을 기념하는 기념 표지석 하나 제대로 있는지는 의문이다. 심지어 6.15 공동선언의 당사자인 대한민국 정부 어느 기관에서조차 비록 그것이 체면치레라도 어디 한군데 그런 것이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제막식이 열린 그날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느 정치권 한 군데서도 이날 이 뜻 깊은 자리를 주목해 본 곳은 없었으며, 극히 한 두 곳을 제외하곤 심지어 지역 언론들에서조차 그리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 진실은 알려지게 되는 법.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이 깜짝 놀랄만한 일이 뒤늦게 아고라와 블러그, 카페를 타고 알려지게 되면서, 착잡해 있던 많은 전국의 많은 이들에게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한 충격을 안긴 것이다.
사연많은 이 통일염원비 뒷면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늘푸른 동산>에
원래 하나였던 우리 겨레가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통일의 과정과 절차는 민주적으로
어떠한 경우라도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되어
세계 인류 역사에 공헌하는 나라와 겨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광주효광중학교와 청산중학교(전남 완도)의
교직원과 학생 및 학부모와 지역사회 주민의
뜻을 모아 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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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글을 읽으며 저절로 저절로 눈물이 나옵니다.ㅠㅜ 교장 선생님 존경합니다.ㅠㅜ
나중에 짬을 내서 꼭 한번 들러보세요. 통일비는 낮에는 학생들과 밤에는 지역주민들과 그렇게 함께 살아숨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