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는 지혜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지혜자와 우매자가 같은 운명을 맞이하는 것을 강조하며 지혜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12절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해 아래 세상의 허무함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전도자는 누구보다 슬기로운 왕으로서 부와 권력을 총동원해서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한 탐구를 마치고, 세상의 지혜를 얻는 것도 헛되다고 결론 내립니다(15절). 새로운 왕이 등장해도 이미 했던 연구를 반복할 뿐이고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새로운 인물이 우리를 허무함에서 구원하리라는 기대도 허무할 뿐입니다. 허무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에게 없습니다. 해 너머 하늘로 눈을 뜨는 수 밖에 없습니다.
13-15절 지혜는 어리석음보다 낫지만, 지혜가 인생을 허무에서 건져내진 못합니다. 지혜자든 우매자든 자기에게 닥친 운명을 피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불현듯 고난이 닥치는데 지혜는 속수무책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지혜의 유익이 있으니 무시해선 안 되지만, 지혜를 과신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고통의 현실 앞에서 구해야 할 것은 지혜보다 은혜입니다.
16절 죽음 앞에선 지혜자와 우매자가 동일합니다. 우매자가 당한 죽음을 지혜자도 똑같이 당합니다. 많은 업적을 남겨도 세월이 흐르면 똑같이 잊히고 맙니다. 살아서 누린 것은 달라도, 죽어서 누울 자리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죽음이 있는 한 허무함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수고를 낱낱이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영생과 부활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 삶은 죽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17절 전도자는 결국 삶을 혐오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다를바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자. 살아갈 의미와 이유마저 잃어버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전도자의 깊은 고뇌는 곧 새로운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미워할 만큼 삶에 대해 고심한 그로부터 삶의 찬미가 들려올 것입니다. 깊은 앓음의 과정을 통과할 때 참된 앎에 이릅니다. 허망한 인생에 절망해 본 사람만이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한 소망을 갖습니다. (매일성경. 2022.11/12. p.102-103. 죽음 앞에서는 다 평등합니다. 전도서 2:12-17에서 인용).
① 전도자는 지혜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지혜자와 우매자가 같은 운명을 맞이하는 것을 강조하며 지혜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해 아래 세상의 허무함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전도자는 누구보다 슬기로운 왕으로서 부와 권력을 총동원해서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한 탐구를 마치고, 세상의 지혜를 얻는 것도 헛되다고 결론 내립니다(15절). 새로운 왕이 등장해도 이미 했던 연구를 반복할 뿐이고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새로운 인물이 우리를 허무함에서 구원하리라는 기대도 허무할 뿐입니다. 허무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에게 없습니다. 해 너머 하늘로 눈을 뜨는 수 밖에 없습니다.
② 지혜는 어리석음보다 낫지만, 지혜가 인생을 허무에서 건져내진 못합니다. 지혜자든 우매자든 자기에게 닥친 운명을 피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불현듯 고난이 닥치는데 지혜는 속수무책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없습니다. 지혜의 유익이 있으니 무시해선 안 되지만, 지혜를 과신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고통의 현실 앞에서 구해야 할 것은 지혜보다 은혜입니다.
③ 죽음 앞에선 지혜자와 우매자가 동일합니다. 우매자가 당한 죽음을 지혜자도 똑같이 당합니다. 많은 업적을 남겨도 세월이 흐르면 똑같이 잊히고 맙니다. 살아서 누린 것은 달라도, 죽어서 누울 자리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죽음이 있는 한 허무함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수고를 낱낱이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영생과 부활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 삶은 죽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④ 전도자는 결국 삶을 혐오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다를바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자. 살아갈 의미와 이유마저 잃어버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전도자의 깊은 고뇌는 곧 새로운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미워할 만큼 삶에 대해 고심한 그로부터 삶의 찬미가 들려올 것입니다. 깊은 앓음의 과정을 통과할 때 참된 앎에 이릅니다. 허망한 인생에 절망해 본 사람만이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한 소망을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