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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해양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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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비늘 / 이서진
햇빛이 가장 깊은 시간
반짝이는 모든 것들은 비늘이다
골목 구석에서 웅크린 것들조차 파르르 몸을 떨며 떠오르고
깨진 병조각과 찌그러진 캔, 버려진 채 비린 시간을 견뎌온 것들
출렁이는 각자의 길을 따라 헤엄친다
후포 어시장 한 가운데
비린내 가득한 천막 안에서 생선을 파는 여자
도마를 내리치는 예리한 칼 위로 비늘이 날아든다
그녀는 온몸에 반짝이는 비늘을 붙이고
얼음 위에 몸을 내민 생선들의 숫자를 센다
고무장갑을 벗은 여자의 손바닥 위
지워진 지문의 흔적을 바라본다
수많은 세월을 흘러온 그녀의 지문은
비늘처럼 떨어져 어느 골목을 헤매고 있을까
햇살이 굴곡 없는 여자의 손끝을 더듬고 있다
오랫동안 수많은 생물을 골라낸 여자의 손끝
어두운 뒤편에 버려진 것들은
문신처럼 박힌 지문을 끌어안고 잠들었을까
그녀는 어떤 표정으로 벗겨진 손끝을 닦아냈을지
마치 수조 같은 천막아래 갇힌 여자의 눈동자가
투명한 벽 너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ㅎ공을 헤엄치는 골목의 비늘들은
찬란한 햇빛의 궤적을 따라 거리 사이사이로 쏟아지고
사람의 정수리가 하늘을 향해 반짝이고 있다
손바닥 끝 지문들은 마지막 남은 비늘의 흔적일 것이다
출렁이는 햇살의 벌판을 힘차게 떠돌던
싱싱한 어조이었음을 증명하듯
그녀는 쏟아지는 한낮을 향해 반짝이는 칼날을 들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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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넙치가 사는 법 / 강태승
바닥에 엎드리면 햇빛에도 들키지 않는다
파도가 뒤집어도 한결같이 부동
코도 베어가는 저 아수라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닥과 일치하는 것
바닥아래 바닥 없고 바닥 위에 바닥 없어
깨질 수도 깰 수도 없는 바닥에 누우면
아래로 휘어지는 것은 붉고 맑아,
차라리 바닥의 재료 되어버린 등짝
저승과 맞닿은 바닥에서 올려보면
해와 달도 평화롭게 시간을 달린다
이 섬 저 섬 사이로 쏘다니는 바람
끝끝내 움직이지 않는 바닥 때문이고
낮과 밤에도 쉬지 않고 정지하고 있어
넙치는 바닥의 무게와 같은 방향이다
소음 돌아가면 달랑 바닥만 남는다
등대가 지키는 외로운 바다를
덜거덕거리는 나룻배가 가끔 깨웠으나
바닥은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늘 안전하게 죽어 있어
바닥 난 주제에 바닥에누워도
도망치지 않는 바닥으로 안전한 목숨,
종일 조개 줍던 강씨, 엉덩이 툭툭 털고
인사 없이 가도 나무라지 않는 바다에
눈이 내린다 죽어 내린다 다시 내린다
눈이 어떻게 내리는지 가운데를 받는
외면하지 않고 자리를 나누는 내어주는
깊이가 없으면서 깊고 고요한 바다에서,
넙치는 자신의 바닥을 내재율로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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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햇빛 채굴 / 김겨리
염전이 바다를 가둬 놓고 햇빛이 탁란한 알들을 포란하고 있다
수평선이 해풍을 물어다 먹이는 물의 종족,
간만의 차로 태몽을 꾼 뒤라야 옥양목빛 결정체로 부화된다
몽고점이 흰 것은 바다의 후예라는 증표
늙은 염부가 사금에서 간수를 뺀 소금을 캐고 있다
가계를 직조하는 고무래질마다 드러나는 가문의 뼈대
햇빛을 담았다 펴냈다 하는 것은
부력을 증발시켜 바람을 채로 거르는 일,
달빛 처마에 걸린 거미줄이 해풍을 클래식처럼 엮는 밤
혼자 배부른 달의 헛구역질이 심상찮다
어둠은 격자무늬로 뼈가 촘촘해지고
중력을 겉돌며 달이 물질하는 것은 태양이 뜨는 각도를 지켜보는 일
염전이 타들어갈수록 바다의 육질을 더 단단해지고
염부의 마른 입술이 해수면의 필체로 밀물과 썰물의 행간이 될 때
수평선에 묶인 목줄을 풀고 원 없이 컹컹 짖는 바다를 본다
만삭인 염전의 산기로 바다의 포궁이 열릴 즈음
수평선으로 한 올 한 올 엮은 후릿그물을 힘껏 당긴다
퍼덕거리는 하얀 지느러미, 묵직한 손맛
쓸어 담은 삼태기에 방류한 갯것의 고딕체가 가득하다
햇빛의 골조로 낚은 천일염이 뻐끔거린다
낡고 오래되어 허물어질 듯 위태로운 소금 창고에
벽돌을 쌓듯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흰 월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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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천강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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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나비물 / 유종인
박수소리를 듣는다 그 수도가 박힌 마당은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콸콸콸 물의 박수를 쳐준다
꾸지람을 듣고 온 날에도 그늘이 없는 박수소리에
손을 담그고 저녁별을 바라는 일은 늡늡했다
그런 천연의 박수가 담긴 대얏물에 아버지가 세수를 하면
살비듬이 뜬 그 물에 할머니가 발을 닦으셨다
발등의 저승꽃에도 물을 줘야지
그런 발 닦은 물조차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한 번 박수를 부은 물의 기운을
채송화 봉선화 사루비아 눈치 보는 바랭이풀 잡초까지 물너울을 씌워주고도
박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쯤을 남긴
세숫대야 물을 내게 들려 손님을 맞듯 대문을 여신다
뿌리거라, 길이 팍팍해서야 되겠냐
흙꽃*에게도 물을 줘야지
최대한 물의 보자기를 펼치듯 헹가래를 치는 물
마지막 박수는 이렇게 들뜬 흙먼지를 넓게 가라앉히는 일,
수도꼭지가 박수쳐서 보낸 물의 여행은
아직도 할머니 발등을 적시고 유전(流轉)하는 박수소리로
길을 떠나 사루비아 달콤한 핏빛에도 스며뒀으니
실수하고도 박수를 받으면
언젠가 갸륵한 일들로 재장구쳐오는 날도 있으리라
끝없이 마음의 꿀을 물어오는 저 물의 호접(蝴蝶)은
어느 근심의 그늘 밑에 두어도 내내 환하다
* 흙꽃: 흙먼지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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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편백나무의 영토 / 최류빈
면면이 창백한 사람들 어깨 접고 섰다
여기부턴 백의종군의 성토라는 듯 흰 돌 줄 지어 방어진을 펴듯
빙벽 너머에선 얼음 부서지는 소리 풋내 가시지 않은 고사리들이 손을 엮더라
물의 결정들이 고공침투하는 이 계절 예측된 왜란은 없다
나를 밀어낸 이 땅의 생채기다 아니 내가 속한 영토의 설움이다
나 밀어낸 저 이기의 숙명이다 아아, 너를 뒤덮는 물이-
함초롬히 오른다
그 속에서 고고한 죽문(竹文) 청화백자 하나
전운을 감지한 듯 바닥부터 미묘히 진동하고 있다
그저 대나무 줄기 죽비처럼 뻗어 저 장롱 속에 웅크리면
약탈될 뿐 절대 깨어질 일 없는 백자의 관상
왜놈들의 신줏단지라도 모시며 반짝거릴 수도
어디 가 빌붙어 치욕스레 요강이나마 살 수 있었다
바람 앞 불길이 거세, 고왔던 유약 다 녹아나는 시간
백자는 이토록 찬란한 사금파리가 되는 방식, 스스로 택한 거다
먼저 청학 날아가던 날개 깨 집어 아무렇게나 겨누고
부리가 그려졌던 조각 집어 칼처럼 끝을 맞드는 거다
고고한 외다리 학은 집어 치우고 털 뽑힌 민둥 두루미처럼
두 다리 벼락처럼 지상에 꽂는 비수
그 다음은 구름이 살았던 길을 어루만져보는 거다
깨진 구름이야말로 심장에 낮게 걸려 두려움 가려주는 방패를 살아
저기 굴러다니는 대나무 뼈와 깨지지 않는 학의 눈동자
구름에 가린 달처럼 푸르게, 붉게 점염하는 것이다
날카로운 끝 마다 이 생의 지문 다 묻히고
불꽃 속부터 다시 구워지는 탄신이 저 편에서 오는데
백의 벗고 푸른 눈동자 켜는 조각들 쩍쩍 대륙처럼 갈라지다가
눈동자 속 스테인드글라스로 딱, 휘영청 야밤의 빛 머금다가
숲의 육신에 가로줄을 긋고선 점멸하는 눈
초록에 새하얀 눈 침범해도 이 곳은 아무래도 편백나무의 땅
북유럽 어느 비밀의 숲처럼 아무리 밀어도
길쭉한 장대, 장승처럼 서서 하는 무언의 포효
표정을 지우고 곁을 내주면 장성을 쌓아
머리를 털고 탈고하는 계절,
눈 내린 편백나무 설경, 하얀 숲에서
깨어진 죽비 틈으로
붉은 상처 밀려 오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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