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은퇴이민 2기 55. 설날
설날이다. 우리나라의 고유 명절이다.
이곳에 사니 양력 설날은 요란했는데 현지인들에게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닌 모양이다. 전혀 설 기분이 안 든다.
그래도 아침 일찍 서울 아들네 집에서 전화가 온다. 손자 손녀까지 모두 새해 인사를 한다. 너무나 기쁘고 고맙다.
곧 바로 호주에서 딸네 가족이 전화를 한다. 이런 게 살아온 보림이고 행복인가 보다.
게다가 모두들 용돈을 부쳤다고 한다. 내가 돈을 좋이하는지 어찌 알고....ㅎㅎ
이어서 우리도 부모님께 새해 인사 전화를 드린다. 아이구, 우리 어머니! 귀가 잡수셔서 소리소리 질러대니까 그제사 반가워 하신다.
일요일이라 성당 미사를 참예한다. 몇 명 안되는 젊은 봉사자들이 떡국을 끓인다고 한다.
아! 정말 놀랍다. 미사 제대 앞에 차례상이 차려져 있다.
떡이며 떡국이며, 과일들. 사과, 배, 밤, 대추도 있지만 망고와 파인애플, 바나나 수박도 차려져있는 차례상이다.
미리 제출했던 명단을 따라 우리 시부모님과 친정 아버님의 함자도 그곳에 써 있다.
미사 중 봉헌 예식 때 차례로 나와 향과 잔을 드리고 예를 올린다. 부모님의 명복을 빌면서 새해 모두의 안녕을 미사 중에 기원한다.
먼 타국에서 조상님께 민속 차례를 올리는데 옆에서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 해 잔 올리는 시중을 들어 주시는 신부님의 모습이 왜 그리도 다정해 보이는지 콧등이 아려온다.
어디에 가서 살더라도 우리 명절은 이렇게 사람들 마음 속에 그리움으로 지켜지고 있다.
아무도 조상님 귀신이 실제로 이곳까지 오셔서 제사 음식을 드시리라 믿진 않는다. 하지만 돌아가신 부모님, 저희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며 그분들의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들의 사랑을 연원히 간직하겠다는 예식이다.
그 끝에 너무나 놀랍게도 그리고 너무나 뜻밖에도 신부님께서 우리 신자들을 향해 새해 인사로 엎드려 절을 하신다.
평소에도 그 분은 낮아지고 또 낮아지고자 하는 성자 같은 분인데, 그 분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자신이 부끄러워지는데, 그만 덜컥 절을 받아버렸다.
미사 후, 사무실에 모여 떡국을 한 그릇씩 나누었다.
오늘 따라 하늘은 더 청아하게 맑고 뭉게구름은 또 얼마나 솜처럼 피어 있는지. (2013.2.9)
차례상
차례드리는 모습(우리 내외의 차례 모습은 찍을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
故한명수 베드로 님이 우리 아버지.
첫댓글 성당에서 차례를 지내나요?
그것도 신자들 모두의 ?........................
고유의 풍속도 종교에서도 받아드리는게 당연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제물과 위패를 안하는것 같네요
어제부모님뵈러 의정부 신곡성당에
갔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