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안도현의 시작법
출: 한겨레 출판
ㆍ한 편의 시가 나오기 전까지 나도 내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궁금해서 기다려진다. 시가 나오기를 기다릴 때 시가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이 녀석은 성질이 청개구리 같아서 꺼내려하면 얼른 숨는다. 아무리 좋은 컨디션, 고요한 시간, 알맞은 분는 늧 척하면 그때서야 저도 심심하고 궁금해사 살살 고개 든다. 그러나 시를 잡을 준비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그 녀석도 눈치가 반해서 잡히려 하지 않는다. 이 녀석은 내가 준비가 안 된 순간을 느닷없이 급습하여 난처한 상황에 빠져 쩔쩔매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ㆍ토끼장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토끼를 본 게 전부인데 토끼는 ( )뛰어간다.는 답을 쓸 수 있을까?
ㆍ이오덕은 똥 누듯이 글을 써라 했다. 힘을 주지 말고 자연스럽게 일상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고, 예쁘게 꾸미려는 마음을 없애야 좋은 글이 나온다.
<그 여자네 집>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김용택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대리고 살라고 한다. 문지방에 켜켜이 샇인 식구들의 손때와 그 손때에 가려진 나이테며 옹이를 읽지 못한다면 어찌 문 밖 사람들의 애환과 세상의 한숨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토란잎에 구르는 물방울처럼
물고기비늘 반짝이는 건
밤새 바다에 떨어진 별빛
배부르게 먹있기 때문일 거야
해돋이 -이재무-
뜨개질 목도리를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왠지 애인이 등 뒤에서 내 목을 감아올 것만 같다 생각이 깊어지면 애인은 어느새 내 등을 안고 있다 가늘고 긴 팔을 뻗어 내 목을 감고는 얼굴을 비벼온다.- 박성우 “목도리 ”부분
ㆍ어릴 적 아버지와 단 한 번도 목욕탕에 가지 못한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목욕탕에 갈 때마다 부자끼리 서로 등을 밀어주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아버지는 늙었고 어느 날 스러져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때 병원 욕실에서 늙은 아버지르 씻겨드리다가 아들은 아버지 등에 낙인처럼 박혀 있는 지게자국을 보고 말았다. 시인은 그 지게자국을 보고 울컷, 하는 사람이다. 손택수의 시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스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고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ㆍ사과에 대해 시를 쓰려면 적어도 열 가지 행동을 해보아야 한다.
1. 사과를 오래 바라보는 일
2. 사과의 그림자를 관찰하는 일
3. 사과를 담은 접시를 함께 바라보는 일
4. 사과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뒤집어보는 일
5. 사과를 한입 베어 물어보는 일
6. 사과에 스민 햇볕을 상상하는 일
7. 사과를 기르고 딴 사람과 과수원을 생각하는 일
8. 사과가 내 앞에 오기까지의 길을 되짚어 보는 일
9. 사과를 비롯한 모든 열매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일
10. 사과를 완전하게 잊어버리는 일
이렇게라도 해야 비로소 시의 첫 줄을 시작할 수 있다.
ㆍ소설가 신경숙은 대학시절 방학 대 소설을 읽다가 필사를 시작했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어볼 때와 그 소설들의 느낌은 달랐다. 소설 밑바닥으로 흐르고 있는 양감을 훨씬 세말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부조리들. 그 절망감들, 그 미학들, 필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다. 나는 이 길로 가리라. 필사를 하는 동안의 그 황홀함은 내가 살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각인시켜준 독특한 체엄이었다.”
필사는 참 좋은 자기학습법이다. 시의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 눈에 번쩍 띄는 시를 한 편 만났을 때, 짝사랑하고 싶은 시인이 생겼을 때 당신은 꼭 필사하는 일을 주저마라. 그러면 시집이란 알 속에 갇혀 있던 시가 날개를 달고 당신의 가슴 한 쪽으로 날아올 것이다.
<山宿- 백석 저>
여인숙이라도 국수집이다.
메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옷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들과 그즈런히 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들을 베여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과 마음들을 생각해본다.
* 이 말이 아프다. 목침에 때를 올리고 간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산골의 광산촌을 떠돌거나 만주 등지로 길을 떠나던 30년대 후반의 우리 민족으로 이해할 수 있다.
<풍장 58 -황동규>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이 세상의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
ㆍ 시적 허구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낡은 목선을 손질하다가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그물 한 장을 주셨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그물을 주기는 커년 여주에서 수박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시인과 화자를 동일하게 여기지 말고 구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라느 형식이 하나의 허구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시는 시인의 사적, 주관적 체험의 바탕 위에 만들어지는 것일 뿐, 체험이나 감정을 단순히 나열하는 게 아니다.
ㆍ<폐결핵- 고은>
기침은 누님의 간음
한 겨를의 실크빛 연애에도
나의 시달리는 홑이불의 일요일을
누님이 그렇게 보고 있다.
고은에게 실제로 누이가 없다.
ㆍ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라는 시를 쓴 배경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또 다른 책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을 건드리는 허구의 재료를 모았다. 전봉준이 전북 순창의 피노리에서 체포된 시기는 음력으로 정월이었다. 그 어느 책에도 서울로 압송되는 동안 눈이 내렸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역사는 압송 시기를 음력 정월로 적어 놓았으니 이걸 놓칠 수 없었다. 나는 시의 배경에다 눈을 퍼부어 대기로 했다. 그 앞부분이다.
눈 내리는 민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더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앞으로 전봉준이 서울로 암송되는 장면을 영화로 찍는 감독이 있다면 반드시 눈이 내리는 날을 배경으로 잡을 것 같다. 시적 허구는 역사적 사실보다 생동감있는 진실을 보여주므로.
ㆍ바닷가 우체국이라는 시를 발표한 후에 독자들한테 전화를 몇 차례 받았다. 그 바닷가가 도대체 어디냐, 한번 가보고 싶다, 어느 바닷가를 지나다 우체국이 서 있는 곳을 보았는데 혹시 이 시의 배경이 그곳이 아니냐, 정보통신부에서도 연락이 와서 그 바닷가 우체국의 위치를 알려주면 시비를 하나 세워보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분들을 실망시켰다. 가금 변산반도 쪽으로 바람을 쏘러 가다 그 바닷가 언덕에 있는 몇 몇 낡은 집들에게 매혹되어 오래오래 그 집들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게 죄였다. 그 언덕 위의 낡은 집 문 앞에 빨간 우체통을 새워두고, 우체국장을 출근시키고, 우표를 팔고, 우체부의 자전거를 굴러가게 하고,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간판을 거는 상상을 한 죄!
ㆍ관념적인 한자어를 척결하라
<마당은 비뚤어져도 장구는 바로 치자- 김용택>
환장하것네 환장하것어
아, 논사는 우리가 새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들이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풍년 잔치는 저그들이 먼저 지랄 (부분)
<북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김진경>
북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
배에다 바람을 잔뜩 집어넣구
가시를 있는 대루 세우믄 누가 무서워할 줄 아남유
ㆍ시어는 한글맞춤법이나 국어순화운동에 딴청을 부리기도 한다. 나는 자장면보다 짜장면이 메리야스보다 런닝구가. 브래지어보다 브라자. 펑크보다는 빵꾸가 머큐로크롭보다 빨간약이아 아까징끼가 더 시적인 말이라 생각한다. 관념적 한자어는 한 편의 시를 누르는 중압감으로 개미 허리에 돌멩이를 얹는 일과 읽어보나마나 낙제 수준이다.
즉 갈등, 갈망, 갈증, 감사. 개성,독, 고백, 고통, 고해, 공간,m 굴욕, 귀향 등
사전에는 단어로 실려 있고 일상생활에서 가끔씩 사용되는 말이지만 시에서는 죽은 언어와 다름없다. 사유라는 것은 원래 그 속성상 관념적, 추상적이다. 하지만 관념을 말하기 위해 관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학대행위다. 관념어는 구체적인 실재를 개념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습작노트에서 관념어를 색출, 발견 즉시 체포, 처단하라. 암세포 같은 관념어를 죽이지 않으면 시가 병들어 죽는다.
ㆍ 한심한 동시
<가을맞이>
커다란 황금물감 푹 찍어(물감을 커다랗다 할 수있나)
가을들판에 가만가만 뿌려놓았다( 푹 찍었는데 왜 가만가만 뿌렸나. 뿌리는 주체는 누구냐?
탱글탱글 누우런 벼이삭(벼이삭이 열매도 아닌데 탱글탱글로 표현?)
살랑살랑 가을바람 불어오면
빠알간 고추잠자리
두둥실두둥실 흥겨운 춤사위
차라리 이렇게 고쳐보자
“황금물감 찍어
가을달판에 뿌려놓았다
벼이삭
가을바람 불어오면
고추잠자리
춤사위“
형용사의 과도한 사용은 시 바탕이라 할 은유와 상징이 설 자리를 빼앗는 결과다. 이미지가 들어앉을 자리를 형용사가 앉으면 화려해 보이지만 내용은 없고 뜻은 깊이가 없어 천박해진다. 형용사를 따라다니다 보면 독자는 상상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파란 바다, 파란 가을하늘, 검은 밤, 하이얀 눈송이라고 쓰지 마라. 그 색채 형용사들을 쉬게 하라. 형용사를 미워하고 동사를 사랑하라. 동사는 경험과 실질의 세계다.조사 하나가 시의 어조와 호흡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ㆍ제목 정할 때 유의점
1. 본문의 주제나 내용의 일정한 조화를 이루도록
2. 너무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제목은 피할 것
3. 본문의 내용을 모두 풀어 제시하는 제목은 피할 것
<멧새소리-백석>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고리에 길다란 고들음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소 별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할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제목은 시 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제목을 처음, 나중에 언제 붙여도 된다. 어떻게 붙일까 그 과정이 중요할 분, 제목을 고치거나 바꾸는 사이에 시는 진화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간다. 그것은 제목이 시의 내용과 서로 밀고 당기는 관계에 놓여 있어서다. 연암 박지원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이란 적국과 같다”.고 했다.
성벽에 올라 단숨에 사로잡아야 하는 적처럼 글을 쓰는 이는 제목부터 장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짝사랑-이윤학>
둥근 소나무 도마 위에 꽂혀 있는 칼
두툼한 도마에게도 일이 있었다
악을 쓰며 조용히 다물고 있는 일
빈틈없는 입의 힘이 칼을 물고 있었다.
-도마가 칼을 받아주고 있다는 주객전도, 칼을 받아준다 해서 상처가 아무는 건 아니다. “작사랑”이란 제목은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감춰야 하는 일, 입에 칼을 무는 아픔도 인내하는 도마의 입장을 대변한다. 시의 내용이 추상적일 때는 구체적 제목으로, 구체적일 때는 추상적인 제목을 붙이면 좋다는 의견도 있다.
이지엽은 제목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것이 시의 격조아 긴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면서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방법과 술어를 생략하거나 놀라움을 나타내거나, 감탄형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연암 박지원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이란 적국과 같다”.고 했다.
성벽에 올라 단숨에 사로잡아야 하는 적처럼 글을 쓰는 이는 제목부터 장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ㆍ한 편의 시를 쓰는 일은 한 채의 집을 짓는 일과 같다.마음이 움직이느대로 즉흥적으로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계도면이 있어야 하 고 그 일을 수행할 인부와 집을 세우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확보해야 하고, 충분한 공사기간이 있어야 한다. 시가 하나의 유기체적 구조물임을 염두에 둔다면 행을 바꾸거나 연을 나눌 때에도 시인의 의도가 충분히 개입해야 한다. 시의 리듬도 기계적이서는 당신의 리듬에 아무도 흥을 못 느낀다. 리듬 뿐 아니라 시의 내용도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은 백번 옳다.
<지문을 부른다-박노해>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 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아
없어, 선명하게
없어
노동 속에 문드러져
너와 나 사람마다 다르다는
지문이 나오지를 않아
없어, 정형도 이형도 문형도
사라져 버렸어
-행갈이의 힘:없어가 세 번 등장하면서 첫 번째 없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충격과 놀라움
두 번째 없어에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의 까무러치는 비염
세 번째 없어에는 절망으로 들끓는 복잡한 심리가 투영되어 있다. 한 행에 들어가는 글자 수를 kqRnj보라. 시의 길이를 지금보다 길게 늘이거나 대폭 줄여보라. 모두 긴바지를 입는 겨울에 시인은 반바지를 입고 뚜벅뚜벅 바깥으로 걸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 숯도 한 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순간의 꽃-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꽃 피는 아버지- 이성복>
아무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아버지는 저리
화가 나실까 아버지는 목이 말랐다 물을
다라드렸다 아버지, 뭐 그런 걸 가지고
자꾸 그러세요 엄마가 말했다. 얘, 내버려
둬라 본디 그런 양반인데 뭐 아버지는
돌아누워 눈썹까지 이불을 끌어 당겼다.
* 진술과 대화가 행을 걸쳐 뒤섞에 있다. 만약 얌전하게 행을 나구고 소설처럼 대화 부분에 큰따옴표를 붙이면 시가 자아내는 긴장미와 박진감은 사라지고 무미전조한 일상의 한 부분을 문장으로 옮겨다 놓은 꼴이 되고 만다. 이 양행걸침 기법은 한국시에 고질적으로 스며 있던 관망과 소극적인 현실 대응 태도를 일시에 혁파하였다. 한국 시의 질서 전체를 역동적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달 있는 제사-이용악>
달빛 밟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 손 합쳐 세 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머닌 우시어
밤새 우시어
하이얀 박꽃 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 세부적 사건도 없고 특정한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나 배경도 존재하지 않지만 이슬 두어 방울은 현실의 슬픔이 감당할 수 없이 벅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반어다.
8시에 숨어 있는 기승전결
<삶-황인숙>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이 시는 자꾸 읽어볼수록 아프다. 물음표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말줄임표는 꿈의 좌절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마침표는 어찌할 수 없음으로 인한 체념,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로 외상갑의 의미에 도 읽는 사람에 따라 부모에 대한 빚,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빚, 이웃에 대한 빚, 그런 외상값 때문에 사는 것, 그게 삶이라는 것을 시는 말하고 있다.
<허공 한 줌-나희덕>
이런 애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나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나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나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내 애기가 아닐 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속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죽음으로 아기를 살리는 모성도 감동적이지만 삶의 어떤 집착으로부터 풀려나는 한 인간의 모습이 시를 읽는 독자까지도 시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여 해방시킨다. 시인의 뛰어난 소재 장악력이 감동을 낳았다.
ㆍ당신은 감성이 녹슬지 않게 신체 감각기관을 활짝 열어두고, 지성이 바닥나지 않게 책읽기를 밥 먹듯이 하라.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
기성자라는 사람이 임금을 향해 사움닭을 기르는데, 열흘이 되자 임금은 물었다.
“이제 싸울 만한가?”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한창 되지 못하게 사나워, 제 기운을 믿고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 임금은 다시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도 다른 닭소리를 듣고 그림자만 보아도 곧 달려들려고 합니다.”
열흘이 지나 임금은 또 물었다.
“아직 안 되었습니다. 다른 닭을 보면 곧 눈을 홀기고 기운을 뽐내고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 임금은 또 물었다.
“이제는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소리를 쳐도 아무렇지도 않아서,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하기 때문에 다른 닭은 감히 가가이 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나버리고 맙니다.”
<소를 웃긴 꽃-윤희상>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지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스러질 뻔한 것이지 연약한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렸다는 것은 시인 아니면 할 수 없는 엉뚱한 발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전동균>
나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
눈부신 꽃잎 뒤에 숨어 있는
겨울날의 눈보라와
그 속을 홀로 걸어간 사람을
기억하며
아직 꽃피우지 못한 나뭇가징[
가만히 내 숨결을
불어넣는다.
열흘이 지나 임금은 또 물었다. 발명하려 하지 말고 발견하도록 하라. 살갗을 보지 말고 볏속을 보라.
<겨울 강가에서-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랑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세찬 강물 소리는 과학 상식에서 보면 모든 물소리는 물방울이 깨지면서 내는 소리가 모인 거라 한다. 폭포 소리가 큰 것은 물방울이 더 많이 깨졌기 때문이고 여울에서는 물방울이 돌멩이에 걸려 깨지기 때문에 물소리가 난다. 나느느 초등학생들이 보는 과학이나 생물 관련 책을 자주 뒤적인다. 거기에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인데도 시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많다. 나무가 새로 잎을 파워내거나 떨어뜨릴 때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나무를 노끈으로 묶거나 필요 이상으로 밤에 불빛을 쪼이면 나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등은 얼마나 매력적인 시의 소재들인가)
가까운 데 이웃이 적어 한가로운데
풀숲의 길은 황량한 들판으로 들어가네
새들은 연못가 나무 위에 잠들고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敲(고)는 두드린다. 堆(퇴)-민다라는 뜻
퇴고의 민다라는 글자를 썼는데 행차하던 한유에게 말하니 미는 것은 남의 집이 아니거나 미리 약속된 집이라 별 사건이 없으나. 두들릴 고를 쓰면 한 밤중에 낯선 집의 대문을 두르려 탁발의 고된 길이 보이고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란 새들이 날개 푸덕이는 소리가 들린다. 집 안에서 누군가 걸어 나와 스님을 맞이할 지도 모른다. 문을 두드리는 순간에 시가 역동성을 가진다.
ㆍ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원고를 쓸 대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고 했다. 끊임없이 고치되, 그 바느질 자국이 도드라지지 않게 하라. 궤멘 자국이 보이지 않는 천의무봉의 시는 퇴고에서 나온다. 박제천은 시를 서내자마자 일단 눈앞에서 치웠다가 열흘쯤 묵힌 채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 다시 꺼내보라한다.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길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나무를 노끈으로 묶거나 필요 이상으로 밤에 불빛을 쪼이면 나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시애틀 추장의 연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주랴.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이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 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 중국 송대의 시인 강기는 “백석도인설”시집에서 네 종류의 높은 경지가 있다 했다.
첫째는 이치가 높은 경지요.
둘째는 뜻이 높은 경지요
셋째는 상상력이 높은 경지요
넷째는 자연스러움이 높은 경지가 그것이라 한다.
<장평2-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머니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 구걸로 얻은 십전 짜리 두 개를 가련하게 내미는 어린 소녀의 손목이 보일듯하다. 눈망울도 보일 듯 하다
이렇게 서럽도록 아름다운 시를 읽다보면 효도니 사랑이니 인정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낡고 뻔뻔한 소리인지 깨닫게 된다.
강은교의 시작법
1. 장식 없는 시를 쓰라-관념만으로 되는 것 아닌, 구체화되고 형상화 된 시
2.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임을 강조
3.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처음 마음으로 처음 시가 다가왔을 때를 돌아보 며 시작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
4.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다. 세상을 감동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
5. 자유로운 정신을 가질 것-틀을 깬 상태
6. 낯설게 하기와 침묵의 기법을 익힐 것
<사랑법-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침묵할 것
ㆍ글을 잘 쓸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글을 남과 다르게 쓰는 법을 고민하라.
ㆍ장옥관의 시작접
1. 일상생활 속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느낌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붙잡아야 감수성 훈련이 된다.
2. 사물들이 항복을 할 때까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3. 어린아이의 눈처럼 사물과 현상을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태도로 출발해야 상상력이 커니다. 나의 관점을 버리고 대상의 눈으로 나를 보라는 것.
4. 자신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5. 가까운 곳에서 시를 찾는 눈이다.
<걷는다는 것-장옥관>
길에도 등뼈가 있었구나
차도로만 다닐 때는 몰랐던
길의 등뼈
인도 한가운데 우둘투둘 뼈마디
샛노랗게 뻗어 있다.
등뼈를 밟고
저기 저 사람 더듬더듬 걸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생고무 혓바닥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남김없이 일일이 다 핥아야 한다
비칠,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몸으로 핥아야 할 시린 뼈마디
내 등짝에도 숨어 있다.
ㆍ시인은 우주가 불러주는 감정을 대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에다 쓴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것이며 독자의 것이지 시인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墨畵묵화-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있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ㆍ<문인수의 쉬>는 정진규가 아버지를 안고 오줌 뉜 이야기를 하자 시의 불씨가 되었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
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하시것다아.”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
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
썼을까요. 툭,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
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ㆍ창의적 사고와 시적 사고는 별개가 아니고 한몸이다.
주변 환경에 관심 보이는 민감성
특정 상황에서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얻는 유창성
고정 틀을 깨고 방상의 전환을 꾀하는 융통성
기존 탈피, 독특한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독창성
기존 아이디어를 치밀하게 다듬는 정교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