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와 함께 춤을/ 곽주현
거실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이른 아침인데 볼륨이 높다. 하루의 시작이 꽤 시끌시끌하다. 1학년 때는 가끔 그러더니 2학년이 되고 나서는 노래에 맞춰 시도 때도 없이 몸을 흔들어 댄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만 까딱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동작으로 이어진다. 시끄럽다고 아래층에서 항의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렀다. 음량을 낮추기는 했으나 몸을 비틀고, 꼬며 춤을 계속 이어 간다.
요즈음 일주일에 3일 가량 손주들 등하교를 돕고 있다. 두 녀석이 모두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유치원 때보다 더 일찍 하교한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그들만 있게 할 수 없어 더 거두어 주기로 했다. 어떤 날은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 있는 게 더 좋다. 포동포동한 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리면 비행기 탄다며 깔깔거린다. 두 녀석을 번갈아 하고 나면 내가 더 헉헉거린다. 그러다가 다시 작은놈을 붙잡아 안고 움직이지 못하게 힘을 주면 벗어나려고 온몸으로 바둥거린다. 남자이고 식성이 좋아서 그런지 제법 통통하다. 못 이긴 척 서서히 풀어주면 자기가 이겼다고 허리춤에 두 손을 올리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손자의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모른다. 내 집에 있다가도 학교 끝날 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웃고 춤추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얼른 달려오게 된다.
손녀가 하교 하자마자 책가방을 거실에 던지듯 내려놓고는 “헤이(hey), 카카오”하고 외친다. 잠자고 있던 스피커에 파란 불빛이 원을 그리면서 켜진다. 그것참, 신기하다. 어른 주먹만 한데 인터넷과 연결되어 일정액의 사용료만 내면 국내의 라디오 방송은 물론 가요, 팝송,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을 불러내어 들을 수 있다. “아이브의 이더웨이(Either way) 들려줘.”라고 말하니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가 흘러나온다.
누가 내 말투 재수 없대/ 잘난 척만 한대/ 또 누구는 내가 너무 착하대/
바보 같을 정도래/ 가끔은 이해조차 안 되는 시선들/ 억울하기도 하지만/
오해가 만든 수많은 나와 얘기해/ 우리 모두 다 ‘나’야
Either way, I am good Either way/ 우후후, 우후후….
아이가 따라 부르면서 춤을 춘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르고 남을 의식하지 말고 ‘자유로운 내가 되자’라는 내용의 노랫말이 따른다. 길게 이어지는데도 이제는 영상을 보지 않고 동작을 끝까지 마무리한다. 가사 중간에 ‘우후후, 우후후’하는 추임새가 들어 가는데 그걸 들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된다. 묘한 중독성이 있다. 발그레해진 얼굴에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아내와 나를 쳐다본다. 손뼉을 치며 잘한다고 격려해 준다. 신이 나서 이번에는 유튜브에서 “(여자) 아이들의 <슈퍼레이디>”를 찾는다. 전자기타의 강한 리듬이 연주되고 화면에 보이는 가수의 눈빛이 레이저를 쏘는 듯 강렬하다. 춤에 맞추어 공기를 가르는 듯한 고음이 폭발한다. 첫 소절부터 듣는 사람의 귓속을 후빈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치더라도 힘을 모아 당당하게 이겨 나가자.’ 대충 이런 내용인 것 같다. 그것도 다 끝내고 나서는 또 다른 아이돌의 것을 몇 개 더 계속한다. 덩달아 동생도 제법 잘 따라 한다. 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고 했으니 피곤할 텐데 전혀 그런 기색이 안 보인다.
손녀가 그러기에는 아직 빠른 시기인데 온통 아이돌이 추는 춤과 노래밖에 관심이 없어 살짝 걱정이 된다. 엊그제는 아이 책상에 유인물이 있기에 봤다.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써오라는 내용이다. ‘나는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즐겁다. 그래서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어 열심히 연습 중이다. 특히 <아이브의 레이>를 좋아한다. 그녀를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쓰여있다. 참 못 말리는 녀석이다.
요즈음에 유행하는 ‘나루토 춤’도 곧잘 춘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니 유튜브를 검색한다. 수십 개의 영상이 뜬다. 중국 쓰촨성의 ‘하이디라오’라는 프랜차이즈점 종업원이 회사를 알리려고 틱톡(Tick Tok)에 올렸는데 큰 인기를 얻게 되어 여러 나라 사람들이 따라 하게 되었다 한다. 맨 처음 춤을 춘 사람이 일본 만화영화의 주인공 나루토를 닮았다 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단다. 손주들이 추는 것을 하도 많이 봤더니 음악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움찔한다. 손녀가 눈치채고는 가르쳐 주겠다며 따라서 하란다.
먼저 두 손을 모으고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다음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세우고는 두 다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란다. 발바닥까지 움직여야 한다며 다시 고쳐준다. 반복해도 자꾸 틀리니까 그것도 못하냐며 몇 번이고 시범을 보인다. 꼭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 같다. 이거 할아버지 위신이 바닥이다.
아이들하고 지내다 보면 세월을 잊는다. 노인네가 언제 그런 춤을 춰 보고 노래를 들어 보겠는가. 그냥 소음처럼 들렸던 이더 웨이, 슈퍼 레이디 같은 노래가 이제는 귀에 설지 않다. 녀석들이 오늘도 나로토 춤을 추자고 조른다. 내 팔다리가 바람 타는 허수아비처럼 덜렁거린다. 그래도 즐겁다. 나는 지금 신세계를 살고 있다.
첫댓글 하하하. 정말 신세계를 살고 있네요. 나는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에요. 손자들 덕에 곽 선생님이 젊게 사십니다.
정말 귀엽네요.
저희 집에도 가수된다고 시끄럽게 하는 녀석있어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2학년 담임인데, 아이들이 요즘 아이브를 아주 좋아하더군요. 학급 단체로 하는 칭찬고래 스티커를 다 모으고 영상쿠폰을 선택한 아이가 아이브 노래를 틀어달라길래 잠시 망설이다 켜 주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정서인가 봅니다.
손주들이 아주 귀엽습니다. 좋은 할아버지시네요.
너무 귀여워요. 선생님 손주들 때문에 젊어지시겠어요.
바람 타는 허수아비 할아버지, 멋지십니다.
손주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시는 할아버지 멋집니다. 젊게사는 비결입니다.
이더 웨이. 슈퍼 레이디, 나루토 춤을 찾아봤습니다.
가수 이름은 물론이고 노래조차 들어본 적 없네요.
저도 손자 생기면 곽 선생님처럼 알게 되는 날이 올까요?
눈높이를 맞추는 멋진 할아버지세요.
선생님이 추는 나루토 춤 기대됩니다. 하하. 참 사랑스런 손주들을 두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