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낯선 메니에르 / 최종호
1월 초, 간호사가 진료용 의자를 눕히더니 어디가 아픈지 물었다. 위쪽을 가리켰더니 그녀는 하나씩 ‘탕탕’ 건드리기 시작했다. 별 반응이 없자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픈 곳이 있었다. 범인은 가장 안쪽에 있는 어금니다.
잠시 후에 의사가 와서 물었다. “마른 오징어 씹었나요?” 그런 일이 없다고 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의심이 가는 데가 있었다. 집에서 소고기 먹던 날, 떡심 하나를 집어들었는데 느낌이 좋지 않아 뱉어 버렸다.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너무 질긴 음식을 먹으면 씌어놓은 의치가 흔들릴 수 있고, 조금만 각도가 어긋나도 신경에 닿아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날부터 신경 치료가 시작되었다. 마취 주사를 놓은 다음 예리한 도구로 어금니의 넓적한 부분을 조금씩 긁어 내는데 ‘찌익, 찌익’ 그 소리가 엄청 자극적이었다. 무려 40여분 가까이 계속되었다. 한꺼번에 할 수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의사도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치료를 받는 날, 신경을 건드리는지 느낌이 매우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음’소리와 함께 몸을 움찔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치료하는 것 같았으나 가끔 오금을 저릴 수 밖에 없었다. 온 신경이 어금니에 가 있던 탓에 치료가 끝나면 몹시 피곤했다.
네 번 만에 신경을 차단하는 일은 끝이 났다. 신경이 의치와 맞닿지 않도록 콘크리트 같은 물질을 덮는 것으로 마무리한 것 같았다. 그런 다음에 본을 뜨고 예전처럼 금니를 씌어 진료의 모든 일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날,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내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동안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생활에 제약도 따랐다. 마취할 때마다 통증을 참아야 했고 치료하는 동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이의 뿌리 쪽에서 뻗은 신경을 자르면 될 것으로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힘들고 복잡한 과정이었다. 한 달 보름이 지나고서야 그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내방 의자에 앉아 치료 과정을 반추했다. ‘내일부터는 즐겁게 지낼 일만 남았어.’ 아내와 기쁨도 나누고 스트레스도 풀 겸 밥 먹으면서 반주도 곁들일 참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갑자기 어질어질해지기 시작했다. 곧 괜찬아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점점 더 심해졌다. 급기야 몸을 가눌 수 없어 침대에 눕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어지러운 증세는 조금 나아졌으나 귀에서 ‘삐’하는 매미 소리가 나고 내 목소리마저 많이 울렸다.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청력 검사를 하고 내 순서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서니 누우라고 한다. 의사는 이석증일 것이라고 생각했던지 고개를 좌우로 몇 번이나 흔들었다. 그러더니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지럼증은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그럴 수 있다며 며칠 간 약을 먹어 보고 또 오라고 하였다.
두 번이나 갔으나 별 차도가 없어 내과를 찾아갔다. 혹시나 영양제를 맞으면 좋아질까 싶어서다. 그 동안 못 먹어서 그런 것 같다는 말을 주변사람들에게 많이 들었던 터다. 그도 그럴 것이 이가 아프고 치료받느라 먹는 것이 부실했다. 다음날, 희한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좋아졌다. 그러나 일주일쯤 지나자 또 그 증세가 나타났다.
하루는 운전하고 가다가 너무 어지러워 고속도로 졸음 쉼터에서 멈추었다. 한참을 운전대에 엎드려 있다가 고개를 쳐드니 급기야 앞산이 빙글빙글 돈다. 두 시간쯤 꼼짝 못하고 있다가 집으로 전화해서 아내와 아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날, 집으로 오면서 다시 내과를 찾아 영양제를 맞았으나 차도는 없었다.
며칠 후,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아 그 이비인후과를 찾아가 소견서를 받았다. 전대병원 의사는 “메니에르가 의심됩니다. 싱겁게 먹고, 커피는 하루에 한 잔 이내로 마셔야 합니다. 달팽이관 안의 림프액이 많이 차면 발병하니까 관리를 잘해야 하며 급할 때는 처방해 준 응급 약을 먹으면 가라앉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후에 몇 가지 검사를 더 했다. 최종 결과는 예견했던 대로다. 5월 초순, 다행히 세 번째 심한 증세를 끝으로 아직까지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이를 치료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메니에르라는 생소한 병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저나 낯선 이 녀석이 활개칠 기미가 있는지 늘 예의주시하며 지낼 수 밖에 없다.
첫댓글 어지러움으로 고생하시는군요.
저도 비슷한 증세로 하얀 작은 알약을 항상 손가방 안에 넣고 다닙니다.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메니에르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고 처방약을 먹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수면이 부족하면 증세가 찾아 오는 것같습니다. 메니에르는 치료가 가능하다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아직까지 별일 없이 지내신다니 안심입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즐겁게 지내시면 다시 안 올 것 같은데요?
치과 치료는 진짜 스트레스.
잘 읽었습니다.
지난 일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정말 낯서네요, 메니에르.
증상 나타나지 않게 미리미리 조심하셔요.
나도 처음 들어 보네요. 메니에르. 무리하지 마시고 많이 쉬셔야 겠어요.
이가 오복의 하나라는 데 공감합니다. 메니야르야, 물러가라. 마음 보탭니다.
이를 악물고 읽었습니다. 하하. 제가 치료 받는 거 같아서요. 이름도 낯선 메니에르에서 꼭 벗어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