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노트 10
수행 노트는 1996년도부터 미얀마 마하시 명상원에서 수행을 지도하시는 스승과 한국인 수행자들의 수행면담을 해를 거듭하면서 기록한 내용입니다. < 참고 >는 수행자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별도로 보충한 내용입니다. 수행은 개인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총론에서 벗어나면 안 되므로 반드시 스승의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또 스승에 따라 다른 수행방법도 있습니다
3. 질문 : 좌선 중에 호흡의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다가 호흡이 약해지거나 망상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답변 : 일어남과 꺼짐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알아차리도록 하라.
참고 : 몸과 마음에 있는 대상은 반드시 일어남과 사라짐이 연속됩니다. 몸과 마음은 일어남 하나만 있을 수 없고, 사라짐 하나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최소의 단위를 구성하는 것은 일어남과 사라짐이라는 두 개의 단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숫자로 표기할 때 1(1/2)라고 적습니다. 이때 괄호 안에 있는 (1/2)는 일어남과 사라짐을 말합니다. 이것을 법으로 보면 바로 무상입니다. 이것이 과학이나 현상계의 질서로 보면 진동입니다.
그래서 호흡을 말할 때 일어남 꺼짐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대상이 가지고 있는 실재라서 진실입니다. 수행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에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무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단지 일어남 꺼짐으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호흡을 계속해서 알아차리기도 힘든데 대상이 가지고 있는 무상의 성품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지 대상에 마음을 기울여서 알아차리다 보면 집중이 되어 언젠가 무상의 법이 드러납니다. 법은 얻으려고 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조건의 성숙으로 얻습니다.
이처럼 수행에는 일정한 단계가 있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릴 때도 일어남과 꺼짐을 알아차리는 단계가 있고 시작과 중간과 끝을 알아차리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때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은 수행자의 근기에 맞는 적절한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그러다가 수행이 향상되면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일어남 꺼짐의 다음 단계로 시작과 중간과 끝을 알아차리라고 말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에 일어남 하나만 알아차리도록 하고, 다음에 꺼짐 하나만 알아차리도록 하고, 좀 더 집중이 되면 일어남 꺼짐을 하나로 묶어서 알아차리도록 합니다. 그런 뒤에 일어남 꺼짐 쉼을 세 단계로 나누어서 알아차리도록 하기도 합니다.
호흡의 일어남 꺼짐은 무상의 일어남 사라짐과 같습니다. 여기서는 호흡은 상징적으로 일어남 꺼짐이라고 하고 무상은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표기합니다. 호흡의 정확한 실재는 공기가 부풀었다가 꺼지는 바람의 요소입니다. 그래서 호흡을 일어남 꺼짐이라고 하며, 부풀음 꺼짐이라고 할 수도 있고, 팽창과 수축, 밀고 당김이라고 다양한 방법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호흡의 명칭은 무상의 일어남 사라짐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이러한 용어의 구별은 스승과 면담을 할 때 호흡과 무상을 혼돈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가 호흡을 일어남 사라짐이라고 말할 때 스승은 무상의 일어남 사라짐을 말하는 줄알고 답변을 하곤 했습니다. 이때 수행자의 호흡은 사념처 중에서 신념처고 스승의 무상은 법념처입니다. 이런 오해로 서로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가 있어 수행을 할 때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호흡의 시작과 중간과 끝은 집중력이 생겼을 때 하면 좋습니다. 호흡의 시작은 일어남이고 중간은 꺼짐이고 끝은 쉼입니다. 일어남과 꺼짐 뒤에 있는 쉼은 호흡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이때의 호흡을 숫자로 표기하면 1(1/3)입니다. 이것이 호흡의 시작과 중간과 끝입니다. 호흡의 끝은 호흡이 순간적으로 정지된 상태인데 이것을 알아차리려면 집중력이 있어야 합니다.
호흡에서 쉼의 발견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수행자가 졸음에 떨어지거나 망상에 빠지는 것은 짧은 순간의 쉼에서 생길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행자가 일어남과 꺼짐은 움직임이 있어서 알아차리기 쉬운데 움직임이 정지된 쉼을 놓치기 쉽습니다. 이때의 짧은 순간에 알아차림이 달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쉼을 알아차리면 수행이 더 밀밀하게 되어 집중이 됩니다. 이렇게 집중이 될수록 망상이 들어오지 않고 법을 향해서 더 가까이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도 인위적으로 하면 안 됩니다. 아직 쉼을 알아차릴 수 있는 집중력이 없는데 쉼을 하면 스스로 호흡을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작은 욕망이 불씨가 되어 수행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수행은 자기 힘에 맞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것이 욕망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