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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4강 4:14 ~ 5:10 자비로우신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기도와 순종 ~ 4장 참 안식 약속 5장 대제사장 자격
26.07.02(목)
히브리서 5장 5절에서 10절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오늘은 히브리서의 제 4강을 진행하겠는데요.
히브리서 4장 14절부터 5장 10절까지 자비로우신 대제사장 주제와 그와 연관된 그리스도의 기도 그리고 그분의 순종 주제를 살피게 되겠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다루게 될 포인트 한 세 가지를 정리해 보면요
첫째 자비로으신 대제사장 예수님 주제를 먼저 다루게 되겠고요.
그 다음에 대 제사장의 자격 주제를 다룰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됐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그 자격을 어떻게 갖추셨는가를 살피게 되고요.
끝으로는 그리스도의 기도 그리고 기도로 그분이 어떻게 순종을 배워가셨는가를 다루게 됩니다.
먼저 자비로운 대제사장 주제가 4장 14절부터 16절까지 진행이 되는데요.
전체 구조를 우리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보는 4장 14절부터 16절은 1장 2장의 결론이었던 2장 17절 18절에서 얘기한 대제사장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 이 두 주제 중에 3장 1절부터 6절에서는 신실하심 주제가 다뤄졌고요.
이제 오늘 우리가 지금 다루게 될 4장 14절부터 16절은 그 자비하신 대제사장 주제를 다루게 됩니다.
3장 1절부터 4장 16절을 우리가 다시 한번 좀 정리해보면요
3장 1절부터 6절 신실한 대제사장 그리고
4장 14절부터 16절 자비로운 대제사장 이 두 주제 교리적인 논의 사이에 권면 단원이 들어있고요.
바로 신실한 대제사장의 적용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인의 안식 문제를 정리했었습니다.
이제 오늘은 자비로운 대제사장 주제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4절을 우리가 좀 보면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나옵니다.
저자는 예수님을 위대한 대제사장으로 소개를 합니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아론 계열의 대제사장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위대한 대제사장이다 라고 소개하면서 그 이유를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로 그분은 하늘을 통과하신 분이시다
우리 개역개정에서 승천하신 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본문에 좀 더 정확하게 번역을 하자면 하늘들을 통과하신 분이다.
이 하늘들을 통과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뭔가를 우리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가 구약성경의 성소와 지성소의 그 개념을 좀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속제일 날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야 되는데요.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성소를 통과해서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대제사장의 사역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이것을 어떻게 성취하셨는가 땅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듯이 그것의 실체는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근데 하늘에는 하늘들과 하늘이 구분되어 그려지고 있고요. 하늘들이 성소라면 하늘 단수 하늘은 지성소를 지칭합니다.
그래서 이 단수 하늘에는 하나님의 보좌와 아 예수님께서 그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이죠. 그런데 바로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늘들을 통과하여 하늘에 들어가셨다 했습니다.
이것은 지상에서 성소를 통하여 지성소에 들어가듯이 예수님께서 진정한 대제사장으로 하늘들 성소를 통과하여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신 그러한 신적 사건이라는 점을 우리가 좀 정리를 하고요.
그런데 그 들어가신 분이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시다 라고 소개를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예수님이 처음으로 연결되어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앞서서 1장에서 신적인 지위와 연관해서 계속 사용되었던 호칭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2장에서 아들의 인성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2장 9절에서 사용되었던 호칭이죠.
근데 여기에서는 바로 신성을 나타내는 아들과 인성을 나타내는 예수가 함께 연결되어 사용됨으로써 우리의 대제사장은 신성과 인성을 소유하신 그러한 분이시다는 그러한 진리를 이 두 개의 호칭을 함께 얘기함으로써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서 15절을 우리가 보면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다 라고 말합니다.
먼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시다 라는 이 말씀을 좀 생각해 보십시다. 하늘들을 통과하여 하늘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과연 우리 연약한 인간이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실까 라는 질문을 던져봄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히브리서 저자의 답변은 아주 확연납니다. 이중부정을 통한 강한 긍정입니다.
여기서 동정하지 못할 이가 아니시다 했는데 동정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가 조금 새겨보면요 여기서 동정하다라고 번역된 스팀파테사이라는 동사는 단순한 감정이나 느낌의 범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수반하는 그러한 의미이고요. 즉 도움을 얻지 못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행동까지를 포함하는 의미가 이 동정하다 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동정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우리를 동정하시게 된 데는 그냥 그 능력이 주어진 게 아닙니다. 그 능력은 인간의 연약한 본성에 완전히 동참하심으로써 주어진 그러한 능력입니다.
하늘에서 그냥 생각만으로 우리를 동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되심으로써 우리의 어려움을 직접 경험하심으로 동참하심으로써 우리를 동정하신다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연약한 본성에 동참하신 정도를 두 가지로 표현하는데요.
첫째는 모든 면에서
둘째는 아주 같은 모습으로 이렇게 두 가지의 수식어를 씁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종류의 시험을 경험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이러한 시험을 당하시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신적 본성을 조금도 사용한 적이 없으시다 라는 점을 히브리서 저자는 분명히 합니다.
그분은 철저하게 인간으로서 우리의 시험받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가셨다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뭡니까? 죄는 없으시다 라는 결론입니다.
그분께서 이처럼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모든 시험을 당하셨지만 다른 인간들과 구별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은 모든 시험에서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으셨다 따라서 죄는 없는 분이셨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럼 어떻게 예수님께서 이 모든 시험을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당하시면서도 죄는 없을 수 있었을까? 굉장히 궁금합니다. 우리도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예수님 어떻게 그러셨을까?
그 이유를 5장 7절 9절에서 예수님의 기도와 관련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친절하게 확인을 해줍니다. 오늘 후반부에 가서 그 부분을 우리가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14절과 15절의 논의에 비추어 볼 때 한편으로 예수님은 하늘을 통과하여 완전한 성소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완전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그분은 인간의 연약함을 철저히 공감하신 분으로서 그러나 죄는 없으신 완전한 대제사장이다라는 점을 우리가 14절 15절의 결론으로 정리를 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완전한 대제사장의 요건은 땅의 제사장이나 천사들과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것입니다.
먼저 땅의 제사장들은 인간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 성소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거기에 반해서 천사들은 하늘에는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공감하는 능력은 소유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땅의 제사장이나 천사들의 이러한 한계를 모두 뛰어넘으신 유일하게 완전한 대제사장이라는 점을 우리가 정리하게 됩니다.
이제 그래서 16절을 우리가 보면요
그러므로 우리는 극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호자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처럼 완전한 대제사장 덕분에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지성소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위대한 대제사장을 통해서 누구나 언제든지 그리고 어디서든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좌에 나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4~2강
5장 1절부터 10절까지는 대 제사장의 자격 요건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 1절부터 10절은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5장 1절부터 4절까지는 아론 계열의 제사장직의 요건을 얘기하고 있고요.
5절부터 10절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요건이 어떻게 충족되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먼저 구약의 제사장들은 이런 요건이 갖추어졌어야만 되는데 예수님도 과연 그러한 요건을 갖추었다 따라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이 된다. 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자 그러면 5장 1절부터 4절에서는 아론계열의 대제사장직의 요건이 소개가 됩니다.
두 가지인데요.
1절부터 3절에서는 인간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하나님께 임명을 받아야 한다.
모든 대제사장은 이 두 가지의 요건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는 어떠하신가 그리스도는 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셨는가 예
보면 5절부터 6절까지 그리고 10절에서는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받으셨다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그리고 7절부터 9절에서는 예수님은 인간과 공감하는 능력을 갖추셨다는 점을 확인해 줍니다.
그럼 먼저 5절부터 6절 그리고 10절에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받으신 조건을 잠깐 생각하면요
6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내가 영원히 멜기 세댁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다 라고 시편 110편 4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인용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멜기세백 계열을 따른 제사장으로 임명되었음을 확증해주는 증거구절로 히브리서 저자는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자 두 번째로 7절부터 9절을 우리가 좀 보겠는데요.
이 단락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와 그 결과에 대해서 매우 특별한 언급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백성과 공감하는 능력을 갖추셨음을 인상적으로 확증해 주는데요. 아 그 내용을 제가 이렇게 개인적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먼저 여기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큰 부르짖음과 눈물로 간고와 탄원을 드리셨다 라고 얘기합니다.
이 중복적인 표현 간구를 드리셨다 탄원을 드리셨다 하나씩 쓰는 것이 아니라 간구와 탄원을 들이셨다 라는 이 중복적인 표현은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이 다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두 번째로, 사용된 이 탄원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히케테리아는 신약성경 안에서 여기에서 유일하게 한번 사용되는 아주 특별한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히케테리아의 의미는 긴급한 탄원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히케테리아를 특별히 사용한 것은 예수님의 기도가 얼마나 긴급하였는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함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기도의 모습은 우리의 기도에 그분과 같은 긴급함이 있는가 간절함이 있는가를 점검해보도록 촉구하는 듯합니다.
그리스도의 기도의 대상도 우리가 좀 살펴보겠는데요. 그 대상은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 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 이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죠. 이 어구는 육체적 죽음의 상태 혹은 그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구출해 내실 수 있는 분으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육체적 죽음의 상태에서 부활을 통해서 구출해내실 하나님께 눈앞에 직면한 육체적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해달라고 간구와 탄원을 드리셨다 이렇게 우리가 이 내용을 좀 풀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리스도의 간구과 탄원의 모습을 큰 부르짖음과 눈물로라고 묘사를 합니다. 그분의 이러한 모습은 그분께서 얼마나 있는 힘을 다해서 기도하셨는가를 잘 표현해 줍니다.
그분은 긴급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서 기도하지 않고서는 다른 데서 문제의 해결을 찾을 수 없었기에 애타고 절박한 마음으로 큰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를 드리셨다라고 히브리서 저자는 기술합니다.
그리스도의 기도에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기도를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합니다. 기도를 드리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 안이하지는 않은가 여유가 넘치는 것은 아닌가
우리 앞에는 과연 싸워 나아가야 할 시험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우리는 그 시험을 이길 능력이 예수님보다 더 많아서 그럴까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안이하고 여유 있는 기도의 태도는 철저한 점검이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간절한 큰 부르짖음과 눈물로 드리는 그 기도의 태도 그게 바로 우리의 기도의 태도가 되어야 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경외하심을 인하여 응답을 받으셨다라고 했습니다. 먼저 여기서 경외한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 경외한다는 말은 우리 개역 개정에선 경건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경외라는 번역이 좀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헬라어로는 율라베이아라는 명사인데요.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존중심과 복종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 어구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하심을 인하여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음을 감당하게 해달라는 기도의 응답을 받으셨다 이 내용을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8절로 넘어가 보면요 그분은 아들이시면서도 라고 얘기를 합니다. 헬라어로는 카이페르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을 하는데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하고도 독특한 아들로서 신적 지위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아들처럼 징계를 통해서 순종을 배우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다 라고 얘기합니다.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다 여기서 언급된 그리스도의 고난은 게세마네 기도에서 시작해서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모든 수난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기도의 응답으로 이 일련의 모든 고난의 과정을 겪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이 모든 고난을 겪어내시면서 순종을 배우셨다 라고 얘기합니다.
신적인 지위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무엇인가를 배운다 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뜻밖의 일입니다. 사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배우신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무엇인가를 배우실 수 있는 분이다.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40절에 보면
아기가 자라며 성장했다는 것이에요. 지혜와 지혜가 충만하여졌다 키도 자라고 지혜도 충만해졌다.
누가복음 2장 52절에는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지혜도 자랐고 키도 자랐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슈퍼맨처럼 어른으로 태어나지 않았죠 갓난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자그마한 아이로 그렇게 태어나서 키가 자라서 어른이 되셨습니다. 성장의 과정이 있었어요. 이런 지혜도 자라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종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 배워나가신다 라는 말은 그렇게 이상할 것이 아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종도 성장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도 성장했다는 의미의 배움은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죽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순종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순종을 배우셨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그 정도로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을 받으셨고 우리와 동일하게 기도를 통해서 시험에서 승리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제 9절을 보겠습니다.
9절에서는 완전하게 되셔서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완전하게 되셔서 라고 번역된 분사는 성취하다 목표에 도달하다 이런 기본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아까 2장 10절에서도 우리가 살펴봤던 내용인데요. 여기서 완전하게 되심은 그분께서 도덕적으로 불완전한 상태에서 완전하게 되셨다는 의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4장 10 5절에서 보았듯이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죄는 없으셨기 때문에 죄가 없어져서 완전하게 되신 그러한 의미는 아닙니다.
여기서 완전하게 되셨다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표 곧 대제사장의 자격 요건에 도달하셨다라는 의미에서의 완전하게 됨의 의미로 우리가 이해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아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표를 이루신 그 목표에 도달하신 분이십니다.
짧은 안목에서 보았을 때 그리스도의 기도의 응답은 지극히 손해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는 것 그게 예수님에게 인간적으로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 응답은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오는 응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구출되셨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셔서 대제사장으로서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영광을 누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에 응답은 궁극적으로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분께 순종하는 모든 이들을 완전하게 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구원의 조건이 순종이라는 점을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성도들도 그리스도처럼 기도의 응답으로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그 결과 대제사장으로 단번에 자기의 몸을 드리셔서 구원의 근원이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함께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우리가 살폈던 모든 내용들을 적용하는 그러한 세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와 모든 시험을 똑같이 당하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예 그분이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당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격려가 됩니다.
그래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고요.
두 번째로 우리의 기도 제목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데 맞춰져 있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의 기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기도입니다. 이방인들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기도의 제목이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가
끝으로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절박하게 간절히 기도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그처럼 열심히 있는 힘을 다하여 간절하게 절박하게 기도하셨는데 우리도 과연 그분처럼 기도하고 있는가 우리의 기도가 좀 더 절박하고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하겠다. 라고 적용합니다.
이것으로 네 번째 히브리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가 5장 11절부터 6장 20절까지 경고 단원이 있는데요. 그 경고 단원에 대하여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들으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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