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모 선생님의 <어린이가 행복해지는 음악수업>을 듣고 쓴 글입니다.
강의 자체에 대해 쓴 것은 아니지만 많은 영향을 받고 나서
제가 학원에서 만나는 중1 남자아이와 대화한 내용을 기록했어요.
2018-01-04
음악으로 행복한 복고
중학생
내가 강사로 있는 영어 학원 중1반 중에 항상 옛날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가 한 명 있다. ‘맞아, 이런 노래가 있었지’ 싶은 90년대 발라드록부터, 나도 미디어에서 보고 이름과 히트곡 정도만 아는
김광석 등 80년대 포크음악까지 ‘옛날’이라는 스펙트럼이 상상을 초월한다. 워너원이 인기를 끌고 방탄소년단이 정상에 있는 지금, 2004년생이
흥얼거리기엔 나조차도 낯선 음악들을 들으며 늘 신기했다. 너 2004년생인 거 뻥이지, 너 솔직히 75년생인데 중학생인 척 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장난을 걸면서 넘어가기만 했는데, 봄여름가을겨울 아저씨들의 노래를 흥얼거린 오늘은 유난히 특별하게 다가왔다. 바로 어제 한승모 초등학교
선생님의 <어린이가 행복해지는 음악수업 강의>를 듣고 주체적으로 음악을 즐기는 어린이 청소년에 대해 생각해본
덕이다.
“오늘 수업 끝나면 뭐해?” 마침 중1반이 나에게도 마지막 시간이어서
조심스럽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다행히 별일 없다고 해서 부모님께는 간식 사준다고 연락드리고 학원 1층 카페에서 음악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자몽에이드를 시켜주고 앉자마자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물어봤다. 너무
많지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전람회의 <취중진담>과 야다의 <이미 슬픈 사랑>이란다. ‘취중’인 적이 없을 텐데 어떻게
이 노래가 좋아졌냐고 하니까 ‘멜로디가 익숙하면서 클래식한 느낌’이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한참 고민하다가 나얼의
<귀로>처럼 좋다고 했다. “아~! 둘 다 셔플 리듬이 특징인 노래잖아. 찻-차잣-차잣-차잣 하는 거. 신나는 음악에서 자주 들리는
리듬인데 발라드에 있으니까 낯선 느낌이면서도 잘 어울려서 좋은 건가?” 하니까 그런 것 같다고 한다.
야다의 <이미 슬픈 사랑>은 노랫말과 멜로디가 너무 잘 어울려서 좋다고 한다.
좋아하는 여자애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은 적 있는 걸까? 아직 없다면, 사랑의 슬픔이란 이런 걸까 상상해보는 걸까? 이 노래는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물으니 유튜브에서 좋은 노래 찾는 걸 좋아하는데 추천 동영상을 누르면서 처음 듣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검색해 들어간 노래의 추천
동영상에는 비슷비슷한 노래들이 나오니 취향에 맞는 노래를 많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들어보고 마음에 드는 것은 ‘좋아요’를 누르면서 또 다음으로 넘어간다. 한참을 온라인
음악 창고에서 헤매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것 같으면 지금껏 누른 ‘좋아요’ 목록에서 음악을 추려 음원을 추출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불법으로 음악 들어요.” 하면서 자조적으로 웃었다. “아무래도 유료 음원 스트리밍서비스를 결제해서 음악 듣는 친구들은 잘 없지?” 한 명도 없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중학생은 경제인구가 아니니 가끔은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열심히 음악을 찾아 듣는 친구들은 부모님이 한 달에 5천 원 정도 투자해서 실컷 음악 들을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문화예술 복지 차원에서 나라에서 청소년은 음악 스트리밍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안 되나? 청소년 대상 문화예술 복지는 ‘소비하는
음악’이 아닌 ‘경험하는 음악’에 초점 맞춘 사업이 많고 그 취지에 십분 공감해왔지만, ‘상업적인 음악을 소비하는 행위가 정말로 팽배한가?’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기초적이고 수동적인 소비도 제대로 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다시 ‘복고 중학생’으로 돌아가서. 옛날 음악을 많이 알고 즐겨 듣게 된 계기가
있는지, 가령 부모님이 집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자주 틀어놓는지 물어보았다. 현재 행동의 시작을 명확하게 기억하기 힘들 수도 있는데, 이 친구는
정말 인상적인 계기가 있는지 얼른 대답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달고나>라는 뮤지컬을 봤는데, 그게 7080 배경이거든요. 거기에 <미인>, <담배 가게 아가씨>,
<여행을 떠나요> 이런 노래가 나왔는데 너무 특이하고 노래가 좋은 거예요. 노랫말도 엄청 참신하고, 멜로디도 뮤지컬에서 처음 듣고
바로 딱 외워져서 맨날 흥얼거리고 그랬어요. 그땐 너무 어려서 제목을 잘 몰랐는데, 3학년 되고나서 인터넷에 가사 검색을 했더니 찾아지는
거예요. 전체 가사를 보고 따라 부르다보니까 더 좋아져서 이 세 노래가 5학년 때까지 노래방
18번이었어요.”
자신을 강렬하게 스쳐간 노래의 정체를 정확히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노래방 18번의 역사를 줄줄 말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처음에는 물어보는 말에 단답으로 겨우 대답해주더니
이제는 묻지 않아도 이것저것 말해준다.
“그리고 5학년 때 방과후 수업으로 통기타를
처음 배웠거든요. 코드를 잡을 줄 알게 되니까 <여행을 떠나요>를 칠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아빠한테 부탁해서
<여행을 떠나요> 코드가 있는 악보를 받았어요. 제가 반주까지 하면서 부르니까 훨씬 신나더라고요. 그런데 초등학교 졸업하고서는 기타를
거의 안 쳤어요. 1학년 2학기 자유학기제 때 기타반 들어가면서 다시 오랜만에 치게 됐는데, 기타반에 클래식 기타를 치던 친구가 있었거든요.
걔가 핑거스타일도 하고 처음 보는 걸 막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르쳐달라고 해서 걔한테 배우고. 새로운 거 하니까 재미있어서 아빠한테 클래식
기타도 사달라고 했어요. 그때부터는 인터넷으로 타브 악보 보는 법도 혼자 익히고 유튜브 보면서 따라하고 연습하고 그래요. 학교에서 배울 때보다
혼자 연습하니까 실력이 더 잘 느는 것 같아요. 요즘은 아빠가 자기가 평생 친 것보다 잘 친다고
칭찬해주세요.”
신나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이 친구에게 음악이 행복이라는 게 단번에
느껴졌다. 악보든 기타든 척척 마련해주시는 아버님 덕분이 아닐까 나까지 감동 받아버렸다. 어젯밤 페이스북에서 한 재즈 플루티스트의 즉흥잼 영상을
내 페이지에 공유했는데, ‘공유하기’의 버튼을 누른 행동의 동기가 아빠가 4학년 때 사준 플루트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 방과후
플루트 하고 싶어. 플루트 사 줘!” 이 말 한 마디에 곧장 제일 좋은 플루트를 선물해 주셨던 아버지께 새삼 감사한 마음이 솟아났다.
아무튼 또 또 다시 ‘복고 중학생’으로 돌아가서.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고 또 스스로 즐길 줄
아는 것 같은데, 음악의 싫은 점도 있는지 물어보았다. 악보 보는 법 배울 때가 가장 싫었다고 한다. “기타 타브 악보는 혼자 찾아가며
익히기까지 했는데, 왜?” 피아노 학원에서 문제집으로 음표 공부를 할 때 일명 콩나물 대가리의 윤곽선 안에 색연필로 칠해 넣는 걸 하면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그냥 빵
터졌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지막으로 내가 꼭
들어봤으면 하는 노래가 있으면 두 개만 추천해달라고 했다. 아까 말한 야다 <이미 슬픈 사랑>과 이선희 <인연>을
들어보라고 한다. <인연>은 엄마가 불러줘서 처음 알게 된 노래라고 한다. 두 개만 대라고 했는데 노라조의 <형>을 급하게
끼워 넣었다. 이것도 노랫말이 인상적이라고 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꼭 들어보고 감상도 말해줄 생각이다. 복고 중학생 친구에게 좋아하는 음악을
스스로 찾아 듣는 일, 좋아하는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부르는 일이 평생 이어졌으면 좋겠다. 음악이 이 친구에게 평생 행복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