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청 / 김학철
지인 스무 명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갔다. 주인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으며 주문을 받는다. “콩나물(콩나물 국밥) 다섯 개, 비빔밥 두 개, 나머지는 열세 개는 쓰레기(시래기 국밥) 군요” 시래기 국밥 희망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나는 쓰레기라는 주인의 발음에 “쓰레기가 아니고 시래기예요. 시래기….” 하였다.
며칠 뒤에 또 갔는데 그때도 그 여주인은 주문받을 때 또 ‘쓰레기’라 했다. 이에 나는 다시 “쓰레기가 아니고 시래기라니까요! 하하…” 아마 그 여주인은 지난번에 내가 한 얘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거나 아니면 습관에 젖어 또 그렇게 발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쓰레기라니 그러면 쓰레기 국밥이란 말인가. 참 고얀지고….’
그런데 그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쓰레기라는 말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밭에서 나는 쓰레기가 아니었던가! 시래기는 나와 인연을 맺은 지는 꽤 됐다. 어렸을 적부터 시래기를 먹었으니까. 그 때 우리 집은 꽤 넓은 논과 밭농사를 지었다. 밭에는 배추, 무, 파, 당근, 고추, 호박 등 여러 가지 농작물을 심었는데 늦가을 김장을 하기 위해 배추와 무를 캐내어 운반하기 좋게 겉에 붙은 배추 잎과 무잎을 떼어 밭에 그대로 버려 놓았다. 널부러져 있는 그 잎사귀들을 보면 그것은 곧 밭에서 생긴 쓰레기였다.
동네 사람들, 특히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그 잎사귀 중 쓸 만한 것을 주워 각자 집으로 가져가 새끼줄로 엮어 처마에 매달아 놓았다. 겨울을 나는 동안 눈이 올 때는 눈에 쌓이기도 하고 비가 올 때는 비에 젖기도 하며 바람이 불거나 햇볕이 들면 말랐다. 이러기를 봄까지 수차례 반복하면 가을에는 초록색이던 잎 색깔이 점차 푸르댕댕해지다가 마침내 갈색과 황색으로 변했다. 무잎사귀 말린 것은 시래기라 하였고 배추 잎을 말린 것은 우거지라 하였다. 어머니는 눈이 오는 겨울철, 이 시래기를 삶은 후 찬물에 담가 우려낸 후 무쇠 솥에 그 시래기와 쌀 그리고 된장을 얇게 풀고 조선간장을 넣어 시래기죽을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나와 우리 가족은 그 죽을 아주 맛있게 먹곤 했다. 또 시래기에 된장을 섞어 시래깃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 먹었던 시래기죽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시래기 음식을 먹으면서 오랜 세월 살아왔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생활형편이 좀 나아지자 나의 입맛은 육물로 돌아서게 되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구워 목까지 차도록 먹으면서 소주를 먹는 것을 최고의 음식섭취 덕목으로 알았다. 이렇게 육물만 과다섭취하게 된 결과인지 변비가 생겨 여러 번 고생한 일이 있고 또 혈액순환 장애를 가져 온 적이 있는 등 두어 번 큰 홍역을 치른 후에야 육물섭취를 줄이게 되었다.
무뿌리가 작은 대신 잎사귀가 큰 품종을 ‘무청’ 이라 하여 농가에서는 이를 대량생산한다. 그 후 재래식 시장이나 로컬푸드, 대형 판매장 등으로 유통, 판매되는데 식당에서는 이를 대량으로 구입, 이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용도는 탕, 국, 찌개, 조림, 나물무침 등의 요리에 쓰이는데 된장과 궁합이 잘 맞아 구수한 맛을 내고 각종 비타민, 철분, 칼슘도 많아 당뇨, 변비, 동맥경화증 및 각종 암 예방에 효과가 있는가 하면 특히 식이섬유소가 들어있어 위와 장의 기능을 원활하게 해준다고 한다. 한마디로 건강 웰빙 식품이다. 나는 시래기에 관련된 음식은 보약을 먹는다는 심정으로 즐겨 먹는다. 다른 사람들도 선호해서인지 요즘 시래기 국밥을 메뉴로 하는 식당이 여기저기 많이 생겼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령 민물고기 매운탕 집에서 시래기가 많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물고기는 적고 시래기만 몽땅 들어있네…’ ‘요즘 식당들은 모두 다 자기들 잇속에만 빠져 시래기만 몽땅 넣는다니까…’ 하는 등 식당 주인의 흉을 보며 푸념을 늘어 놓았는데 요즘은 시래기만 많이 넣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시래기 팔자 시간문제랄까? 옛날에는 천시 받던 시래기 세상이 돌아온 것인가.
최근에 볼일이 있어 전주 신시가지에 갔다가 도청 정문과 도로 하나 사이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5층짜리 신형건물 1층에 ‘시래청’ 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시래청’ 이라니 혹시 도청 앞에 있는 도청의 무슨 별관이란 말인가? 자세히 봤더니 유리창에 비교적 작은 글씨로 ‘원조 시래기 국밥집’ 이라고 쓰여 있었다. ‘올커니 올 것이 왔구나,’마침내 시래기 국밥집이 전주의 심장부랄 수 있는 신시가지 도청 앞까지 진출하였구나!
마침 저녁식사 시간도 되어 그 청에 들어갔다. 30대 젊은 부부가 의욕적으로 하는 사업 같았다. 식당 좌석에는 이미 많은 고객들로 빈자리 없이 가득 차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시래기 국밥, 시래기 곤드레밥, 시래기 등갈비, 전골 등 시래기와 관련된 메뉴 등이 많았다.
나는 시래기 국밥을 시켜 먹었는데 평소에 먹던 시래기 국밥보다 맛이 좋았다. 알고 보니 이 식당에서는 들깨를 많이 갈아 넣어 끓여 내놓는 관계로 맛이 더욱 고소하다는 것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공교롭게 도청과 마주보고 있는 시래청! 시래청은 이런 말은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되었다. ‘당신네 도청은 도정을 책임지는 곳이겠지만 우리 시래청은 도민의 위와 장 등 건강을 책임지는 곳이오. 어디 한번 누가 누가 잘하나 겨루어 봅시다!’나는 이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이 식당이 꼭 성공하기를 바랐다.
시래기를 다시 본다. 무잎을 말린 시래기는 모양이나 색깔이 예쁜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볼품없는 식재료다.
그러나 어릴 때 맛있게 먹던 추억이 있고 위장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는가 하면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여 몸에 좋고 맛도 있는 가히 하늘이 내려준 먹거리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 시래기를 나만의 고유 먹거리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하고자 한다.
[김학철] 수필가. 2013년《대한문학》등단
한국문협, 전북문협,영호남수필, 전북수필 회원
수필집:《완행열차의 기적소리》
요즘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드높아지는데요, 예전에는 하찮게 여겼던 식재료들이 오히려 각광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래기’, ‘시래기’의 재조명이자 재발견이죠.
아~ 하늘 푸르고 공기는 맑고 기온은 쌀쌀한 오늘 같은 날, 시래기 매운탕 생각이 굴뚝같네요.
첫댓글 "시래청" 도민의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신선한 관청(?)이 생겼군요. 민간인이 운영하니 관청은 아니고 각오만은 관을 앞서가는... 저도 요즘 시래기와 우거지를 즐겨 먹습니다.
도청 앞에 시래청이 있군요
그런 관청이 있다면
양손 들고 환영을 해야지요
지금은 시래기도 일부러 만드려면
힘이 듭니다
그냥 전에 많이 농사짓던 시절은 저절로
생산되었지만...
웰빙 식재료 시래기,
요즘은 최고죠. 시래기와 우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