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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8 / 얼음냉수 같아서 (잠25:1-13)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을 가다 보면 양재 나들목 부근의 달래내고개쯤 가게 되면 어김없이 차가 막힙니다. 막혀도 보통 막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염없이 막혀있다가도 반포 나들목을 지나면서부터는 이상하다 싶을 만큼 길이 뚫립니다. 그러면 막혔다가 씽씽 달리는 기분이 보통 시원한 게 아닙니다.
“이제야 뚫리네!”라는 후련한 기분! 이런 기분을 본문에서는 ‘얼음냉수 같아서’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칠팔월 염천에 들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잠시 쉬는 짬에 들이켜는 얼음냉수는 심장까지 저미는 시원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렇듯 우리도 사는 게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인생에서도 중간중간에 얼음냉수 같은 시원함과 후련함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래도 인생이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우리의 ‘얼음냉수’가 되십니다.
예전에 친구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했더니 “가뜩이나 더운데 열 받을 일만 생긴다.”며 툴툴거립니다. 가뜩이나 사는 게 힘든데 답답한 일까지 생기니 그 맘이 오죽하겠습니까?
이렇듯 삶의 현장에는 누군가가 나에게 하는 일들로 인해 또는 나 자신의 실수로 인해 열 받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근자에 뉴스로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이라든가, 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사건, 또는 공직자 비리와 부정부패나 각종 사건 사고 소식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가족 때문에, 직장 동료 때문에, 이웃 때문에, 때론 교회 안에서조차 당하는 갖가지 일들로 인해 답답하고 힘들어지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저만 그런가요?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십니까?
열 받을 일이 없으면 좋겠는데, 자고 나면 생기니 그럴 때마다 뭔가 시원한 얼음냉수 같은 일이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전제라고나 할까요. 하여튼 ‘안 좋은 사건은 100% 사탄의 역사’입니다.
욥을 보세요. 그 많던 재물이 재해와 도둑 떼로 인해 다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참았지요! 그런데 이번엔 태풍으로 생때같은 자식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래도 참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자신에게 심한 피부병이 생기고 그로 인해 아내마저 가출해 버렸습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열 받고 스트레스로 팔팔 뛰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삶을 비관하고, 낙심하고, 심하면 죽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어땠습니까?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나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게 될지라.”
욥은 매사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욥에 비해 우린 정반대로 행동해 오지는 않았는지요?
상황이 조금이라도 어렵고 힘들어지면 우린 제일 먼저 누굴 원망하고 누굴 의심합니까?
“하나님이 왜 이러시지?” “내 기도는 응답이 안 되는 건가?” 등등처럼 문제가 생기면 우린 제일 먼저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의심하고 불만 하려 합니다.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왜 그럴까요? ‘안 좋은 사건은 100% 사탄의 역사’라는 명제를 알지 못했거나, 알았어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안 좋은 사건이 100% 사탄의 역사임을 안다면 우린 불평을 해도 사탄에게 해야 합니다. 화를 내도 사탄에게 화를 내야지요. 그런데 그간 우린 정반대로 행동해 왔던 것입니다.
사실 사탄이 날뛰면 우리로선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라도 우린 ‘우리에겐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는 게 힘들면 하나님을 떠 올리세요. 하나님이 인생의 얼음냉수가 되십니다. 하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해 주시는 역사 하나하나마다 우리의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 “너희로 감당치 못할 시험은 당하지 않게 하겠고 또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리라.”….
이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힘들고 어려울 때라도 다시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너 시험을 당해 범죄치 말고 너 용기를 다해 곧 물리쳐라. 너 시험을 이겨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믿어 늘 승리하라.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때론 이런 찬송이 힘이 되실 겁니다. 사건은 마귀가 일으키지만, 하나님은 내 편에 서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호령하시며, 그것들은 일곱 길 열두 길로 쫓아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언제든 믿기만 하면 답답하고 해결 못 할 일들로 열 받게 만드는 인생에서도 하나님은 시원한 얼음냉수 같은 은혜로 우리를 후련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2, 주님께서 우리의 얼음냉수 ‘사발’이 되어 주십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듯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음냉수인 것은 분명해도 문제는 어떻게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전 기억이지만, 약수터를 지나게 되어 물 한 모금 먹으려 했는데 웬일인지 바가지를 전부 한군데 모아 묶어두었더라고요. 할 수 없이 손으로 받아 마시려니 손가락 틈새로 다 새나가고 오히려 감질만 낫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내민 컵으로 물을 받아먹었는데 얼마나 시원했던지…….
물이 있다면 그것을 담을 그릇도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수가 성 마을에서 물 길러 나온 여자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그렇습니다. 인생엔 주님이 계셔야 생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음냉수 시라면 (외람된 비유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은 우리의 시도가 잘못되었습니다. 인생의 시원함을 세상의 그릇으로 담아 마시려니 안됐고, 감질만 났습니다.
예를 들어 물질의 그릇에 모아서 이젠 좀 시원해지려나 했지만 뜻하지 않은 일들로 다 새나갑니다. 건강의 그릇으로 모아 이젠 좀 평안하려나 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질병으로 다 쏟아집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해야 할 일은 태산인데…. 애는 써 보았지만, 결국엔 다 새어 나가고 모인 건 없고….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현대 세상은 문화적으로 발달하여 사는 중에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많이 풍성해졌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다고 나까지 평안하고 내가 하는 일이 다 순탄한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목사라는 이유로 저는 많은 사람의 안 좋은 소식들을 듣습니다. 사람들이 당하는 사고와 고민거리도 듣습니다. 상급학교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의 괴로운 이야기도 듣습니다.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답답함도 듣습니다. 실패한 사업, 꼬이는 일들, 이런저런 근심으로 괴롭고 힘들어하는 분들의 이야기도 듣습니다.
그럴 때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성심껏 들어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주님! 들으셨지요?"라고 하는 것.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저는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만약에 여러분에게도 듣고 싶지 않은 소식들, 만나고 싶지 않은 일들, 근심으로 괴롭고 힘들어지는 상황들을 만나신다면, 그땐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고백해 보세요. ‘주님 아시지요?’라고.
(한 번 따라 하세요) “주님! 아시지요?”
살면서 위로가 필요하십니까? 성공을 원하십니까? 평안과 강건함을 구하십니까? ‘방법’은 있습니다. 찬송가 337장을 보세요.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아멘)
이후로는 예수님 덕분에 이 나라와 우리 교회와 여러분 모두의 삶이 얼음냉수같이 시원하고 후련하고 통쾌할 수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얼음냉수 같은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아 누리고 마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이 저절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리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습니다. 결국 그리되도록 우리 각자가 뭔가를 해야 할 것입니다. 뭘 하면 될까요?
마태복음 7:12에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고 행한 대로 받습니다. 시원하고 후련한 인생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먼저 얼음냉수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전도하며 봉사해서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 드리고, 또한 내게 맡기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세요.
우리가 하나님과 주님으로부터 얼음냉수 같은 은혜를 받으려는 것 못지않게 우리도 하나님과 예수님께 얼음냉수 같은 믿음과 순종을 드려야 합니다.
드리면 받습니다. 또한, 받았으면 드려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경은 3가지 권면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첫째, 본문 4절에서는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귀히 쓰는 그릇이 되려면 먼저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찌끼와 불순물을 제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충성된 종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돌아보며 회개의 심정을 하나님께 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늘 기도하시되 기도 중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기도는 회개기도임을 명심하세요.
하나님을 향해 무엇을 바라고 구하려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향해 무엇을 회개하고 용서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에서는 구하는 것이 메인이 아닙니다. 회개가 메인입니다. 회개 기도로 심령이 깨끗해지기만 하면 그다음엔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있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 11절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고 했습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충성된 종으로서 주의할 것은 ‘입술의 말’입니다. 때에 적절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처럼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이제부터는 ‘말조심’하며 사세요. 왜 같은 말을 하더라도 ‘안 된다. 못 한다.’고만 하려 하십니까? 이제부터라도 ‘된다. 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내 입술에 파수꾼이 되어 주셔서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처럼 내 입술의 말을 통하여 세상에서 덕을 세우시며, 말하고 고백한 대로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 12절에서는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했습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충성된 종이 되기 위해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청종하는 귀’입니다.
‘청종’의 한자 말은 ‘들을 청에 따를 종’입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들었으면 순종하려 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특히 책망을 잘 듣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충성된 종이 되려고 힘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순종을 시작할 때면 하나님도 역사를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대접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대접하십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조건부인 양 우리가 꼭 먼저 대접해야만 대접을 받으신 하나님이 대접을 해 주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먼저 대접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탄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는 자의 순종보다 사탄을 더 두렵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잘 새겨두세요. ‘대접하는 것이 대적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사탄은 물러나야 하고 쫓겨가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사탄을 대적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13절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추수하는 날’이 의미하는 바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보리 수확이 시작되는 4월 중순부터 밀 추수가 시작되는 6월 초 이후의 기간을 가리키며, 이때는 매우 더운 계절이다.
‘얼음냉수’에 해당하는 말도 직역하면 ‘눈의 차가움’이란 뜻으로, 더위로 인해 북쪽 헬몬산의 눈이 녹아 흘러 내려오는 물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추수하는 날과 얼음냉수는 각기 대칭되는 말로 각각 찌는듯한 더위와 또한 시원, 후련함을 의미합니다.
더운 계절에 그것도 곡식을 추수하느라 힘겨운 노동을 하여 숨이 턱까지 막히고 목이 바짝 마를 때 눈이 녹아내린 차가운 물을 마신다면 아마도 머리끝에서 뼛속까지 시원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13절 말씀은 어려운 일을 마치고 돌아온 충성된 사자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했습니다.’라는 보고를 할 때 이를 듣는 왕의 기쁨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성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부름을 받았고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때문에 우리 역시도 하나님께 나와 ‘말씀하신 대로 다 했습니다.’라는 보고를 드림으로 우리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는 충성된 자들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에 최고의 충성이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은 내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고 안 하고의 문제도 아닙니다. 성도라면 어떤 경우에서든 순종에서부터 그 믿음이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게 순종을 하려 하신다면 출근이든, 등교든, 가정일이든 매일 하는 일상의 모든 일들이 작다고, 사소하다고,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금붕어를 키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몇몇 죽어가는 금붕어를 다른 어항으로 옮겨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느라 많은 돈을 들이자, 이를 지켜보던 친구가 한마디 했습니다. “야 이 사람아! 비실거리는 것들 갖다 버리고 그 돈 가지고 금붕어를 사 오면 백 마리는 더 사 올 수 있겠다.”
그러자 금붕어를 키우던 사람이 정색하고 대답합니다. “죽어가는 금붕어 한 마리를 살릴 수 있는 열정과 애정이 없는 사람은 비록 만 마리의 금붕어가 있어도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네.”
그렇습니다. 하나의 순종에서 실패하면 모든 믿음에서도 실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6:10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걱정을 할까를 생각하는 대신 어떤 순종부터 할지를 결정하려 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민할 때 하더라도 이왕이면 축복받을 고민을 하려 하세요. 즉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 드릴까? 어떻게 하면 가족과 교우와 이웃에게 얼음냉수 같은 시원함을 대접할 수 있을까를 놓고 늘 고민하며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먼저 대접한 대로 우리가 대접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주고받는 것'이란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번역상 영어에서는 명령문 다음에 나오는 ‘앤드’는 ‘그리고’가 아니라 '그러면'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브 앤 테이크'의 올바른 번역은 평소 생각했던 “주고, 그리고 받는다.‘가 아니라, "주라 그러면 받으리라."입니다.
그러므로 주었으니 받겠다 하지 마시고, 받기 위해 주려고 하지 마세요. 이는 세상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먼저 드리세요. 하나님께 사랑과 믿음을 드리세요. 순종과 기도를 드리세요. 또한, 먼저 주세요. 이웃에게 사랑을 주고, 용서를 주고, 구제와 선행을 주세요.
“앤드” - “그러면” 하나님도 내게 후련함을 주실 것입니다. 이웃들도 내게 시원함을 줄 것입니다.
설사 그리 않을지라도 우리에게는 '드림으로써', 또한 '줌으로써' 얻게 되는 기쁨과 만족과 보람은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이렇습니다. 믿고 순종하면 언제든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우린 행복할 수 있습니다.
믿어지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