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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도학(道學)과 한시 백일장
茶泉 2008. 5. 7. 16:44
@ 내용 : 제6회 하서 김선생 추모 전국 한시 백일장
(第六回 河西金先生追慕全國漢詩白日場)
@ 일시 : 2008, 5, 6 (화)
@ 장소 : 전남 장성 필암서원(筆巖書院)
청절당 (淸節堂)
오늘의 시회를 주재하는 공간으로 가운데는 대청이고 좌우엔 협실이 마련되어있다.
옛 진원현의 객사건물을 옮겼고, 편액은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의 서체로서
송우암이 쓴 신도비문 중 청풍대절(淸風大節)이라는 글을 인용 한 것이다.
경향 각지에서 모여든 내로라하는 문장
전국 유일의 홍일점이라는 李淸 장성 군수가 명예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하여
3개의 시제가 들어있는 봉투 중에서 1개의 시제(詩題)를 뽑으니
오늘의 시제는 奉審筆巖書院 이었고
奉審筆巖書院 (봉심필암서원) * 필암서원을 받들어 살피다
押韻 (압운, 시행의 일정한 자리에 같은 운을 규칙적으로 다는 운)은
陽 (양), 長 (장), 綱 (강), 鄕 (향), 揚 (양) 이었다.
당대의 문장 여러분께서 오늘의 시회 좌장으로 참석 하였는바
그 면면을 살피자니 다음과 같다.
이리도 천착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감동적이다.
백일장에 참석한 유생들이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바로 그 시간
문장 높은 원로의 붓끝에서는 물 흐르 듯 음풍농월이 쏟아지고
흩어지는 묵향에선 시어의 진수가.....
서체의 향연
우동사 (祐東祠)
필암서원의 사우로 북쪽엔 하서 김인후 선생, 동쪽엔 고암 양자징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편액은 주자(朱子)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였다.
경장각 (敬藏閣)
인종이 하사한 묵죽도(墨竹圖)의 판각을 보관하고 있다.
편액은 정조대왕의 어필로서 몇 년 전 부터는 철망으로 씌워 놓았다.
소나무와 학 등이 그려진 내부의 단청은 모두 바래서 알아보기 힘들다
보관 중인 묵죽도
빠른 걸음으로 다시 돌아온 청절당
저마다 장원을 꿈꾸며...
채점 장소로 쓰일 청절당의 협실
원로 들의 숙고와 장고가 이어진 끝에
마침내 오늘의 장원작이 내 걸린다
筆巖院謁麥秋陽 咳唾如廳景慕長
필암서원 보리익을 때 절하니, 기침소리 들린듯하여 공경하는 마음 길고 길어
卓瑩文章千古鑑 淸高節義萬年綱
높다란 문장은 천고의 거울이요, 맑은 절의는 만년의 기강일세
洛閩脈絡繼承地 洙泗淵源傳授鄕
낙민의 학맥을 이어받은 지역이요, 수사의 연원이 전수된 고을일세
懿蹟英名誰不仰 遺芳百世塋永宣揚
아름다운 유적과 훌륭한 명성을 누가 우러르지 않을손가, 남기신 향기 천백세에 길이길이 선양하리라
주해 : (필암서원 집강) 노강 박래호
이어지는 심사평과 시상
오늘의 장원을 차지한 대구의 이창우(73)선생
대상과 상금 100만 원
시상 그리고 원로의 격려
차상(次上)에는 울산의 김석환 선생. 영천의 손장웅 선생 등 2 명
차하(次下)에는 대구의 손창현 선생, 부산의 안정영 선생, 대구의 김용락 선생 등
3 명이 뽑혀각각, 50만 원과 30만 원을 받았다.
케케묵은 학문이랍시고 대부분 외면 한다는 유학...?
허나, 지금도 전국적으론 일천만의 유림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조선의 유학사에서 과연 하서가 차지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일까?
하늘의 道를 외치다 기묘년의 사화로 독배를 들고 눈 덮힌 능주땅에 스러진 정암.
그가 주창햇던 도학의 맥이 하서에게로 흘렀고 요(堯) 순(舜) 정신의 발현을 위하여
김인후는 성리학에 더욱 천착, 천명도를 통하여 조선조 성리학 발전의 토대를 더욱
확고하게 쌓아 놓았다는 사실은 너남없이 우리가 알고있는 일반론일 뿐이다.
도학(道學)에 바탕을 둔 정치를 지치(至治)라 한다던가...?
다시 말해, 하늘의 뜻을 알고 하늘의 도리로 올바른 정치를 펼칠 때 만이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음이요,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믿음과 확신으로
그는 중종(中宗)앞에 나아가 죽음을 무릎쓰고 기묘명현의 신원을 주청 했다는데...
필암서원엔 인종(仁宗)이 하사한 묵죽도가 보관되어있다.
인종은 묵죽도를 비롯 잔과 책을 하사 하리만치 하서를 가까이 하면서
밤 늦도록 그와 함께 앞으로 펼쳐갈 왕도정치(王道政治)을 숙의 했다고 한다.
그런 인종이 조금만 더 집권 했더라면 하서를 통하여 정암의 지치주의(至治主義)는
꽃을 피우고 완성되었으리라고 안타까워하는 학인들이 많음도 볼 수 있다.
하서를 들여다보면 극단적 이상주의자였던 정암 조광조완 달리,
봄 날의 훈풍처럼 부드러움이 곳곳에서 뭍어나옴을 보게 �다.
온건함을 중시하는 김안국을 사사한 만큼 정암의 아집과 배타 등등의
급진과 과격을 넉넉하게 보완 수용하고 있음이 여기저기 잘 나타나 있다.
불과 5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했다지만 그가 이룬 학문적 성과는 가히 태산 이랄 수 있다.
문묘에 배향되고 아니고가 뭬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시쳇말로 다 씨잘데기 없는 허례허식이요, 내 집안 꾸미고 광 내는 폼에 불과할 뿐.
백일장을 찾은 소위 골수 유림 제현 중, 행여 진정한 학문의 수련의 과정이라 여기지 않고
입신양명이나 상금의 과다에나 곁눈질하며 침을 흘리는 따위의 졸학이 없길 바랄 뿐이다
진정한 학문에 다가서는 모습이 유학자의 본령이요, 하서가 주창한 학문의 본질이리라.
그가 이 땅에 뿌려놓은 학문의 성과를 남김없이 쓸어담아 이 나라 문사철의 곳간을
풍성하게 하는 길 만이 하서를 찾고, 빛내고, 영광되게 하는 길이 아닐까?
백일장을 둘러 본 소감을 한 마디 피력하자면...
남 들이 이루어놓은 학문 성과물을 거리낌없이 차용하고
문구를 짜집기 해 대고 대필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과거에도 있었다는 백일장의 백태를 목도하면서
한 마디로 실소를 금 할 길 없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맑디 맑은 양심 지성들이 즐비하지만 말이다.
일류 문장에서 소위 삼류 문장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뭐가 그리 바쁜걸까?
상금을 주머니에 챙겨 넣자마자 총총히 사라지는 유생들의 적삼자락에선
씁쓸한 이 시대 자화상의 비늘이 마구마구 어지러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직, 필암서원 하늘엔 넉넉하게 해가 남아 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