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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더미에서 건진 보물 노산 -선생님의 시조 선집을 접하다
며칠 전 오후에 있었던 대박 맞은 일이다. 지하에 있는 쓰레기 처리장에서 생활 쓰레기를 분리하여 처리하고 뒤돌아서는데 폐휴지와 종이상자 틈바구니에서 어떤 이웃이 내다 버린 책 묶음이 보였다. ‘음, 어느 댁에서 우리 집처럼 오늘 서재를 정리했나 보다’ 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노산 이은상 시조선집’과 ‘南冥學硏究’라는 책 두 권이 눈길을 잡았다. 노산 선생님과 남명 조식 선생님은 나에게 영감을 주신 어른이기에 얼른 카트 담아 집으로 올라와 책에 묵은 먼지를 털고 책을 펼쳐 보았다. 그중에서 「경남시조시인협회·화중련」 <김복근·하순희 님>이 엮어낸 ‘가고파’-노산 선생님의 시조선집을 펼쳐 보니 어느 분의 존함 뒤에 단아한 글씨체로 淸覽이라고 쓰고 책을 선물한 날짜와 책을 사람의 서명이 있었다. 그런데 노산 선생님의 시조선집을 선물한 분은 일찍이 시조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한 필자의 모교 J교육대학 선배님이고 짐작하건데 당시 경남시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노산 선생님의 가고파 시조선집 엮은이 중 하 시인님은 J교육대학 동기이다.
노산 선생의 고향인 마산에서 인생 제2막을 살면서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는 지금, ‘노산의 시조선집’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주님께서 내려 주신 은총의 선물인가?
세상에! 정말 뜻이 있는 김 선생님께 노산 선생님의 뜻이 닿았네요
그 책을 만드느라고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노심초사 - 올해 95세인 원로 김교한 선생님께서 손수 노구를 이끄시고
부산대 도서관이며, 여러 곳의 자료를 찾아오시고 경남시조시인회장을 맡은 첫해 혼신을 다해 만들었지요.
김복근 선생님이 해적이를 정리한 후 출판에 들어갔어요. 그 책을 김선생님이 발견했다는 건 행운이고 복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복 많이 짓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건강하십시오.
시조를 공부하며 쓰시라는 노산 선생님의 뜻 인듯요.
서명이나 잘라 내고 버리지 안하고... 본인이 버린건지 부인이 버린건지.
여하튼 마산의 대문호이자 애국 시인인 노산 선생을 독재에 부역했다는 둥,
3.15를 폄하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계속 반대하는 시민 단체 들을 이해 할 수가 없네요.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가고파 시조선집」에는 노산 선생님의 사진 속의 年譜와 함께 학창 시절에 즐겨 불렀던 주옥같은 노랫말 <가고파, 옛동산에 올라, 봄처녀, 장안사, 성불사의 밤, 고향생각, 사랑,고지가 바로 저긴데> 등 총 185편의 작품이 실려 있었다.
이 책의 서문을 발췌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어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가고파> 1수
『노산 이은상 선생은 애국시인, 민족시인, 종교시인등 다양하게 일컬어지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시 세계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는 現代詩 史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시인이었다.
선생은 ‘가고파’ 한 편으로 마산을 詩心이 흐르는 도시, 문학과 낭만, 서정의 도시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그가 남긴 2,000여 수의 빼어난 시조는 우리의 심금을 울렸으며, 우리의 정서를 아름답게 가꾸는데 크게 기여했다. 선생은 1903년 10월 22일 마산에서 태어나 1982년 9월 18일 서울에서 타계하기까지 60여년 간의 창작과 집필활동을 통해 46권의 방대한 작품과 저서를 남겼다.
그러나 그 위대한 시인의 흔적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우리는 선생의 서거 30주기와 탄신 109주년을 맞이 이른상 시조선집을 펴내기로 합의하고 편집을 기획했다. 《노산시조집》 (1932)과, 《노산시조선집》(1958), 《노산시문선》 (1960), 《푸른 하늘의 뜻은》(1970), 《노산시조선》(1976), 《기원) (1982) 등의 시조집과 문집에서 시조를 수합하여 대표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가려냈다.
노산 이은상 시조선집 《가고파》라는 제호로 총 185편의 작품을 7부로 나누어 싣는다. 편집은 1976년에 간행된 《노산시조선》을 모체로 하되, 여기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을 추가했다. 표기는 원전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표기가 다른 일부 작품과 개작된 작품은 그 연유를 밝혀 이해를 도왔다. 이 선집은 선생의 시조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시민들에게는 아름다운 서정과 이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작품집으로, 연구자들에게는 노산연구의 텍스트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희망을 갖고 있다. 』
이 책에 수록된 많은 시조 중에서 전술한 친숙한 시조 외 몇 수를 선정하여 옮겨 본다.
《가고파》 -1932.1.5. 서울 행화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다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 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나고자
그날 그
눈물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들면 뱃장에 누워
별헤다 잠 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 보고
저기 가 알아 보나
내 몫엣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처녀들 어미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늬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잠 들어 죄 없는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동무 노 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 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까나
깨끗이도 깨끗이
《고향 생각》 -1923.8.15. 가덕도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 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그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개를 숙으리니
모래 씻는 물결이오
배 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기뭉기
때 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사랑》 - 1931.12.그믐날
탈 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디 마오
타고 다시 타서
재 될 법은 하거니와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쓰올 곳이 없소이다
반 타고 꺼질진대
아예 타지 말으시오
차라리 아니 타고
생나ꥯ으로 있으시오
탈진대
재 그것조차
마저 탐이 옳소이다
《나는 늘 그날에 산다》 -1968.5.20.
화상 입은 자욱같이
추억이란 쓰라린 건지
놓쳐버린 옷자락처럼
추억이란 그리운 건지
가슴이
찢어지던 날
나는 늘 그날에 산다
《가을 하늘》 -1964.11. 속리산 천왕봉
관음의 살결보다도
더 보드라운 가을 하늘
수선화 향기보다도
더 맑은 가을 하늘
만지다
맡아보지 못해
껴안아 보는 가을 하늘
《옛동산에 올라》 - 1928.6.11. 노비산
내놀던 옛 동산에
오늘와 다시 서니
산천 의구 山川依舊란말
옛 시인의 허사虛辭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구려
지팡이 던져 짚고
산기슭 돌아나니
어느 해 풍우엔지
사태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구려
《봄처녀》 - 1925.4.18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임 찾아 가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양
나가 물어 볼거나
《그리움》 - 1931.9.11.
누라서 저 바다를 밑이 없다 하시는고
백천百千 길 바다라도 닿이는 곳 있으련만
님 그린 이 마음이야 그릴 수로 깊으리이다.
하늘이 땅에 이었다 끝 있는 양 알지 마오
가 보면 멀고 멀고 어느 끝이 있으리요
님 그림 저 하늘 같아 그릴수록 머오이다
깊고 먼 그리움을 노래 우에 얹노라니
정회情懷는 끝이없고 곡조곡조는 짜르이다
곡조曲調는 짜를지라도 남아 울림 들으소서
《실춘곡失春曲》 -1925.4.3. 고향 마산馬山
추산정騶山亭* 간밤 비에
도리화桃李花 다 떨렸네
늘어진 버들 아래 봄을 일고 섰느랄 제
송아지 녹음을 한 입 물고
언덕 넘어 오누나
목동牧童아 보았느냐
봄이 어디로 가시더냐
모르죠 우리들은
소치느라 못보았소
저 건너 늙은이 쑥을 캐니
게 가 물어 보시소
저 할미 일러 주오 봄 간 곳을 알거들랑
우리는 눈 귀 어둬
그런 것은 모르옵고
다만당 쑥이 다 쇠어
글로 걱정하노이다.
*추산騶山은 마산마산 서쪽에 있는 산山이다.
《장안사長安寺》 - 1930.7.20.
장하던 금전 벽우 金殿碧宇
찬 재 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오륙도五六島》 -1934.6.7.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 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흐리락
맑으락 하니
몇 섬인 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무 섬이
안개나 자욱하면
아득한 빈 바다라
오늘은
비 속에 보니
더더구나 몰라라.
《압록강압록강》 -1935.7.의주
굽이쳐 흐르는 물
여보 이게 압록강이오?
물은 연방 흐르는 데
발은 붙어 안떨어진다
이 강아
작기나 하렴
한 번 안아라도 보게
무수한 의인들이
울며 건너간 강이길래
두 다리
펼치고 앉아
목을 놓아 버린다
‘이 강을 건너서도
몇 천리가 내 땅이더니’
조상 적 옛이야긴
새삼스레 뇌지나 말자
오늘은
강 이쪽에도
자누울 곳이 없지 않나
오르고 내리는 배들
모두 다 푸른 옷이다
뗏목이 떠내려 온다
이번엔 검은 옷이다
애달프다
흰 옷 입은 사람은
배 한 척이 왜 없나
가슴을 풀어 놓고
강바람에 식혀 본다
코가 트이다 못해
메려거든 메려무나
관산關山에 해 저문 날을
강도 울고 나도 울고
*푸른 옷은 중국인, 검은 옷은 일본인.
《고지가 바로 저긴데》 - 1954.12. 그믐밤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함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 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나의 조국 나의 시》 - 197.3.1.
나는 가난한 사람
그러나 나는 가멸한 사람
누가 날 가난하다는고
내 가슴 속은 보지 못하고
내게는
보배가 있다
나의 조죽 나의 시
《천왕봉天王峯찬가》 - 1938.7
보라! 나는 지금
청왕봉 머리에 올랐노라
구름 안개를
모조리 다 헤치고
세상에
가장 높은 자 되어
하늘 위에 올랐노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여기 가득 찬 온갖 것들
작은 모래알과
나무 껍질까지라도
모두 다
나를 위하여
있는 것임을 알았노라
잘나고 높다는 자여
부귀를 자랑하는 자여
한 줌 띠끌보다
오히려 가소롭기만 하다
거기서
만족을 느끼려느냐
저 돼지 같은 인생이여
천하고 가난한 자여
불행을 탄식하는 자여
하늘이 따로 네게
슬픔을 준 일 없거늘
일생을
근심으로 보내느냐
저 버러지 같은 인생이여
지금 저 하늘 가에
빛을 놓을 저녁해가
오색 영롱한 속에
거룩한 잔치를 열고
장엄한
영광의 찬송가를
우렁차게 울리되-
너희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물려 받은
질투와 속임과
싸움의 테를 벗어나서
무궁한
대자연 속에
평화의 노래를 부를 지어라
인생은 잠깐이라
인생은 눈물이라
누가 너희들에게
그릇된 도를 전하더냐
인생은
천지로 더불어
영원이 여기 복된 자니라
《성불사成佛寺의 밤》 - 1931.8.19. 정방산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主僧은 잠이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하여라
뎅그렁 울릴 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인 젠 또 들리라
소리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소리 데리고
잠못들어 하노라
《독백》 - 1965.10.
참새같이 날아갔기에 잊으려 했던 옛 기억
이따금 획 돌팔매처럼 가슴 안으로 날아든다
광야보다도 더 허전한 가슴 밤바람조차 차가와
누구도 받들어 위하고 싶다 그에게 묶여서라도
‘골고다’란 대명사로 불리우는 자갈밭 조국
차라리 가시관 쓰고 져보고 싶은 십자가여
《이 마음》 -1931.10.13. 금화산(*서울 북아현동 인근의 산)
거닐다 깨달으니
몸이 송림에 들었구나
고요히 흐른 달빛
밝기 아니 황송한가
그늘져
어둔 곳만을
골라 딛는 이 마음
나무에 몸을 지혀
눈 감고 섰노랄 제
뒤에서 나는 소리
행여나 그대신가
솔방울
떨어질 적마다
돌려보는 이 마음
《인생》 - 1931.6.5. 안주역
차창을 내다볼 때
산도 나도 다가더니
내려서 둘러보니
산은 없고 나만 왔네
다 두고
저만 가나니
인생인가 하노라
2022.11.21. 가고파 바닷가에서 개암 김동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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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