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자: 2026.10.04 주일 낮 예배
- 말씀: 벧후3:3-13 /찬송(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
- 제목: 조롱하는 자를 염려하시는 주님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은혜찬양: (118) 서로 사랑하자 -by 오세영/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by Anvely
- 본문 봉독 - 요절은 3절입니다. 다 함께 요절만 봉독하겠습니다.
- 말씀봉독: 요절(벧후3:3)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신들의 악한 욕망에 따라 살면서 여러분을 비웃고 조롱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들어가는 말씀 -본문의 배경(벧후3:3-13)
베드로후서 3:3절의 말씀은 마지막 날로 알려진 역사의 한 부분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마지막 날은 성경에서 세상의 끝과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말씀의 내용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예언자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무장하여 시련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올 것이란 비웃음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세상의 마지막 시기에 나타날 것임을 보아, 그들은 교회 자체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들은 벧후3:5절에 나오는 창조와 홍수의 모세 역사를 고의로 무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이해를 위하여 베드로 사도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인 3장 전체를 보겠습니다.
벧후3:3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9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 마지막 날을 기억하라
성경에서는 마지막 날을 "마지막 때", "말세"라고 부르며, 세상 제도의 종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환난의 시기로 설명합니다(디모데 후서 3:1; 다니엘 8:19)
베드로후서 3:3에서 그 다음으로 나오는 단어는 “비웃는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의 재림과 세상이 끝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조롱합니다. 그들은 조롱하고 비웃고 크게 웃습니다. 그들은 부정주의자들이고,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어디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어요.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끝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있는지 조차 확실히 모르겠어요.” 그들은 미래에 심판이 있다는 생각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또 그들은 예수께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또 다른 차원에서 오신다는 생각을 비웃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격한 진노 속에 끝을 맞이할 것이라는 생각에 크게 웃습니다.
오늘 본문의 경고는 세상의 끝날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경고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각 개인적으로 만나는 마지막날과 온 세상이 만나는 마지막 날이 있는데, 본문의 통전적인 의미는 세상의 끝날을 말합니다. 여기서 통전(統全 holistic)적 관점이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종합적이고 총체적이며 근본적인 지식을 가지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지식과 일반계시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 즉 통전적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임니다. 개인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세상 끝나는 날은 하나님의 창조과 종말을 의미하겠지만 성도들의 일반적인 끝날은 개개인의 목숨줄이 끊어지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세상 끝날에 오시는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종말의 날은 누구에게나 정해져있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인생의 종말은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하여 아무리 요즘같이 의학이 발달하여도 100세 이상이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는 삶이 인생입니다. 다가오는 우리의 삶의 종말에 대비하는 자세는 인류역사가 시작하면서부터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가장 큰 화두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종말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잠언 4:23절 말씀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은 우엇입니까? 오늘의 본문이 그 중의 하나를 말씀해주십니다. 할렐루야~~~~
“먼저 이것을 알라. 곧 마지막 날들에 비웃는 자들이 와서 자기들의 정욕을 따라 걸으며” (베드로후서 3:3).
왜 그들이 비웃으며 크게 웃습니까? 다른 몇 구절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자기들의 정욕을 따라 걸으며” 또는 “자기의 정욕을 쫒으며”. 그들은 죄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것과 그들의 죄에 젖은 삶의 방식에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욕을 사랑하고, 자신들의 죄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리스도가 다시 오는 것을 원치 않으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거절합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진노와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는 죄와 악에는 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비웃고 있는 위선자들은 증거를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그들은 위선자들이기 때문에 진리를 알기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욕을 따라 걷는 비웃는 자들입니다!
2.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에게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시 9:2). 하나님의 자녀이자 백성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기쁨을 찾는다면, 그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났거나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우리가 세상에 있는 것으로 기쁨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에 있는 것이라면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신 27:7, 잠 5:18 참고).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써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을 보며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전 2:26; 시 63:11 참고).
이제 곧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심판과 멸망의 날(7절)”이라는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베드로후서 3장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증거는 믿을 수 있으니(1~2절), 세상의 썩어질 것들과 거짓 선생을 멀리하고(11, 17~18), 의가 가득한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라(13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경계하는 거짓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의 재림과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향한 ‘조롱’이 전부였습니다(3~4절).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할 수 있는 것도 자기의 정욕에 휘둘리기 때문(3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결국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싸움이며 그 해답은 “말씀”에 있다는 것을 5~7절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이 시작되었고, 말씀으로 멸망되기도 했으며(노아 홍수 사건), 말씀을 버리면 말씀으로 심판받게 될 것이지만, 말씀을 붙잡으면 말씀으로 보존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태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조롱하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존재는 미약하지만 그 또한 있었습니다. 말씀을 붙드는 자에게는 고난이 있더라도 결국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만 남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 편지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 새 하늘과 새 땅을 경험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강한 어조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새하늘과 새땅을 보리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고, 말씀이 아니고서는 누릴 수 없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과 평안입니다(요 14:27). 교회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 안에서 모든 성도가 이 은혜를 누리도록 돌보아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은혜 안에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롬 1:5; 6:17).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필수 요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으로 옮겨 주셨습니다(벧전 2:9).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바라고 원하는 구원의 계획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제자들은 다가올 날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었습니다, “또 주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마태복음 24:3).
“그분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따라가지 말라.” (누가복음 21:8). 또 그리스도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그러므로 너희가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사람의 아들 앞에 서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누가복음 21:36).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징조로 난리와 소요의 소문이 들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은 종말의 시작일 뿐, 곧바로 끝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주십니다. 이는 제자들과 신자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준비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혼란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들에 대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민족과 나라 사이의 갈등과 전쟁을 예고하시는 것은 세상의 혼란과 불안정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류의 죄악으로 인해 평화가 깨지고, 끊임없는 분쟁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될 때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론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 그날은 노아의 홍수 때와 같아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합니다(마 24:37~39). 어떻게 그렇게 무시무시한 징조를 보고도 멸망할 때까지 깨닫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그만큼 인간의 마음은 심각할 정도로 나약하고 나태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으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 종말에 있을 일들을 가르쳐주시고, 그 모든 일들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라 일러주시며, 그때에는 모든 사람이 무서움에 질려 죽은 자 같이 될 것이나 속량 받을 주의 백성들은 머리를 들것이라 말씀하셨다면 주님께서 그 다음 하실 말씀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앞서 말했지만 이 세상 종말은 그 징조가 나타나면서 지체 없이 닥칠 것이기에 그 징조를 보고난 후에는 사태를 돌이킬 여유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든 만나인들은 미리 미리 깨어 있어야 하고 항상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아멘
오늘도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