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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황의 권력과 수위권 · BookOfConcord.org
사악하고 교활한 양의 의복을 입은 이리의 악랄한 악마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스말칼드에 모인 신학자들이 엮은 논문 - 1537년- * Smalcald Articles 스말칼드 기사는 하단부에 게재 함.
1 로마 교황은 [우선적으로] 자신이 신의 권리에 의해 [모든 그리스도교국의] 모든 주교들과 목자들 위에 [최고의] 존재라고 주장한다.
2 둘째로, 그는 또한 하나님의 권리에 의해 그분은 두 개의 검, 즉 왕국들을 수여하는 권세[왕들을 즉위시키고 폐위시키며, 세속적 통치를 규제하는 등]를 가지고 계신다고 덧붙인다.
3 그리고 셋째로, 그는 이것을 믿는 것이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로마 주교는 자신을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부른다.
4 우리는 이 세 가지 조항이 거짓되고, 불경건하고, 전제적이며, 교회에 해롭다고 생각합니다.
5 이제, 우리의 증거[이성과 의견]가 [더 잘 이해될 수 있도록] 우리는 먼저 그들이 모든 것 위에 있는 존재라고 부르는 것[그분이 최고임을 자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을 신의 권리에 의해 정의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황이 보편적이라는 것[교황은 전체 기독교 교회를 다스리는 총주교이다], 또는 그들이 말하듯이, 세계 주교, 즉 전 세계의 모든 주교와 목회자들이 서품과 견진을 구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6 이 밖에도, 그는 예배 행위에 관한 [모든 종류의] 율법을 제정할 수 있는 권위를 자신에게 부여하고, 그의 조항, 그의 법령, 그의 법[그의 규례와 규례]가 신의 율법[기독교 신경과 성경의 다른 조항들]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되기를 바란다. 즉, 그는 교황의 율법에 의해 인간의 양심이 너무나 묶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공적인 범죄가 없을지라도, 죽을 죄를 짓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능력을 하나님의 권리와 성경 위에 발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그것이 성경과 하나님의 명령들보다 우선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가 덧붙이는 것은 더욱 끔찍한데, 즉,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이 모든 것은 구원을 상실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믿어져야 하고 믿어져야만 한다].
7 그러므로, 우선, [거룩한] 복음을 통하여 보여 주자, 로마 주교는 다른 주교들과 목사들보다 신의 권리에 의하여 [어떠한 우월성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줍시다.
8 I. 누가복음 22:25.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 사이에서 주권이 되는 것을 명백히 금하십니다[어떤 사도도 나머지 사람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것].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바로 그 질문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누가 선두에 서야 하는지, 그리고 부재중이신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거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의 이러한 잘못을 책망하시고, 그들 가운데 주권이나 우월성이 있어서는 안 되며, 사도들은 복음의 공동 사역에 동등하게 파송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따라서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방인의 왕들이 그들에게 주권을 행사하고, 그들에게 권세를 행사하는 자들은 은인이라 일컬어지되, 너희는 그러지 말지니라; 너희 중에 가장 큰 자는 어린 자와 같이 될지니라; 그리고 으뜸이 되는 자는 섬기는 자처럼 할지니라. 여기서의 정반대는 [이러한 문제들을 서로 대립시킴으로써] [사도들 사이에서] 주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II. 마태복음 18:2. 그리스도께서 왕국에 관한 동일한 논쟁에서 어린아이를 가운데 두셨을 때, 어린아이가 스스로 주권을 취하지도 구하지도 않는 것처럼, 목사들 사이에는 주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비유가 같은 것을 가르쳐 준다.
9 III. 요한 20:21.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아무런 구별 없이 동등하게 보내시며(그래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거나 적은 권력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신다. [이 말은 명확하고 분명합니다:] 그분께서는 그분 자신이 보내심을 받았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개별적으로 보내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어느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특권이나 주권을 부여하지 않으신다.
10 IV. 갈라디아서 2:7f 성 바울은 자신이 베드로에 의해 성임되거나 견진을 받지도 않았으며, 베드로가 견진을 구해야 할 사람임을 인정하지도 않는다고 분명히 단언한다. 그리고 그는 이 점에 관하여 자신의 부름이 베드로의 권위에 달려 있지 않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베드로가 하나님의 권리에 의해 우월했다면(만일 베드로가 실제로 그리스도로부터 그러한 지월성을 받았다면), 그는 베드로를 우월한 존재로 인정했어야 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이 베드로와 상의하지 않고 즉시 [오랫동안 자유롭게] 복음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다소 (그들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은 나에게 상관없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인격도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회의에 참석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나에게 아무 것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베드로가 그에게 왔을 때조차도 그의 견진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증언하기 때문에, 그는 사역의 권위가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고,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보다 우월하지 않았다는 것과, 안수나 견진을 구해야 할 사람이 바로 이 한 개인 베드로에게서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사역은 사도들의 일반적인 부름에서 출발하며, 모든 사람이 이 한 사람, 베드로 혼자만의 부름이나 견진을 가질 필요는 없다.]
11 볼트. 고린도전서 3장 6절에서 바울은 목사들을 동등하게 만들고, 교회가 목사들 위에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교회나 나머지 목사들에 대한 우월성이나 주권은 베드로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를, 바울이든, 아볼로든, 게바이든, 모든 것이 너의 것이다, 즉 다른 목사들이나 베드로가 스스로 교회에 대한 주권이나 우월성을 취하지 못하게 하라. 그들이 전통으로 교회에 짐을 지우지 않도록 하십시오. 어떤 권위의 권위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무익하지 못하게 하라. 게바의 권위가 다른 사도들의 권위에 대항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그 당시에 논리했던 것처럼: "더 높은 지위의 사도인 게바가 이것을 지킨다. 그러므로 바울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것을 지켜야 한다." 바울은 베드로에게서 이 구실을 제거하고, 그의 권위가 다른 사람들이나 교회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부인한다[그렇지 않다고 바울은 말한다. 베드로는 그의 작은 모자, 즉 주장을 벗어 버린다].
12 VI. 니스 공의회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동방의 교회들을 관리하고, 로마 주교는 교외, 즉 서방의 로마 속주에 있는 교회들을 관리하기로 결의했다. 이로부터 인간의 법, 즉 공의회의 결의에 의해 로마 주교의 권위가 처음으로 생겨났다. 만일 로마 주교가 이미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우월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공의회가 그에게서 어떤 권리도 빼앗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에게 넘기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동방의 모든 주교들은 로마의 주교로부터 서품과 견진을 영구했어야 했다.
13 VII. 다시 니스 공의회는 주교들이 그들 자신의 교회에 의해, 이웃 주교나 여러 명의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선출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14 키프리아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증언하는 바와 같이, 동방에서뿐만 아니라 서방과 라틴 교회들에서도 [오랫동안] 동일한 현상이 관찰되었다. 키프리아누스는 고넬료에게 보낸 네 번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따라서 거룩한 준수와 사도적 실천에 관해서는, 그대는 우리들 가운데서, 그리고 거의 모든 관구에서 지켜지는 것을 부지런히 지키고 실천해야 한다, 서품식을 제대로 거행하기 위해서는, 같은 관구의 주교들이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누구든지 목사가 임명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야 한다. 그리고 주교는 각 사람의 생애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선출되어야 하며, 우리는 또한 우리의 동료 사비누스의 서품식에서 우리 가운데서 행해진 것을 보았으며, 그것은 전체 형제단의 투표권에 의해, 그리고 그들 앞에 모인 주교들의 판단에 의해 행해졌다. 주교직이 수여되고 그에게 안수되었다.
15 키프리아누스는 이 관습을 신성한 전통이자 사도적 준수라고 부르며, 거의 모든 지방에서 지켜지고 있다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라틴 교회와 그리스 교회들에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 있는 로마의 주교에게서, 서품이나 견진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당시 교회들이 로마의 주교에게 우월성과 지배권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명백하다.
16 그러한 우월성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한 명의 주교가 전 세계의 교회들의 감독자가 되는 것이나, 가장 먼 나라에 위치한 교회들이 한 사람으로부터 [그들의 모든 목사들을 위한] 서품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온 세상에 흩어져 있음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동방에는 로마 주교로부터 서품이나 견진을 구하지 않는 많은 교회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우월성[모든 성경에 반대하여 교황이 스스로 거만하게 여기는] 것은 불가능하고, 세상의 대다수에 있는 교회들이 그것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활용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것이 아니며, 신성의 율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명백하다.
17 VIII. 많은 고대 종교 회의가 선포되고 개최되어 로마의 주교가 주재하지 않았습니다. 니스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이것 역시 그 당시 교회가 로마 주교의 수위권이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언한다.
18 IX. 제롬은 말한다: 권위에 관한 질문이라면, 세상은 도시보다 더 위대하다. 주교가 있었던 곳마다, 로마, 에우구비움, 콘스탄티노플, 레기움, 알렉산드리아, 어느 곳에서나, 그는 동일한 위엄과 사제직을 지니고 있다.
19 X. 그레고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에게 편지를 써서, 그가 보편적 주교라고 불리는 것을 금한다. 그리고 기록에서 그는 칼케돈 공의회에서 수위권이 로마의 주교에게 제안되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20 XI. 마지막으로, 교회가 선출을 할 때, 그리고 로마의 주교들이 황제에 의해 확정되는 관습이 점차 널리 퍼졌을 때, 어떻게 교황이 신의 권리로 전체 교회를 다스릴 수 있는가? 21 또한,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들 사이에 수위권에 관한 논쟁이 오랫동안 있었을 때, 포카스 황제는 마침내 수위권이 로마의 주교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대 교회가 로마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했더라면, 이러한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황제의 칙령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22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대항하여 어떤 구절들을 인용하는데, 곧 마태복음 16:18f 너는 베드로요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울 것이다; 또한 내가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또한 요한복음 21:15: 내 양들과 다른 사람들을 먹이라. 그러나 이 모든 논쟁은 우리 신학자들의 책의 다른 곳에서 완전하고 정확하게 다루어졌고, 여기서 모든 것을 검토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저술들을 참조하며, 그것들이 반복되는 것으로 간주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인용된 구절들의] 해석에 관하여 간략하게 대답할 것이다.
23 이 모든 구절에서 베드로는 본문 자체에서 나타나 있듯이, 사도들의 전체 모임을 대표하는 대표자입니다[그리고 그 자신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도들을 대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만 묻지 않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여기서 단수로 [베드로에게만] 말한 것은 단수로 되어 있다: 내가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그리고 네가 무엇이든지 매야 할 것 등은 다른 곳에서, 복수형으로 [그들의 전체 수에게] 표현되어 있다. 마태복음 18:18: 무엇이든지 너희가 매는 것은 무엇이든지 등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20장 23절에서: 너희가 누구의 죄를 사느냐 등. 이 말씀은 열쇠가 모든 사도에게 똑같이 주어졌으며 모든 사도가 똑같이 [전파하도록]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24 이에 더하여, 가장 분명하고 확고한 주장들이 증언하듯이, 열쇠들은 한 특정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열쇠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마태복음 18:19에 덧붙인다: 너희 중에 두세 사람이 땅에서 동의한다면. 그러므로 그는 열쇠를 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교회에 부여하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교회는 주로 부름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복음의 약속이 확실하고 즉각적으로 온 교회에 속한 것처럼, 열쇠들도 즉시 전체 교회에 속한다. 왜냐하면 그 열쇠들은 이 약속을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는 직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교회의 목사들을 임명할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실제로 명백한 것과 같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으로 말씀하신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매어야 할 것이요, 그분이 열쇠를 누구에게 주셨는지, 즉 교회를 가리켜 주시니, 거기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였느니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최고이자 최종적인 관할권을 주신다.
그러므로 이 구절들에서 베드로는 사도들의 전체 모임의 대표자일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베드로에게 어떤 특권이나 우월성, 또는 주권[그가 다른 사도들보다 우선적으로 가졌거나 가져야 했던] 주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25 그러나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는 선언에 관해서 는, 확실히 교회는 사람의 권위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는 신앙 고백의 사역 위에 세워졌다. 따라서 그는 그를 목사로서 부른다: 이 반석 위에, 즉 이 사역 위에. [그러므로 그는 이 신앙 고백과 교리가 작용하게 될 이 직분의 목사로서 그를 부르며 이렇게 말한다: 이 반석 위에, 즉 이 설교와 사역 위에서.]
26 더욱이, 신약의 사역은 레위 지파의 사역과 같이 장소와 개인에게 얽매이지 않고, 온 세상에 흩어져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물을 주시는 곳, 곧 사도, 선지자, 목사, 교사가 있는 곳에 있습니다. 이 사역은 어떤 사람의 권위로 말미암아도 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말씀 으로 말미암아 쓰여집니다. 27 [교사라는 사람도 이 말씀과 직분에 아무 것도 더하지 않는다. 누가 그것을 설교하고 가르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만일 그것을 받아들이고 매달리는 마음이 있다면, 그들은 듣고 믿는 대로 그것을 행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베드로라는 인물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리겐, 키프리아누스, 아우구스티누스, 28 힐러리, 그리고 베데 와 같은 대부분의 거룩한 교부들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크리소스톰은 베드로가 아니라 "이 반석 위에"라고 말한다. 그분은 인간 위에가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 위에 그분의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무엇이었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리고 힐러리는 말한다: 베드로에게 아버지께서는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계시하셨다. 29 그러므로 교회의 건축은 이 고백의 반석 위에 있는 것이니, 이 신앙이 교회의 기초이니라.
30 그리고 요한복음 21:15 이하: "내 양을 먹이라, 그리고 네가 이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그러므로 베드로에게 특별한 우월성이 주어졌다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베드로에게 "먹이라", 즉 말씀[복음]을 가르치라, 또는 말씀[복음]으로 교회를 다스리라고 명하는데,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공통점이 있다.
31 두 번째 조항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오직 영적인 능력, 즉 복음을 가르치고, 죄 사함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행하고, [말씀으로] 육체적 힘이 없는 불경건한 자들을 파문하라는 명령만을 주셨다는 것과, 칼의 권세나 제정권을 주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세상의 왕국을 점령하거나 수여하여 [왕을 세우거나 폐위시키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28:19. 20: 너희는 가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또한 요한복음 20:21: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느니라.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요한복음 18:36,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칼을 가지거나 세상 왕국을 소유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후서 1:24을 말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의 믿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해서 주관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10:4: 우리 전쟁의 무기는 육신의 것이 아니니라.
32 따라서, 수난 중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왕실 자주색으로 조롱을 받으시도록 끌려나오셨다는 것은, 장차 그분의 영적 왕국이 멸시를 받은 후, 즉 복음이 억압된 후에, 교회의 권세를 구실로 세속적인 또 다른 왕국이 [그 자리에] 세워질 것임을 의미했다. 33 그러므로 보니파시오 8세의 헌법과 옴네스 제22장, 그리고 교황이 신의 권리에 의해 세상 왕국들의 통치자라고 주장하는 유사한 견해들은 [완전히] 거짓이며 불경건하다. 34 이러한 설득으로 말미암아 무서운 암흑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그 후 유럽에서도 큰 소동이 일어났다. 복음의 사역이 등한시되었고, 신앙의 지식과 영적 왕국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의로움은 교황이 세운 외적 정부로 여겨졌다.
35 다음으로, 교황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왕국들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왕국들을 이전하였고, 유럽에 있는 거의 모든 나라들의 왕들, 특히 독일 황제들을 부당한 파문과 전쟁으로 괴롭혔으며, 때로는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점령할 목적으로, 또 다른 때는 독일의 주교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그리고 황제로부터 주교의 수여권을 빼앗았다. 그렇다, 클레멘타인 문헌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제국이 공석일 때, 교황은 합법적인 후계자이다.
36 이와 같이 교황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반하여 통치권을 찬탈하였을 뿐만 아니라, 압제적으로 자신을 모든 왕들 위에 높였다. 그리고 이 문제에 있어서, 행위 그 자체가 혐오받아야 하는 것만큼이나 비난받아서는 안 되며, 그가 그리스도의 권위를 구실로 내세우는 것이다. 그는 열쇠를 세상 정부에 넘겨준다. 그는 이 통치권이 신의 권리에 의해 그에게 속해 있다고 믿는 것이 구원에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불경건하고 무서운 견해들에 구원을 묶어 놓는다.
37 이 큰 오류들이 신앙과 그리스도의 왕국에 관한 교리를 모호하게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결코 감추어져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그들이 교회에 큰 해충이 되어 왔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38 셋째로, 이것은 덧붙여져야 한다: 로마의 주교가 하나님의 권리에 의해 수위권과 우월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신론적 예배, 우상 숭배, 그리고 복음과 모순되는 교리를 옹호하는 교황들에게 복종은 마땅히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없으며; 그러한 교황과 그러한 정부는 바울이 분명하게 가르친 바와 같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한다(갈라디아서 1:8: 하늘로부터 온 천사가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전할지라도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리고 사도행전 5장 29절에서: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법은 이단적인 교황에게 복종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레위의 대제사장은 신의 권리에 의한 대제사장이었지만, 예레미야와 다른 선지자들이 대제사장들로부터 이탈했고, 사도들이 가야바로부터 이탈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순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불경건한 대제사장들은 복종해서는 안 되었다.
39 이제, 로마 교황들이 그들의 지지자들과 함께 불경건한 교리와 불경건한 예배를 옹호[그리고 실천]한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표식[모든 악덕]은 교황과 그의 추종자들의 왕국과 명백히 일치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적그리스도를 설명하면서 살후 2:3-4을 그리스도의 대적이라고 부르는데, 그는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이나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에 자기를 대적하고 높여서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에 앉는다. 그러므로 그는 이교도의 왕들이 아니라 교회 안을 다스리는 한 분에 대해 말하며, 이 사람을 그리스도의 대적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그가 복음과 모순되는 교리를 고안해 낼 것이기 때문이며, 그 자신에게 신성한 권위를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40 더욱이, 무엇보다도, 교황이 교회 안에서 통치하며, 교회의 권위와 성직을 구실로 그 자신을 위하여 이 왕국을 설립해 왔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는 이 말을 구실로 내놓는다: 내가 네게 열쇠를 주리라. 둘째, 교황의 교리는 여러 면에서 복음과 충돌하며, [셋째] 교황은 삼중적인 방식으로 자신에게 신성한 권위를 부여한다. 첫째, 그는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봉사를 변경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취하고, 자신의 교리와 봉사가 신성하게 지켜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분은 이생에서 매고 푸는 권세를 스스로 가지실 뿐만 아니라, 이생 이후의 영혼들에 대한 관할권도 가지시기 때문이다. 셋째, 교황은 교회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판단받기를 원하지 않으며, 공의회와 교회 전체의 결정보다 자신의 권위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판단받기를 원치 않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오류와 불경건함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에 그는 가장 잔인하게 변호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인다.
41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의 무신론적 교리, 신성 모독, 불의한 잔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그들은 교황을 버리고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적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처형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대로, 마태복음 7:15: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리고 바울은 경건치 않은 교사들을 피하고 저주받은 것으로 처형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갈 1:8; 디도 3:10. 그리고 그는 고린도후서 6:14을 말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 빛과 어두움의 교제가 무엇이뇨?
42 그토록 많은 나라들의 합의에 반대하고 분리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위는 모든 사람에게 불경건과 불의한 잔인함의 동맹자나 옹호자가 되지 말라고 명령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충분히 변명된다. 왜냐하면 교황 왕국의 잘못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 목소리를 다해 이러한 오류들이 마귀와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외칩니다. 43. 대중을 더럽히는 우상 숭배가 명백한데, 그것은 다른 결점들 외에도, [전혀 쓸모없는 것뿐만 아니라] 가장 부끄러운 이득[그리고 매매]에 뻔뻔스럽게 적용된다. 44 회개의 교리는 교황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완전히 변질되었다. 그들은 우리 행위의 가치 때문에 죄가 사해진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우리에게 사면이 일어나는지 의심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그리스도를 위해 죄가 값없이 사해진다고, 이 믿음으로 죄 사함을 얻는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흐리게 하고, 양심에서 확고한 위로를 빼앗으며, 참된 신성한 봉사, 즉 [복음의 약속에 관한] [불신과] 절망과 투쟁하는 믿음의 훈련을 폐지합니다.
45. 그들은 죄에 관한 교리를 흐리게 하고, 범죄를 열거하는 전통을 만들어 내어, 많은 오류와 절망을 낳았다.
그들은 또한 만족을 고안해 냈으며, 그로 인해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의 유익[과 공로]을 흐리게 하였다.
46이 로부터 면죄부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이익을 위해 날조된 순수한 거짓말이다.
47 그렇다면, 성인들의 기도가 얼마나 많은 학대와 끔찍한 우상 숭배를 낳았는가!
48 독신 생활에 관한 전통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행위가 발생하였습니까!
서원에 관한 교리가 복음 위에 얼마나 어둡게 퍼져 왔던가! 거기서 그들은 서원이 하나님 앞에 의이며 죄 사함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가장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유익을 인간의 전통으로 옮겨 놓았고, 믿음에 관한 교리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그들은 가장 하찮은 전통들이 하나님을 위한 봉사와 완전이라고 가장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제정하신 부름의 일들보다 그것들을 더 좋아해 왔다. 또한 이러한 오류들은 가벼운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손상시키고 영혼들에게 멸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은 눈에 띄지 않고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49 그리고 이러한 오류들에 두 가지 큰 죄가 더해진다: 첫째, 그는 부당한 잔인성과 사형으로 이러한 오류들을 변호한다. 둘째, 그는 교회로부터 결정을 빼앗고, 교회적 논쟁[그러한 종교 문제]이 규정된 방식에 따라 판단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공의회 위에 있다고 주장하며, 교회법이 때때로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공의회의 법령을 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교황에 의해 훨씬 더 뻔뻔스럽게 행해졌다는 것이 예증된다.
50 퀘스트 9, 교회법 3은 말한다: 아무도 첫째 자리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재판관은 황제나 모든 성직자나 왕이나 백성에 의해 판단되지 않기 때문이다.
51 교황은 이중적인 횡포를 행사한다: 그는 무력과 살인으로 자신의 잘못을 변호하고, 사법적 심사를 금지한다. 후자는 어떤 처형보다도 훨씬 더 큰 해를 끼치는데, 그 이유는 교회의 참된 심판이 제거될 때, 무신론적 교의와 무신론적 예배는 제거될 수 없으며, 많은 시대 동안 그것들은 무수한 영혼들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52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들은 교황의 왕국과 그의 폭정의 큰 잘못들을 숙고해야 하며, 먼저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그 오류들을 거부하고 참된 교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숙고해야 한다. 53 그러고 나서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틀림없이 그들의 피를 갚으실 성인들을 죽이는 불의한 잔인함을 돕는 것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54 그러나 특히 교회의 주요 구성원들인 왕들과 방백들은 교회의 이익을 수호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왕들에게 명백히 권고하시는 바와 같이, 잘못이 제거되고 양심이 치유[바르게 교육받도록] 교회에 보아야 한다, 시 2:10: 그러므로 너희 왕들아, 이제 지혜를 얻을지어다. 땅의 재판관들아, 교훈을 받아라. 하나님의 영광을 앞당기는 것이 왕[과 위대한 주들]의 첫 번째 관심사가 되어야 함이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우상 숭배와 다른 무한한 범죄를 확증하고 성도들을 살육하기 위해 그들의 영향력과 권력을 빌려주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55 그리고 설령 교황이 시노드를 소집한다 할지라도, 교황이 그의 뜻에 반하는 법령을 전혀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아무런 예외 없이 그의 폭정과 사악함을 변호하기 위해 무서운 맹세와 저주로 묶인 그의 추종자들 외에는 아무도 그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어떻게 치유될 수 있겠는가?
56 그러나 시노드의 결정은 교황의 결정이 아니라 교회의 결정이기 때문에, 교황의 허가를 확인하고(그러한 방탕함을 허용하지 않으며),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선포하는 권세가 교회로부터 빼앗기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은 특히 왕의 의무이다. 그리고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이 교황의 다른 모든 잘못을 규탄해야 하듯이, 그들도 교황이 교회의 참된 조사와 참된 결정을 회피하고 방해할 때 교황을 꾸짖어야 한다.
57 그러므로, 비록 로마의 주교가 하나님의 권리에 의해 수위권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가 복음과 모순되는 무신론적 예배와 교리를 옹호하기 때문에, 그에게 복종해야 할 것이 아니다. 교황의 잘못은 명백하며 사소한 것이 아니다.
58 또한 그분이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행하시는 잔인함이 명백하다. 그리고 우리가 우상 숭배, 무신론적 교리, 불의한 잔인함을 피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이 분명합니다. 이 때문에 모든 경건한 사람들은 교황에게 순종하지 않는 위대하고, 설득력 있고, 명백한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강력한 이유들은 경건한 사람들을 범죄, 분열, 불화[그것들이 일으킨다고 말하는] 불화에 관하여 그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비난에 대해 위로한다.
59 그러나 교황의 의견에 동의하고, 교황의 교리와 [거짓] 예배를 옹호하고, 우상 숭배와 신성 모독적인 견해로 스스로를 더럽히고, 교황[과 그의 추종자들]이 박해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손상시키며, 교회의 복지를 방해하는 경건한 자들의 피를 유죄로 만드는 자들은, 그것들이 모든 후손들에게 오류와 범죄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주교의 권한과 관할권에 관하여
60 [우리의 신앙고백과 변증서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회의 권세에 관하여 우리가 말해야 했던 것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왜냐하면] 복음은 교회를 감리하는 사람들에게 죄를 사하기 위해 복음을 가르치고, 성례전을 집행하고, 관할권 외에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파문하라는 명령, 그리고 다시 회개하는 사람들을 사면하라는 명령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61 그리고 모든 사람, 심지어 대적자들의 고백에 의해, 하나님의 권리에 의한 이 권세는 그들이 목사라고 불리든, 장로라고 불리든, 주교라고 불리든 간에 교회를 다스리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62 따라서 제롬은 사도의 서한에서 교회를 다스리는 모든 사람은 주교와 장로라고 공개적으로 가르치며, 디도서 1장 5절의 말씀을 인용한다: 이 때문에 내가 너를 크레데에 남겨 두었으니 이는 네가 모든 성읍에서 장로를 세우려 함이니라. 그런 다음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주교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을 장로[또는 제사장]라고 부른다: 벧전 5:1; 요한 2서 1장. 그러나 그 후에 한 사람이 선택되어 다른 사람들 위에 놓이게 된 것은, 이것은 분열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각 사람이 [여기저기서 회중을] 끌어들임으로써 그리스도의 교회를 분열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복음 전도자 마가로부터 헤라클레스와 디오니시우스 주교에 이르기까지, 장로들은 항상 자기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출하여 더 높은 지위에 앉혔는데, 그는 그들이 주교라고 불렀다. 마치 군대가 스스로 사령관이 되는 것처럼. 더욱이, 부제들은 자기들 가운데서 활동적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을 선출하여 대주교라고 지명할 수 있다. 서품을 제외하고, 장로가 하지 않는 주교는 무엇을 하는가?
63 그러므로 제롬은 주교와 장로 또는 목사의 등급이 구별되는 것은 인간의 권위에 의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주체 자신이 이것을 선언한다, 왜냐하면 권력[직위와 명령]은 그가 위에서 말했듯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64 그러나 그 후에 주교와 목사를 구별하게 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한 명의 주교가 여러 교회에서 목사를 서품하는 것이 [그래서] 정해졌기 때문이다.
65 그러나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주교와 목사의 등급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 자신의 교회에서 목사에 의해 집행되는 안수는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유효하다는 것이 명백하다[만일 그 자신의 교회에서 목사가 목회에 적합한 어떤 사람을 안수한다면, 그러한 안수는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의심할 여지 없이 효력적이고 옳은 것이다].
66 그러므로, 정규 주교들이 교회의 적이 되거나 서품을 집행하기를 꺼려할 때, 교회들은 그들 자신의 권리를 유지한다. [일반 주교들이 복음을 박해하고 적합한 사람을 서품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모든 교회는 이 경우에 그 자신의 목사를 서품할 수 있는 전권을 갖는다.]
67 이는 교회가 어디에 있든지 복음을 집행할 권세[명령]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직자를 부르고, 선출하고, 성임할 수 있는 권세를 보유해야 한다. 그리고 이 권위는 실제로 교회에 주어진 선물이며, 어떤 인간의 힘도 교회에서 빼앗을 수 없는 선물이며,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증언하기를, 엡 4:8 "그는 승천하시고, 인간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하면서 증언한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목사들과 교사들에게 특별히 속한 은사들을 열거하고, 그러한 은사들은 사역을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덕을 세우기 위해 주어진다고 덧붙인다. 그러므로, 참된 교회가 있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목사를 선출하고 안수할 권리가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 마치 필요한 경우에 평신도라도 사면하여 다른 사람의 목사와 목사가 되는 것과 같다. 어거스틴은 배에 탄 두 명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중 한 명은 교리 교육자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다음에는 세례를 받은 후에 그 세례자를 사면했다.
68 열쇠가 단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에 주어졌음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기에 있다(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 등).
69 끝으로, 베드로의 진술 역시 이것을 확증해 준다: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이 말씀은 참된 교회에 관한 것이며, 참된 교회만이 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직자를 선출하고 임명할 권리를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70 그리고 이것은 또한 교회의 가장 일반적인 관습이 증언한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목사와 주교를 선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그 교회나 이웃 교회의 감독이 와서 안수로 선출된 사람을 확인했다. 그리고 서품은 그러한 비준에 지나지 않았다. 71 그 후에 새로운 의식들이 추가되었는데, 그 중 많은 예식들이 디오니시우스가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가 누구이든 간에 [이 디오니시우스의 책은 거짓 제목의 새로운 소설이다], 클레멘트의 저술들 역시 가짜인 것처럼[거짓 제목을 가지고 있으며, 클레멘트보다 훨씬 뒤에 있는 사악한 악당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자 더 많은 현대 저술가들이 덧붙였다: [주교가 그가 임명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너에게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해 희생할 능력을 준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디오니시우스에게는 없다.
72 이 모든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교회는 목사를 선출하고 임명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주교들의 사악함과 횡포는 분열과 불화의 원인을 제공한다[그러므로, 만일 주교들이 이단이거나 적합한 사람을 임명하지 않는다면, 교회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그들 자신을 위한 목사와 목사를 임명해야 할 의무를 하나님 앞에 묶여 있다. 비록 이것이 지금은 변칙성 또는 분열이라고 불릴지라도, 무경건한 교리와 주교들의 횡포가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갈라디아서 1:7f에서 무신론적 교리와 무신론적 예배를 가르치고 옹호하는 주교들은 저주받은 자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73 우리는 서품에 대해 말했는데, 제롬이 말한 것처럼 그것만이 주교를 다른 장로들과 구별시켰다. 그러므로 주교의 다른 의무에 관해서는 논의할 필요가 없다. 견진성사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고, 종을 봉헌하는 것(또는 이런 종류의 다른 어리석은 일들)에 대해서도 말할 필요가 없는데, 그것들은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것들이다. 관할권에 관해서 뭔가를 말해야 한다.
74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파문할 수 있는 공동 관할권은 모든 목회자에게 속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들은 이것을 전제적으로 그들 자신에게만 전가해 왔으며, 그것을 이득의 획득에 적용해 왔다. 왜냐하면, 이른바 관리들이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면허를 사용했고, 탐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모한 욕망 때문이었는지, 사람들을 괴롭히고 적법한 법적 절차 없이 그들을 파문했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 관리들이 정당한 법 절차 없이 사람들을 단죄하고 파문할 수 있는 독단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압제적인 일인가! 75 그러면 그들은 어떤 종류의 일에서 이 권세를 남용하였는가? 사실, 진정한 범죄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금식이나 축제를 어기는 것, 또는 사소한 일과 관련하여! 다만, 그들은 때때로 간음을 처벌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있어서 그들은 종종 무고하고 명예로운 사람들을 괴롭혔다. 게다가, 이것은 가장 중대한 범죄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적법한 법 절차 없이는 단죄되어서는 안 된다.
76 그러므로 주교들은 이 관할권을 전제적으로 그들 자신들에게만 양도해 왔고, 그것을 비열하게 남용해 왔으므로, 이 관할권 때문에 주교들에게 복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 정당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에, 이 관할권을 경건한 목사들[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해 이 교회가 속한 목회자들에게] 회복시켜 주고, 도덕의 개혁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것이 합법적으로 행사되도록 하는 것 또한 옳다.
77 교회법에 따라 교회 재판소라고 부르는 사건들, 특히 혼인에 관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관할권이 남아 있다. 이것 역시 주교들이 인권에 의해서만 가지고 있으며, 유스티니아누스의 코덱스와 노벨라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당시의 결혼에 관한 결정은 행정관들의 몫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그리 오래된 권리는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리에 의해, 세속적 치안판사들은 주교들이 [불공정하게 판결하거나 태만하다면] 이러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교회법도 같은 것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이 관할권 때문에 주교에게 복종할 필요는 없다. 78. 그리고 실로, 그들이 결혼에 관한 어떤 부당한 법률을 제정하고, 그들의 법정에서 그것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다른 법정을 세울 필요도 있다. 왜냐하면 영적 관계(후원자들 사이의 결혼 금지)에 관한 전통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무죄한 사람이 이혼 후에 결혼하는 것을 금하는 전통은 또한 불의하다. 또한 법은 일반적으로 부모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은밀하고 부정한 약혼을 승인하는 법이다. 사제의 독신에 관한 율법 역시 불의하다. 그들의 율법에는 또한 양심의 다른 덫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모두 암송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 결혼 문제에 관한 교황의 부당한 법률이 많이 있으며, 이 때문에 치안 판사들은 다른 법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것을 암송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79그러 므로, 교황에게 헌신하는 주교들이 무신론적 교리와 무신론적 예배를 옹호하고, 경건한 교사들을 서품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교황의 잔인함을 돕고, 더욱이, 목사들로부터 사법권을 빼앗아 왔으며, 그것을 단지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제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은 결혼의 경우에 많은 불공정한 법률을 지키기 때문에, 교회들이 이들을 주교로 인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너무나도 많고 필연적이다.
80 그러나 그들 자신은 부(재산과 수입)가 교회의 관리와 유익을 위한 자선금으로 주교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이러한 자선금을 소유할 수 없으며, 한편으로는 성직자를 지원하고, 학문을 돕고(학식 있는 사람을 교육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고, 법원을 설립하고, 특히 결혼을 위해 이러한 수단을 필요로 하는 교회를 사취해서는 안 된다. 81 결혼 논쟁의 다양성과 범위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를 위한 특별 재판소가 필요하며, 이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기부금이 필요하다. 82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2:13을 통해 교회의 자선금을 사치스럽게 남용하고 직무를 소홀히 하는 불경건한 주교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이와 관련하여 무서운 위협을 가하시므로] 교회를 사취하는 자들은 그들이 이 범죄에 대한 대가를 하나님께 치르게 될 것임을 알게 하십시오.
의사와 설교자(AC/AP 서명자)
의사와 설교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 고백과 변증(Confession and Apology, A. D. 1537)에 서명한 사람.
가장 저명한 군주들과 복음의 교리를 공언하는 교단들과 국가들의 명령에 따라, 우리는 아우크스부르크 회의에서 황제에게 제출된 신앙 고백의 조항들을 다시 읽었으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칼드에서 열린 이 집회에 참석한 모든 설교자들은 신앙 고백과 변증서의 조항에 따라 그들의 교회에서 믿고 가르친다고 조화롭게 선언한다. 그들은 또한 교황의 수위권과 그의 권세, 그리고 주교들의 권세와 관할권에 관한 조항을 승인한다고 선언하는데, 이 조항은 스말칼드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제후들에게 제시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구독합니다.
1 나, 포메라누스(Pomeranus)의 존 부겐하겐(John Bugenhagen) 박사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 고백의 조항들, 변증문(Apology), 그리고 교황권에 관해 말칼드(Smalcald)의 제후들에게 제시된 조항에 동의한다.
2 나 역시 뤼네부르크 공국에 있는 교회들의 감독관인 우르반 레기우스 박사(Dr. Urban Rhegius)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3 마그데부르크의 니콜라우스 암스도르프(Nicolaus Amsdorf)가 구독했다.
4 Altenburg의 George Spalatin이 구독했습니다.
5 나, 앤드류 오시앤더(Andrew Osiander)는 구독합니다.
6 뉘른베르크의 Magister Veit Dieterich가 구독했습니다.
7 호프(Hof)의 장관 스티븐 아그리콜라(Stephen Agricola)는 자신의 손으로 신청했다.
8 마르부르크의 존 드라코니테스가 구독했다.
9 콘라드 피겐보츠(Conrad Figenbotz)는 모든 것을 구독했다.
10 마틴 부서.
11 나, Erhard Schnepf, 구독합니다.
12 폴 로디우스, 슈테틴의 설교자.
13 게르하르트 오이니켄, 민덴 교회 목사.
14 브릭시우스 노다누스, 수스트의 성직자.
15 시몬 슈네바이스, 크라일스하임 교회 목사.
16 나 포메라누스는 그가 내게 명령한 대로 마기스터 존 브렌츠의 이름으로 다시 서명한다.
17 필립 멜란히톤(Philip Melanchthon)은 자신의 손으로 구독한다.
18 안토니 코르비누스(Anthony Corvinus)는 아담 아 풀다(Adam a Fulda)의 이름으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도 구독한다.
19 존 슐라인하우펜(John Schlainhauffen)은 자신의 손으로 구독한다.
20 포르크하임의 마법학자 조지 헬트.
21 마이클 코엘리우스, 맨스펠드 설교자.
22 피터 겔트너, 프랑크퍼트 교회 설교자.
23 디오니시우스 멜란데르(Dionysius Melander)가 구독했다.
24 스트라스부르크의 폴 파기우스.
25 웬델 파버, 만스펠드 제부르크 목사
26 포르츠하임의 콘라드 외팅거, 울릭의 설교자, 뷔르템베르크 공작.
27 보니파스 볼파르트, 아우크스부르크 교회의 말씀 목사.
28 함부르크의 교육감 요한 아이피누스(John Aepinus)는 자신의 손으로 신청했다.
29 브레멘의 존 암스테르담도 마찬가지다.
30 존 폰타누스(John Fontanus), 로어 헤센(Lower Hesse)의 교육감, 구독.
31 프리드리히 미코니우스는 자신과 유스투스 메니우스를 위해 구독했다.
32 앰브로스 블라우러.
나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가장 저명한 왕자, 작센의 선제후, 그리고 로마 제국의 다른 왕자들과 영지들이 황제 폐하에게 제출한 고백과 사과를 읽었고, 또 읽고 또 읽었다. 나는 또한 비텐베르크에서 부처 박사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든 성례전에 관한 일치의 공식을 읽었다. 나는 또한 스말칼드 총회에서 우리의 가장 존경받는 교구장인 마틴 루터 박사가 독일어로 쓴 기사들과 교황권과 주교의 권세와 관할권에 관한 소책자를 읽었다. 그리고 나의 겸손한 의견으로는, 이 모든 것이 성경과 일치하며, 참되고 참된 가톨릭 교회의 믿음과 일치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지금 스말칼드에 모인 수많은 학식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나는 집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내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가장 저명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아버지이신 존 부겐하겐 박사여, 당신의 예의가 나의 이름을 더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필요하다면, 내가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에. 이는 제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와 같이 붙잡고, 고백하며, 끊임없이 가르칠 것임을 제 필체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존 브렌츠(John Brentz), 홀 장관.
Smalcald에서 완료,
1537년 2월 23일. (Source: https://bookofconcord.org/power-and-primac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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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cald Articles (Source: https://bookofconcord.org/smalcald-articles/ )
머리말
1 교황 즉위 이후 바오로 3세는 작년에 공의회를 소집하여 만토바에서 소집했다 Whitsuntide에 관하여, 그리고 나중에 Mantua에서 그것을 옮겼다. 그래서 그가 그것을 어디서 고칠 것인지 또는 고칠 수 있는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가 소환될 것을 예상해야 했습니다 또한 공의회에 알리거나, [우리가 규탄받을까 두려워서] 소환되지 않은 채, 나는 기사들을 모으고 수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우리의 교리에 대하여 [명백하게 하기 위함] 우리 둘 다 무엇을 그리고 어디까지 기꺼이 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 그리고 교황주의자들에게 굴복할 수 있었고, 우리가 의도한 바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끝까지 인내하고 거하는 것입니다.
2 나는 가지고있다 따라서 이 기사들을 편집하여 우리에게 제시했습니다. 쪽. 그들은 또한 받아들여졌고 만장일치로 고백되었습니다 우리 편에서, 그리고 그것이 결의되었다, 만약에 교황이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진지하고 대담해야 합니다. 거짓말과 속임수 없이 선의로 진정으로 자유를 유지합니다. [합법적] 기독교 공의회(Christian Council, 실제로, 그는 의무를 다할 것이기 때문에) bound to do), 명시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
3 하지만 로마 왕실은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을 너무나 끔찍하게 두려워한다 공의회를 열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빛을 피한다. 그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서조차 희망을 제거해 버렸다. 그것은 언젠가 자유로운 평의회를 허용할 것이며, 그 자체가 그렇게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나를 붙잡으라, 거기에, 공정하게, 그들[많은 교황주의자들]은 크게 기분이 상하고 그 때문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혐오감이 있습니다. 교황의 이러한 태만으로], 그들이 그럼으로써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교황은 차라리 모든 그리스도교국이 멸망하고 모든 것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그 자신이나 그의 추종자들이 겪는 것보다 저주받은 영혼들 조금이라도 개혁되고, 그의 [그들의] 횡포가 제한되게 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동안 이 기사들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평이한 글씨로, 그래서 내가 죽기 전에 죽어야 한다 협의회 (내가 완전히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처럼, 왜냐하면, 칼 누구 빛을 피하고 낮을 피하라, 그런 비참한 고통을 감수하라. 공의회를 지연시키고 방해함), 그 후에 살고 남아있는 사람들 나는 또한 나의 증언과 고백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내가 이전에 발표한 고백에 대해, 이로써 지금까지 나는 거해 왔고, 하나님의 은혜로 거할 것이다.
4 무엇을 위해 내가 말해야 할까? 내가 어떻게 불평할 수 있겠는가?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글을 쓰고 있다. 매일 설교하고 강의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발견된다. 악의를 품은 사람들, 적대자들 가운데서뿐만 아니라 거짓된 사람들 우리 편이라고 공언하는 형제들이여, 감히 나의 말을 인용할 수 있듯이, 나 자신에 대한 저술과 교리를 직접 살펴보고, 내가 보게 하소서 내가 다르게 가르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면서도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나의 노동으로 그들의 독을 장식하고 싶고, 나의 수고로 가난한 사람들을 [속이고 그릇 인도]하기 위해 이름을 부르라. [맙소사!] 슬프게 도! 내가 죽으면 가장 먼저 무슨 일이 일어날까?
5 그렇다. 나는 내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 모든 것에 대답해야 한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나 혼자서 어떻게 마귀의 모든 입을 막을 수 있겠는가? 특히 듣거나 알아차리지 못할 사람들 (그들 모두가 중독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쓰는 것, 그러나 전적으로 모든 부지런함을 다해 스스로를 행사한다 그들이 어떻게 우리의 말을 가장 부끄럽게 왜곡하고 타락시킬 수 있는지, 모든 편지. 나는 악마가 대답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분노,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분노. 6 나는 종종 좋은 것을 생각한다 Gerson은 좋은 것이 쓰여져야 하는지 의심합니다. 게시. 만일 그것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많은 영혼들이 등한시될 것이다. 배달되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해진다면, 마귀는 악과 함께 거기에 있을 것이다. 독재와 변태를 품고 있는 무수한 악랄한 혀들 모든 것,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매 [의 유용성 글]이 금지됩니다. 7 그러나 그로 인해 그들이 얻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들이 그토록 부끄러운 거짓말을 하는 동안에 우리와 거짓말을 통해 백성을 유지하기를 바랐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분의 사업을 진척시켰고, 그들을 따르게 하였다 우리의 것은 점점 더 작아지고 우리의 것은 더 커지며, 그들의 거짓말로 말미암아 그리고 여전히 그들을 수치스럽게 한다.
8 나는해야한다 스토리를 들려주세요. 에서 비텐베르크로 파견된 의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앞에서 공개적으로 그의 왕이 확신한다고 말한 프랑스와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데, 우리 가운데는 교회도 없고, 행정관도 없고, 결혼 생활은 하지 않고, 모두가 가축처럼 난잡하게 살며, 각자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9 이제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그들의 저술로 그토록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주입했다. 왕과 다른 나라들이여, 순수한 진리로서 우리를 보아라 그리스도의 심판 자리가 있기 전날입니까? 그리스도, 주님, 그리고 우리 모두를 판단하는 자는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항상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거짓말을 했다, 그의 선고를 그들은 차례로 들어야 한다;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하나님, 회심할 수 있는 사람들을 회개로 회심시키소서! 관련 나머지는 화가, 그리고, 슬프도다! 영원히.
10 그러나 to 주제로 돌아갑니다. 나는 진실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기를 원한다 평의회는 많은 문제들과 사람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교회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식과 함께 순수한 말씀과 성례전의 올바른 사용 다양한 부름과 의로운 행위에 대하여, 우리가 우리 편에서 어떤 평의회도 요구하지 말라, 그리고 그러한 점에 관해서는 더 나은 것이 없다 평의회에 희망을 걸거나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감독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도처에 너무나 많은 본당이 공허하고 황량하여 마음이 흐른다 깨질 것이지만, 주교들이나 교회법들은 어떻게 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살거나 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위해 그렇게 하셨다 죽었고, 그분이 그들과 함께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 그분의 양들과 함께 하시는 참된 목자로서. 11 이로 인해 발생합니다. 나는 몸서리치며 언젠가 그분께서 공의회를 보내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독일에 있는 천사들이 소돔처럼 우리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과 고모라여, 우리가 공회와 함께 그분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기 때문입니다.
12 게다가 그러한 필요한 교회 업무는 또한 있을 것입니다. 정치적 재산 무수히 중요한 문제들 개선하기 위해. 왕자들과 왕자들 사이에는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주들; 고리대금과 탐욕이 홍수처럼 밀려들었고, 합법적이 된 경우[권리의 과시로 방어됨]; 방탕함, 음란, 의복의 사치, 폭식, 도박, 게으른 전시, 온갖 나쁜 습관과 악악함, 불순종으로 신민, 하인과 노동자, 모든 직업의 사람들, 또한 농민의 강요[그리고 가장 터무니없는 판매 가격] (누가 모든 것을 열거할 수 있겠는가?) 너무 증가하여 그들이 할 수 없습니다. 10개의 위원회와 20개의 의회에 의해 시정되어야 한다. 13 경우 영적 및 세속적 지위의 주요 문제들 하나님에 반하는 것이 공의회에서 고려될 것이고, 그들은 모든 손이 너무 꽉 차서 아이의 놀이와 부조리가 긴 가운 [공식 휘장], 큰 톤슈어, 넓은 cinctures [또는 띠], 주교나 추기경의 모자 또는 철퇴 등 그 동안 저글러리는 잊혀질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가졌다면 하나님의 명령과 질서를 영적, 세속적으로 수행했다. 재산, 우리는 음식, 의복, 톤슈어를 개혁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잉여. 그러나 우리가 그런 낙타를 삼키고 싶다면, 대신에, 모기를 긴장시키고, 들보를 세우고 티끌을 판단하게하십시오, 우리는 또한 실제로 이사회에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14 그러므로 나는 몇 가지 기사를 발표했다. 우리에게는 이런 것이 없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국가와 교회에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 우리가 결코 이룰 수 없는 가족. 그렇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는 그것에 대한 많은 법령과 법령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공의회에서 결정되며, 특히 이러한 주요 사항들이 중요할 때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것은 존중되지도 지켜지지도 않는가? 그냥 비록 그분께서는 우리의 요술쟁이를 우리의 요술쟁이에 대한 보상으로 존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분의 엄숙한 계명을 발로 밟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는 무게가 실립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게 하신다.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게다가 모든 혐오스러운 것을 변호하기를 원한다.
15 오 주님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 자신이 공의회를 소집하여 구원해 주십시오 당신의 영광스러운 강림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종들이여! 교황과 그의 지지자들 를 위해 행해진다; 그들은 당신을 하나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는 도우시오. 가난하고 궁핍한 우리, 당신께 탄식하며 간청하는 자들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열렬히 당신과 함께 살아 다스리시는 당신의 성신을 통해 아버지는 영원토록 복되십니다. 아멘.
파트 I - 신성한 위엄
신성한 위엄에 관한 숭고한 조항의 취급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2부 - 예수의 직분과 사역
예수 그리스도의 직분과 사역 또는 우리의 구속을 언급하는 조항을 취급합니다.
제3부
다음 기사들에 관해서 우리는 학식 있고 이치적인 사람들과 함께 또는 우리끼리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교황과 그의[교황] 정부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양심이 아무것도 아니고 돈과 명예와 권력이 전부입니다.
서명.
1 박사 마르틴 루터가 구독했습니다.
2 박사 유스투스 요나스(Justus Jonas), 총장, 자신의 손으로 구독했습니다.
3 박사 존 부겐하겐, 포메라누스, 구독.
4 박사 Caspar Creutziger가 구독했습니다.
5 니클라스 마그데부르크의 암브스도르프가 서명했다.
6 조지 Altenburg의 Spalatin이 구독했습니다.
7 나, 빌립보 Melanchthon은 또한 위의 조항을 다음과 같이 간주합니다. 옳고 기독교적이다. 그러나 교황에 관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그는 복음을 허락할 것이며, 주교들보다 우월한 자신의 지위를 인정할 것이다 그가 그렇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것도 역시 인권에 의해 그에게 인정된다 우리에 의해, 그 그리스도인들의 평화와 일반적인 일치를 위해 그들도 역시 그의 밑에 있고, 앞으로도 그의 밑에 있을 것이다.
요한 8서 Eisleben의 Agricola가 구독했습니다.
9 가브리엘 디디머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10 나, 박사 우르반 레기우스(Urban Rhegius), 공국의 교회 감독관 뤼네부르크의 이름으로, 그리고 나의 이름으로 구독하라. 형제들과 하노버 교회의 형제들과 함께 할 수 있다.
11 나, 스티븐 Hof의 장관인 Agricola가 구독합니다.
12 또한 나, 마르부르크 대학의 교수이자 목사인 존 드라코니테스(John Draconites)도 구독한다.
13 나는, 콘래드 피겐보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는 이렇게 동의한다 믿었고, 지금도 위와 같이 설교하며 굳게 믿고 있다.
14 나, 안드레 뉘른베르크의 오지안데르, 구독하세요.
15 나, 뉘른베르크의 장관 Veit Dieterich, 구독합니다.
16 나, 에르하르트 슈투트가르트의 설교자인 슈네프(Schnepf), 구독.
17 콘래드 Oetinger, Pforzheim에서 Duke Ulrich의 설교자.
18 시몬 Schnevveis, Crailsheim 교회 목사.
19 나, 요한 복음 쾨텐 교회의 목사인 슐라인하우펜(Schlainhauffen)이 구독한다.
20 목사 포르크하임의 마법학자 게오르게 헬트.
21 목사 풀다의 마지스터 아담, 헤센의 설교자.
22 목사 Magister Anthony Corvinus, 헤센의 설교자.
23 나, 존 부겐하겐 박사, 포메라누스, 다시 한 번 구독한다 마지스터 존 브렌츠(John Brentz)의 이름은에서 출발할 때와 같습니다. Smalcald 그는 구두와 편지로 나를 지시했습니다. 구독한 형제들에게 보여집니다.
24 나, 디오니시우스 멜란더, 고백, 사과, 그리고 성체성사에 관한 콘코르디아(Concordia).
25 바울 로디우스, 슈테틴 교육감.
26 제라드 Oeniken, Minden 교회 감독관.
27 나, 브릭시우스 Northanus, 그리스도 교회의 목사, Soest, Martin 신부의 조항을 구독하십시오. 루터여,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믿고 가르쳐 왔음을 고백하노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나는 계속 이렇게 믿을 것이다 그리고 가르칩니다.
28 마이클 맨스펠드의 설교자인 코엘리우스(Coelius)가 구독했다.
29 목사 프랭크퍼트의 설교자인 피터 겔트너(Peter Geltner) 집정관이 구독했다.
30 웬달 Faber, Mansfeld의 Seeburg 목사.
31 나, 요한 복음 아이피누스, 구독해.
32 이와 같이, 나, 브레멘의 존 암스테르담.
33 나, 프레드릭 튀링겐의 고타(Gotha)에 있는 교회의 목사인 미코니우스(Myconius)가 구독하고 있다. 나 자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아이제나흐의 유스투스 메니우스의 이름으로
34 나, 에르푸르트 교회의 설교자인 존 랭 박사는 이 글을 구독한다 내 자신의 손으로, 그리고 내 다른 동료들의 이름으로 내 손을 들고 복음서에서, 즉 다음과 같다.
35 목사 Melsungen의 Ludwig Platz를 면허하십시오.
36 목사 마법학자 지기스문트 키르히너.
37 볼프강 키스메터 목사.
38 멜키오르 바이트만 목사.
39 존 톨 목사.
40 존 킬리안 목사.
41 니콜라스 파버 목사.
42 앤드류 멘저 목사.
43 그리고 나, Egidius Mechler는 내 손으로 구독했습니다. (Source: https://bookofconcord.org/smalcald-articl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