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쟁반에 청포도 먹던 날에~
미국 이민 와서 살림을 장만할 때 큰맘먹고 은쟁반을 한 개 샀었죠
그럴듯하게 써먹지 못하고 있었던 차에 처음으로 알게된 가족을 집으로 초대 했답니다
그 집 막내가 우리 딸아이 친구이기에 나이
비슷한 엄마끼리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구
모두들 바쁜 만큼 간단한 식사 대접이 서로에게 부담이 없으니
우리는 곧잘 냉면이나 국수 등을 나눠먹곤 했는데
그날 난 만두를 빚어 떡국을 대접했었고
후식으로 청포도를 내 놓으며 모시수건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은쟁반에 하이얀 수건을 깔아 내 멋스러움을 한껏 과시하려고
있는 폼 다 잡았습죠 언제적부터 꼭 해보고 싶었는데
처음으로 은쟁반에 청포도를 먹어 보노라는 얘기도 하며
내가 그다지 가식적인 사람이 아님도 강조함시롱~
그 집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집안의 어려운 어른 같으신 분이기에
우리들은 '당숙 어른'이라 불렀답니다
정성 담긴 식사도, 여고 적부터 그리던 멋진 후식도, 즐거운 담소도 끝나고
손님들이 가시는데 난 친절히 문밖에 나가 공손하게 안녕히 가시라고 고개 숙여 인사했지요
그런데 아뿔싸~~~`!! 아래를 내려다 본 순간 자주색 와코루 파자마가 눈에 보이는고야요
난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말았지요
시상에 그 어려운 당숙님을 내내 파자마바람으로 모시었으니
뻗쳐오르던 내 보람 우습게 무너졌나니...
그 후로 만나면 내가 무안할까봐 그랬는지
당숙 부인의 대형 사건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얼마나 배꼽 쥐며 웃었는지 몰라요
"그녀가 만삭의 몸으로 손님 앞에서 술상을 들다가 '뽕'~~"
"첫 아이를 서툰 솜씨로 업고 나들이 하다가 우연히 여고동창 부부를 만나 인사하는데
속곳이 다 흘러내려 있었다"
"남편 대학동기 모임이 있는 연회석상에서 음료수인 줄 알고 마신 칵테일에 졸도하여
앰브란스에 실려 가는데 중간에 깨어났지만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어 응급실까지 갔다는 등..."
만나기만 하면 재담 좋은 그녀 입에서 끊임없는 얘기가 쏟아져 나오니
청포도 멋들어지게 먹던 날의 내 실수는 은근 슬쩍 덮어졌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