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364) - 함께 걸어요, 새로운 미래를
어제는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의 한식(寒食)이다. 한식은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선비 개자추(介子推, 아버지에게 추방당한 진의 왕자 문공을 19년 동안 모셔 왕위에 오르는데 도움을 준 충신이었으나 왕이 된 문공이 그를 외면하자 어머니를 모시고 면산에 들어가 은거)가 잘못을 뉘우친 왕의 부름을 받고도 나오지 않자 산에 불을 지르면 나올까 싶었는데 그대로 타죽은 것을 기려 찬 음식을 먹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어제 오후 책을 빌리러 주민센터 도서실에 들르니 자원봉사자가 어린이들에게 한식을 설명하며 개자추가 면산에 숨어들어간 이야기를 한다. 학습에 도움이 될까 싶어 작년 가을에 개자추의 사당이 있는 면산을 찾았을 때 스마트폰에 담은 화면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면산의 개자추 사당, 앞은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염(廉), 치(恥) 를 새긴 비석
4월 1일부터 한국과 일본의 걷기동호인들이 2007년부터 2년마다 서울에서 도쿄까지 50여 일간 조선통신사들이 갔던 길을 따라 1158km를 걷는 제5회 조선통신사 옛길걷기 대장정에 나섰다.참가자는 89명(한국 27명, 일본 62명), 이중 34명(한국 13명, 일본 21명)이 서울-도쿄 전 구간에 도전한다. 이 행사에 참여하기는 2009년 2회 걷기부터 네 번째, 구간걷기와 완주를 체험하였기에 이번에는 국내의 일부구간에만 동참하기로 하였다. 금년은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대원들의 깃발에는 이를 기려 한일 간의 평화와 선린우호를 강조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하는 한국체육진흥회와 일본걷기연맹이 내건 구호는 '함께 걸어요, 새로운 미래를'이다.
걷기에 앞서 3월 30일에는 일본 측에서 초청한 만찬이, 31일에는 공동주최측이 마련한 교류회와 발대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최근 한일 간의 불협화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양국의 동호인들은 여러 차례 같이 걸으며 다진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조선통신사들이 오간 17세기에서 19세기 초반의 200여년이 한일 간의 평화와 신뢰가 쌓인 역사를 거울삼아 한일 간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다짐하였다. 발대식의 강연에서 연세대학교의 허경진 교수는 '한일 우정의 상징 조선통신사'라는 제목으로 조선통신사가 서울에서 도쿄에 이르는 행로를 그림과 함께 설명하며 통신사가 왕래한 200년이 한일 간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고 강조하였다. 통신사를 통하여 문화, 예술, 기예 등을 습득한 일본이 서구문명을 접한 18세기 이후에는 그 필요성이 줄어 이를 반기지 않게 되었다는 상황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흘간 일행과 함께 걸은 내용을 덧붙인다.
평화와 우정을 다짐하며 경복궁에서 출발하다
4월 1일 오전 8시, 한국관광공사가 마련한 재현행렬이 제복을 착용한 사절들과 함께 취타대와 순라군의 행진에 맞춰 경복궁을 출발하였다. 광화문, 남대문, 서울역을 거쳐 전쟁기념관에서 첫 휴식을 취한 후 서빙고, 한남동, 신사동을 지나 양재에서 점심을 들고 오후 5시 청계산자락의 정토사에 이르는 27km가 첫날 코스. 이영재 전쟁기년관장이 일행을 반가이 맞으며 빵과 음료를 재공하고 정토사 보광스님이 무사완주를 서원하는 법문과 함께 다과를 베푸는 등 환대해준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의 걷기행사가 의미 있다고 여긴 일본의 NHK와 공동통신, 조선일보, 국제신보 등 여러 언론기관이 관련보도를 내놓기도.
4월 2일, 오전 8시 청계산 옛골을 출발한 일행은 판교, 죽전을 거쳐 구성에서 점심을 들고 29km를 걸어 오후 4시 반에 용인 시청에 도착하였다. 2년 사이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와 건물 등 주변의 경관이 많이 변하여 지금도 개발의 여지가 많은 수도권의 모습을 확인하기도. 걷는 일행 중 최고령인 82세의 스즈키 기요코 여사와 몇 년 째 기수를 담당하는 76세의 호시가와 코조 씨를 비롯한 노익장들의 보무가 당당하다. 이날 만찬은 용인시 체육회에서 베푼 굴 정식, 걷기행사때 마다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용인시의 호의가 고맙다.
씩씩한 발걸음으로 용인의 천변을 걷는 모습
4월 3일, 오랫동안 극심한 가뭄에 시달린 중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려 대지가 촉촉하다. 밤새 내린 비가 아침에 그쳐 걷기에는 지장이 없다. 오전 8시에 용인시청을 출발하여 큰 고을이던 양지에 이르니 오전 10시 반, 면사무소에서 휴식을 하는 동안 일본에 거주하는 이성임 씨의 인척이 떡과 딸기를 가져와 간식이 풍성하다. 12시에 메밀국수로 점심을 들고 열심히 걸어 오후 2시 반에 백암면사무소에 당도하였다. 오후 간식은 충남 병천과 쌍벽을 이룬다는 백암순대, 순대맛을 잘 아는 천안의 고재경 씨가 별식을 제공하였다. 마지막 휴게소에서 든 간식은 멀리 광주 천혜경로원에서 보내온 음료와 과자, 작년의 부산-서울 걷기 때도 택배로 맛있는 음료를 보내주었는데 이번에는 더 많은 양이다. 엔도 야스오 일본 대표가 전화로 감사의 뜻을 담아 페난트를 전달해주도록 당부한다. 롯데에서 서울-부산 걷는 동안 충분히 마실 수 있는 맥주와 음료를 후원하기도.
3일째 걸은 길은 37km, 넓은 들판 길을 지나 오후 6시 용인군 죽산면에 있는 찜질방 건강나라가 최종목적지다. 사흘 동안 함께 걸은 5명은 이곳에서 일행과 작별, 훗날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였다. 돌아오는 길의 서산에 걸친 석양이 아름답다. 억겁을 여상하게 운행하는 태양을 바라보는 백년 인생, 무엇을 향하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보광 스님은 마음을 비우고 걸으라 설법하고 노정의 로타리클럽 비석은 초아(超我)의 봉사를 강조하네. 이를 새기며 밝운 내일을 향해 함께 걸어요.
* 여러 차례 함께 걸으며 내가 쓴 기행록을 손수 그린 삽화를 곁들여 일본어로 번역하여 일본걷기 일행들에게 나눠준 재일동포 안정일(72세)씨가 불참하여 궁금하였는데 시마 후미코 씨가 사연을 알려준다. 이번 에도 참가하기로 하였는데 지난 1월 기억상실증세가 나타나 의사가 참가하기 어렵다는 판정을 하였다는 것, 의외의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경남 사천이 고향인 그는 2012년 한국일주 전반 걷기 때 고향면사무소에서 숙부의 호적을 통하여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계의 연원을 확인하며 감격하였다. 아버지의 고국을 일주할 수 있음을 큰 보람으로 여기던 그의 건강이 회복되어 함께 걸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메밀꽃 필무렵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